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성도의 표지들

교회론 5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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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은혜 풍성하십시오’하고 인사하십니다.
네 감사합니다. 한가위를 한주 앞두고 태풍이 목전에 와 있습니다. 모두 안전한 시간들 보내시고, 교구마다 성도들을 잘 돌아보고 격려하는 시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직분자를 선출하는 공동의회 관계로 예배를 11시에 한 번만 드립니다. 코로나 이후에 처음으로 밀집된 모임을 가지게 되어 여러모로 불편하실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만 잘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배 순서도 조금 변화를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제는 축도 이후에 하던 광고를 예배 안에서 짧게 드립니다. 자세한 것은 항상 주보나 웹사이트를 잘 활용하셔야 합니다. 또 성경 봉독도 변화를 주었습니다. 조금은 어색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유익이 될 것이라 여깁니다. 예배 마치고 말씀을 마음에 잘 간직하시고 기도하실 분은 자유롭게 좀 더 기도하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변화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올 한해 남은 시간 동안 우리의 예배가 더 밀도가 있고, 은혜를 지향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S2. 주제 제시

오늘은 교회론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시간으로 성도의 표지들에 대해 함께 묵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우리가 사도 신경을 통해 고백하는 거룩한 공교회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처음 교인이 된 아담으로부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모든 성도를 포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참된 공교회는 역사 속에 그 실체를 드러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지상에서 눈에 보이는 공동체에 편지를 보내면서 그들을 교회로 불렀습니다. 예를 들어 데살로니가 전서 1장 1절에는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보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장 1절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는 비가시적 공교회가 역사 속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보편적 공교회는 구체적인 지역 교회를 통해 그 실체를 드러냅니다. 교회는 말씀 선포와 성례라는 표지를 통해 드러나기에 말씀과 성례의 기강을 확립함으로써 가시적 지역 교회는 공교회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단순히 교회의 표지만이 아니라 성도의 표지도 함께 강조합니다. 교회의 표지와 함께 성도의 표지가 세워져 행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교회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가 표지인 말씀과 성례를 통해 가시적으로 드러난다면, 비가시적 교회의 성도는 어떤 삶을 살 때 실제적인 성도가 될 수 있을까요? 여기에는 세 가지 정도의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이 세 가지 성도의 표지들을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 직분자의 역할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첫째로 참된 성도는 바른 신앙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호의를 베푸셔서 성도를 구원하실 때 성도의 양심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사도는 디모데를 에베소의 목회자로 세우면서 바른 교훈을 가르칠 것을 강조했습니다. 우리 본문 디모데전서 1장 5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디모데 전서 1장 5절
5.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여기에서 사도는 가르침의 목적이 궁극적으로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즉 사랑을 행하며 사는 것이 믿음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원어도 교회의 목적은 사랑이라고 먼저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어에서는 믿음의 목적인 사랑이 ‘From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즉, 사랑은 거짓 없는 믿음이 있어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간직하고 고백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참된 성도의 첫째 표지는 바른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 믿음을 청결한 마음과 깨끗한 양심이라는 그릇에 담고 입술로 고백할 때 우리는 참된 성도의 표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본 절에서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을 두 가지 다른 것으로 구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는 둘 다 거듭남을 통해 주신 영적 실존으로서 인간의 핵심인 영을 반복해석 강조한 것입니다. 인간이 영과 육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때 ‘마음과 양심’은 육과 대비되는 영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청결하고 선한 영에 담길 때 진실한 믿음이 됩니다. 단지 머리에 정보로 담겨 있으면 이는 믿음이 아닙니다. 이와 달리 믿음이 영에 새겨져서 내 인격의 본질이 될 때 성도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항상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배우고 익히셔서 내 영에 그분을 아는 온전한 신앙 고백이 자리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성도의 둘째 표지는 예수님의 사랑의 모범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사도 신경에서 우리는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를 이어서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교제는 곧 사람의 사귐이요 나눔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사랑이 아버지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7, 8절입니다.
요한일서 4장 7, 8절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은 사랑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는 그가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 역시도 영적인 싸움입니다. 사랑하기 위해 자신과 싸워야 하고, 또 사탄과 세상의 것을 물리쳐야 합니다. 돈이나 교만을 기뻐하지 말고 참된 사랑으로 섬기는 데는 영적 싸움이 따르는 것입니다.
