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풍병자를 낫게 하시는 예수님

마태복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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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9장 1절부터 8절 말씀입니다. 신약성경 13페이지에 있습니다 다 같이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설교
우리는 계속해서 마태복음을 보고 있는데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께 중풍병자를 침상에 누인 채로 데려왔죠.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실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이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서 볼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병 고침, 기적들은 항상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항상 기적을 바라지만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계신 것이죠. 그러한 맥락에서 오늘의 기적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어떤 가르침을 주고 계신가요?
2절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유대 사람들은 질병을 죄의 결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 때 문둥병과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은 나는 부정하다는 것을 외쳐야 했으며, 정죄함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본문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면서 소경인 자는 부모의 죄 때문인지, 자신의 죄 때문인지를 물어보았던 것이죠.
이러한 배경처럼 사람들은 중풍병자를 보고, 그의 죄로 인해 마비되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이 사람의 질병이 자신의 죄 때문인지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얘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사람이 죄 때문에 그렇다고 우리는 생각하지 말아야 하죠.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죄 사함을 이야기하고 계실까요? 궁극적으로 모든 고통의 근원이 사실 죄로부터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 만물의 시작인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그 세상에는 고통과 질병이 있었나요? 그렇지 않았죠. 그런데 고통과 질병이 들어오기 시작한 부분은 어디서부터였습니까? 죄를 짓는 인간의 타락에서부터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을 때, 죽음이 인간에게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감사하게도 그 죽음을 바로 시행하지 않으시고, 미루셨죠.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면서 타락하고 병든 세상 속에 고통과 질병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이라는 질병을 고치심으로 우리에게 모든 고통, 질병의 뿌리인 죄를 다루러 오셨음을 가르치고 계신 것이죠. 육체적으로 고통 당하고 있는 중풍병자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중풍이 낫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이 죄 사함을 받는 영적인 필요인 것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고통과 어려움은 아담의 범죄 이후 세상의 타락과 우리의 죄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넘어서, 우리 삶 가운데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누구십니까? 유일하게 하나님 뿐이시죠. 그것을 서기관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이 용서한다고 하자, 분노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예수님께서도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권한이 있으시죠.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자, 예수님께서는 그 죄의 대가를 치르시기 위해 오신 대속제물이시기 때문이죠.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위와 능력이 있음을 보이시기 위해 의도적으로 질문하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십니다. 이것을 통해 자신에게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위가 있음을 보이셨던 것이죠. 이것은 중풍병자의 질병을 고치심으로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죽음이라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지신 예수님의 권세와 사역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결국 중풍병자의 질병만을 낫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사람의 죽음에서 건지시기 위해 자신이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가르치고 계신 것이죠.
이것은 우리의 모든 질병과 육체적 고통을 낫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고통과 아픔이 해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것이며,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였든,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얼마나 죄악 가운데 있든,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단순히 중풍병자의 질병이 낫는 기적만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심으로 우리의 죽음이라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을 보여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결론을 맺으며 여기서 우리가 기억했으면 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서기관의 모습들이죠.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하나님을 향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지 못하였습니다. 특히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였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았으나,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기에 믿지 않아죠.
이렇게 예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서기관들 앞에, 어떤 기적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눈 앞에 기적이 일어나도,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모른다면 알 수 없는 것이죠.
우리가 이러한 서기관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가고자 하지 않는다면,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만한 생각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다 알 수 없지만,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간절히 사모하고 열망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을 알아가기 힘쓰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우리 모든 대흥교회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