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8장

박솔
새벽기도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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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가서 8장은 결론입니다. 그동안 봐 왔던 사랑의 드라마가 온전한 사랑으로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의 이름이 술람미입니다. 술람미라는 이름은 무슨 뜻입니까? 술람미 라는 이름이 아가서에서 한 번 나옵니다. (아 6:13, 개정)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이 여인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드러냈을 때, 사람들이 이 여인을 술람미 라고 불렀습니다. 솔로몬의 여성 명사형이 술람미입니다. 솔로몬의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감동스런 이름입니까? 이 여인은 이름도 없었습니다. 천한 신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과 사랑을 여인이 공개할 때 사람들은 이 여인을 ‘술람미’ 솔로몬의 여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솔로몬이 왕비가 몇 명인고, 후궁이 몇 명이고, 비빈이 몇 명이고 하더라도 진짜 솔로몬이 사랑하는 사람은 이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 이름이 욕심나지 않으세요?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사랑하는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크리스찬입니다. 그리스도가 사랑하는 사람, 크리스찬입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공개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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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마지막장은,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과의 사랑의 관계를 묘사하면서, 지금 결혼한 상태이지않습니까? 마치 당신과 내가 오누이와 같았으면 더 좋았겠다 그러면서 8장이 시작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오누이와 같았다면 내가 당신과 알기전부터 더 알았을 것이고, 더 편안하게 당신과의 사랑을 누릴수 있었을텐데, 나는 인생을 한동안 살다가 나중에 당신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이런 표현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만난 인생들이,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주님을 만날 수 있었더라면. 하는것과 똑같은 표현이죠. 베두인들. 그러니까 유목민들도 한배의 형제. 오누이죠? 오누이가 바깥에서 공개적으로 입맞춤을 할수 있었는데, 그런 것처럼. 이 술람미 여인은, 내가 당신을 알았으면 밖에서 입을 맞추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거죠.
그리고 2절에서도. 읽음. 얼마든지 서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또 3절에서는 , 읽음. 그렇게 어려서부터 친밀하게 그런 사랑을 알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이 여인은 지금 표현을 하고 있는거죠. 진작 만났었더라면, 어린시절부터 알았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4절에서는 우리의 사랑을 방해하지 말라고, 다시한번. 또 부탁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어떤것이냐면, 반복되서 나오는것인데, 4절에 읽음. 자, 지금 이여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게 뭔가하면. 사랑하는 자와의 사랑이예요.
말하자면, 그리스도와 나와의 사랑이라는거죠. 그러니까 신자들이. 다른것들은 다 방해받을 수 있고, 다른것들은 다 누가뭐 와서 침해 할수도 있지만. 제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이것만큼은. 방해하지 마라. 나는 여기에 대해서는 방해받을 수 없다. 이런 마음을 표현하는것이라고 볼수있죠.
5절은 그에 따른 예루살렘여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읽음. 거친 들에서는 광야에서죠.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이렇게 묻습니다. 이것은 뭔가하면. 솔로몬을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 사람들이 결혼식 장면을 보고 놀라는거에요. 신부가 시골 여자, 천한 여자이지 않습니까. 거친들에서 살았던 모습이 역력해요.
그런데 솔로몬을 의지하고 이제 당당하게 신부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자신이 부끄러워서 신부의 자리에 앉는 것을 마다했는데 이제는 모든 사람 앞에 신부로써 드러내는 것이죠. 이 구절을 읽으면서 꼭 우리 크리스찬들의 모습같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광야와 같은 삶을 살았지만 눈물나고 쓸쓸한 삶을 살았지만 이제 예수님을 의지하면 살겠습니다. 예수님의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겠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신랑의 반응이 그 다음 5절 하반절에 나옵니다.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네가 태어난 곳, 부모님이 사랑했던 그 자리로 가서... 별볼일 없는 집안이지만 솔로몬은 그 어머니의 집으로 기꺼이 갑니다. 결혼식을 위해서 갑니다.
그리고 6절과 7절에서는 아가서의 최고의 고백이라고 할수 있는 장면이 술람이 여인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너는 나를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다시말하면, 도장을 끼든지, 목에 걸든지, 이 도장은 나의 재산을 보호가는 가장 귀한것이니까. 이것은 항상 그사람에 품에 품고있듯이,. 술람미 여인은 이제 솔로몬에게 나를 당신의 인장반지와 같은. 그런 존재로 나를 두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말하자면 죽음보다도 강한 사랑을 표현하면서, 뒤에는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다. 다시말하면 꺼트릴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거죠. 하나님의 불인데 누가 꺼트릴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과 같은. 이런 사랑. 이것을 끌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이야기 하면서. 7절에. 읽음.
