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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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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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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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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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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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Tone
Analy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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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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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t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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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Tone
Ope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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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ent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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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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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reeabl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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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al 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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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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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4:18-22
4: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4: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4: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4: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은 아무 자원도 없습니다.
돈도 없고,
사람도 없죠.
아무 것도 받지 못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18-19절입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사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먼저 사람을 부르세요.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면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십니다.
사람이 핵심이에요.
교회는 사람을 불러서 키우는 곳입니다.
사람을 키울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세요.
그런데 두 사람이 놀고 있거나 쉬는 중이 아닙니다.
18절을 다시 보세요.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고 있을 때, 그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 그래서 제자는
놀고 쉴 때 하는 게 아니에요.
가장 급하고, 가장 중요한 일을 할 때에 응답하는 것이 제자입니다.
이들은 생계형 어부들입니다.
18절 끝을 보세요.
그들은 어부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구절인데 기록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취미로 물고기 잡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어부였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그물을 던지는 생계형 어부였죠.
이걸 마태가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장 바쁠 때,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때, 부르심에 반응하는 것이 제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제자가 아니에요.
제자는 예수님이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부를 때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사람이 제자라는 것이죠.
그래서 20절 말씀을 보세요.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또 22절 말씀도 보세요.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반복되는 단어가 보이나요?
‘곧’이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주춤하거나 시간을 끈게 아니에요.
즉시로 따랐다는 의미입니다.
가장 바쁠 때, 가장 중요한 일을 할 때, 즉시로 순종할 줄 아는 것이 제자라는 것이죠.
예수님의 부르심은, 생계보다 더 중요한 부르심인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부르심은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버려둘 것을 요구하죠.
여러분이 핸드폰을 버리고, 밖으로 나갈 때는 언제입니까?
친구 만날 때,
맛있는 거 먹을 때,
놀러 갈 때,
그럴 때 아닙니까?
더 중요하고, 더 가치있는 일이 생기면,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을 버리고 나가게 되죠.
가령,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는,
학원을 포기하고,
공부도 포기하고,
그렇게 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는,
좋아하는 영화가 개봉하면,
공부도 포기하고,
학원도 몰래 째고, 그렇게 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예수님이 가장 중요해서,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그물을 버려두고,
또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따라가는 것이 바로 제자입니다.
22절을 다시 보세요.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를 따르는 것이
더 가치 있고,
더 흥미진진하기 때문에, 베드로와 안드레,
또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버리고,
배와 아버지를 버리고, 예수를 따른 거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마지막 날이 되면, 우리가 놀고 있던 것,
붙잡고 있던 것,
보고 있던 것도 놔두고, 예수님을 따라야 할 때가 옵니다.
누가복음 17장 35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두 여자가 같이 맷돌을 갈고 있어요.
그러니까 똑같이 일을 하고 있다는 거죠.
겉보기에는 똑같은 일을 하고 있죠.
그런데 그 마음은 다릅니다.
한 사람은, 언제든지 주님이 부르시면 따라갈 준비가 된 여자구요.
나머지 한 여자는, 지금 당장 하고 있는 맷돌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이 두 사람이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요.
그런데 누구만 데려감을 얻습니까?
마음이 준비된 자,
언제든지 예수님이 부르시면 따라갈 준비가 된 여자,
그 여자만 부르심을 받고 주님께 데려감을 얻고, 나머지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죠.
*여러분, 천국은 억지로 가는 곳이 아니에요.
억지로 가는 곳은 천국이 아니죠.
천국은 가고 싶어서 가는 곳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한번은 죽습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천국과 지옥 중 한 곳에서 영원히 지내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요.
언제든지 부르시면 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이 좋고,
내가 즐기는 것이 좋고,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이 부르셔도 들은체 만체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버려둠을 당하겠죠.
그러나, 그들은 진심으로 가기 싫었던 거에요.
그래서 그들은 천국에 가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2장을 보면은,하나님이 사람들을 초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든 음식이 준비 되었으니, 와서 먹고 마시라
이렇게 초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초대를 안하신 게 아니에요.
모두 다 초대를 하십니다.
이 사람도 초대하고, 저 사람도 초대하고 하십니다.
그러면 다 와야 되잖아요?
그런데 오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2장 5절의 말씀을 보시면,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이에요.
지금 당장 하는 일,
내 밭에서 하는 일,
내 사업장에서 하는 그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건 다른 사람이나 가지, 나는 바빠서 못 가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안 가기로 결정한 거죠.
이게 천국입니다.
천국은 결코 강제로 들어가게 할 수 없어요.
자기 스스로 선택해서 가는 거죠.
그런데 그걸 거절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당장 하나님이 부르시면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언제든지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라고 하시면, 그분 뒤를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게 제자에요.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그분을 따라, 천국에 갈 수 있는 거에요.
그럴 준비가 되셨나요?
베드로와 안드레,
야보고와 요한은 지금 대박을 만난 인생입니다.
예수님이 부르시다니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자신들을 부르신 거 아닙니까?
이 얼마나 위대한 부르심입니까?
