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4장

새벽기도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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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가 사역중에 수넴에서 귀한 여인을 만납니다. 귀하다를 히브리어로는 가돌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항상 그래이트라고 번역었죠 보통이런표현은 사회적으로 유력한 이들. 경제적으로 풍족한 이들에게 붙여졌습니다. 그런데 어제 이야기 했듯이 당시 사회는 바알.숭배적 사회죠. 부요와 풍족.이 최대의 가치라고 생각되는 시대에 굉징히 유력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잘 대접했다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태도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본문에서 눈에 띄게 되죠
엘리사는 수넴에 방문할때마다. 이 여인의 집에서 식사교제를 했는데, 친밀함이 꾀 형성된거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 잘챙겨준것이 아니라. 완전히,입니다 엘리사가 집무하고, 쉬는데 필요한 모든 가구들을 가져다가. 2층을 올리게 된것인데, 당시 시대가 상당히 어려웠던것을 고려하면, 사치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엘리사는 이 어두운시대에 많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신앙적으로 서보려고 하는 여인이 너무나 고마워서였는지, 뭔가 격려하고 싶어서였는지, 그녀의 필요를 묻게 됩니다. 그런데 그 대답에 뭐냐면. 13절에있는데. 읽음. 아마도 여인은 왕이나 사령관의 큰도움을 구하는 상당히 큰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합니다. 물론 엘리사가 자신은 왕이나 사령관과 친하다는 그런 허세로 말한 것은 아니였겠죠.
그런데 문제 이 여인이 아주 정중하게 거절을 합니다. 뭐라면, 나는 내 백성중에 거합니다. 이런말이죠. 다시말하면 나는 지금 이 상황이면 충분하고, 특별한 대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고, 다른 백성들과 똑같이 대하면 됩니다.라는뜻이죠. 상당히 지혜롭게 거절을 했는데, 그런데 엘리사도 모르는 것을 아는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비서 게하시였습니다. 아 가정의 핵심적인 문제를 알고있는데, 바로 후계자가 없다는것이죠.
여러분 그런데 이 여인이, 자신은 분명 그런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에게 구하지않은 이유는, 자기는 이미 포기했기 때문이예요. 게하시가 뭐라고 하냐면, 이 여인에게는 아들이 없고, 남편은 늙었습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아이를 생산할수 없기에. 불가능한 것을 선지자에게 구하지않은거 같다고 하는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아이를 못가지는. 불임이. 어떤 개인의 컴플랙스라든지. 열등의 감정을 만드는 동기라기 보다는. 성경은. 이 불임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아주 중요한 통로로 사용되곤합니다. 사라.라든지. 한나.라든지. 오늘 본문의 여인이라든지. 세레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라든지. 모든 위대한 믿음의 여인들의 공통점은. 불임이였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의 출발이라고 볼 수 있는 아브라함부터도. 창세기 11장에 아이 없음으로 시작하죠.
여러분 불임이라는 것은, 생명이 없는 것, 좌절과. 절망인데. 하나님의 구원은 바로 그 생명 없음에서부터 시작하는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지금 새벽기도를 마치고, 세상에서는 어떤존재이든. 우리는 죽음을 향해서 나아가는 존재죠. 결국은 생명없음으로 가게 되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죽음입니다. 죽음으로 가며 우리가 서로에서 미움을 생산하고, 갈등을 생산하는. 말들로 가득한 이 세상. 불임의 인생가운데. 생명을 넣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이잖아요. 그러니까 불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중요한 상징인것이죠.
따라서 수넴여인의 가정의 문제는 단지 한가정의 문제라기 보다는 당시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불임과 같은 상황이였고, 그것이 어떻게 치유될 수 있겠는지에 관해서 하나님께서 보이시려고 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할수 있을거 같습니다.
이 여인의 형편을 들은 엘레사는 하나님께 물었을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죠. 16절. 읽음. 아마도 이 여인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그저 전설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결국 일년후에 아들을 낳습니다. 저는 아이를 낳은 기쁨이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잘 모릅니다. 아무래도 교역자분들중에 제가 젤 모를거 같은데, 물론 가까운 성도분들중에. 실험관도차도 포기할정도에서 얻었던 딸.에대한 기쁨을 간접적으로나 느낄수는 있었지만.
어쨋거나. 이 가정이. 아이를 낳았을대. 엄청나게 기뻣을껀데. 놀랍게도. 2. 오늘 말씀은 이 아이의 탄생의 기쁨에는 일체 언급이 없고. 바로 죽음의 사건으로 들어갑니다. 마치. 이 아이가 죽기위해 태어나기라도 했다는 듯이. 성경의 관심에 탄생이 없어요. 그리고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로 들거가게 되는데. 20절에 바로 죽어버리죠. 엄청난 기쁨이 절망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였습니다. 아빠를 마중하러 밭에 나갔던 아이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더니. 걱정할 틈도없이 죽은것입니다. 당시 일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근데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인데, 원래 없던 아들입니다. 그리고 바라지도 않았고, 기대하지않았지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셨고, 태어났는데, 바라지도 않았던 아이를 약속대로 주실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이아이가 죽지않도록 할 수 있는 하나님이시잖아요. 왜 하나님은 이 아이가 죽도록 내버려두시는걸까요.
