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9장

새벽기도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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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시작이 섬들과 먼 곳 백성들을 향해서 들어라는 요청으로 시작이 됩니다. 이런 요청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 되냐면, 요청자로부터 동심원으로 퍼지게 되요. 제가 있는 곳이 원의 가운데, 요청자 하나님의 소리가 있는 곳이라면, 원 맨 가장자리에는 자연 만물에 대한 요청이 있고 바로 안쪽에는 먼곳 백성들에 대한 요청이 있고, 더 안쪽에 핵심에는 고난 당하는 자기 백성이 있고. 그 안쪽으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소리 치고 있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때 그 동심원 점점 퍼져서 자기 백성들에게로 향하고, 자기 백성들을 통해서 먼 곳 백성들에게 향하고 먼곳 백성들을 통해서. 자연 만물의 대한 노래하고 찬양하라는 요청으로 확장되는 것을 형태로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날의 계획에, 하나님의 요청에 그렇게 귀 귀울여야 하는 이유는. 왜냐하면 그 일이 구원의 계획이. 너무나 멋지고 훌륭하게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일이 결국 먼나라 백성들과 모든 자연 만물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그리고 결국 그들을 위한 사건이기 때문에 귀를 기울이라고 요청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이 모든 일이 나라고 말하는. 어떤 존재로부터. 시작이 되고있쬬. 1절 읽음. 그러니까 이 엄청난 온 우주적 사건. 자기 백성에 대한 구원의 사건이. 이루어질 것인데, 그것은 나라고 하는 존재로 부터 시작이 되는데. 그럼 이 나는 뭘까요. 1절에 따르면. 하나님과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2절에선 자신은 하나님의 특별한 비밀병기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나는.
3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는데. 말씀에서 말하고 있는 나.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이스라엘이다.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3절. 읽음. 그랬어요 그런데 그렇게 특별한 하나님의 비밀 병기로 부름받은 내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놓치고 길을 잃었어요.
그래서 이곳 저곳. 길을 잃고 나의 만족과 행복과 나의 기쁨을 위해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고, 진을 빼면서. 헤매고 다녔지만 스스로 만족할만한 길을 결국은 찾지 못했어요. 모든게 다 헛수고였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결국 하나님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판단이 옳으시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4절에서 이렇게 고백하는거에요 4절 읽음. 이런 말씀이죠.
그런데 자 5절 부터도 계속해서 나가 등장하는데 5절 부터는 이 나가. 조금 달라져요 5절 이후에 나는 이스라엘과 구분되죠. 4절까지 나는 이스라엘인 것 같은데, 5절부터의 나는 이스라엘과 구분되어 이스라엘을 위해서 존재하는 나예요.
5절을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읽음. 아까 3절에서 나는 이스라엘이다 그랬는데, 5절에서는 내가 이스라엘 야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할자로 이제 분리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5절 말씀은 새벽이라 잘 모를수도 잇는데, 그렇다고 자세히 읽으면 더 잘 모를수. 헷갈리게 되어 있어요. 제가 이걸 한 30번 쯤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여러 성경번역 들을 비교하면서 읽어 봤더니. 가장 적절하게 번역된 성경이 공동번역 성경 인 것 같아서.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나를 지극히 귀히보시고 나의 힘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당신께로 돌아오게, 또 당신께로 모여들게 하시려고 저를 태중에서 지어서 당신의 종으로 삼으셨는데 이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게 가장 적절하게. 그리고 이해가 되는 번역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이 말씀에 따르면. 나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수종드는 자예요. 다시 말하면 나는 죄악과 실망으로 흩어진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으로 모여들게 하기 위해 택함 받은 자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읽음. 이제 나는 누구냐면 무기력해지는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이스라엘 중에 남은들을 일으키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하나님의 종인것이죠. 근데 놀랍게도 하나님이 6절에서는 그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쉬운 이라는 그 표현은 참 감당하기가 참 쉽다 별것 아니다. 그 뜻이 아니라 아주 기본적인일이라는 뜻이에요
왜냐하면 그 일이 끝이 아니고, 더 많은 일들이 있기때문이죠. 이제 나.라는 존재는. 흩어진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불러모으는 자이지만 그 일을 뛰어넘어. 땅 끝까지 그 하나님의 구원을 이르게 하는 이방의 빛이 되게 할 자이기 때문에. 그 일은 기본 이라는 거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그 일.이 기본이자. 시작.
