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충성하는 하나님의 백성

킹덤스토리 해설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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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수요기도회에 오신 성도님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고라와 그 무리들이 반역을 일으킨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 백성은 충성하는 백성이라는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맡기신 직분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맡기신 직분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 보시면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라는 사람이 당을 지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2절에 보시면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사람, 회중 가운데 이름 있는 지휘관들 250명과 함께 모세를 거슬렀다고 이야기 합니다. 2절에 의하면 고라와 다단과 온은 그냥 일반적인 백성들을 선동한 것이 아니라 이름 있는 지휘관들,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인정받은 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서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그냥 감정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이 악한 일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큰 죄입니다. 구약의 교회를 분열시키는 중죄입니다. 이렇게 반란을 일으킬 세력을 얻었습니다. 이제 반란을 일으킬 세력이 있으니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명분이 있어야 반란이 반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혁명으로 발돋움 할 수 있습니다. 그 명분은 3절에서 설명합니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를 높이느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 이야기만 딱 놓고 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맞습니다. 모든 사람 다 거룩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심지어 출애굽기 19장 6절에 제사장 나라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맞는 말입니다.
이렇게 교회를 분열시키고 어렵게 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논리는 다 가지고 있습니다. 절대 무작정 그냥 교회를 분열 시킨다고 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의 신학이 있고 논리적인 이유를 듭니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바로 직분의 부르심과 기능입니다. 본문에 총회위에 스스로 높였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스스로 높인 적이 없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 불타는 떨기나무를 통해 하나님이 모세와 만나시고 모세가 안한다 안한다 하는걸 하나나님이 설득하셔서 그렇게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인도해낼 직분자로 세우시고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고라와 그 무리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며 자기만의 논리를 내세워 모세가 가진 정통성을 부정합니다. 여기에 대한 이유는 16장 9절과 10절에서 잘 말해줍니다. 모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앞에서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라고 합니다. 또 10절 마지막 부분에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라고 이야기합니다.
고라와 그 일당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일종에 질투심입니다. 이스라엘 지파중에 레위 지파는 성막과 예배에 대한 일을 담당합니다. 레위 지파에서는 제사장이 되어야 할 이들이 있고 혹은 성막기구를 관리하거나 찬양을 담당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고라가 속한 집안은 고핫자손으로 언약궤를 옮기는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직분에 만족하며 충성한 것이 아니라 모세와 아론의 직분을 시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사장의 직분을 시기한 것 같습니다.
자기가 가진 직분에 충성하지 못하고 다른 직분이 나의 직분보다 더 좋고 내가 저 직분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 순간 시기심이 생깁니다. 그 시기심이 발전하면 직분자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지게 되고 교회 분열이라는 결론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의 질서가 무너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하나님께서 직분으로 교회 질서를 세우실 때 그 질서에 순종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맡은 직분을 불평하고 저 직분이 나의 직분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직분과 직무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증명)에베소서 2장에는 직분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는데 11절에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렇게 말씀하고 12절에는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신이라 라고 이야기 합니다. 직분이 있는 이유는 각각의 직무에 최선을 다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직분을 직분을 행하는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내가 직분을 아무리 잘하고 뭔가 성과를 낸다고 하더라도 그게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거나 분열시키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거기에서 좋은 의미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소 1장 13절에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를 권면할 때 어떻게 그리스도가 나뉘었느냐 하고 반문하지 않습니까? 고린도 교회가 나는 바울 파다 나는 아볼로 파다 나는 그리스도파다 이런 식으로 가니까 사울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얼마나 은사가 풍성하고 사역이 풍성한 교회였습니까? 