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백성들의 하나님

킹덤스토리 해설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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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오늘은 하나님께서 제사제도를 주시면서 그 백성들에게 어떤 것을 원하셨는지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바로 거룩함을 요구하셨습니다.
1- 하나님은 백성들이 거룩함으로 출발하게 하셨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이 거룩함으로 출발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에서 거룩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할텐데 거룩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거룩이라는 히브리어 단어 카도쉬는 그 어원이 구별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하기를 세상과 구별되면, 죄와 구별되면 거룩한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구별이라는 의미는 거룩함의 한 현상을 설명하지만 구별이 거룩의 의미를 전부 설명하진 못합니다. 단어의 뜻이 그 단어가 품고 있는 개념을 전부 설명하진 못합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중에 ‘물리’라는 과목이 있는데 물리는 한자 뜻을 그대로 놓고 보면 ‘사물의 이치’라는 뜻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만물의 이치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물리가 사물의 이치를 가르칩니까? 아닙니다. 의무교육 수준에서 배우는 건 주로 에너지에 대해 가르칩니다. 물리라는 글자가 물리를 다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히브리어 카도쉬가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진 못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를 아는 것을 넘어서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거룩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엔 ‘거룩하다.’라고 하면 금지의 개념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고, 담배를 피지 않고, 혹은 나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그것이 거룩해지는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거룩을 주로 금지의 의미로 많이 이해를 합니다. 히브리어 카도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구별의 의미와 비슷한 맥락에서 거룩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거룩은 금지의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치면 술을 마시지 않는 다른 종교인들도 거룩한 게 됩니다. 혹은 예수님을 믿진 않지만 금욕주의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도 거룩하다고 해야 하고 채식주의자들도 어떤 점에서는 거룩한 것처럼 보입니다. 금지의 의미, 구별의 의미로는 거룩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거룩은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관련된 형용사입니다.
이사야 6:3과 계시록 4:8에 보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라고 말씀합니다. 거룩함이라는 말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고 할 때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이시다.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룩을 생각할 땐 하나님과 연관지어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없이 독자적으로 어느 도덕적 수준에 올라가는 것은 거룩이 아닙니다. 해탈의 경지에 오르거나 도를 닦아서 신선이 된다고 해도 그건 거룩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련될 때 거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상관 없으신 것처럼 우리도 죄를 멀리하며 죄를 이기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룩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너 이렇게 이렇게 해야 거룩해진다 하고 꾸중하는 장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에 그분의 백성들을 참여시키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거룩은 일차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쌓아나가기 이전에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해져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제사장 나라 삼으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절기 중에 속죄일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속죄일에 대제사장 아론은 수송아지를 하나님 앞에서 잡습니다. 그 피를 지성소 안에 속죄소 정면에 일곱 번 뿌려서 자신과 자신의 집안에 대한 속죄를 합니다. 그다음으로 백성을 위해 속죄합니다. 속죄제 염소를 두 마리를 정해서 한 마리는 죽이고 그 피를 지송소의 속죄소 정면과 앞에 뿌립니다. 다른 염소 한 마리는 아사셀 염소로 삼습니다. 교재에는 아사셀 염소라고 되어 있지 않은데 이 용어가 학자들 간에 논란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아사셀 염소라는 것은 대제사장이 그 머리에 안수를 해서 백성의 모든 죄를 지게 하고 광야로 내보내는 염소입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을 나중에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스라엘의 모든 죄와 부정함이 소멸됩니다. 속죄일의 마무리는 대제사장과 백성을 위한 번제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니까 속죄 메커니즘을 정리하면 수송아지로 성막 예배의 핵심인 대제사장과 지성소를 먼저 정결하게 하고 그 다음 정결하게 된 대제사장이 백성의 죄를 정결하게 하기 위해 염소 두 마리를 골라 한 마리는 죽이고 한 마리는 광야에 내보냅니다. 마지막은 번제를 드려서 마무리합니다. 이 속죄일이 있는 날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달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죄일로 이전 해의 죄와 부정함을 해결하고 거룩한 해를 준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함으로 새해를 시작하도록 하시고 역사를 시작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시작은 거룩함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실 때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신 것처럼 우리를 구원하시고 부르실 때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속죄일을 통해 거룩함으로 한 해를 시작한 것처럼 우리는 한 주의 시작을 예배를 통해 거룩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거룩함이란 구별이나 금지 이전에 하나님과 연관되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면 교제할수록 우리는 거룩해집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면 자연스럽게 죄와 멀어집니다. 