여인은 당장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갈맬산까지. 바로 달려가는데, 그런데, 20절과 21절을 보면 이 여인은 아무런 통곡이 없습니다. 당시 규례상 통곡하는시간이후에 장례식을 치루는데, 그런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보입니다. 오히려 자기의 아들의 죽음의 과정이 더 이상 진행되지않게 하려는 듯이. 문을 닫고 엘리사를 향해 달려가는거죠.
정상적인 장례라면, 죽음, 입관, 위로, 발인인데, 이 여인은 죽음과 입관사이에. 엘리사를 끼워 넣은것입니다. 아마도 이여인도 그렇게 생각했을거 같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아들인데, 이대로 죽는건 아닌거라고, 그런마음으로 엘리사를 찾아갔을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뭔지 엘리사를 통해서 물어야겠다. 지금 그뜻을아는게 중요했다는것이죠.
그런데, 엘리사는. 이 사실은 몰랐지만, 자신을 보자말자 발을 끓어안은 그녀의 과도한 행동에 무슨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하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않고 내버려둡니다. 나중에 이소식을 듣고 게하시를 보내지만, 여인의 좀더 강력한 요청에 직접 수넴으로 가게 됩니다. 엘리사는 도착하자말자 아이의 상태를 살폈으나. 죽은게 확실했습니다. 할수있는건, 하나님께 부르짖는거 뿐이였습니다. 부르짓즘
그런 부르짖음가운데, 전에 엘리야 스승이 그랬던것같이. 성령의 이끄심을 받습니다. 34절 자기 입과 아이입을 겹치고, 눈과 눈, 손과 손을 맞닿게 해서. 마주보면서 엎드리죠. 여러분 한번 이모습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요 마치 엘리사의 생명이 그 아이에게 전이 되듯이. 자신의 생명이 그 아이에게 흘러가기를 갈망하는 태도죠. 자신의 생명은 빠져나가더라도, 아이는 살리는 방식으로. 이런 행동을 하라고 하신거 같습니다.
여러분,이것은 죽기를 위한 기도죠. 엘리사 그 자신이 살기위한 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거는기도. 내가 죽어도 좋으니.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라고. 하는기도. 결국아이가 살아납니다. 7번 재채기하고 살아나는데, 7번 재체기의 뜻은. 살아난게 틀림없음. 완전한수.입니다.
여러분 결론인데요. 여러분, 하나님은 선물로 주신 그 아이가 그냥 건강하게 잘 살게 하실수도있습니다. 아니면 아이가 혹 죽었다고 해도 간단하게 말씀으로 살릴수도 있을텐데, 왜 이런 메시지를 주셨을까요. 예수님은 시각장애인을 고칠 때, 어떤때는 그냥 말씀으로, 어떤때는. 진흙과 침을 비벼서 바르셨죠. 그리고 연못에 씻으라고 하시고. 하나님 마음대로 하실까요? 물론 아니겠죠. 물론 우리는 정확한 이류를 알순 없습니다.
다만. 그 사람은 알거예요. 그사람. 여러분 그사람에게 그런 과정을 통해 마음의 깨움침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일것입니다. 우리도 돌아보니까 그런거 같습니다. 나에게 왜 그렇게 쓸데없는 일이.없었으면 좋았을일이. 그렇게 나를 피곤하게, 번거롭게, 억울하게. 힘들게. 좌절하게 했던 그 섭섭한 일이 그 때 왜 있었지? 라고 돌아보면. 정확하게. 우리를 위해서 필요했던 일들이예요. 너무나도 적절하고 적시였던 하나님의 사인이라는 것을 돌아보면 알게 됩니다.
여러분 이 여인이 처음에 아들을 가지게 되었을 때. 믿음으로 가진게 아니였어요. 심지어 엘리사에게 속이지 말라고 했죠. 그랬던 여인이., 이제 아들이 죽으니까. 어떻게 됩니까? 자신의 생명을 걸만큼 간절한 믿음으로. 모든 것을 제꺼두고 기도합니다. 이게 중요한거죠. 이 과정을 통해서 아들을 얻게 되었는데, 다시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최대의 고통인 자녀의 죽음을 허락하심으로. 보다깊은 신뢰의 열망의 자리로 가져가신것이죠.
여러분 우리각자가 겪었던. 견딜수없었던 고통과 아픔. 죽을거같았던 고통의 시간들 덕분에. 하나님의 사랑에, 하나님의 진리에 조금더 갈수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물론 그 시간들은 우리에게 힘듭니다. 하나님이 왜 모르시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락하십니다. 그래야만 하기에. 그게 우리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에.
오늘 일이 그녀에게 없었다면, 어땟을까요. 아들잘키우고, 좋은대학보내고, 잘먹고 잘살게 되었더라... 아무의미없죠. 여전히 똑같이 죽음에 삼켜지는 불임의 인생이죠. 하지만 이 여인이 고통의 자리에 통과함으로서. 이제부터 이 여인은, 세상 모든 죽음에 이르게된 고난속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그들을 돕는 위대한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적지않은 경우에 우리에게 죽음의 자리를 통과하게 하십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을 더 고귀하게 빚어가십니다. 여러분 혹여나 죽음같은 상황에 있더라도 우리 주저앉지 맙시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 달려갑시다. 하나님은 반드시 되찾아 주실 것을 믿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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