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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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에 가족 행사가 있어서 주일에 부모님이 오셨다가, 어제 새벽기도를 참여 하셨습니다. 마치고 집에 가니까 하시는 말씀이, 수염 잘 깍고 목사는 항상 단정해야 한다고 하시고, 댁으로 돌아가시기 전에는, 제 컴퓨터를 보시더니. 이런거 할 시간에 기도에 힘쓰고 말씀에 힘쓰라고 하시더라구요
◎ 1절에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 하느니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아비의 훈계는 듣기 쉬운 게 아니죠 그렇죠? 아비의 훈계는 아들의 마음에 짜증이나 두려움 혹은 반항심을 불러 이렇게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가 두려움을 느끼든 반항심을 느끼든 아비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서 듣지 않건 간에 그가 무슨 이유를 되든지간에 오늘 본문은 성경은 아비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거만한 자라고 이야기하고 아비의 말을 듣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고 합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아들이 아비의 훈계를 듣는 이유는 뭘까요? 아비의 말이 자기의 생각보다 옳아서가 아닐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비의 말이 자기 생각보다 옳아서 듣는 아들이 아니고, 그냥 옳기 때문에 듣는 아들이면 그냥 옳으니까 듣는 거죠. 그렇죠?
지혜롭지 않은 아들도 그 아비의 말이 옳으면 듣습니다. 보통 아들들은 아비의 말보다 자기 생각이 더 자기 세대에 맞고 더 현실적이고 더 합당하다고 생각해요. 아들들의 생각이 좀 그렇죠. 따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아비의 말을 듣는다면 이유는 아비를 아비라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이게 본문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들을만하고. 합리적이고. 옳다고. 느껴져서 듣는 것은 사실은 우리가 잘 생각해야 되는 부분이에요. 그건 믿음도, 지혜도 아니라. 그냥 반응하는 거죠.
그래서 이 아들이 아비의 말을 듣는 것은 아비를 아비라 생각하기 때문이고 아비가 아들보다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내 생각이 아무리 옳다고, 합당하다고 현실적으로 이게 더 효율적이라고 느껴진다고 할지라도 아비는 아비. 아들은 아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잊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듣는 자 라고 이야기 하고, 그래서 지혜로운 아들이 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아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끌고 가시는 길이 매우 합당하고, 지혜롭게 보이고, 나에게 충분히 다 이해가 되기 때문에 그 길을 내가 따라 간다면 그것은 내가 정말로 하나님을 믿어서 그 길을 가는 것인지 아니면 그 길이 옳다고 판단한 나의 판단을 따른 것인지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건 믿음이 아닐 거예요. 나에게 다 이해된 이유로 믿는다면 그게 믿음 인가? 내가 다 이해했기 때문에 믿는 것은 내가 믿을 만하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인 나의 판단.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믿음입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아들이 아비의 훈계를 듣는 다는 말은? 아비를 믿는다는 말이죠 그렇죠? 믿기 때문에 듣는거고, 이해하기 어려워도 일단 듣는거예요. 불편해도 일단 받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은 곧 들음이죠.
따라서 거만한 자가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않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는 자기가 아비 보다. 크다고 생각하고, 자기 생각이 아비의 말보다 다 옳다고 확신 해요 그래서 결코 즐겨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말을 판단 하죠
따라서 모순과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공의와 정의가 완전히 짓밟힌 가운데서도 그게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아버지께 귀를 기울이고 아버지께 전적으로 복종 하신 예수님 이야말로 믿음의 가장 완전한 모델, 지혜로운 아들이시죠
잠언 2절 3절을 보면,
잠언이. 전체적으로 말 이 입술 혀 이걸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 하고, 그만큼 우리가. 쉽게 걸려 넘어지는 것들이죠. 우리에게 많이 적용이 되어야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런데 우리가 아는게 있지않습니까?
어제도 이야기 했지만, 말 이 입술 혀는 그냥 단지 말 입 입술 혀가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 쏟아져 나오거나. 새어 나오는 출구 일 뿐이죠 결국 마음 이야기죠. 여러분 입의 열매로 복록을 누리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말 때문이기 이전의 그의 마음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아비의 말을 즐겨 듣는 마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듣는 마음 이기 때문이고. 그가 그 말씀을 즐겨 듣는 이유는 그가 아비를, 하나님을, 마음으로 경외 하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 자기 보다 크신 분임을 결코 잊지 않기 때문에 그는 즐겨 듣는 자가 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을 중심으로 말하기 때문에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습니다. 농담을 못하는게 아니라 어떤 진실을 말함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들음으로 말하려 한다는 것이죠.