대통령이 불러줘도 감격하고 가슴 뜨거워질 텐데,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불러 주시다니요?
그래서 그들은
즉시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말씀을 맺는데요.
여러분,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천국에 갈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잘 생기고 예뻐도 천국에 갈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그 아무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마음에 죄책감이 있고,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있고,
이 세상이 덧없고,
하찮고,
세상에서 받는 보상과 안락함보다,
천국에서 누릴 그 은혜가 더 기대되는 사람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죠.
이제 학기가 시작되는데,
여러분, 우리는 공부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학원도 다녀야 하고,
다른 사람들도 만나고 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르심,
예수님이 부르실 때에는,
언제나 즉시로 응답하며, 예수님을 따를 준비가 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 평생에 가득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제자가 되게 해달라고,
주님께 부름 받고, 날마다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 간절하게 기도하겠습니다.
이미지
제자로 부르심
제자
사역
18 그런데 그가 갈릴리 바다 옆을 걷다가(페리파테오), 그가 두 형제를 보았다.
베드로라 말해지는 시몬 그리고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암피블레스트론(투망, 그물) 던지는 것을.
왜냐하면 그들은 어부였다.
*만약 시몬과 안드레가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면, 그들은 세례 요한이 붙잡힌 것 때문에 다시 생업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임박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다가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때 예수님이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신다.
19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듀테(오라, 나를 따르라).
나의 뒤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사람들의 어부로 만들 것이다.
*자기 스승 세례 요한을 잃고, 낙심한 시몬과 안드레에게 예수님은 새로운 부르심으로 부르고 있다.
당시 제자들은 자기들이 직접 스승을 찾아갔다.
그러나 예수님은 친히 자기 제자들을 찾아서 부르고 계시다.
20 그런데 즉시(유세오스) 그들이 딕튀온(그물, 격자무늬)을 아피에미(떠나다, 용서하다, 허락하다) 하고, 그들이 그를 따랐다(아콜루세오).
*아피에미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세례를 허락할 때, 또 마귀가 예수님을 떠나갈 때에 사용된 단어이다.
여기서는 시몬과 안드레가 그물로부터 떠날 때 사용되었다.
21 그리고 그가 거기에서(에케이센) 나아갔다(프로바이노).
그가 다른 두 형제, 세베대의 야고보 그리고 그의 형제 요한을 보았다.
플로이온(배, 선박)에서 그들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그들의 딕튀온(그물)을 카탈리조(준비하다, 완성하다, 회복하다)하는 것을.
그래서 그가 그들을 불렀다(칼레오).
*18절에서 ‘두 형제’를 본 것처럼, 21절에서도 ‘두 형제’를 보셨다.
22 그런데 즉시(유세오스)그들이 그 플로이온(배)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를 아피에미(떠나다) 하고, 그들이 그를 따랐다(아콜루세오).
*20절에서 시몬과 안드레가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던 것처럼, 22절에서 야고보와 요한 역시 배와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랐다.
*버리고 따르는 이미지는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버지와 친척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것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이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통해 새로운 백성을 창조하셨는데, 여기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처럼 그려지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며 그들을 새로운 백성으로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23 그리고 그가 모든 갈릴리로 페리아고(두루 다니다, 데리고 다니다, 미완료) 하시면서, 그가 그들의 시나고그(회당, 집회소, 복수)에서 디다스코(가르치다, 지도하다) 하시며, 그 바실레이아(나라)의 유앙겔리온(좋은 소식, 복음)을 케릿쏘(선포하다, 설교하다, 가르치다)하시며, 그리고 그가 라오스(무리, 백성) 가운데 모든 노쏘스(병, 질병)과 모든 말라키아(약한 것)을 세라퓨오(고치다, 돌보다) 하셨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과 그와 관련도니 사역을 갈릴리를 중심으로 진행하셨다.
24 그래서 그의 아코에(소문, 보고)가 모든 수리아에 아페르코마이(가버리다, 가다, 떠나다)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에게 여러 가지의 노쏘스(병)을 얻어서(에코) 모든 카코스(나쁘게, 흉악하게, 그릇되게, 병든 자)한 자, 그리고 바사노스(고통)한 자들, 다이모니조마이(귀신들리다)로 쉰에코(에워싸다, 통제하다)된 자들, 그리고 셀레니아조마이(미치다, 간질하다, 발작하다)하는 자들, 그리고 파라뤼티코스(중풍 걸린, 마비된)자들을 프로쓰페로(데려가다, 바치다, 드리다) 하였다.
그러자 그가 그들을 세라퓨오 하셨다.
*프로쓰페로 : 제사를 드리거나, 예물을 드리거나, 단순히 사람을 데리고 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지금 이들은 예수님이 전하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믿고, 온갖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다 데리고 와서 예물로 드린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받으시고 온전하게 고쳐주시는 치료자이시다.
천국은 비정상적이더라도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의 것이다.
또한 프로쓰페로는 마태복음에서 사람들이 다양한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오는 것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25 그래서 많은(폴뤼스) 군중(오클로스)들이 그를 아콜루세오(따르다, 뒤쫓다) 하였다.
