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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31 예수님의 세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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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 3:13-17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을 맡으신 예수님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시죠.
그게 세례식입니다.
13절을 보세요.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우리가 좋은 일은 서로 하려고 합니다.
높아지고, 좋은 직장은 서로 하려고 하지요.
그러나 낮아지고, 나쁜 직장은 서로 피하려고 합니다.
그게 상식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어때요?
가장 하기 싫은 일을 하시는데,
전세계, 모든 죄인들의 죄악 덩어리를 청소하는 일을 하려고 하십니다.
*예화
학교에서도 보세요.
하기 싫은 일은 아무도 안해요.
집에서도 보세요.
가장 중요한 일은 엄마 아버지가 다 하세요.
하기 싫은 일은 아무도 안해요.
어머니, 아버지가 다 헌신하시죠.
이게 일입니다.
이게 직업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야 직업을 가지고 싶어집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일하고 싶어지는 거에요.
아무도 힘들고 싶지 않아요.
아무도 헌신하거나 희생하고 싶지 않아요.
다들 편안하고 싶지, 고통스럽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직업이 뭐에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게 직업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해서 정치도 하고,
경제인도 되고,
교육자도 되고,
군인도 되고,
공무원도 되고,
그러는 것 입니다.
섬기는 마음으로 하는 게 직업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가장 하기 싫은 일,
모든 죄인들의 죄를 청소하는 일을 맡으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도 기분 좋게 할 수 있어요.
*14절에서 요한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이 세례식을 말립니다.
예수님이 죄가 없는데, 세례를 받으려고 하시니까, 하지 마시라고, 오히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세요.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님은 죄가 없어요.
죄가 없는데 세례를 받으려고 하십니다.
왜요?
예수님이 세례를 받아야, 하늘 문이 열리거든요.
하늘 문이 열려야, 다가올 하나님 나라가, 현재적으로 진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보통 우리가 영화를 보면, 미래에서 온 사람이 현재를 변화시키는 것을 보게 되죠?
그것과 비슷합니다.
미래에 일어나야 할 일을 미리 앞당기는 것입니다.
미래에 우리는 다 구원받아요.
미래에 우리는 영생을 얻어요.
미래에 우리는 죄가 완전히 용서받습니다.
그것을 지금 현재로 끌어오시는 것입니다.
미래의 첨단 과학기술을 현재로 끌어오면 어떻게 될까요?
내 능력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그 첨단 과학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만약 예수님이 미래의 구원을 현재로 끌어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내 능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그 구원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거죠.
그게 하늘이 열렸다는 의미입니다.
1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이 열렸어요.
드디어 문이 열렸습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이, 현재로 들어온 거에요.
그래서 이제는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어요.
얼마나 좋습니까?
이게 직업입니다.
이 일을 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세요.
아무도 하지 않는 일,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대신 죽는 일,
죄인들과 함께 물에 빠져서 죽고, 죄인들과 함께 물에서 다시 살아나는 일을 하신 거에요.
이게 예수님의 세례식입니다.
*죄인들은 세례를 받아도 하늘이 열리지 않아요.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도 않습니다.
17절 보세요.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런 음성이 있나요?
죄인들의 세례에는 이런 음성이 없습니다.
또 죄인들이 세례를 받으면 하늘이 열립니까?
그러면서 성령이 비둘기처럼 이 땅에 내려오십니까?
그렇지 않아요.
왜냐하면 죄인들의 세례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예수님의 세례는 어때요?
그는 죄인이 아니라, 의인입니다.
그는 의로운 자로서 죄인과 같이 낮아지셨습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일어나요?
하늘이 열려요.
그렇게 굳게 닫힌 하늘의 창문이 열려버립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요.
그리고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이 땅에 임재하셔서, 새로운 창조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창세기 1장 2절을 보면,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수면 위를 운행하십니다.
그리고는 창조 사역이 시작됩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땅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더라.
창조 사역이 시작됩니다.
이처럼, 성령이 비둘기처럼 땅으로 내려오셨다는 것은, 드디어 새로운 창조사역이 시작된다는 의미에요.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나 새롭게 창조됩니다.
그 마음이 새로워지고
그 영혼이 새로워지고
그 생각이 새로워지고
그 미래가 새로워집니다.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요.
이 모든 일이 누구를 통해 일어납니까?
