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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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 Ton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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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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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0.01UNLIKELY
Joy
0.01UNLIKELY
Sadness
0.01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02UNLIKELY
Conscientiousness
0.01UNLIKELY
Extraversion
0.07UNLIKELY
Agreeableness
0.3UNLIKELY
Emotional Range
0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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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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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2:13–23 (NKRV)
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19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20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청소년들도 잔인하죠.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언어적으로 행하는 모든 폭력행위들이 범죄입니다.
학교폭력이 뭐냐?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류 제2조 1항에보면,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 유인, 명예훼손, 모욕, 공갈, 강요, 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 폭령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에요.
(약취 : 폭행이나 협박 따위의 수단으로 타인을 자기의 실력적 지배 아래 둠)
말로, 폭력으로, 정신적으로, 사이버 매체를 통해, 각종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괴롭히는 모든 행위를 학교폭력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헤롯이 예수님과 아기들에게 심각한 폭력을 행사하죠.
13절입니다.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도망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헤롯의 공격을 피하라고 하십니다.
그냥 당하지 말고 피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보내는 땅으로 피하여서, 내가 너한테 말할 때까지 거기서 숨어 지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피하는 게 상책이에요.
맞대응할 수가 없어요.
예수님은 아기이고, 아버지 요셉이나 어머니 마리아도 돈이 없는 가난한 집안이에요.
누가복음 2장 24절에 보면, 예수님 부모님들이 제사를 드리러 가는데, 돈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들이 드리는 ‘비둘기 두 마리로’ 헌금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무슨 이야기에요.
돈이 없어요.
무슨 맞대응할 능력이 없는 거에요.
이대로 당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때 누가 나타나 도와주세요?
13절을 다시 보세요.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도와주십니다.
너, 지금 이대로 있지 말고,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도망쳐라.
거기로 가는 것이 살 길이다.
라고 알려주시는 거에요.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해야 해요.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거에요.
예수님은 태어나자마자 쫓겨 다녔어요.
갈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헤롯이 찾을 수 없는 애굽 땅으로 도망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돈이 없으니까, 동방박사들이 주고 간,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썼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측해요.
*여러분, 공격을 당하면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학교 폭력으로 인한 두려움이 청소년의 반응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보면,
학교폭력에 노출된 기간이 길었던 학생들은 학교 부적응이 심각해서 전학을 가거나 해외유학을 가거나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게 대구지역 고등학생 5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에요.
청소년들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합니다.
신체적으로 어른이 되어서,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그런 성적 욕구를 해소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정하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기가 쉬워요.
그래서 여러분, 이런 불안정하거나 폭력적인 친구들은 그냥 피해 다녀야 해요.
요셉이 헤롯의 공격을 피해다녔듯이 말입니다.
또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학생들은, 그 폭력을 당한 경험들이 계속해서 떠오른다고 합니다.
계속 떠오르니까 집중이 안 되는 거에요.
그래서 학업성적이 떨어지고, 또 학교를 지각하는 일이 잦아지기도 하고, 이사를 가거나 전학을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거나, 심지어는 학교 가기 싫다, 혹은 가출/자살로 까지 이어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사람이 그만큼 연약한 거에요.
기쁘고 좋고 감사한 일보다도, 나한테 상처주고 고통주고, 공격당한 사건이 더 많이 기억되는 거에요.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 중인데, 지금도 문제지만, 전쟁 끝나고 나서도 문제에요.
전쟁을 겪은 어른이나 아이들은 공포 증세가 찾아와서, 그냥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살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예수님은 그런 트라우마가 없어요.
헤롯은 보면, 공격성향이 매우 강합니다.
자기 아들도 죽이고, 자기 와이프도 죽여버려요.
오늘도 보면,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베들레헴 주변 2살 밑에 아이들을 싹 다 살해해버리는 잔인함을 보이고 있잖아요?
이게 트라우마가 강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받은 대로 돌려주고, 받은 것보다 더 많이 공격해요.
헤롯은 자기 왕좌를 잃을까봐 엄청나게 걱정이 많습니다.
왕이 잖아요?
아무도 자기를 공격할 수 없는 자리에 앉았잖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공격적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은 어때요?
트라우마가 없어요.
공격성향이 없어요.
오히려 반대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어요.
공격성향이 아니라, 희생정신, 사랑으로 가득찬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나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야, 트라우마를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살아야 트라우마를 이길 수 있어요.