반대로 하나님께 엎드리기를 싫어하고. 마음이 자기중심적으로 이렇게 꼬여 있는 자는 근거없는 자만심으로 입을 크게 벌리다가 낭패를 당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싫어하거나, 듣지 않거나, 또 듣는 것 같으면서도 안 듣는 자는, 결국 근거없는 자만심으로 말하게 되고 자기의 욕망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말을 만들어내는 일을 반복하기 때문에, 결국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되고 결국 부끄러운데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절입니다. 이게 이제 그 뜻이 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4절에 게으른자 이야기가 들어가 있습니다. 읽음. 왜냐면. 이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죠. 무슨 말이냐면, 게으른 자는 단지 게을러서, 게으른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 생명으로 가는 길에 대해서 아는~ 일에 게으른 자죠.
여러분 아무리 바쁘게, 아무리 분주하게,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은 게으른 거죠. 아무리 부지런히 살아도 하나님이 뜻과 관계없는 것은 안타까운 거죠 정말.
여러분 게으른 그가 생명으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기 싫어 하기 때문 이거나, 안 듣지 않기 때문이거나, 늘 듣는 것 같은데 사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듣기 때문이죠. 저도 교역자로서 목사로서의 삶을 돌아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같은데, 자신으로부터 듣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이 나에게 유리하도록 그렇게 듣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에요 뭘 하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면, 그건 게으른 것입니다. 따라서 부지런한 자에 마음이 뭐죠? 부지런한 자의 마음이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쉬지 않는 마음이죠.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쉬지 않는 마음.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절대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마음이 가 있는 곳에서 무언가를 하게 하시는 거죠.
결국 그는 풍족함을 얻을 것입니다. 이유는 뭐죠? 그가 마음을 다해 따르는 하나님이 풍족하시기 때문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는 공의를 좇게 됩니다.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죠.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는 자는 악을 쫓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이 시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공의와 악은 어떤 중립적 가치가 있는게 아니라 활동적인 운동하는 에너지가 있다고 합니다. 6절 .읽음.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는. 보디가드가 된다고 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 하게 하는 원인 된다고 이야기 해요
같은편 끼리 알아봅니다 공의는 같은 편인 정직을 알아봐요. 그래서 정직을 보호하죠 공의와 정직은 둘 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형제이기 때문에 공의를 추구하는 자와 정직을 추구하는 자는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공의를 추구하는 자들 끼리 만나게 되어 있구요,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자들 끼리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공의와 정직을 추구하는 자가 악과 죄를 추구하는 자와 함께 할 수 없는것이죠. 결국은 헤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결국은 9절에 읽음. 악인의 우두머리 사탄은 세상에 궁극적인 통치자가 아닙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죠.
여러분 의인들.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고 노력하는. 하나님 중심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혜자들의 귀는 항상 열려 있기 때문에 그는 타인의 권면을 듣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주장하려는 고집. 대신에, 다른 이에 권면과 충고를 그리고 지혜를 자기것으로 삼아서 더 풍부한 지혜의 삶을 살게 되는 거죠. 그래서 들을 수 있어야 더 풍부 하죠 무엇보다 하나님께로부터 들을 수 있어야 하는것이죠.
정리하면, 우리의 갈 길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고 따르고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겸손히 귀를 열고 타인의 소리, 나와 의견이 다른 소리, 아비의 소리, 하나님의 소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의에 길을 걷는 삶인것이죠..
13절 읽음. 우리가 잠언 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는 너무나 명백합니다.
제 자신이 넘어지는 때는 항상. 하나님 보다 내가 더 커졌을 때. 그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을 쫓는 것 같은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데 내 뜻을 쫓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뜻을 너무 잘 이용해 먹을때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이런 면에서 하나님이 나보다 크시고, 하나님이 전부시고, 내가 어떻게 되던지 하나님의 옳으심만 나타나면 된다는 생각을 끝없이 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 순간 교만한 자가 되고 거만한 자가 되고 귀를 막는 자가 되고 듣는 척하면서 안 듣는 자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매일 매일 죽는 수밖에, 매일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서 아비의 훈계를 즐겨듣는. 그게 옳지 않아 보여도. 지혜롭게 보이지 않아도. 아비의 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따라 감으로 결국 주님으로부터 지혜자라 나와 함께 가자 하시는 소리를 듣게 되는 우리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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