바로 예수님의 세례식을 통해 일어난 거에요.
아무도 하지 않는 일,
십자가 지는 일,
죄인들과 함께 죽고, 죄인들과 함께 사는 일,
그 일을 하신 분이 예수님이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실 때, 우리도 힘들고 어렵지만 거뜬하게 공부할 수 있고, 직업을 가지고 사람들을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지
꽉 닫힌 문
문을 여시러 오신 예수님
성령이 비둘기 같이 - 하나님의 새창조 역사가 시작됨. - 이제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나 그 마음이 새롭게 창조됨 - 앞으로 다가올 세상의 마음으로 변화됨. -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변화됨
이 일을 위하여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 두 가지 사명을 예수님이 수행해야 함. -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종으로서 왕의 임무를 다하심 - 그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심으로 왕의 사명을 감당하심
주석2
하늘의 두 음성
시편 2:7은 왕적 메시아
이사야 42:1은 여호와의 종
대표
“좋은 일”에 대표가 되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일이다.
그러나 “죄인의 대표”가 되는 것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왕따 당하는 친구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
고통받는 사람을 대신할 사람은 없다.
그리스도인은 ‘죄인의 대표’, ‘약자의 대표’가 되어야 한다.
연약한 자가 누구인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왕따시키는 사람들이다.
묵상
예수님은 30세까지 무엇을 하셨을까?
그 일을 하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 일에 인류를 구원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셨을까?
그의 기다림은 의미가 있는 기다림이었을까?
*하나님께 고용되신 예수님
*일은 어떻게 하는가? 손님들과 같아진 마음으로 해야 한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부패하였고, 종교지도자들은 타락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리는 '희생제사'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성전의 희생제사를 비판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고, 회개의 열매를 맺는 자가, 진정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세례 요한이 물었스빈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텐데, 어떻게 당신이 나에게 와서 세례를 받으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이 죄인으로서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의(뜻)'를 성취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세례식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 모두 함께 하셨습니다. 먼저, 성부께서는 '말씀'으로 임재하셨습니다. 17절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다." 둘째, 성자께서는 물 속에 들어가셨다가 나오셨습니다. 셋째, 성령께서는 비둘기처럼 성자 위에 임재하셨습니다. 16절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 위에 내려오셨다." 이처럼,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 예수님의 세례식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이제는 타락한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예수님이 참 성전으로서 '죄 용서'의 기능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성전 제사에 참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예수님 안'에서 구원을 받고, 죄 용서를 받으며, 참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배경
Lexham 성경사전 (제2성전 유대교 정결예식)
우리는 후대의 유대교 자료에서 침수가 유대교로 개종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요구된 것임을 보게 된다. m. Pesahim 8.8에서 힐렐과 샴마이의 랍비학파들은 개종자의 물에 의한 정결과 유월절 식사에 대한 사안을 논한다. 침수는 씻김 받은 사람이 타인에게 부정함을 전이하지 않게 되었음을 확증하며, 그런 제의적 상태의 변화를 상징한다(비교 b. Yevamot 46a).비슬리-머레이는, “기독교 시대 초기에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은 할례를 받고, 의식적인 목욕을 하고, 희생제물을 바쳐야 했다.… 개종자 침례의 의의를 평가할 때, 유대인들이 할례에 부여하는 중요성에 주목해야 한다. Yeb. 2:29의, “개종자가 된 사람은 마치 새로 태어난 아기와 같다”는 자주 인용되는 진술은(Soncino Talmud ed. 22a), 반드시 Pesahim 91b의, “그의 무할례에서 자신을 분리하는 사람은 무덤에서 자신을 분리하는 사람과 같다”란 진술과 비교 되어야 한다(Beasley-Murray, Baptism in the New Testament).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성부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성자 하나님은 세례를 받으신다.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께 임하신다.
*예수님의 세례
복음사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존재와 무죄함을 입증하고 뛰어난 기행자라는 것을 변증할 필요성을 갖고 기록했다.
예수님이 세례 받을 때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과 비둘기의 형상을 그리며 내려오신 성령강림에 대하여 초점을 맞춘다. 그 현상은 예수님이 받은 세례현장이 일반인들이 세례를 받는 세속적 죄사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공생애의 출발을 알리는 새로운 세상, 즉 하나님나라를 선포하는 출정의 나팔소리이기 때문이다
복음서 저자들의 이상과 같은 진술들을 종합하면 성령이 비둘기 형체로 내려와 그리스도 위에 머물렀음을 그리스도 자신과 세례 요한 모두 보았다.