나를 공격한 사람,
나에게 폭력을 가한 사람을, 끝까지 품고 사랑해버려야 해요.
그들의 인생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겨야 해요.
아니면, 계속해서 그들이 나를 공격하고,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아프게 했던 그 기억들이 떠올라고, 공부도 안되고,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는데요.
아무도 트라우마를 스스로 이길 수 없어요.
사람은 연약한 존재라, 계속해서 부정적인 생각만 떠오르고, 안 좋은 마음만 들기 쉬워요.
그런데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신 사람은 달라요.
예수님이 마음 속에 계신 사람은, 트라우마를 이겨요.
항상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고,
예수님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트라우마를 이기는 거에요.
그들의 공격성을 품어버리고, 그들이 준 상처를 껴안아 버려야 해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처럼, 우리 삶도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해요.
그래야, 인생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자신을 위협하는 대상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헤롯이 아니라,
죄인들을 끝까지 품고 사랑했던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이시간 같이 기도할게요.
나를 힘들게 하는 기억들을 떠올려 봅시다.
그 기억들을 거부하지 말고, 품어 봅시다.
나에게 허락하신 귀중한 시간이라고 여겨 봅시다.
기독교인들 고난도 감사의 제목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가 있어요.
과거에 묶이면 미래로 가지 못합니다.
나를 얽매는 아픔, 상처, 트라우마를 주님께 내어맡기는 기도를 드립시다.
묵상
요셉이 예수를 위해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요셉은 예수와 그의 어머니를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자기 인생을 포기하였다.
예수님의 사건과 이스라엘 출애굽의 사건이 유사하다.
이는 하나님이 출애굽 때 일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생애에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말해준다.
예수님의 인생은 하나님이 출애굽 역사에서 일하셨을 때의 권능이 나타나는 인생이었다.
헤롯은 사람이 세운 왕이었다.
반면에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었다.
헤롯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생명을 해하려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러 오셨다.
그 누구도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킬 수 없었다.
가장 강력한 권력자일지라도.
헤롯은 자신의 왕좌를 잃을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예수님은 헤롯의 왕좌를 원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헤롯 인생의 왕이 되길 원하셨다.
두려움은 “예수님의 개입”을 몰아낸다.
두려움을 해결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두려움”
강렬한 공포는 지각, 사고, 운동 과정을 수축시킨다.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그 상황을 판단하고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위험한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절벽의 끄트머리에 서거나 으르렁거리는 개에게 다가가는 것 등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공포 장애는 두려움(공포증)이 다음과 같은 경우를 말합니다.
*비현실적임
*실제 위험에 비해 과도함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심함
예를 들어, 높은 곳을 너무 두려워해서 높은 건물에서는 일을 하지 않는다거나 동물을 너무 두려워해서 자녀를 동물원에 데려가지 않는 경우에는 공포 장애가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공황 때문에 죽을 것 같아요! 안 죽는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그래요!”
공황 때문에 죽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거의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이 공포를 줄여주지 않는다고 대부분 말씀하시죠.
왜냐하면 정확하게 알고 계시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다에 빠졌을 때 가장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은 헤엄치거나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물 위에 눕듯이 가만히 떠 있는 것이 체력소모가 적기 때문에 오랜 시간 버티기에 좋은 방법이죠.
그런데 막상 바다에서 이 자세를 설명해주고 시켜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머리의 무게와 신체구조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숨을 쉬는데 필요한 신체는 머리 전체가 아니라 코와 입뿐이며, 이 부분만 물 밖으로 내보내면 살 수 있습니다.
누운 자세에서 뒤통수부터 정수리까지 가끔은 눈까지를 물속에 넣어야 숨을 쉬는 코와 입이 해수면에 떠오릅니다.
