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7장

새벽기도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5 views
Notes
Transcript
Sermon Tone Analysis
A
D
F
J
S
Emotion
A
C
T
Language
O
C
E
A
E
Social
View more →

오늘 전체적으로 흐름이 그날, 그날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고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의 날이죠. 심판과 구원 이렇게 딱 붙어 있습니다.
이제 그 날에, 궁금한거죠. 하나님의 백성들. 우리는 어떻게 될 건가, 하나님이 지으신 포도원. 그 포도원의 운명이 어떻게 된다고 하죠? 2절에? 읽음. 하나님께서 그리고 계시는 그 날의 그림은. 그 포도원이 노래와 기쁨의 대상이 돼서 아름다운 포도원이다. 아 참 아름답다라고 그런 일컬음을 받게 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단순히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코가 오똑하고 그래서 예쁘다 이게 아니죠 모든게 제자리로 돌아갔고 질서 정연하고 모두가 샬롬을 만끽하고 있는 그 모습. 이게 아름다움이죠. 주일 두 번을 집에서 보냈는데, ... , 근데 하나님께서 그 날이 되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름답다라고 이제 일컬어 질 거라고 얘기 하십니다.
근데 그날에 왜 아름다워질수 있느냐면, 결론은. 포도원 지기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주 성실하시죠, 밤낮으로, 때때로, 물을 주고 그다음에 아무도 상해치 못하는 강한 포도원 지기죠, 그래서 성실하고 강하고 충성스러운 포도원 지기.로 그려집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서, 일할 직장 이건, 회사건, 교회교역자던, 이런 사람 있으면 굉장히 든든하죠, 신실하고 강하고 충성스러운 이런 일꾼 인데, 하나님 자신이 그런 분이시라고, 얘기하세요 4절엔, 인자와 성실을 다하시는 하나님이, 포도원을 해치는 찔레와 가시에 대해서는 대적하고 발로 밟고 모아서 불사르시겠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포도나무라면. 그야말로 이런 포도원에 심겨지는 것 외에 뭘 더 바라겠습니까? 그렇죠. 근데 신비한 것은 이미. 우리가. 그 포도원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확인하지 않는 거죠. 따라서 각성 하지않는 것, 깨닫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그 포도원안에 들어가서 그 포도원 지기의 돌봄을 받고, 포도원 지기의 마음을 읽어가면서 살아간다는게 뭐냐. 그 부분을 얘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먼저 생각할 것, 포도원 지기가 포도원을, 이렇게 힘을 다해 돌보고, 지키는 것은,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더 예쁘고, 더 옳아서가 아니죠. 그렇게 돌보시는 이유는. 포도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고 움이 돋아서 꽃이 피는 날, 축제의 날이죠. 그 포도를 따는 그 축제의 날 그 날을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건데, 그날이 되면 그 열매가 온 지면을 가득 채울 것이기 때문이에요 이게 하나님의 그림인거죠
6절 읽음. 이것은 굉장히 선교적인 표현이에요. 지면을 채우리로다, 온 땅 가득히 그 열매가 찰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시는 거죠. 25장만 보더라도, 6절에서 약속의 땅 시온에서 만민을 위한 연회가 베풀어 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26장 9절에서는 주님의 심판을 통해서 세계의 모든 거민이 하나님의 의를 배우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죠. 하나님의 초점이 열방에 있으세요,
그게 그 전부터 계속 나오는데, 결국 하나님의 마음은 처음부터, 처음부터 이스라엘이 아니였습니다. 그니까 이스라엘에게 관심을 가지시지만, 이스라엘을 통해서 어떤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나에게 관심이 있으시지만 내가 전부는 아니죠. 나를 통하여 흘러갈 누구를 향한 관심이줘.
그렇다고 오해해선 안되는게, 나는 아무것도 아닌게 아닙니다. 내가 너무나 중요하지만, 내가 그렇게 중요해 질 수 있으려면, 내가 누군가를 위한 존재가 될 때 중요한 존재가 되는 거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창조하시기 전에 세상을 창조 하셨어요 문제는 그 세상이 반역했다는 걸 우리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이스라엘은 어떤 존재를 뜻하는거죠? 세상의 반역으로부터, 세상을 돌이키기 위해 선택되어, 하나님의 아들로 신분이 변화된 자들, 곧 우리들의 이름이 이스라엘이 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반역에서 돌이키는 자, 곧 이스라엘을. 반역한 세상으로 보내셔서, 온 세상이 반역에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려는게. 하나님의 초점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손으로 친히, 자기 백성을 사로잡고 있는 우상들을, 친히 부숴 버릴 겁니다, 그리고 죄악을 소멸시키고 자기 백성들의 불의를 고치시고, 그들의 깊고 무거운 죄가, 마치 죄 없이 함을 입은 것 같이 만드실 거라고 약속하십니다. 그게 9절과 10절입니다.
여러분 백성들이 의지해왔던 우상들, 그리고 견고한 성읍도 우상이죠. 그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멸하시는데, 그것들은 영원할 것 같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잖아요? 그렇지만 그 성읍이. 황무한. 버림받은 광야, 가축들의 놀이터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죠. 따라서 하나님께서 계속 안타깝게 보시고, 우리에게 격려하시고, 우리가 깨닫기를 원하시는 그것은 뭡니까?