그런데 그런 내가. 이방의 빛이 되기 위해서 걸어야 할 길이 있다는 거에요. 그 길은 뭐냐면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백성들에게 미움을 받고 관원들의 종이 된 듯 구차해지는 고난의 길이라는 거에요. 고난의 길이지만, 결국엔 그 길은 오히려 역전이 돼서 왕들이 내 앞에서 일어나고. 고관들이 내 앞에서 경배하는 영광의 길로 뒤바뀌게 될 거라고 이야기하세요.
이유는? 이스라엘을 구속하는 일을 맡기신 하나님께서 그 길의 주체자 이시기 때문 이라고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게 7절입니다. 읽음. 그렇죠.
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종인. 나와 함께하심고, 나를 보호하실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그 나라를 다시 일으키실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황폐해졌던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서 그 땅을 다시 자신들의 기업으로 상속받게 하는 일을 나를 통해서 이루실 거라고 지금 이야기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게 8절이죠.
지금 듣고 계신 성도님들은 이런 생각이 자꾸 들거예요. 나라고 말하는 이자는 누구야? 그리고 굳이, 고난의 시간을 통과 해야만 하는 나는 누군가. 이렇게 질문하게 되죠. 매일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아무나 물어도 대답은 하시겠지만.
답은 고레스죠. 페르시아의 초대황제 고레스에요. 키루스 2세 라고 하는데, 이 고레스가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자기들의 조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해 줄 거라고 하는 말씀을 이렇게 빗대어서 하고 계시는 거예요.
근데 고레스의 인생을 새벽에 들어보셨을지 모르겠는데 고레스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만 알아보려고 해도 금방 알게 되는 게 있는데. 고레스는 험하게 자랐어요. 굉장히 험하게. 고난을 받았죠. 그니까 아버지는 페르시아족. 페르시아라는 나라가 서기 이전에. 페르시아 쪽이 있었고,
페르시아 족에 그 안산이라는 나라가 있었어요. 안산. 경기도 안산 말고. 안산이라는 나라의 왕이 아버지예요. 그리고 엄마는 만다네라는 사람인데. 그 옆에 메디아라는 나라. 아스티아 게스라는 왕의 딸이에요. 그러니까 외할아버지가 왕인거죠.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면, 외할아버지가 굉장히 권력욕이 강한 왕 이였습니다.
그런데 전설에 따르면, 자기의 딸 만다네가 태몽을 꿨는데. 태몽의 내용 뭐냐면. 자기 딸의 아들이. 할아버지를 축출하고 왕권을 쟁탈 한다는 그런 식의 이제 해몽이 됐다는 거예요. 거기에 아스티아 게쓰가. 헤롯처럼. 영아 살해를 지시합니다.
그래서 이 외손주를 죽이라고 명하죠. 그런데 이 살해 명령을 받은 신하가. 이 아기. 고레스죠. 이 고레스 아기의 엄마 만다네가 결국은, 정권을 잡게 될 걸 알잖아요? 그 보복이 두려워 가지고 못 죽이고, 대신에 아스티아 게스의 목동에게 아이를 맡겨요.
그리고 목동도 아기를 못 죽이고 결국은 숨겨서 자기 아들처럼 키워서, 이 고레스가 어릴 때부터 목동의 아들로 자라는 거예요. 그니까 목동의 아들로 이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엄청나게 고생도 하고 어려운 일도 많이 겪고 이제 하는 거죠. 알 듯이 목동은 굉장히 하층민들과 이니까. 그런 배경이 있는데.