세상과 구별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우리도 덩달아 싫어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은 백성들이 거룩함을 유지하길 원하신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이 거룩함을 유지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교재에 보시면 속죄하다라는 동사의 의미에 대해서 아랍어로, 아카드어로, 히브리어로 막 설명을 해놓는데 요약하면 속죄하다는 동사가 가진 의미는 덮어주는 것, 씻어주는 것, 값을 치르는 것 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레위기 16장 15절, 16절에 보면 피를 뿌려서 지성소와 회막을 속죄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왜 지성소를 피로 덮어주고 씻어주고 지성소의 죗값을 치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죄인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때문에 성막이 죄로 물듭니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 새해가 시작될 때 속죄일에 성막을 정결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된 성막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거룩함을 유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년 정결하게 되는 성막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자신의 거룩에 참여시키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참여시키신 그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레위기에 보면 거룩함에 대한 별의 별 규정이 다 있습니다. 먹는 음식에도 입는 옷에도 또 피부병에 걸렸을 때도 자식을 낳을 때도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대로 해야 합니다. 먹는 것을 예로 들면 고기를 먹을 때는 발굽이 있고 되새김질 하는 것만 먹을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삼겹살은 부정한 고기입니다. 못 먹습니다. 돼지는 발굽은 있는데 되새김질을 안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개고기는 발굽도 없고 되새김질도 안해서 부정한 음식입니다. 소나 양은 발굽도 있고 되새김질을 하기 때문에 먹어도 됩니다. 생선 같은 경우는 비늘이 있어야 먹을 수 있습니다. 장어 같은 경우에 비늘이 없어서 못 먹습니다. 이 외에도 집에 곰팡이가 쓸었을 때 피부병이 생겼을 때 부정한 것으로 취급해서 어떻게 해야 정결해지는지 규정이 있습니다. 여인이 아기를 낳으면 몸에서 피가 유출되기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여기에 대한 정결의식이 또 따로 있습니다. 옷을 입어도 섬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의식주 모든 삶의 분야에서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을 의식하며 실천하며 살아야했습니다. 당연히 원칙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은 다 선합니다. 하지만 구약시대에 임의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을 나눈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룩함을 늘 의식하며 살도록 훈련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모든 순간 가운데 거룩함을 유지하며 살도록 한 것입니다. 지금은 도덕적인 것 외에 우리가 거룩함에 대한 규정을 지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함을 위해 애쓴 것처럼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이 과연 거룩한지 생각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적용) 우리는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만 하나님과 교제하며 거룩해지기 위해 힘씁니까? 아니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 힘씁니까?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봉사할 때도 하나님과 연관되는 것, 거룩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삶의 모든 순간에서도 우리의 모든 삶의 순간들이 하나님과 연관되어야 합니다.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우리의 생각과 뭔가를 선택하는 모든 순간에 하나님이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술이 어떻다 담배다 어떻다. 혼전순결이 어떻다. 하는 문제를 훨씬 초월합니다. 무엇을 해야 한다 안 해야한다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영역이 하나님의 영역인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드러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함을 완성하신다.
(설명) 그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교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함을 완성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나오는 속죄일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최종적으로 성취하시는 십자가 사역의 그림자입니다. 구약의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고 오늘 본문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구약시대에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자신과 백성의 죄를 정결하게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속죄일을 완성하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은 정확하게 속죄일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로 들어가셨느니라 하고 말씀합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사람입니다. 시간적으로 유한한 존재고 도덕적으로도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는 한계가 있습니다. 거기다가 제물도 동물입니다. 장소도 성막 혹은 성전이라는 건물입니다. 건물은 언제고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완전한 대제사장 되시고 또 예수님 자신이 완전한 제물이 되시고 예수님이 스스로 성전이 되셔서 완전한 제사의 장소도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완전한 속죄일이 되셔서 다시는 속죄일을 보내지 않아도 그분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원히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함에 참여하도록 하셨습니다.
