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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의 능력

사무엘상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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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새벽기도에 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다윗이 그일라를 떠났습니다. 그일라에 있다가는 그일라 사람들이 사울에게 다윗을 넘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일라를 위해 싸웠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외로운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동역자의 능력을 체험시키십니다. 이 동역자가 하는 일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1- 동역자의 위로가 능력이 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동역자의 위로가 능력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일라에서 그곳 주민들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그 성읍의 지도자로 추앙받거나 영웅 대접을 받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곳에 계속 있다가는 그일라 주민이 다윗을 사울에게로 넘길 수 있다는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그곳을 빠져나오기에 급급했습니다. 이렇게 대접도 못 받은 다윗이 떠난 곳은 어디입니까? 14절을 보면 주로 다윗은 인적이 드문 광야에 거주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광야는 풍족함 보다는 부족함이 있는 곳입니다. 외로운 곳이고 때론 괴로운 곳입니다. 거기에는 다윗을 적극지지 하는 사람이 있는 대신에 다윗이 책임져야 할 사람만이 있습니다. 15절에 보시면 다윗이 사울에게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십광야에 수풀에 있었습니다. 이 수풀은 히브리어로 호르샤라고 하는데 그냥 수풀보다는 호르샤라는 지역에 있었다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이때 다윗의 적극적인 지지자이자 동역자인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렀습니다. 16절에 보시면 요나단이 다윗을 그냥 만난 것이 아니라 다윗이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도록 했다고 나와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믿지만 사울 때문에 두려움에 떨고 있기 때문에 다윗을 위로하려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7절에 보시면 요나단이 다윗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울의 손이 다윗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다윗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사울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요나단이 위로한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다윗이 겪고 있는 현재의 어려움이 다윗을 완전히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반드시 그의 소명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18절에 다윗과 요나단은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합니다. 이전에도 다윗과 요나단은 언약을 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의 생명을 지켜주고 서로의 집안 후손들을 지키는 언약을 맺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다시 한 번 이 약속을 확인했습니다. 요나단은 여전히 다윗을 지지하고 다윗의 동역자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는 일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도울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의 목숨을 앗아가지 못하도록 지킬 것입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 앞에서 이뤄졌습니다. 다윗이 사울 대신 왕이 되는 것은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목적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뤄지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고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알며 하나님의 일이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 그 안에서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동역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위로하고 다윗은 왕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갈 것입니다.
(적용) 우리는 다윗과 요나단을 통해 참된 동역이 무엇인지 보게 됩니다. 참된 동역자는 광야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겪고 있는 이를 위로하는 일입니다. 그냥 감정적인 위로가 아니라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요나단이 다윗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애쓴 것처럼 실질적으로 동역자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애쓰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광야라는 어렵고 위험한 곳으로 와서 다윗을 위로했습니다. 우리의 동역자가 광야에 있을 때 우리는 광야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동역자의 상황과 입장에서 동역자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찾아가서 한 것은 그냥 인간적인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이 둘은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걸 해낼 수 있다고 위로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위로도 이래야 합니다. 단순히 인간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것을 넘어서서 동역자가 함께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사역을 할 때 이 일이 반드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서, 교회 앞에서 언약하며 서로를 세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동역자간에 참된 위로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로할 때 감정을 해소하는 측면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여기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요소를 포함해서 결국은 하나님을 위해 더 섬기자고 서로 언약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는 일이 지치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론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고 교회를 떠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래 힘들지? 