“완벽주의”
1970년대 말 자유방임(Lassi-faire) 정책이 미국과 영국, 캐나다와 같은 서구 국가들을 필두로 펼쳐짐에 따라 세계 산업 또한 이전과는 다른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 국가들이 자유 무역을 통해 신흥 산업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기도 했지만 일각에서는 빈부격차와 능력 만능주의 등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습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Curran과 Hill(2018)은 무엇보다도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온 신자유주의적 시대 속에서 젊은 청년들의 성격특성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들은 여러 성격특성들 중에서도 완벽주의 성향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는 사람들이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문화에서 사람들은 경쟁적 개인주의를 통해서 스스로 완벽한 삶을 갖추려고 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완벽주의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자신을 평가함에 있어 과도하게 비판적 태도를 갖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Curran과 Hill(2018)은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27년 동안 40,000명이 넘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연구되고 집적된 논문들을 바탕으로, 과거에 비해 현대의 젊은이들은 완벽주의 성향이 더 짙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완벽주의의 세 차원 모두 증가하였지만 그중 유난히 사회적 맥락 속에서 나타나는 완벽주의 척도가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연구진들은 바로 이러한 점이 현대의 젊은 세대는 전 세대의 젊은 세대보다 더욱 불안감과 사회적 단절을 느끼고 외부적인 압박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 심리적 대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은 조건이 아니라, 약속의 말씀을 통해 일하신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향한 그 약속의 말씀대로 일하셨다.
헤롯의 세 아들들은 완벽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통치가 지속되거나 순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
아켈리오는 통치를 시작하고 3천명의 영향력 있는 유대인들을 죽였다.
그리고 그는 9년 후에 추방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그 약속의 말씀을 근거로 일하신다.
어린시절 전쟁 경험
정 교수는 이날 세이브더칠드런과 인터뷰에서 “어린시절의 전쟁 경험으로 인한 피해와 공포, 트라우마는 아동이 성장한 후에도 인지 기능과 정서 기능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전쟁 피해에 노출된 우크라이나 아동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정 교수는 지난해 4월부터 세이브더칠드런 홍보대사로 위촉돼 활동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에 이달 10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 출연료 중 1000만원을 우크라이나 아동 긴급구호를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이웃을 잃거나, 전쟁의 잔인하고 참혹한 경험들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혐오를 불러올 수 있으며 어른으로 성장한 후에도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몇 해 전 내전과 킬링필드를 경험한 캄보디아에 방문해 전쟁 피해 어른들의 뇌를 조사해 본 결과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들이 경험한 트라우마가 인지 기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유엔인권고등판문관실 집계에 따르면 15일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4633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나온 가운데 이중 418명이 아동이다.
지난 7주간 우크라이나 아동 750만 명중 280만 명이 우크라이나 내 타 도시로 이주했고 200만 명이 이웃 국가로 탈출했다.
우크라이나 아동 중 절반 이상인 64%가 이동한 것이다.
사람이 전쟁이나 고문, 자연재해, 사고 같은 큰 사건을 겪은 뒤에는 공포감이나 불안,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경험한다.
사건이 끝나더라도 악몽이나 이유 없는 불안은 끝나지 않는다.
마음 속 자신과의 전쟁으로 계속된다.
즉, 흔히 말하는 '트라우마'가 되는 것이다.
전쟁이나 부모의 죽음처럼 큰 트라우마를 경험하면 교감신경이 흥분해 각성상태가 지속된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은 긴장이 사라지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 상태가 적절하게 해소되지 못하면 부신에서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 '코티졸'이 과도하게 늘어난 상태가 지속된다.
특히 유년기인 5~9세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뇌 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인 해마가 위축되고, 뇌를 연결하는 뇌량도 감소한다.
이로 인해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충동 조절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발생한다.
앞서 소개했듯 우리나라 노인 10명 중 3명은 어린 시절 전쟁에서 부모의 사망이라는 상실을 경험했다.
나이가 들면서 배우자와 가족의 죽음으로 상실을 재경험한다.
전쟁은 70년 전 일이 됐지만, 기억 저편의 트라우마는 수많은 노인들이 오늘도 겪는 현재 진행형이다.
출처 : 메디칼업저버(http://www.monews.co.kr)
https://www.unicef.or.kr/what-we-do/news/59730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매스컴 등을 통해 알려진 이미지는 다소 좁은 것으로 보인다.
객관적으로 죽음의 위협이 있는 일(테러, 전쟁, 사고 등) 이외에도 주관적으로 생존의 위협을 느낀 일(학대, 성적 폭력, 대인관계 상의 단절 등)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다.
마음의 상처가 지속적으로 다시 경험되고, 당시의 공포가 엄습해 오거나, 큰 감정의 소용돌이, 삶의 어려움을 유발한다면 전문적인 진료를 고려해 보기를 권고드린다.
주제
예수님은 생존에 위협을 받으셨으나,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으셨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헤롯의 간계를 알리시고, 그 가족들을 애굽으로 피하도록 명령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하여서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을 성취하신다.
하나님은 헤롯이 죽은 후에 천사를 보내셔서 이스라엘로 돌아가게 하신다.