이처럼 새가 둥지 위를 너풀거리는 이미지를 열린 하늘로부터 그리스도 위에 임한 비둘기 형체의 성령에 대입시켜 볼 때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더욱이 ‘하늘이 열렸다(쪼개졌다)’는 표현은 지상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을 의미한다(마3:16, 막1:10, 눅3:21)
*세례요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세례를 말렸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죄가 없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가 없었지만 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세례 요한을 이렇게 평가한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마 ”( 11:11);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 11:13-14). 한편으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인물이 요한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구약성경( 선지자와 율법) 이 예언한 모든 것의 종착점이 요한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으로 성육신하신 예수 자신을 제외하고 말이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활동했다 많은 유대인이 이 .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를 듣고 세례를 ’ . 받았다 유대인에게 광야는 특별한 장소다. 광야는 출애굽 집단이 국가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한 훈련의 장소였다 기원전 년대 마카 . 160 , ‘ ’ 베오스 가문도 광야로 나가 싸워서 민족 공동체의 독립을 이룩했다 또한 비 . 슷한 시기에 에세네파가 사해 언저리 지역에 새로운 형태의 거룩한 공동체( ) 쿰란공동체 를 건설한 곳도 광야지역이었다.
세례 요한은 . 광야에서 임박한 심판을 선포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자백하고 철저히 회개하여 종말을 준비하라고 외쳤다.
이렇게 Q전승에서 전형적인 심판 예언자 (Unheilsprophet) 로 묘사되는 요한은 새 시대를 , ‘ ’ . 준비하는 마지막 예언자 로 그려진다.
1세기 유대 사회에는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팽창되어 있었다. 다양한 집단들은 일제히 자신들이 과거 전통의 진정한 계승자임을 주장하였다 바리새 . 파는 일반 백성의 민심을 대표한다고 자처했으며,20) 에세네파는 자신들이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가장 거룩한 집단이라고 여기며 예루 , 살렘 성전에 대한 대안적 집단으로 자신들만의 격리된 공동체를 건설했다.21) 많은 급진적 예언 운동과 메시아를 자처한 인물들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그들만의 배타적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자신들만이 새 시대의 ’ 계승자임을 자처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율법에 대한 철저한 준수를 통해 일반 서민과는 구별된 우월의식을 지 니고 있었다.
이에 반해 세례 요한의 회개 운동은 소외된 죄인들에게까지 죄용서의 세례를 베풀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요한이 죄용서를 선포했다는 것은 세례가 성전의 기능을 대체한다는 , 선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즉 성전에서만 . , 드릴 수 있는 희생제사는 더 이상 필요 없다, 그것 없이도 죄를 용서받는다 형식적 제사는 의미가 없다 오직 , , 철저한 회개와 삶의 전환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헤롯 성전의 불필요성을 강조하는 요한의 세례사역은, 새로운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필요성과 연결된다. 이제는 예수 안에서 세례를 받게 된다.)
사역
13 그 때에 예수께서 오셨다. 갈릴리에서 요단을 향하여, 요한에게 밥티조(세례를 주다, 씻다) 받기 위하여서
*예수님은 씻음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나, 스스로 씻음을 받으셨다.
14 그러나 요한이 계속해서 말렸다(디아콜루오, 미완료). 말하기를, 내가 필요합니다. 당신에 의해서 밥티조(수동태) 받아야 하는 것이. 그런데 당신이 나에게로 오시나요?
*세례요한은 씻음을 필요로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렸다.
15 그러나 예수께서 응답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아피에미(떠나다, 용서하다, 허락하다 / 명령)하라. 아르티(지금, 바로, 즉시). 이와같이. 왜냐하면 우리가 모든 디카이오쉬네(의, 올바름)를 플레로오(이루어지다, 성취하다)하는 것이 프레포(적당하다, 알맞다, 마땅하다)하다. 그 때에 그가 아피에미 하였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 양해를 구한다. ‘너는 이와 같이 하는 것을 허락해주면 좋겠다.’ ‘너는 이와 같이 하는 것을 용서해주기를 바란다.’ 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참 겸손하시다.
*예수님은 ‘우리’(1인칭 복수)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알맞은 일이라고 하셨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셨다. 즉시(바로) 올라오셨다. 물에서부터, 그리고 이두!(보라), 하늘들이 아노이고(열다, 열리다 / 수동태)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페리스테라(비둘기)처럼, 카타바이노(내리다, 내려오다, 강림하다) 하셨음을 그가 보았다. 그의 위에 도착하신 것을.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고 올라오시자,
1) 하늘들이 열려졌다.
2)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님께 비둘기처럼 내려오신 것을 보게 되었다.
17 그리고 이두!(보라), 하늘들로부터 포네(소리, 음성)이 있었다. 말하기를, 이는 나의 아가페토스(사랑하는, 사랑을 입은, 사랑받는) 아들이요, 내가 유도케오(기뻐하다, 매우 좋아하다, 선택한)하는,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다.
1)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다.
2) 하나님이 선택한(기뻐하는) 아들이다.
주석
13절
마태복음 2) 예수님의 세례(3:13–17)