더하여 사랑하는 사람은 수고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참고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도 사랑은 참고 인내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 4-7절 말씀을 봅시다.
고린도 전서 13장 4-7절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예언과 지식과 방언 등의 모든 은사는 다 끝이 있고 사라질 것이지만,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영원토록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머니 교회를 섬기는 모든 사람들은 수고하는 삶에 힘을 써야 합니다. 수고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내할 줄 알고, 참고 견디는 삶을 사는 이들이 참된 성도요 직분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도 사랑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신앙 고백이, 깨끗하고 선한 양심, 곧 우리 영에 새겨질 때 우리는 믿음으로부터 거룩한 사랑의 삶을 지향하게 됩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한 그 사랑이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말씀과 성례를 통해 내게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참된 교회의 표지들을 마음에 새기시고, 성령님 안에서 사랑하는 삶, 예수님의 사랑의 모범을 항상 묵상하고 순종하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참된 성도는 ‘말씀과 성례’와 연합하여 삽니다.

말씀과 성례는 교회의 표지이면서도 동시에 성도의 표지가 됩니다. 물론 말씀과 성례가 교회의 표지가 될 때는 목사에 의해 바른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집행되는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례가 성도의 표지가 될 때는 말씀을 바르게 듣고, 성례에 영으로 참여하는 삶을 말합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말씀과 성례를 통해 표지를 알게 해야 하고, 성도는 이들을 마음으로 듣고, 눈으로 보고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성령님은 우리를 조명하시고 감동을 주셔서 우리가 참된 믿음과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먼저 성도는 말씀을 준비된 마음으로 듣고 그 말씀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그저 공부만 하거나 듣기만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참된 성도의 표지는 말씀을 바르게 듣고 그것을 온전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목사의 책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는 것이라면, 성도는 바르게 듣고 행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베뢰아 교인들의 말씀 듣는 태도를 두 가지로 칭찬한 적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1, 12절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첫째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기꺼운 마음, 혹은 갈망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영접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음의 수용적 자세를 잘 나타냅니다. 성도가 말씀을 받을 때는 항상 수용적인 마음이 필요합니다. 기록된 말씀이 선포될 때 그러한 수용성은 영적인 열매를 풍성히 드러내는 동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먼저 말씀을 수용적을 받으려는 자세를 확고하게 가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베뢰아 교인들은 집에서 날마다 성경을 읽으면서 그 말씀이 정말 그러한 참 진리인지를 항상 살폈습니다. 본문을 우리말로만 보면 바울이 한 가지를 칭찬하는 듯 보이지만, 원어는 그렇게 보지 않아도 됩니다. 먼저는 말씀을 갈망하여 받는 자세를 강조한다면, 다음으로는 성경을 읽으면서 정말 그러한가 상고하는 것을 칭친합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그 의미가 어렵기도 하고 내용 중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럴 때 베뢰아 교인들은 자세히 살펴서 공부하는 단계로 전진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는 베뢰아 교인들이 예배 시에 말씀을 들을 때는 수용적인 마음으로 수납하고, 혼자서 성경을 읽을 때는 그 의미를 깊이 점검하는 태도를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예배를 드리면서 수용적인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영접하고자 하는 열심과 열망을 가진 삶이 바로 온전한 성도의 표지인 것입니다. 동시에 성도는 혼자서도 말씀을 잘 연구해야 합니다. 항상 말씀이 그러한가 생각하고 무엇보다 깨달은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의적으로 쉽게 말씀을 오용하고 말로만 대충 산다면 그것은 진정한 성도의 표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말씀을 듣는 자로서의 바른 자세를 성도의 바른 표지로 세우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수용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듣고, 읽은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적용하는 삶이야말로 성도의 온전한 표지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더하여 참된 성도는 온전한 성례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합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 그리고 그 말씀을 온전히 들을 때 성령님은 감화하셔서 우리 마음에 참된 회개를 일으켜 주십니다. 그 결과로 성도는 믿음의 세례를 누리게 됩니다. 바른 세례야말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의 시작점입니다. 이런 까닭에 성도에게 있어 세례받음은 모든 영적 새로운 삶의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세례를 통해 아버지의 은혜의 백성이 되는 영광을 누리는 것도 온전한 성도의 표지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세례받은 성도는 지속적으로 성찬에 참여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온전한 성찬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지속적으로 성찬에 참여하면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기억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성찬에 사용하는 떡과 잔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구속 은혜를 상징하는 것이기에 성찬의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의식은 그 자체로서는 무의미합니다. 이 모든 외적인 상징들은 성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그 의미를 조명해 주실 때 성도의 생명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성도는 성찬에 온전한 모습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의 성찬을 합당히 먹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고린도 전서 11장 27절을 봅시다.