주석
전체적인 초점은 구약성경의 성취에 있는데 특별히 예수님의 유년기의 지리적 위치들이 강조되고 있다
또 다른 주제가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유년기와 모세의 경험들 사이에 발견되는 유사성이다.
애굽과 어린아이들의 학살에 대한 언급과 함께 이러한 암시들은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일대일로 아주 깔끔하게 대응하는 대응점들이 있지는 않지만, 2장에는 예수님을 새로운 모세로 묘사하려는 의도적인 일련의 메아리들로 가득하다.
13-14절
여기에서도 다시 한 번 꿈이 사용되어서 나타내는 효과는 예수님의 기원에 관한 구체적인 사건들에 있어서 신적인 주도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은신처로서 애굽을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구약성경 당시(왕상 11:40; 왕하 2:25:26; 렘 26:21)와 그 이후(참조, Bruce, 5) 정치적인 곤경에 처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애굽은 피난처 같은 역할을 했고 그 지역은 헤롯의 통치권이 미칠 수 없는 안전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마태에게 있어서 애굽이라는 곳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애굽의 주요 도시 마다 유대인 거주 지역이 있었다.
마태는 어린 예수님이 이집트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신 일을 기록한다.
이 일은 실제로 일어났지만 또한 심오한 신학적 의미를 내포한다.
갈라디아서 3:16이 지시하듯이, 예수님은 온 교회적 인격(whole church Person)을 가지신 분이고 온 만유적 인격(panta Person)을 가지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집트로 들어가신 것은 이스라엘 전체(야곱의 가족)가 이집트로 들어간 것을 의미하며, 예수님이 이집트에서 나오신 것은 이스라엘 전체가 이집트에서 나온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출애굽은 온 세상의 출애굽이며, 이는 결국 예수님을 통한 출사탄, 출사망, 출지옥이다.
천사는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이집트로 피하라고 말한다.
즉 헤롯의 영아 살육계획을 피하여 이집트로 가라는 것이다.
실로 예수님은 헤롯과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끊임없는 죽음의 위협을 당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지위를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제거하려 하였다.)
베들레헴에서 이집트 국경까지의 거리는 146km이다.
이집트는 헤롯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당시에 유대인들이 정치적인 망명을 시도할 때 이집트를 많이 택했다.
요셉의 가족들은 이집트 북쪽의 큰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가서 살았을 것이다.
당시에 알렉산드리아에는 약 100만 명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이집트에 머무는 동안 동방 박사들이 선물로 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팔아서 생활했을 것이다.
그들은 헤롯이 죽었다는 천사의 말을 들을 때까지 이집트에 머물러 있었다(15절a; 참고.
19–20절의 주해).
15절
그리고 하나님은 아주 오래 전에 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셨던 것처럼 이제 자신의 아들을 안전하게 지키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역할을 성취하기 위해서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셨던 것처럼 구속의 일을 위해서 예수님을 애굽으로 부터 불러내실 것이다
호세아에서의 “아들”은 이스라엘이다.
그런데 마태는 이 “아들”을 예수님께 적용한다.
즉 예수님을 참 이스라엘로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이집트로 들어가신 것은 신생 이스라엘(야곱의 가족)이 이집트로 들어간 것을 뜻한다.
필시 예수님의 개인적인 행적과 사역 속에는 전체 이스라엘의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16절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심히 노한다(16절).
그는 자신의 정치적인 위협을 미리 차단하기 위하여 베들레헴의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한다.
헤롯은 성격이 포악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하여 부인(Miriamne I)과 세 아들(Alexander, Aristobulus, Antipater)까지 죽인 자였다.
헤롯이 정한 살해 기준인 “두 살부터 그 아래로”(two years old or under)는 그가 박사들로부터 별이 나타난 때를 듣고 대략 흘러간 시간을 계산하여 예수님의 탄생 시기를 추측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이때는 예수님이 태어나신지 여섯 달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헤롯은 예수님을 확실하게 죽이기 위하여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다.
17-18절
아마도 마태는 베들레헴의 애곡 속에서 일시적인 슬픔을 보도록 의도한 것 같다.
외국 땅으로부터 귀환하는 베들레헴의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은 일시적인 슬픔으로부터 그들을 기쁨과 구원으로 인도하실 것이다.구약과 마태의 보도 사이에 직접적인 일대일 대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유사함에 대한 당위성은 재난 속에서도 축복하시고 죽음을 통해서도 생명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확신 속에 달려있다.