누가의 설명(눅 3:21)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 의해서, 그것이 스스로 세례를 받은 것이든 아니면 요한의 지도 아래 함께 물에 들어간 것이든, 세례를 받은 여러 명 가운데 한 명인 것을 나타낸다

마태복음 2) 예수님의 세례(3:13–17)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라는 문구는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요한의 세례를 선택했음을 말해주며, 14, 15절은 이러한 사실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요한의 선포한 메시지와 또한 그것이 파생시킨 개혁운동과 동일시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13절 서두에 있는 “이 때에”는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한창 세례를 주고 있을 때를 가리킨다.

“말려”에 해당하는 디에콜루엔(διεκώλυεν)은 미완료인데, 여러 번 완강히 말린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의를 이룬다”는 것은 요한의 세례에 순종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구원 역사적인 의미를 충족시키시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심으로 “모든 의를 이루신 것”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첫째, 자신을 사람들과 같은 죄인의 처지에 놓으신다(고후 5:21). 둘째,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선언하신다(요 1:31–34). 셋째,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실 준비를 갖추신다. 넷째,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심으로 그의 사역을 인정하시고 그의 메시지와 자신의 메시지를 연결하신다. 다섯째, 자신이 메시아인 것을 세상에 나타내신다(요 1:31). 그러므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구원 역사의 수행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절차이다.

14절
마태복음 2) 예수님의 세례(3:13–17)

요한은 자기가 예언했던(11절) 자신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의 자발적인 낮아짐에 동의할 수 없었고, 11절의 빛에서 이해했을 때, 그의 말은 아마도 ‘당신이 내가 베푸신 물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령과 불로 베푸는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던 것 같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예비적인 사역이 막을 내림과 함께 예수님이 새로운 시대를 가지고 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15절
마태복음 2) 예수님의 세례(3:13–17)

예수님은 지금은 그가 낮은 지위를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와 요한이 함께 ‘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당혹스러운 표현은 마태복음에서 등장하는 두드러진 두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루다’라는 표현은 주로 구약의 예언이나 상황(참조, 5:17)과 예수님의 관계를 나타낼 때 사용된다. ‘현실화하다’ 혹은 ‘성취하다’ 정도가 마태에서 의도된 의미일 것이다. ‘의’라는 표현은 마태에서는 ‘옳음’(being good), 즉 법적인 옳음의 의미(legal correctness)라기 보다는, 순종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관점에서 본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의 동의어로 보인다.