나를 안전하게 해줄 것처럼 여겨지는 것들, 나로 하여금 내가 뭐나 된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것들, 나로 하여금 인정받는다는 만족 안에 거하게 해주는 것들, 그건 내 밖에 있는 것 들이기도하고, 내 안에 있는 것 들이기도 하죠
마치 내가 세상의 주인이라도 된 듯 여겨지게 하는 그런 것들이 우상이죠. 그 우상의 속성을 알고, 질문 하라고 하시는 거에요. 과연 그것들이 내가 궁극적으로 의지 할만한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속히 깨닫고 돌이키라 계속 말씀하시는 거죠. 내가 부수기 전에 돌이키면 좋겠다 말씀하십니다.
근데 문제는 뭐냐면, 우리가 알 듯이, 문제는 우상이 아니에요. 우상이, 문제가 아니라 우상제조기가 문제죠. 우상제조기. 아무리 우상을 없앤다고 해도, 이런말 들은 적있으시죠.
손가락을 짜르면, 뭘로 화투 친다고 하죠?. 저는 그 수준까지 가본적이 없는데, 요런 것처럼 여러분 그러니까 우상이 문제가 아니라 우상제조기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아무리 뿌셔도 끝없이 만들어내요. 그러니까 결국은 이걸 부셔야 된다는거죠.
그래서 이 말씀은, 결국 우상을 부수시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시겠다는 거죠. 우리 마음에서 우상제조기를 부수고 새로운 질서를 넣으시겠다는 거죠.
내가 뭔가 내가 인정받지 못하면, 내가 사람들에게 뭐 칭찬 받지 못하면 막 죽을것 같이 느끼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끼는. 다 우상의 장난인데, 이런 우상의 장난에 놀아나지 않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완전히 새로운 부요함을 주시겠다는 말씀이죠, 사람들한테 박수 받지 못하고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안고 뭐 돈이 하나도 없고 망해도 괜찮은 부요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부유함을 우리에게 계속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거예요. 그 부유함을.
근데, 그 부요함을 이미 주셨음에도. 우리는 그것이 아무 의미없는 듯, 부요함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갈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분명히 믿음에도, 신앙고백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 신앙이 아무 힘과 능력이 없는 것처럼 살아갈 때가 우리들에게 많잖아요
따라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붙잡으려면.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지만, 우리편에서 말하자면 붙잡으려면, 저는 종말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종말적인삶,
종말 적인 삶이라는 건 뭐냐면 이제 끝났어 세상 끝났어, 그러니까 뭐 미련 갖지 마 그냥 편하게 살아. 이런 게 종말적 삶의 아니고, 종말적 삶이라는 건,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그날을 오늘로 끌어와서, 오늘의 현실로 살아가는게 종말적 삶이죠.
다시 말하면 이런 거예요. 종말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속한 것들,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이생의 자랑,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런것들은 우리들의 영혼을 도울 생각이 조금 더 없어요, 걔네들은 우리들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존재들의 아니죠. 그것들을 우리들을 완전한 만족과 샬롬과 구원으로 인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해요
내가 지금 뭔가를 좀 더 검어쥔다고 해서, 내가 지금 뭔가를 좀 더 확보한다고 해서 내가 조금 덜 손해를 보려고 뭐 발버둥 한다고 해서, 이런 것들이 우리들의 영혼의 궁극적인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내 속에서 계속 확인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그리고 그 날, 회복과 심판의 날이 나와 세상을 향해 지금 신속하게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헤아리면서 살아야 되는 거죠. 매순간 생각하면서, 각성하면서, 지각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11절을 보면 백성이 지각이 없다고 하죠. 그 말은, 백성들이 지각이 있으면, 백성들이 깨닫는다면, 백성들이 깊이 헤아릴 수 있다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과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꺼이 받아 누리게 되리라. 그 말이죠. 이게 결국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그림입니다. 또, 우리의 선교의 그림이죠
12절 13절 읽겠습니다. 읽음. 여러분 여기 이스라엘자손이란,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한 민족, 이스라엘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이 자신의 모든 생각보다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하고 확실하고. 그 뜻에 나를 온전히 맡기고 의탁하는 백성들이 이스라엘이죠.
그들은 앗수르 땅에서 죽어 가는 자들이기도 했고, 애굽 땅으로 쫓겨 간 자들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이스라엘들을, 그날에 하나님께선 그곳에서 불러내 실 겁니다. 그리고 죽어갔던 자들, 쫓겨났던자들. 이렇게 눈물을 흘린 사람들을 만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실 때, 눈물 닦아 주신다고 해요. 왜죠? 그들은 울 수 밖에 없는 자들이 거든요.
이 세상이 추구하는 제국의 힘에 어울릴 수가 없고, 제국의 힘을 따를 수가 없어요. 제국을 따를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국의 힘을 추구하는게 망하는 길임을 알기 때문에. 내가 더 많이 거머쥐고 더 많 힘을 갖고, 내가 저 사람에게 승리하는. 그래야만 내가 살 것 같은 그러한 사상으로 꽉 찬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그래도 그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과 함께 서 있기 위하여 울게 되는 거죠.
세상의 논리로 사는게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논리로 살기에. 힘겨웠던 이들이죠. 그들의 눈물 자국이 있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많이 저도 많이 울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해요. 하나님께서 딱아주시고 싶은데, 눈물 자국이 한개도 없으면. 넌 뭐했니. 이러진 않으시겠지만
여러분 오늘을 우리가 살아갈 때 매일 뭔가를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밖에 없는데, 뭔가를 선택하고 결정할 때 마다 바로 이 그날의 그림에게 자꾸 날 맡겨야 되는 거죠
말씀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삶 그 하나님의 시선을 회복하는 삶이 우리들에게 너무나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좀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시선을 가지고 오늘 여기서 종말적 삶을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거 기도하고 그 마음을 품게 될 때 오늘 굉장히 다른 시선으로 우리 자녀들 우리의 현실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