예레미야 31:16–17에서 여호와는 라헬에게 울음소리와 눈물을 멈추라고 하셨는데, 이는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소망이 있었기에 그들은 많이 슬퍼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기들의 죽음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비록 헤롯은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지만 예수님은 그를 피하여 이집트로 가셨고 이제 귀환하심으로(출애굽) 이스라엘의 소망이 되실 것이다.
19절
마태복음 -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설립 60주년 기념 성경주석 (2) 이집트에서 나오심(2:19–23))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던 헤롯은 얼마 있지 않아 죽는다(19절a).
요세푸스에 따르면, 헤롯은 주전 4년 유월절이 되기 약 열흘 전에 여리고에서 여러 가지 중한 질병(열, 가려움증, 궤양, 창자가 부어오름, 피부가 썩음)으로 비참하게 죽었다(Antiquities XVII.6.5).
그는 죽으면서도 유대인들이 자신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고 슬퍼하게 만들려고 많은 영향력 있는 유대인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이 명령은 그의 누이인 살로메에 의해 철회되었다(참고.
Antiquities XVII.6.174–79,
193).
19절b는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ἄγγελος κυρίου κατʼ ὄναρ φαίνεται τῷ Ἰωσὴφ ἐν Αἰγύπτῳ)라고 하는데, 이는 “애굽에서”(ἐν Αἰγύπτῳ)를 제외하면, 13절의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ἄγγελος κυρίου φαίνεται κατʼ ὄναρ τῷ Ἰωσὴφ λέγων)와 정확히 일치한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주의 사자를 보내셔서 요셉을 인도하신다.
사탄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키신다.
22절
아켈라오는 자기 아버지의 왕국 중 단지 남쪽 부분만을 계승했는데, 주후 6년 그의 악정으로 폐위되기까지 그의 특징은 자신의 아버지보다 결코 낫지 못한 것으로 간략하게 보도된다.
그의 이복 형제인 헤롯 안티파스에 의해서 통치된 갈릴리는 메시아 예수님을 양육하기에 보다 더 안전한 장소로 간주된 것 같다(이곳은 곧 ‘메시아적’해방운동들의 풍부한 근원으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헤롯대왕은 주전4년에 불치병으로 죽었다.
요셉이 아기 예수님과 마리아를 데리고 이스라엘로 돌아온다(21절).
그러나 그는 아켈라오스(Herod Archelaus)가 유대의 임금(ethnarch)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한다(22절a).
아켈라오스는 헤롯의 아들 중 한 명으로 주전 4년부터 주후 6년까지 유대, 사마리아, 이두미아를 다스렸다.
그는 아버지 헤롯과 마찬가지로 성격이 포악하고 잔인하였다.
결국 유대인들이 그에 대하여 극렬히 저항하자 주후 6년경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Caesar Augustus)는 그를 폐위하여 고울 지방(프랑스)으로 유배를 보냈다.
그리고 이후에는 로마의 총독이 그의 자리를 대신하였다.
결국 하나님은 무서워하는 요셉에게 꿈을 통하여 지시하셔서 갈릴리 지방으로 가게 하신다(22절b).
23절
부분적으로 이방인들의 거주와 그러한 전망들로 인해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던 지역인 나사렛으로부터 예수님이 온다는 사실은 당혹스러운 일이 될 수 있었다(참조, 요 1:46; 7:41–42, 52).
예수님이 경멸적인 언어인 나사렛사람(참조, 요 1:46)으로 알려졌다고 하는 것은 메시아에게 기대되었던 왕적인 위엄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편 22편 이사야 53장 스가랴 11:4–14과 같은 구약의 본문들이 성취된 것이다.
건드리는 UOT 103–104에서 사 11:1에서 네체르[nēṣer]의 언어유희도 기본적으로 같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잘려진 그루터기로부터 새 순이 돋아나는 것은 고상하지 못한 기원에 대한 상징[참조, 사 53:2에 있는 경멸당하는 식물의 이미지]으로 이해될 수 있고 실제로 마태의 동시대 유대교에서 그렇게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마태는 메시아 예수의 시작이 구약의 예언대로 뜻밖에도초라했다고 말한다.
별 볼일 없는 동네 출신으로 신임장도 하나 없는 어린아이가 로마 세계와 예루살렘의 종교 엘리트들을 뒤집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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