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8장

새벽기도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29 views
Notes
Transcript
Sermon Tone Analysis
A
D
F
J
S
Emotion
A
C
T
Language
O
C
E
A
E
Social
View more →

오늘 28장부터 35장까지 말씀은, 또 하나의 이사야서의 중요한 문단을 보여줍니다, 바로 유다와 앗수르의 임박한 전쟁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죠. 유다와 앗수르가 이사야 당시에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게 얼마나 큰 두려움 입니까?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상대가 안되는 나란데, 마치 한국이 미국하고 전쟁을 한다. 이런것처럼. 상대가 되지 않는 전쟁이 이제 일어날거다. 이렇게 경고를 하는 것입니다.
유다가 아하스 왕의 시대를 지나서, 히스가야 왕의 시대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히스기야가 경건했잖아요, 근데 잘못한게 하나 있죠. 뭔가하면. 앗수르의 세력을 한번 피해보고자 애굽하고 동맹을 맺었던거죠. 선지자는 니가 에굽하고 동맹을 맺어서는 살수 없고, 앗수르를 대적할순 없다, 하나님만 의지해야지, 눈 앞에 보이는것들 이것저것 붙잡고 피해볼길 찾는다고 해서 되는 것 아니다. 그런 말씀을 전하는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에굽하고 동맹을 맺은 것이 주전 701년인데, 그로부터 22년전에, 주전 722년 혹은 723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이미 망했죠. 그러니까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한 이야기를 이사야 선지자가. 28장에서 하고 있는것입니다.
에브라임은 북왕국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이기에.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죠. 1절에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여. 라고 말하면서, 그들 곧 사마리아가. 북왕국의 수도 사마리아가 어떻게 무너졌는가. 하는 것을 경고로 보여주고 있는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말이냐면, 하나님이 왜 자기백성들을 이렇게 치시는가. 그 이유가 딴게 아니라. 하나님을 떠낫다는거예요. 타락했다는것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은 타락한교회가 어떤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있습니다.
근본적으로 타락은 교만에서부터 나왔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한 교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꺽으시는가. 그런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있는데, 3절에 읽음. 그들의 화려한 면류관, 그들이 의지하고. 그들이 자랑할만한 것들을. 다 땅에 던져서 밟아버리게 한다. 그런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난다는거죠.
4절에보면, 처음익은 무화과를 보는이가 얼른따먹는다는것처럼.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뭐 이런것처럼. 그 영광이 다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근데, 어제도 이야기 했던것처럼, 심판과 구원은 붙어있다고 했죠. 구원의 메시지가 있는데 5절이죠.
그 남은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셔서, 아름다운 화관이 돼서 그들을 영화롭게 한다. 이렇게,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것이 너희에게 거울이 되어야 되겠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것이죠.
그리고 7절에서부터는, 유다의 이야기를 하는데, 지금 이들을 보면, 멸망한 북이스라엘이랑 다른게 하나도 없다는거예요. 배교한 교회, 타락한 교회의 특징을. 두가지 특징을 이야기하는데, 첫째는 영적인 지도자들이 다 술에 취해있다. 지도자뿐만 아니라 백성들까지 다 술에 취해있는건데, 지도자들까지 이렇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죠.
7절에 보면, 옆걸음을 친다. 포도주 때문에. 독주를 마시고 비틀거린다. 제사장 선지자할것없이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재판도, 술취해서 하고. 그러니까. 영적인 지도자들이.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기준도 없고, 거룩도, 없이, 살아간다는것입니다. 유다의 모습이였던것이죠.
두 번째로는, 9절부터 22절까지 나오는 말씀인데,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전하는 자들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생각을 하고, 하나님을 모욕하고, 그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예요. 9절 10절이 반복해서 이야기 하는데, 무슨 뜻이냐면. 사람들이 이사야 한테 하는 말입니다.
그가 뉘게 지식을 가르치며. 뉘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지금, 니가 하는 소릴들어보니까. 무슨 우리를 가르치겠다고. 니가 하는 애들은 유치원애들에게나 해야겠다. 이렇게 얘기를 한다는것이고, 10절도.
원어는 '차브 라차브 차브 라차브 카브 라카브 카브 라카브 저에르 샴 저에르 샴'뭐 이렇게 읽습니다. 이것은 어린아이가 알파벳을 배울때 내는 의성어를 소리나는대로 받아적은 말이죠. 우리의 표현으로는 “가갸거겨”이런거와 같은데. 지금 이사야의 이말, 에브라임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가 그렇게 들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니가 전해도 사람들은 듣지않을거다. 그러셨어요. 실패한거죠 사실은.