아무튼 나중에 이 고레스의 신분이 밝혀지면서. 페르시아에 있는 친부모에게로 돌아가게 돼요 그리고 이제, 성년이 된 다음에 힘을 키우고, 외할아버지. 아스티게스의 메디아.를 메디아 제국을 5년만에 정복하게 되는거죠. 그러고 나라를 새롭게 해서, 메디아에서. 페르시아 제국을 세우게 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성경음역으론 메데에서 파사로됩니다. 그래서 키루스 2세. 이 고레스가 사실은 대단한 왕인거죠. 신 바벨론 이하.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까지 대 제국을 만들어냈지않습니까?
그런데 이 고레스의 통치의 특징이 뭐냐면. 종교적 관용과 타 민족에 대한 배려예요. 그래서 그런 대대로 관대한 군주로 알려줘요. 우리가 추측할 수 있겠는데, 대 제국의 황제에게 엿보기 어려운 고레스에 그런 관대함은 그런 목동이 아들로 보냈던 고난의 시간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순 없을겁니다.
어쨌거나, 그는 말씀처럼 고난을 아는자죠. 고난을 아는자. 그리고 결국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가두어 져 있었던 이스라엘을 건져 예루살램으로 돌아가게 한자죠. 그 돌아갈 때 필요한 물품까지 제공 해주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얼마든지 느낄 수 있듯이. 1차적으로는 고레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사실 고레스를 넘어 예수님을 상징하는 거죠. 예수님. 고레스와 예수님을 비교하자면 이렇게 비교할 수 있을것같아요. 쉽게.
고레스가 어떤 한 지역에서 태어난 왕족이었다면 예수님은 영원한 만왕의 왕이셨죠. 고레스가 왕실에서 쫓겨난 목동의 아들로 험한 시간을 보냈다면, 예수님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왕의 보좌를 스스로 버리고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극단적 고난의 길을 걸으셨죠.
고레쓰는 중앙아시아 유목민들과의 전쟁 중에 전사 했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셨죠. 고레스가 아무리 관용 정책을 펼쳤다고 해도 그가 세운 나라는 결국. 칼과 창과 피로 세워진 제국이었어요
하지만 예수님의 나라는 칼과 창으로 그를 찌르는 대신에, 칼과 창이 내 몸을 찌르도록 나를 내어 주심으로 내 피를 흘리는 희생적인 사랑과 신뢰의 아름다움으로 세워지는 영원한 나라였던거죠. 결국 고레스의 제국은 열방에 두려움이었지만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방의 빛이 됬던거죠.
주 예수 그리스도는 결국 하나님을 떠난 압제의 질서. 스스로가 힘있는 자가 되어서 힘없자를 누르고 짓밟고 차별하는. 세상을 피와 두려움과 의심으로 채우는 악.의 상징 바벨론은 무너뜨린이시죠.
그리고 자기 백성들을 불러 모아서 사랑과 신뢰로 이끄셔서 영원한 샬롬을 누리게 하십니다. 고레스가 바벨론을 칼과 창으로 무너뜨려서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구원했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원히 구원하여, 진정한 전쟁의 또 다른 전쟁을 낳는 그런 해방이 아니라 영원한 샬롬을 누리는 평화를 이루 시계 됐던거죠
여러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구원만이. 실제적인 구원의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잡혔던 자들 흑암의 갇혔던 자들을 그곳에서 나오게 할 거에요. 하나님으로 인해서, 그 사람들은 끌려갔던 황량한 길을 되돌아오면서
길에서도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게 되고, 헐벗은 산에서도 쉴 곳을 찾을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굶주림과 목마름에 고통해서 영원히 벗어나게 될 것이고, 뜨거운 태양의 고통에 상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죠. 그들의 하나님. 그들을 긍율히 여기시는 분이. 그들을 샘의 근원으로 인도하시는 아버지시기 때문이죠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택하신 고한의 종. 고난을 이기고 승리 하실 종을 통해 이루실 거에요. 그로 인해서 하늘과 땅과 산들은 영원토록 함께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이시고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의 나라에 아름다운 그림이죠 13절 읽고 마칩니다. 읽음.
이 아름다운 그림을 품고 눈을 밝혀 예수님의 길을 찾고 그 길을 위해 서서 걷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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