고린도 전서 11장 27절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성찬을 합당하게 먹는다는 것은 믿음으로 그것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떡과 잔이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온전히 믿고 주신 구원을 감사하며 먹는 것이 진정한 성찬의 참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찬의 참여는 오히려 주님을 향해 죄를 짓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런 까닭에 성찬에 참여하는 자는 반드시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온전한 믿음을 수반하여 성찬을 먹고 마셔야 합니다. 28, 29절입니다.
고린도 전서 11장 28, 29절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여기에서 사도는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잔에 참여하라고 권면하는데, 이는 곧 참된 믿음과 그 결과인 회개를 온전히 하고 난 뒤에 성찬에 참여하라는 뜻입니다. 교인들도 분명히 죄를 범하고 삽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이 있다면 죄를 범한 성도들이라도 회개를 통해 언제나 자신을 정결케 할 수 있습니다.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실 때는 바로 이 회개를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 없는 성찬, 회개 없는 믿음은 진실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도는 항상 돌이키는 회개의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찬의 경우는 회개 없이, 보다 근본적으로 온전한 믿음 없이 먹고 마시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과 회개가 없는 성찬은 오히려 죄를 먹고 마신 것이 되어 그 자체가 죄짓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30-32절은 이를 경고합니다.
고린도 전서 11장 30-32절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물론 성도가 징계를 받는 것은 세상이 받는 심판은 아닙니다. 성도의 징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잘못한 것에 대해 매를 맞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약하고, 병들고, 죽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찬에서 바르게 회개하여 온전한 믿음을 붙들지 않고 음식을 먹고 마시면, 그 결과 우리가 약해지고, 병도 들고, 죽기도 하는 징계가 따릅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거룩하고 구별하여 항상 믿음과 회개로 참여하여 성도의 표지를 온전히 세우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참된 믿음과 회개 안에서 바르게 성찬에 참여하여 성도의 온전한 표지를 세우고 은혜 중에 거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고백하는 거룩한 공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교회입니다. 그러나 순전한 말씀 선포와 온전한 성례의 집행을 통해 거룩한 공교회는 지역 교회를 통해 세상에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 참된 교회의 성도들은 바른 기강 안에 세우진 교회의 표지들을 통해 참된 신앙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으며, 모든 영역에서 말씀과 성례에 연합한 성도의 표지를 세우게 됩니다.
참된 성도는 바른 신앙 고백을 가진 분들입니다. 바른 교리를 아는 것, 바른 성경의 진리를 믿고 고백하는 그것이야말로 거룩한 성도의 표지가 됩니다. 더하여 온전한 성도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온전한 예배와 이웃을 향한 수고의 사랑에 힘씁니다. 이것이 성도의 두 번째 표지입니다. 믿음은 사랑의 씨앗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사랑이 싹터옵니다. 바른 신앙 고백을 가진 분들은 참된 사랑을 행하는 이들로 변화하게 됩니다. 온전한 성도는 세 번째 표지인 말씀과 성례에 매여 삽니다. 아니 묶여 산다고 하면 좋겠습니다. 참된 성도는 선포된 말씀을 바르게 듣고 간절함으로 받는 사람입니다. 더하여 항상 성경을 읽고 묵상하여 삶에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 결과 그는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며 항상 영원한 생명의 구주와 연합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참된 공교회 안에서 온전한 성도의 교제와 죄용서함 받음과 부활과 영생을 온전히 믿고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은혜 안에서 바른 신앙 고백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으며, 말씀과 성례에 연합한 삶을 통해 성도의 참된 표지들을 세워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참 생명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에 연합하여 참된 교회의 표지를 통해 온전한 성도의 표지를 갖게 하십니다. 이 은혜를 항상 마음에 붙드시고 참된 성도의 표지를 세움으로 하늘나라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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