속죄일에 사용되는 아사셀 염소도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까 설명 드린 것처럼 염소 두 마리 중에 제비를 뽑아서 하나는 여호와를 위하여 드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염소로 제사를 드려서 정결하게 합니다. 그리고 다른 염소는 아사셀을 위해 드린다고 하는데 이 아사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학자들간의 견해가 다 다릅니다. 귀신의 이름이라는 견해, 완전한 파멸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라는 견해, 낭떠러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것 중에 어떤 의미가 맞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제사장이 아사셀 염소 머리에 죄를 전가했을 때 그 죄를 지고 있는 염소가 이스라엘과 멀어지고 죄가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 염소는 22절에 의하면 ‘접근하기 어려운 땅’으로 간다고 본문에서 말합니다. 원어상으로는 ‘끊어지는 지역’으로 가게 됩니다. 죄를 짊어진 염소가 끊어지는 지역으로 가면 이제 다시는 이스라엘 진영으로 죄를 지고 돌아오지 못합니다. 유대인의 율법해설서인 미쉬나에서는 염소가 벼랑 끝에서 떨어진다고 해석합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건 생각할 여지없이 아사셀 염소를 염두한 이야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지는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속죄제의 희생제물이 되시고 또 아사셀 염소가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아사셀 염소가 끊어지는 지역으로 간 것처럼 벼랑 끝에 몰려서 떨어지는 것처럼 아무도지지 않는 십자가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이 사역을 감당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장 69절에 사도 베드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담당하실 수 있는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시대의 제물과는 달리 완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구약시대의 제물들은 죄에 더렵혀져서 죄와함께 소멸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함께 소멸되시지 않으셨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시면서 죄와 사망권세는 소멸시키셨지만 다시 거룩한 상태로 부활하셨습니다. 이전의 제물들이 못한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적용)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함을 만들어 내실 뿐 아니라 거룩함의 기준이 되시고 거룩함의 완성이 되십니다. 우리가 성경 여러 곳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하게 되지만 그 거룩함을 유지하고 더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자라가야 합니다. 이 거룩함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완성됩니다.
거룩해지는 것은 시간 별로 구분해서 확정적 성화, 점진적 성화, 미래적 성화인 영화로 나눕니다. 확정적 성화는 근본적인 성화라고도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우리가 이미 거룩하게 된 것을 이야기합니다. 사도바울이 온갖 죄를 다 지으며 신앙생활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를 막 꾸짖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우리가 이미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점진적 성화는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를 꾸짖는 목적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죄를 짓고 육체의 소욕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해지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도록 해야 합니다.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뻔한 이야기지만 디모데전서 4장 5절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거룩해집니다.
미래적인 성화는 영화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우리는 영화를 경험합니다. 완전한 성화입니다. 부활한 우리의 몸은 오로지 성령의 소욕이 충만하고 육체의 소욕이 완전히 소멸한 상태가 됩니다.
우리가 거룩해지는 모든 과정에는 그리스도가 빠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거룩해지고 이 땅에서 거룩함을 추구할 때 그리스도가 기준이 되고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날에 우리의 성화가 완성됩니다.
때론 우리가 거룩하지 않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끊임 없이 실수하고 영적으로 진흙탕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룩함을 부여하셨습니다. 거룩함의 기준되셔서 우리가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도록 우리를 성령으로 독려하십니다. 그리고 재림하실 때에 완전히 거룩하게 될 우리의 모습을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으며 매일 매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거룩함의 사역에 참여하며 거룩함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이 은혜 안에 있을 때 거룩은 부담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기쁨이 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결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하나님과 관계 맺어 거룩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의 백성에게 거룩함의 여정을 시작하게 하셨고 지속적으로 거룩하게 하셨고 결국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함을 완성하셨습니다. 이제 신약의 백성인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해 거룩함을 시작하고 진행하고 완성합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거룩함에 참여시키시고 완성하시기 때문임을 믿습니다. 이 말씀을 붙들며 우리가 거룩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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