그냥 하지 말자 쉬자 쉬자 이게 다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이럴꺼면 안하는 게 낫지”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힘들지만 우리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큰 일 하실 거야! 아, 이게 뭔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커서 이런 아픈과정이 있나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감정만 해소하고 지나가는 위로는 감정 해소 이외에 아무런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 앞에서 교회 앞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함께 이뤄보자 힘들지만 나아가자 라고 언약할 때에 그 위로는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참된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가운데 우리에게 동역자를 붙여주시는 이유는 동역자로부터 능력 얻어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2- 공모자의 공조는 무너진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 공모자의 공조는 무너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19절부터 보시면 굉장히 위협적인 장면들이 나옵니다. 보시면 다윗과 함께 숨었던 사람들이 사울에게 투신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다윗과 함께 했던 사람들인 것으로 보이는데, 다윗에게 불만이 생긴건지 아니면 민수기에서처럼 광야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안들었던지 혹은 사울에게 다윗에 대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뭔가 보상을 받기를 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이유에서건 다윗과 함께 있던 자들이 다윗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사울에게 간 것 자체가 다윗에게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다윗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십사람들 그리고 다윗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사울, 이 둘의 조합은 다윗에게 위험합니다. 사울 입장에서 보면 사울과 십 사람들의 공조는 굉장히 완벽합니다. 정보력과 군사력이 합쳐져서 곧 다윗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이 둘의 공조는 다윗과 요나단의 동역과 대조됩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하나님 앞에서 언약했지만 사울은 십사람들에게 그저 복을 빌어줄 뿐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공조는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세우기 위한 동역이지만 사울과 십사람들의 공조는 오히려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협하는 공조일 뿐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공조는 연약해보입니다. 그저 서로 위로를 하고 서로 목숨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사울과 십사람들은 실질적으로 다윗에 대한 정보와 다윗을 잡을 군사력이 결합된 현실적이고 위협이 되는 그런 공조입니다.
누가봐도 다윗과 요나단 팀보다는 사울과 십사람 팁이 더 힘이 있고 정보력이 있어보입니다. 반면 요나단은 다윗에게 필요한 정보를 자세히 전달하진 못했습니다. 요나단에게는 사울처럼 군대를 부릴 수 있는 권한도 없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팀웍은 너무나 약해보이고 사울과 십사람의 팀웍은 너무나 위협적입니다. 실제로 이 위험한 팀은 다윗을 추적하는데 성공합니다. 25절에 다윗이 마온 황무지에 있을 때 사울이 알고 다윗을 따라갑니다. 26절에 사울은 다윗을 거의 둘러싸고 포위에 성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전령이 사울에게 찾아옵니다. 그 내용은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23장 8절에 보면 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 모아서 다윗을 추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블레셋에 대항할 최소한의 군사마저도 대기시키지 않고 많은 병력을 다윗을 추적하는데에 돌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령이 급하게 사울에게 연락을 한 것입니다. 사울은 급하게 자신의 병력을 끌고 블레셋을 막으러 가고 다윗은 사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말한 것처럼 사울의 손은 다윗에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동역자의 위로가 실질적인 능력이 되었습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세상은 언제든지 우리 반대편으로 돌아섭니다. 그리고 모든 정보와 힘을 모아서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십 사람들이 다윗에 대한 정보를 사울과 공유한 것처럼 세상은 우리에 대한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우리가 어떤 죄에 약한지 우리가 하나님 외에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정보력과 그들의 힘을 모아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섬기지 못하고 좌절하고 넘어지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너무나 현실적이고 위험한 방법으로 우리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런 세상의 힘이 동역자가 주는 능력보다 약하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힘을 모아 우리를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합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막으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동역자를 통해 우리가 세상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옆에 동역자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동역자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로하고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도록 하는 이것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교회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권면해서 우리를 유혹하고 위협하는 세상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갑작스러운 블레셋의 침공 때문에 사울이 군사를 돌린 것처럼 동역자가 서로를 붙들 때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이기게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하십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동역자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권면하고 위로할 때 세상의 그 어떤 악한 영향력도, 유혹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이 우리를 대적하기 위해 완벽하게 공조해서 우리를 무너뜨리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서로 하나되어 동역하는 이상 하나님의 일은 우리를 통해서 끊임없이 이뤄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운 동역을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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