갈릴리 그리고 데카폴리스 그리고 예루살렘 그리고 유대 그리고 요단 건너편으로부터.
*아콜루세오 : 4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를 때 사용된 단어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사역으로 인해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였다.
주석
베드로 - 바위라는 의미.
야고보 - 야곱이다.
1:1-4:16절까지, 예수의 “유대인 자격”에 대하여 깊이 다룬 마태는,
4:17절 이후부터는 예수님이 “기존의 유대교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데에 관심이 있다.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은,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르던 장면은 연상시킨다.
또는,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런데 예수는 친히 ‘하나님처럼’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신다.
이는 예수가 모세보다 월등한 분이심을 나타낸다.
예수님 당대 어떤 사람이 유명한 랍비의 제자가 되려고 한다면 먼저 그 랍비를 찾아가서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랍비가 자신의 제자 후보자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제자 후보자가 먼저 랍비를 찾아가서 그 랍비의 엄격한 심사과정을 통과할 때에 비로소 그 랍비의 제자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전 722년에 아홉 지파로 구성된 북쪽 이스라엘 나라가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한 후 이사야를 위시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야 시대가 도래할 때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회복될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사11:10-16, 사 49:6, 사 56:8, 미 2:12)
12명이라는 제자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자임을 알리고자 한 것 같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 갈릴리 출신의 어부였으며, 그들은 서로 사업상 연결되어 있었고, 각기 서로 형제사이였다.
레위 - 마태는 유대인 사회에서 멸시를 받는 세리였다.
가나인 출신 시몬 - 유대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열심당 출신이었다.
가롯 유다 - 대다수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출신인 것에 비해 유대 출신으로 알려지고 있다.
목수라는 예수님의 직업이 당시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어부라는 직업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의 갈릴리 출신 제자들은 고용된 어부라기보다도 자영어부였다.
그들은 자기 소유의 배와 그물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기 소유의 집을 가지고 있었다.
제자들은 ‘사람들의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예수의 약속을 ‘렘 16:16’을 배경으로 ‘심판 사역자’가 되게 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붊을 받은 후 하게 되는 사역을 통해서 보면 사람들의 어부 사역은 ‘복음 전파와 축귀와 치유’를 통하여 사람들을 구하는 사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부들은 부름에 응답하여 예수 뒤에 즉시 따라간다.
그들의 따름은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른 과정보다 더 즉각적이다 ‘왕상 19:19-21’
갈릴리 해변 지역은 스불론과 납달리지역 해변이다.
‘사 9:1-2’에 의하면 이 지역은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다.
예수는 ‘렘 16:16’에 따라 이스라엘을 모으는 사역을 위해 어부를 사역자로 부르려고 하셨다는 것이 예수가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를 부르시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그물을 던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어부들이었다.
그들은 취미가 아니라 생업을 위해 그물을 던지던 사람들이었다.
‘내 뒤에 오라’는 표현은 생업을 버리고 따르라는 뜻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 자기를 따르라고 요청한 인물은 에훗, 사울과 같은 ‘전쟁 지도자’였다.
마카비 1서 2:27에서 맛따티아스도 ‘내 뒤에 오라’고 하는데, 그를 따른 자들은 이방 세력과 전투를 시작하여 나라의 주권을 되찾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가 제자들을 부른 방식은 예수가 유대인들의 랍비들과 같은 인물의 범주에 해당하는 분이 아니라 ‘카리스마적 지도자’ 범주에 해당하는 분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들은 ‘로마와 군사적 대결’을 하게 될 날을 염두에 두고 예수를 따랐을 것이다.
예수가 ‘내 뒤에 오라’며 전투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는 언어를 사용한 것은 ‘사탄과의 전투’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볼수 있다.
(이미 예수는 ‘마4:1-11’에서 사탄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셨다.
그리고 예수는 제자들을 부르시며, 이 전투에 함께 참여하자고 하신다.
그러므로 12제자는 사탄과의 전투를 수행하는 군대이다.)
헹엘에 의하면, 가족을 떠나고, 소유를 포기하고, 순교의 길로 부름 받는 것은 ‘묵시적 열광주의 집단’이나 ‘열심당의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특징이다.
‘렘 16:16’에서 어부의 과업의 일부는 ‘새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모으는’ 것인 듯하다.
(물론 예레미야에서 어부가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이유는 ‘심판’ 때문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이유는 ‘구원’ 때문이다.)
고대 근동 문화 속에서 사람들을 물고기처럼 잡는 이미지는 메시지를 전하는 자나 ‘지혜로운 교사’의 사역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랍비 유대교 문헌에서도 사람들을 물고기처럼 잡는 이미지는 ‘토라 교육’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예수의 부름을 받은 제자들의 경우는 부모에게 인사하고 잔치를 벌인 후에 엘리야를 따른 엘리사의 경우와 달리 부름 받은 즉시 따른다.
이것은 예수가 엘리야보다 훨씬 더 위대한 스승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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