그런데 거기에 질서가 없고 서로 파당을 지으면 그리스도의 몸을 올바로 세우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적용)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직분을 받았습니다. 저는 목사로 직분을 받았고 장로로 직분을 받으신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집사로 어떤 분은 권사로 직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각자 받은 직분을 최선을 다해 섬겨야 합니다. 장로교의 직분론에서 중요한 개념은 직분이 선물이라는 개념입니다. 선물이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나 이 선물 맘에 안 드니까 저거 줘 이런 게 없습니다. 선물은 받는 사람 의사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람의 의사가 중요합니다. 이 직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난 선물이기에 소홀하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 최선을 다해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장로, 집사, 권사와 같은 직분자가 아니더라도 교회의 필요에 의해서 교회로부터 봉사의 직무를 받으신 분들이 있습니다. 직분론의 핵심은 직무입니다. 직분은 직위와 직무로 나뉘는데 직위는 직무를 위해 있습니다. 자리는 일을 하기 위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헌법에서는 명예직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결국 직무가 중요한데 교회 항존직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교회를 위해 직무를 다 받았습니다. 찬양팀이나 주일학교 교사나 안내하는 일이나 셀리더 분들도 있습니다. 이것 또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 받은 소중한 직무입니다. 이것을 행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것을 잘하든지 못하든지 거기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해당 직무를 수행하시는 분들의 몫입니다. 그 직무 맡은 분들을 지도하는 분의 몫이며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해 각자의 직분으로 직무를 다하고 교회가 질서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히 세울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안 되는 순간 교회가 어려워지고 성도들이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2- 모든 판단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모든 판단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라와 그 일당들의 반역이 거셉니다. 사역을 하다가 한 두명 정도만 제 사역에 동의를 안해도 너무 힘든데 250명이 들고 일어섰으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너무 화가 나고 억울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반란을 경험할 때 인간적인 반응을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엎드렸습니다. 4절에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고 말합니다. 엎드린 것은 기도를 한 것입니다. 본문에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모세가 하나님께 지혜를 얻었거나 아니면 직접적인 말씀을 들은 것 같습니다. 5절에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사람을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 하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내가 이런사람이야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선택하신 직분자를 세워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고라와 그 일당들의 불평을 인정하시는지 모세를 인정하시는지 하나님이 판단하십니다. 그 직분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2절에 모세가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기 위해 사람을 보냈습니다. 아마 심판을 하기 전에 그들이라도 권면을 하기 위해서 소환한 것 같습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이 소환에 응하지 않습니다. 대신 충격적은 말을 전합니다. 13절에 “네가 우리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하느냐” 또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14절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이 이야기를 듣고 15절에 모세가 심히 화를 내지 않습니까? 여기 계신 어떤 분이 들어도 화를 낼 이야기입니다. 홍해에서는 애굽에서 죽는 것이 나았다 그러고 가나안 땅 앞두고는 애굽이나 광야에서 죽는 것이 나았다 그러고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 놓고선 또 모세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벗어나서 광야에서 죽이려 한다고 합니다. 다 자기들이 잘못한건데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모세 탓을 하고 모세의 능력을 의심하고 가짜뉴스로 선동을 하고 모세를 희생양으로 만듭니다. 누가 봐도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싶습니다.
(적용) 이것을 보며 직분을 감당하는 것, 봉사의 직무를 감당하는 게 이런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억울한 일이 생깁니다. 100명중에 아흔 아홉 명이 고생 많다고 잘했다고 해줘도 한 명이 내가 한 사역으로 딴지를 걸면 자꾸 그 한 명의 지적만 생각이 납니다. 심지어 저 같은 경우 사역을 하면서 다른 교회 있을 때에 담임목사님이 잘했다고 해도 다른 어떤 분이 지적을 하면 그게 마음에 남습니다. 사람은 절대 사람을 100%지지 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의 판단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판단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의 판단은 결국 참고만 할 뿐이지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위로하십니다.
직분을 감당할 때 힘들고 외롭고 어려운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때 나를 위로해주고 칭찬해주고 나의 신념이 옳았다고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감사한데 그런 사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땐 나의 행위를 판단하시는 분께 기도하며 고난의 순간을 이겨내야 합니다. 제가 24살 때부터 전도사로 사역을 하면서 얼마나 그 역할이 버겁고 힘들었겠습니까? 지금도 제가 나이가 많이 젊다고 생각하실텐데 그 땐 더 어렸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먹은 편입니다. 어리고 부족한 제가 더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순간들을 보냈었습니다.