이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비웃을 때. 타락한 교회의 특징이죠.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들을 태도는, 오만한자가 되지마라. 22절에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가볍에 여기는거예요.
아이고, 오늘도 뭐 그소리군. 맨날 그소리군. 이렇게 하는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11절에. 읽음. 니네가 알아듣지못하는 말로 할게. 너희가 어린아이라도 들을수 있는 말을 했는데도 듣지않으니까. 이제는 아예 알아듣지못하는 외국말로. 말을 할게. 이렇게 말씀하시는거예요.
12절에 하나님이 하신말씀이 어떤 의도인지 보여주죠. 읽음. 하나님은 너희는 내게로 와서 쉬라 말씀하시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어떻게 이 세상을 삽니까. 하나님이 땅에서 안살아보셨잖아요. 뭐 이렇게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 따위. 별 관심없고. 그저 자신들을 삶을 먹고 취하고. 놀고. 자기들을 위해서 다 쓴다는거예요.
하나님께서 이런 모습들을 지적하십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하는말이 또 뭔가하면, 심판이 임할거다. 니네 그러다가 죽는다. 지금 그렇게 이사야가 말하잖습니까? 근데 이사람들은 뭐라고 하냐면 15절에. 우리는 사망과 언약했고, 음부와 맹약했으니까. 재앙이 와도 괜찮다. 죽음하고 이미 친구 삼았기 때문에. 두려울게 없다.
결국 그들이 그들의 입술로 하는말이. 거짓으로 우리의 피난처를 삼고, 허위 아래 우리를 숨겼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사는거예요. 그림자와 같이. 결국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느냐. 16절에. 읽음.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우습게 여기는 자들아. 이건 너희들을 테스트 하는 돌인데, 이 돌에 따라서 니네가 죽거나. 산다. 말씀하시는거예요. 이 돌은 결국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죠.
로마서 9장 33절에도 바울사도는,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라고 이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6절에서도.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같은 말씀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겼던 자들이, 나중에 그 날이 오게될 때. 심판의 날이 오게될 때에는. 그들이 우습게 여겼던 그 말씀이. 너희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것입니다. 똑같에요. 요한복음 1장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리고 그말씀이 결국 오셨어요. 말씀 자체가 오셨어요.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 말씀을 전해주셨다가. 이제는 그 말씀이 오셨어요. 근데 그 말씀에 대해서 사람들은 빛으로 여기지도 않고, 생명으로 여기지도 않고. 우습게 여기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행위.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조롱과 멸시, 그 행위가 결국 마지막날에 예수님이 심판주로 오실 때. 그들을 심판하게 된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긴다는 것은 결국 예수를 멸시하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면, 그게 두려움으로 찾아오게 된다. 19절에 말씀하시는것이죠.
근데, 23절부터 마지막까지보면, 이사야가 잘 들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니네를 다룰거니까. 잘들어봐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너희를 다둘것이다. 라고 이야기 하는데. 타락한 이 백성을 다루시는 목적이 있고, 다루시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농부가 땅을 기경해서 씨를 심고 기르는게, 목적이있죠. 목적은 하납니다. 열매를 거두려는 목적. 그러나, 방법이 다 다르다는거에요. 여기보면, 소회향, 대회향, 곡식. 씨마다 다 다르게 심잖습니까. 농사짓는 방법이 다 다르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사람마다 다 다르게 다루신다는거예요. 믿음생기는것도 여러 가지로 다르죠. 하나님께서 그렇게 당신의 목적을. 열매맺는 목적을 다르게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당신도 이렇게 하시오. 이런 것은, 사실은 어리석은거죠.
여러분 하나님이 당신의 방법으로 우리를 다루십니다. 누군가는 좀 많이 힘들수도있고,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좀 덜 힘들수도 있겠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열매맺게 하십니다. 신실하신 포도원 지기이시기 때문이죠. 말씀안에 있을 때, 주님안에 있을대.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말씀을 스스로 전하면서도, 놀랍다는거죠. 29절에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라고 말씀하시는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모습이 우리와 전혀 상관없지 않습니다. 부유함과 넉넉함을 계속 누리는 것에 마음을 쏟을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찮게 여기고, 들으려 하지 않을때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종말적인 삶. 하나님의 그날의 그림을 잃어버린건 아닌지요. 이 새벽에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스라엘이 걸은 길이 아니라, 나를 기묘하게 경영하시는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