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하는 바리새인

마태복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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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6장 1절부터 4절 말씀입니다. 신약성경 4페이지에 있습니다 다 같이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설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잠언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만으로 우리를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행위를 했을 때에 우리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행위로 우리를 평가합니다. 그의 동기가 어떠하든지, 행위가 괜찮으면, 우리는 박수치구요, 때로는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꽁꽁 숨겨놓은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어떠한 행위를 하더라도, 그 행위의 목적과 동기를 알아보시는 분이죠. 그렇기에 우리가 단순히 거룩해보이는 행동을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면, 그것을 알고 계시고요. 되게 단순해 보이는 행동이라도 그것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라면, 그 마음 또한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성적으로 다른 이웃과, 하나님을 위해서 선택하지 않고 나 자신을 위해서 행동합니다. 맨 처음에는 나의 생존을 위해서, 생존의 위협으로 보호 받으면, 나의 안전함을 위해서, 나의 편안함을 위해서, 나의 만족을 위해서. 모든 것들이 다 채워지고 나면, 마지막 나의 명예를 위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서 한 행동들을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위해서 한 것처럼 포장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이며, 예수님게서도 그렇게 주의하라, 조심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의 동기를 점검하여 사람들의 평판과 칭찬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도록 촉구하고 계십니다. 구제, 기도, 금식이라는 총 3개의 영역을 다루고 있는데요. 오늘 본문은 그 중 구제의 영역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때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구제는 중요한 행위였습니다. 신명기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고아와 과부들에게 선대해야 했으며, 그들을 보살펴야만 했습니다. 이 고아와 과부를 선대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을 때 일어났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들을 기억하고, 주변의 굶는 자들을 돌보고, 연약한 자들을 챙겼었죠.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때에는 자기 자신만 돌보고, 주변의 사람들을 전혀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고아와 과부가 굶고 있으며, 장사하는 사람들은 무게 추를 바꾸었고, 다스리는 사람들은 돈을 받고 법정에서 비리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건축하고, 성벽을 건축하면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죠. 성벽을 건축하던 당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서 귀족들이 가난한 백성들에게 높은 이자로 돈을 꿔주고 있었음을 보고, 회개하며,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자를 받지 않겠노라 결단하자고 고백했습니다. 이후로 공동체 안에 많은 사람들이 기부하는 변화들이 생겼습니다. 회당은 1세기의 사회 기관으로 기능하면서 지역 사회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구호를 제공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부는 많은 사람의 구제로 연결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과시로 연결 되었습니다. 이것은 경건한 것으로 여겨지는 완벽한 방법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기부자들은 공개적으로 인정되었습니다. 회당의 나팔을 많은 금액이 주어졌을 때 나팔을 불었다는 기록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과시하여 인정받게 되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땅에서 칭찬받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지 못하고 땅에서 받는 상으로 마칠 것이라 얘기하십니다. 심지어 우리는 더욱 조심하여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자기 자신도 내가 구제하였다는 사실을 나의 명예, 나의 정체성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은밀히 할 때에 하나님께서 갚으신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19장 29절에도 등장하는데요.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1)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우리는 행위로 구원 받지 못함을 알고 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나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다른 이들을 구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것이요. 그러한 모든 사람은 천국을, 하나님의 통치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현재의 땅에서의 하나님의 복을 의미하고, 또한 영원한 생명, 하나님 나라에서의 기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신자가 줄 때, 그것은 결코 다른 사람들이 (그리고 존경받는) 공개적으로 나와서는 안 되며, 항상 비밀리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행위로 여겨야 한다. 주는 것은 전적으로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행해지는 사적인 일이다. 둘 다 보상이 있지만, 전자는 세속적인 보상(박수)을 내고 후자만이 영원한 보상을 받는다.
우리는 마음의 뜻을 우리는 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살 것인가? 나를 위하여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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