제가 전도사 때 일입니다. 우리 교단공과가 훌륭하고 다른 교단에서도 칭찬이 자자한데 이게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보니까 틀린 게 있습니다. 그런게 있으니까 부서에 담당교역자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선생님들 공과 준비하실 때 이 부분은 틀렸으니 참고하라고 그렇게 카톡에 올렸습니다. 세계적인 신학자들이 쓴 글과 사전을 토대로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선생님들 중에 제 사역에 툭하면 반대하고 힘들게 하셨던 어떤 분이 제가 한 말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자료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분은 본인이 읽은 신앙서적 가지고 이야기를 하니 제가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났습니다. 저한테만 따로 문의한 것도 아니고 교사 카톡방에다가 올렸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 때 제가 담당교역자입니다. 하고 싸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참았습니다. 싸우면 저도 뭐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후에 저는 다른 사역지에 가게 되고 그분은 부서 부장이 되었는데 제가 4년 반이나 있던 부서에서 일 년 안에 교역자가 세 번이 교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엄청나게 고생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거기 있던 교사들한테 연락도 많이 오고 다시 돌아오면 안 되냐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다시 돌아가는 게 어딨겠습니까? 이미 사임했는데 저는 그 소식을 듣고 제가 신념을 갖고 열심히 사역을 해도 절대 인정을 안 해주는 사람이 있고 가슴 아플 일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제 중심을 판단하시고 위로해 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직분을 감당하고 봉사를 감당할 때 온갖 오해와 어려움이 생기지만 하나님께 판단을 맡기며 잘 인내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도 메시아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십자가를지지 않으셨습니까? 저주와 미움의 집약체인 그 십자가가 나중엔 예수님의 영광이 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심판으로 거룩하게 하신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교훈은 하나님께서 심판으로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직분과 교회의 질서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분란을 일으키고 직분자들을, 봉사자들을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힘든 상황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으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킹덤스토리 교재 200페이지에는 소제목이 멸망당한 하나님의 대적자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 제목만 보면 교회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에게 심판이 있다 이 내용만 딱 드러날 것 같아서 다른 제목을 만들었습니다. 심판으로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파괴와 멸망이 목적이 아닙니다. 파괴와 멸망은 그저 심판의 수단입니다. 심판의 목적은 다시 교회가 올바로 세워지고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라와 그 일당이 반란을 일으킬 때 하나님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모세와 아론에게 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모세는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백성을 심판하시면 안 된다고 중보의 사역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들에게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도 만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반란을 일으킨 그들을 부정한 것으로 보고 그들이 접촉한 물건도 부정한 것으로 보신 것입니다. 결국 땅이 열리고 반란의 주동자인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을 집어삼켰습니다. 그들을 따른 250명의 지도자들은 향로에 하나님의 불이 임해서 그 불로 인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가르셔서, 또 불을 통해서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이들은 부정한 상태인데 하나님께서 교회 회중 가운데에서 반란을 일으킨 부정한 자를 심판하시며 교회를 거룩하게 만드시고 교회를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선 자신의 직분을 하찮게 여기고 남의 직분을 탐하고 교회질서를 해치는 것을 부정한 것으로 보십니다. 이에 대해 충분히 경고하시고 경고로 안 되면 심판하십니다. 그 공동체가 거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을 갈라서 반역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30절에 보면 새일을 행하신다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문자적으로는 창조를 창조하신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갖고 새 일이라고 하셨는데 이 새 일은 이전에 일어나지 않았던 일을 이야기 합니다. 이전엔 땅을 갈라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지금 그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일을 행하신다는 것은 반역자로 인해 타락하고 부정해진 이스라엘을 다시 새롭게 회복시킨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그분의 심판을 통해 새로운 일을 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교회 질서가 회복되게 하시고 직분자들이 다시 자기의 직무를 잘 감당하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교회가 한 몸되어 바로 설 수 있도록 하십니다.
(적용) 우리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품을 따라 교회를 거룩하게 유지하길 원하십니다. 교회 질서가 파괴되거나 합법적으로 자기 직분을 행하는 직분자를 거스르는 것을 두고 보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회라는 치리 기구를 통해 교회 질서를 거룩하게 유지하십니다. 이것은 그냥 무서운 게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에 따라 교회가 질서를 이뤄야 하고 모든 직분자가 자신의 직분에 충성해야 하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교회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여 거룩한 교회가 됩니다. 사도신경이 고백하는 거룩한 공교회로 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못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드십니다.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있음을 믿고 우리가 먼저 충성하여 교회를 거룩하게 세워야 합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는 받은 직분에 충성하여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잘 세워야 합니다. 이 과정에 오해나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때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새 일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 안에서 교회를 바로 세워 충성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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