마태복음 2) 예수님의 세례(3:13–17)

어떤 학자들은 여기서, 이사야에 있는, 자기 백성을 대표하여 그들의 죄를 지고 가는 ‘종’의 영향을 이 본문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16절
마태복음 2) 예수님의 세례(3:13–17)

요한복음(1:32–34)은 적어도 세례 요한이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태의 설명은 마가의 설명과 유사하다(특별히, 비록 가능성은 낮지만, 많은 후기 사본들에서 발견되는 ‘그에게 열리고’[open to him]라는 표현이 진정성이 있는 것이라면). 17절에 있는 삼인칭형태의 선포는 공적인 계시를 제안하여 준다. 그러나 이러한 공적인 계시는 예수님의 메시아적 지위가 그의 사역을 통해서 공적으로 언급되어지지 못했다는 사실과 자신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조차 한참 후에야 그의 메시아 됨을 알아차렸다는 사실(16:13–20)과 조화시키기 어렵다. 그러므로 마태가 이곳에 등장하는 용어들을 변화 산 장면에 등장하는 단어들과 동화시키기는 했지만(17:5), 공적인 선포로 보이는 이 언급들은 아마도 예수님 개인에게 선포된 것으로 마태는 의도한 것 같다. 이 단락의 전체 요점은 예수님의 사명의 공적인 계시라기 보다는 예수님의 ‘임명’(commissioning)에 있다고 하겠다.

마태복음 2) 예수님의 세례(3:13–17)

‘하늘이 열리고’라는 표현은 에스겔의 최초의 환상을 염두에 둔 표현 같은데(겔 1:1) 그것도 또한 강가에서 발생했다

마태복음 2) 예수님의 세례(3:13–17)

하나님의 영의 강림은 아마도 오랫동안 부재했던 선지자적인 영감의 선물을 다시금 부어주시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으나, 그 보다는 약속되었던 메시아의 보내주심을 나타내는 것 같다

Isaiah 61:1 NKRV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마태복음 2) 예수님의 세례(3:13–17)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이전에는 성령을 경험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가정할 필요는 없다. 보여진 환상은 그의 메시아적인 사역을 위한 임명을 상징하는 것이지 어떤 새로운 영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상징으로서 ‘비둘기’는 유대적 사고에서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몇 몇 후대 유대적 저술들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아마도 창세기 1:2에서 수면 위를 ‘운행하는’(hovering)는 성령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셨을 때 세 가지 일이 일어난다(16–17절). 그 세 가지 일은 하늘이 열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함, 그리고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림이다.

첫째, 하늘이 열린다(16절a). 하늘이 열린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세계로 내려오시는 것을 상징한다(시 18:9, 16–19; 144:5–8; 겔 1:1; 사 64:1). 여기서 “열리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네오크떼산(ἠνεῴχθησαν)이 수동태인 것은 하나님이 하늘을 여시는 주체자이심을 암시한다

하늘이 열리는 것은 이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지는 것을 예고한다(27:51).

둘째,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온다(16절b). 이 표현이 어떤 뜻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비둘기의 일반적인 상징이 평화라는 점을 고려할 때 성령이 주시는 평화(샬롬)를 의미할 수도 있고, 이 표현을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는 것(창 1:2)과 연관 지어서 하나님의 [재]창조를 의미할 수도 있다.

셋째,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린다(17절). 이것은 시편 2:7과 이사야 42:1을 인용한 것이다. 시편 2:7은 왕으로서의 메시아를 예언하며, 이사야 42:1은 종으로서의 메시아를 예언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과 권한을 가지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께 모든 권한을 주셨지만 예수님은 권한만을 행사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철저히 순종하시는 아들이시다. 그리하여 장차 아버지께서 예정하신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신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일어난 이러한 세 가지 일은 하나님의 삼중적 계시로서 예수님이 가지신 신적인 권위를 확증해 준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이 어떠한 메시아이시며 어떻게 구속의 사역을 수행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한편, 이런 일들을 예수님과 세례 요한만 보고 들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보고 들었는지 분명하지가 않다. 사람들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볼 때 예수님과 세례 요한만 보고 들은 것 같다.

17절
마태복음 2) 예수님의 세례(3:13–17)

시편 2:7은 다윗 계열의 왕을 하나님의 아들로 언급하고 그를 메시아로 이해하는 한편, 이사야 42:1은 그곳에 등장하는 종을 하나님이 자신의 영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로 소개하고 있다.

마태복음 2) 예수님의 세례(3:13–17)

예수님의 메시아적 사명은 세 가지 주요 개념으로 상술될 수 있다. 예수님은 다윗 계열의 메시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고, 자신의 백성들의 죄를 지고 가는 사명을 가진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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