사랑을 돈주고 살수 있다니. 내가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도 이 사랑을 살순 없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8절과 9절에 여자들의 합창이 나옵니다. 여자들의 합창의 내용을 보면.
과거에 이 여인을, 이 술람미 여인을 오빠들이 어떻게 대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오빠들은 동생이 언젠가 결혼을 하겠지마는. 지금은 미성숙하고 때가 이르다고 말을 했었고, 동생이 성벽이라면. 그래서 아무도 접근할수 없고. 다가서기 어렵다면. 자기들이 은망대를 세워서 동생을 시집을 보낼것이고, 그리고 동생이 문이라면. 아무나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그런 존재라면 자기들이 판자로 막아서겠다.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때 술람미 여인은 또 대답을 하는것이죠. 10절에. 나는 성벽이요. 나는 아무도 접근할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솔로몬 만이 나에게 접근할수있씁니다. 그리고 나는 오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성숙한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결혼을 할만큼 성숙한 사람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특이하게 11절과 12절에서. 자신의 사랑을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설명을 하는데,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바알하몬이라는 지명에 포도원이 있었는데. 왕의 포도원이죠. 근데 이 여인의 부모가 지키고 있었던 포도원도 솔로몬의 포도원이 아니였나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소작인들은, 포도는 다 자기가 가지고, 솔로몬, 그러니까 지주죠. 지주에게는 은천을 바치게했다고 합니다. 포도원을 지키는 사람도 댓가를 줘야 하겠죠? 그런데 술람미 여인이 뭐라고 그러냐면, 이제는 내가. 사실 솔로몬에게 줘야할게 없잖습니까? 솔로몬의 것이 내것인데. 그런데도. 내가 솔로몬에게 더 바치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거죠. 12절에 읽음. 아주 후하게 모두에게 배풀고 싶다. 이런 표현을 그녀는 하고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원하는 마음으로 솔로몬을 사랑해서. 솔로몬에게 더 드리고 싶다. 나 자신을 다 주고 싶다. 하는 표현을 하는것이죠.
이제 솔로몬이 술람이 여인에게 말을 합니다. 13절에. 읽음. 이 말씀을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여인을 가리켜서. 너 동산에 거한자야. 많은 친구들이, 니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데. 나로 듣게해라. 내가 니목소리를 듣고 싶다. 이런 얘기를 하는거죠.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도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시는 것이죠. 내가 니 소리가 듣고싶다. 그러면서 14절에 마지막에.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이것은 술람이 여인의 이야깁니다. 향기로운 산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빨리달려서 내게로 오십시오. 라고 이야기 하면서 끝나는 것은 근데, 좀 특이합니다. 아가서가, 사랑의 이야긴데, 지금 함께 있는게 아니라. 떨어져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빨리 달려서 내게로 달라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은. 신약성경의 마지막에 끝나는것과 상당히 흡사합니다.
신약성경의 마지막도, 주님과 이별해서,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의 모습으로. 나타나지않습니까? 요한계시록의 제일 마지막이? 아멘 주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라고 이야기를 하죠.
다시말하면. 어떠한 이별이 있더라도. 떨어짐이있더라고. 깨어질수 없는 사이라는 확신을 주면서. 이 이별은 오히려. 그들의 사랑을 더 깊게 만드는 효과를 주는 것일 뿐이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과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이 이야기가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얼마나 아가서 말씀이. 주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 주님과 교회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까. 그냥 이것을 이해하고, 이런뜻이구나 하는 깨닿음 보다도, 깊은 고백으로. 그래서 이 술람미와 솔로몬의 사랑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우리의 마음으로 고백하는 자리로 우리를 데리고 가십니다. 이것이 아가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마음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기도할때도, 그렇게 기도하는것이죠.
그렇게 우리도, 술람미 여인이 그렇게 사랑을 고백하고 표현하는 것처럼. 주님 제가 당신의 도장같이 되길 원하고. 나를 주님의 품에 두시고. 그 꺽을수 없는, 꺼질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평생을, 영원을 누리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고백을 “내가 듣게 하려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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