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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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어제 28장부터 다시 이스라엘의 현실로 돌아옵니다. 이스라엘의 죄, 에굽을 의지해서 어떻게든 버텨볼려는 그들의 행태에, 과연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실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죠.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답이 오늘 29장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내가 뭘 의지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은, 평소때는 잘 모르죠. 힘들 때나, 궁지에 몰렸을 때. 진짜 모습이 들어납니다. 저도 평상시에 제가 뭘 의지하는지, 잘 모르는데, 막다른데에 몰렸을 때, 정말 억울한 일을 당했을때나, 뭐 제 진짜 모습이 나오고, 아 내가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구나,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러니까 결국 내가 어떤사람인지, 뭘 의지하는 사람인지가 어떠한 일에대해서,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백성인 이 이스라엘이 지금. 앗수르라고 하는 거대한 위협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고 있었단 말이죠. 결국 그들이 진짜 의지했던게 뭔지 거대한 위협 앞에서 들어나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열강을, 애굽의 병거를 의지했던 것이죠. 하나님은 지금 그 마음을 표현하십니다.
1절읽음. 아리엘은 그 뜻이 정확하진 않지만, 제단, 또는 제단의 화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 에스겔 43장 15절과 16절에 나오는 단어인데, 그때 번제단을 표현할 때 쓰여진 단어거든요.
이사야 선지자는 아리엘이라고 지금 유다백성들을 부르고 있는데,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다 피를 흘리게 되고, 태워지게 될 것. 마치 재물과 같이. 이스라엘이 그렇게 드려지게 될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감정이 어떻다고 이야기 합니까. 슬프다. 아리엘이여. 그러니까. 슬픈 하나님. 이런 표현은 성경에서 잘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인간적으로 볼 때. 잘못한 사람이 징계를 받으면, 당연한거죠. 상습적으로 잘못하는 사람의 죄들이 들어나서 심판받는 것은 어쩌보면 통쾌할수도 있습니다. 근데, 죄를 심판하는데, 슬퍼하는 것은 왜냐면. 사랑하는 자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식들을 혼내야 할 때, 슬픔을 품고,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혼내지 않습니까.
그런 슬픈 하나님. 그러니까. 유다를 지금 심판하는 것은 앗수르가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들어내는 장면인것이죠. 3절에서, 읽음.
사실상 앗수르가 그렇게 하게 될 것이지만, 하나님께선 이것이 바로 내가 행하는 일이다. 말씀하십니다. 유다 너희를 낮추는 것도, 나다. 이렇게 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구가 된 앗수르 역시, 꿈처럼 환상처럼 다 지나가 버리는 존재가 되고 말것인데, 이렇게 하나님의 도구로, 강력한 제국으로서 유다를 치게 되지만. 그들도 다 사라지고 말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게 5절부터 8절에 있는 말씀이죠. 이 말씀은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램을 포위하고 있다가 갑자기 물러난 사건을 이야기 하는데, 이사야 37장에 그 이야기가 또 나옵니다.
여러분 지금 이사야는 이런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지만, 백성들은 믿음으로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진 않았죠. 그것이 9절 말씀입니다. 읽음. 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유대인들이 술취한것처럼 비틀거리는 것은 포도주나 독주때문이 아니라고하죠., 결국은 맹인이고, 귀 먹은자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을 지적합니다.
오늘 말씀도 28장 말씀과 같이, 타락하고 배교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이. 여러 가지로 지적됩니다. 10절의 말씀을 보면, 이 강팍한 마음이,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보지못하게 하시는 주권적인 역사로도 볼수 있지만, 그들 자신의 의지로, 강팍한 마음을 허용한다는게 언제나 함께 나타나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식한 자들에게 말씀을 전해서 깨달아라. 라고 하면 이건 봉해져 있어서 모르겠다라고 하고, 무식한자들에게 말하면, 자기들은 무식해서 모른다는 태도를. 지금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운 사람은 배운사람대로, 배우지 못한사람은 배우지 못한 사람대로.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유식하든, 무식하든, 한가지로, 그 마음이 강팍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더라.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구약 시대, 모세가 살았던 그 시절에 이집트의 바로왕이 그러했었죠. 열가지 재앙이 자신의 눈앞에서 행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보아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봐야하는 것을 올바로 보지못하게 하는, 그 마음이 강팍해지면, 하나님 말씀이 들리자 않는것이죠. 그러니까 우리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라는 것이. 사실은 하나님을 아는 면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죠. 그래서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 또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을 알아갈려고 할 때. 이런 강팍함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되겠죠.
우리가 잠들어서 아무것도, 보지못하고, 듣지못하며. 그러면서 강팍한 마음에 우리를 내버려 두고사는 것은 아닌가.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이것들을 돌아보게 합니다.
두 번째의 타락하고 배교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특징은. 은혜가 없는 마음입니다. 13절 말씀을 인용해서, 주님께서는 바리세인들의 위선을 책망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7장 6절 7절인데, 13절 말씀 뭐냐면, 읽음.
다시말하면, 주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여 책망한 바리새인의 위선은 뭐냐면, 은혜가 없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서 열려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마음이 없으면, 위선이 일어납니다. 은혜를 갈망하지 않으면, 가짜은혜를 갈망하게 되고. 가짜은혜는 곧 위선이죠. 말씀을 가진자로서의 선민의식만, 남게 됩니다.
또, 세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주권을 경멸하는 마음입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을 떠나서 뭔가를 할수 있는 것처럼 여긴다는 것이요. 15절에 읽음. 화있을진저 까지
여러분, 정말 그럴까요. 우리인생에서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을 떠나서 존재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참 슬픈일이지만, 어제 폭우로 인한 인명, 재산피해를 보면. 참인간이 자연 앞에서 무력하잖아요. 참 보잘 것 없는 존재.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서도 뭔가를 할수있는것처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나는 당신이 필요없다. 당신은 지혜가 없다고 말하는 격이라고, 16절에 이사야 선지자는 지적합니다.
그러니까.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신뢰와. 만족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되고,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항상 기억해야되는것이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이땅에 맡겨진 모든 사역을 감당하셨고, 고난의 절정인 십자가에서도, 버림받는 순간에도 아버지를 신뢰하셨잖아요?
그런데, 선지자는 이런 암울한 날, 심판의 날을 지나게 되면, 하나님께선, 당신의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실것이라고 소망을 줍니다. 오래지 않아서 좋은 날이 오게 될 것이다. 17절이죠. 또, 못 듣는 사람이 말씀을 듣게되고, 맹인이 보게 될 것이다. 18절이고, 겸손한자, 비천한자와 가난한자가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19절에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0절과 21절에선, 폭력과 힘을 믿는 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던 자들,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들.이 이젠 다 끊어지고, 올무로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일이 다 없어질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또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이. 이 후손들의 죄악과 배교로 인해서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한다는 비유를 하면서, 이제 회복과 구원의 날이 오게 되면. 야곱이 다시는 부끄러워 하지않을 거라고, 22절에 말합니다. 그날에는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입니다.
그 이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함을 받게 됩니다.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고, 원망하던 자들도 교육을 받게 된다.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결국 참 소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현재의 상태에 소망이 있지않습니다. 오히려 구약선지자가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데에 있는 것이죠. 위태할 때, 궁지에 몰렸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그 주님의 완성을 바라보면서, 그 나라의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지금 현재에 가져와서, 기뻐하고 소망중에 살아가는게. 우리의 삶, 성도의 삶입니다.
그날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날에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온전함을 지금 여기 가져와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만드시는 그날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도 소망의 날을 끌어와서 지금을살아가는 우리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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