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혼(마1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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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2년 7월 10일 주일
제목 : 한 영혼
본문 : 마태복음 18장 12-14절 *신30
[도입]
제가 축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이제 다들 아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한 번 볼까요? 손흥민 선수가 워낙 뛰어나다는 사실도, 또 실력이 남다르다는 사실도 모두가 알 것입니다. 그런데, 손흥민 선수 한 명이 뛰어나다하여 팀 전체의 성적이 오를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의 영향력을 가지고 팀 전체의 성적이 월등하게 오를 수 있었다면 감사했겠지만, 결국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또 반대로 생각해볼까요? 손흥민 선수가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성적을 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볼 수 있을듯합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으로 팀 전체의 성적을 월등히 올릴 수는 없지만, 또 반대로 한 사람의 영향력으로 팀 전체가 유지되고 하나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하나가 됨으로 좋은 성적을 이룬 이야기를 해보자면, 당연 “베트남 축구대표팀”이야기이지 않을까 합니다. “베트남의 영웅” 박항서 감독님은 베트남 축구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하며 외국인 감독 평균 수명 8개월의 기록을 깨고 근 5년간 감독으로써 임무를 다하고 계십니다. 그러던 중 U-23 감독도 함께 겸임하게 되는데, 2019년 동남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그리고 2년 뒤 2021년 동남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함으로 베트남 축구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던 우승을 이루어냄과 동시에 연속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루기까지 했습니다.
여러분, “남 만 둥”이라고 아십니까? 2021년 베트남이 우승할 당시, 최대 라이벌 태국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던 선수의 이름입니다. 손흥민 선수와 비교했을 때, 정말 알려진 바 하나 없고, 유명하지도 또 그렇게 영향력을 주는 선수도 아닌듯 합니다.
그런 선수가 11명이 필드에서 뛰고 있으니, 정말 우리에게 있어 기대감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주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 11명이 필드에서 어떤 결과를 이루었습니까? 우승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한 사람의 영향력이 크든 작든, 한 사람이 있다라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곤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가족에게 있어서, 친구들에게 있어서, 또 교회와 우리 각 반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이며, 또 어떤 존재로써 살아가길 원하십니까?
[우리=양]
물론 우리 모두 잘 난 사람으로, 또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뜬구름 잡는 듯한 계획이고 생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런 고민 속에 있는 우리를 향해, 어떤 존재인가 또 어떤 역할로써 살아가야 하는가 전하고 있습니다.
12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읽어 봅시다.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양 백마리가 푸른 초원 위를 뛰어 다닙니다. 그러던 중 한 마리가 길을 잃어, 양 무리로부터 이탈한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100마리 중 한 마리 사라진 것이 과연 티가 날까 싶지만서도, 오늘 말씀은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두고 오히려 사라진 그 한 마리의 양을 찾아 길을 나선다 말씀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를 양에 비유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양으로써의 등장은 이번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말씀입니다. 시편 23편의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우리의 모습을 양으로, 또 하나님의 모습을 목자로써 표현함으로, 우리가 목자의 인도하심 속에 부족함 없이 푸른 풀밭에서의 삶을 살아내게 됨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양의 특징]
그럼 왜 우리를 그 많고 많은 동물 중에, 또 생명체 중에 하필 양에 비유를 했을까요? 양이 도대체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가 양에 비유가 됩니까?
물론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몇 가지만 살펴보자면, 양은 우선 시력이 좋지 않습니다. 즉 앞을 잘 보지 못해 자칫 잘못하면 위험한 길로 헛딛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죄에 눈이 가리워져 우리가 가는 길이 죄인지 모르고 걸어갈 때가 참 많습니다. 나는 이 길이 선한 길이라 듣고 갔는데, 알고보니 악한 자의 길임을 깨닳게 될 때도 간혹 있습니다. 우리도 양처럼 앞을 잘 못볼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또 양은 목자의 소리를 듣고 움직입니다. 아무래도 시력이 좋지 못하다 보니 양들의 청각은 상당히 발달해 있습니다. 물론 절대음감을 가진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여하튼 소리를 잘 듣습니다. 그런데 이 잘 들음이 그래도 나름 상당합니다.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 구분할 수 있을 정도라 합니다. 즉 그들이 앞을 못 봐 잘못된 길로 걸어가더라도 주인의 외침을 듣고 곧장 주인이 있는 곳으로 달려온다는 것이지요.
또한 각 주인이 다른 양무리들을 한 곳에 섞어 두어도 이들이 각 주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그쪽으로 달려간다고 할 정도니, 이들의 청각이, 또 주인의 목소리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정도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그래야 합니다. 분명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지 못한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즉시 발걸음을 돌려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앞에 달려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죄에 눈이 가리워져 발을 헛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헛딛은 그 발을 바로 잡아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양은 모든 것에 있어 무능하기에 “무능함의 대명사”처럼 비춰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이 탁월하게 잘 하는 것은 “주인의 음성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 없이는 무능한 존재이기에, 주님의 음성을 듣고 구분하여 주님만 바라보며, 주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 철학]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를 양으로 표현하며, 그 한 마리의 양을 찾기에 힘써야 한다 말하는데, 즉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우리 주변에 또는 내가 주를 떠난 삶을 살아간다면 속히 주 음성을 듣고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반드시 찾아야 하는 그 한 사람의 모습이 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물론 귀한 아들내미고, 딸내미겠지만 먼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한 백성”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저 많은 무리 중 여느 한 사람 정도가 아니라, 정말 콕 찍어 말할 수 있는 그 단 한 사람이 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한 사람 철학은 정말 귀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너무나 귀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로는 이번 수련회의 기회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 한 사람 그 자체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또 수련회라는 하나님을 대놓고 만나도록 판 까는 그 기회를 붙잡길 소망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귀한 그 한 사람, 그게 나라면, 우리라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야 합니까? 본문의 14절입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그 한 사람을 잃는 것이 누구의 뜻이 아니라 기록합니까? 바로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말합니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세워진 우리는 이제 “아버지의 뜻”에 합당한 자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많은 방법이 있지만, 그 중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언급합니다.
나만 잘 사는 종교, 나만 잘 먹고 행복하게 사는 종교가 기독교라면, 어쩌면 타종교와 별 다를 바 없었을 것입니다. 더 윤리적으로 선행을 행하려고 했을 것이고, 더 착한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힘썼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윤리적, 또 사회적 만족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내가 믿는 예수를, 내가 만난 예수를, 아직 예수를 모르는 친구에게, 아직 예수를 만나지 못한 친구들에게 전하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입니다. 또 그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세워진 우리의 역할이 됩니다.
[적용]
사랑하는 청소년부 여러분. 여전히 나 한 사람을 지목하여 택하셨다는 사실에 놀람은 없고, 또 경이롭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택하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사실에 우리 친구들에게도 감동이 주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 감동이 있던 여러분들이 해야할 일이 있는데, “아버지의 뜻”대로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매순간 최선을 다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