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의 복음

사도신경 해설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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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은 사도신경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라는 고백을 누가복음 1장 30-35절 창세기 3장 15절을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도신경의 세 번째 줄 안에는 굉장한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아름다운 역사는 아니고 논쟁했던 역사인데, 이 한 문장 때문에 예수님이 사람이냐 하나님이냐 예수님이 언제부터 하나님이었냐 하나님의 아들을 낳은 예수님 엄마는 도대체 뭐냐 하면서 여기에 굉장한 논쟁들이 있어요. 자! 예수님은 그냥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아니다. 예수님은 ‘그냥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이 섞인 거다.’ 손 들어보세요. 손 든 사람들은 다 이단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데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혼합되지도 않고 분리되지도 않고 상호간에 간섭하지도 않습니다. 이게 답이에요. 이런 내용으로 정치적인 싸움에 져가지고 아시아 쪽으로 쫓겨난 사람들도 있어요. 역사랑 교리를 같이 보면 굉장히 재밌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내용을 제가 설교시간에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네 없어요. 그냥 지금은 이 문장이 엄청난 논란이 되었지만 결국 모든 논란에서 검증을 잘 받고 우리에게 잘 전달되었다는 것만 아시면 되겠습니다.
제가 페이스북을 보다가 아주 재미있는 사진을 하나 발견했어요. 예수님이 진짜 계셨다는 증거가 있다는 거예요. 사람의 염색체가 몇 개 입니까? 마흔여섯개죠. 그런데 법궤를 살펴보니까 예수님의 피가 있는데 그 피에 염색체를 분석해보면 염색체가 23개라는 거예요 마리아한테 받은 염색체 23개 성령님께서 주신 성염색체 Y해서 24개의 염색체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염색체는 24개기 때문에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이런 논리를 펼칩니다. 이걸 누가 생각해낸건지는 몰라도 이게 과연 과학적이고 논리적일까요? 우리 개신교가 비난을 받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너무 비과학적으로 비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복음을 위해 고난 받을 순 있는데 예수님 믿는 사람들 참 무식하다 비논리적이다. 이런 이미지를 만들면 안됩니다. 믿음의 신비는 논리를 뛰어넘지만 비논리적인 주장을 하지는 않습니다. 법궤에서 예수님의 피를 발견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습니다. 법궤는 유다왕국이 멸망할 때 소실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3장 16절을 보면 다시는 언약궤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법궤는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적어도 4세기 전에 사라졌습니다. 법궤에 예수님의 피는 없습니다. 이 사진에 있는 주장은 성경적인 관점에서 시간적인 논리가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완전한 사람으로 태어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염색체 46개를 가진 사람으로 태어나셨다는 거예요. 염색체 24개인거 찾아봤는데 벼, 토마토 이런 것들이 염색체가 24개입니다. 예수님이 토마토는 아니잖아요? 이런 말도 안되는 논리가 등장하는 이유가 뭐냐면 성경을 모르고 교리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기본이 제대로 안되어 있으니까 자꾸 이런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예요. 예수님을 증명하려다가 예수님을 토마토로 만들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생시절에 젊은 시절에 성경과 교리를 탄탄하게 공부해서 제발 이런 비논리적인 말을 하지 않고 잘 분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참 사람이시며 참 하나님이라는 이 진리는 신비하고 놀라운 진리이고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본론1-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설명)오늘 성경 본문은 여러분들 정말 많이 봤을 거예요. 이건 거의 크리스마스 때나 보는 성경본문이죠. 식당에 계절메뉴 같은 느낌인데 지금 한참 더울 때 이거 보려니까 좀 안 맞는다는 생각도 들 거예요. 하지면 여기에는 우리가 언제나 명심해야 할 진리가 숨어있습니다.
자! 잘 아시는 대로 가브리엘이라는 천사가 찾아옵니다. 굉장히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는데,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우리는 이걸 보고 ‘와 예수님 태어나셨네! 잘됐다!’ 이럴 수 있는데 마리아 입장을 생각해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마리아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고 추측을 합니다. 고등학교 1, 2학년 정도 나이로 추측을 하는데, 요즘 시대에도 고등학생 1, 2학년 학생이 결혼도 안했는데 임신을 한다면 또는 아기 아버지가 된다면 그렇게 드러내놓고 축하해주는 분위기는 아니잖아요. 그죠? 보통은 걱정을 합니다.
그런데, 2천 년 전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간음하면 돌멩이로 쳐 죽이는 율법이 있는 이스라엘 땅이에요. 천사라는 양반이 대뜸 나타나가지고는 산부인과 의사마냥 ‘너 임신했다.’이러는데 ‘와 감사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저도 딸이 있는데, 결혼 한 지 한 7개월 됐을 때 임신했을 것 같아서 병원에 가서 검사했는데 의사가 임신 6주차라고 해서 엄청 놀랐어요. 저는 MBTI가 istj라서 뭔가 할 때 늘 계획을 하고 해야 하는데 예상치 못하게 아기가 생겨서 놀라기도 했고 앞으로 이 쪼그만 생명체를 어떻게 한 30년 데리고 살아야 하나 걱정도 되었습니다. 나도 작년에 독립했는데 이 쪼끄만 생명체를 어느 세월에 키워서 독립시키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시집 갈 때 혼수를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도 하고 별의 별 생각을 다했어요. 결혼도 하고 마음의 준비 다 한 상태에서 임신 판정 받아도 놀라는데 이 어린 소녀가 천사한테 이런 말을 들었으니까 얼마나 놀랐겠어요.
마리아가 말합니다. ‘저는 남자를 가까이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습니까?’ 천사가 대답합니다. ‘35절을 보면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마리아는 남자를 가까이 한 적이 없는 소녀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임신을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성령님의 특별한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었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 밖에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의 몸에서 태어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죄가 없으십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죄는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원래 죄가 없으신 분인데 죄인으로 이 땅에 오시지 않기 위해 남자와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으시고 성령님의 특별한 능력으로 여자에게서만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부터가 죄인이면 죄인들을 죄를 해결해주지 못 하잖아요 그죠? 예수님이 죄가 없어야 죄인들을 구원해주실 거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은 죄 없이 태어나시기 위해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태어나셨습니다.
(증명)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여자에게서만 태어나신 이 사건은 그냥 깜짝 이벤트로 계획해서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계획된 일입니다. 죄라는 것이 이 세상에 처음 생길 때부터 하나님이 예수님의 성육신을 계획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아까 읽은 창세기 3장 15절을 봅시다. 창세기 3장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 따먹는 사건이 나와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뱀에게 저주를 선포하시는데, 뱀은 사탄이잖아요. 사탄에게 선포하신 저주가 우리에게는 복음이에요. 그 내용이 뭐냐면 창세기 3장 15절에 하나님이 사탄한테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 보시면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고 그래요. 여기 있는 모든 걸 다 설명할 순 없고요. 여기 있는 여자의 후손은 예수님을 말합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탄의 권세를 깨뜨린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보시면 여자의 후손은 머리를 다치는 치명상은 없어요. 근데 다치기는 다쳐요. 발꿈치를 다치게 되는데 그건 예수님의 고난을 말하는 거예요.
성경에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우리를 위해 죽으실 예수님에 대해 미리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깜짝 이벤트가 아니라 오랫동안 치밀하게 계획된 거예요. 우리가 또 창세기 3장 15절을 볼 때 주목할 점이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입니다. 이건 예수님께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죄인이 아니라 성령님의 특별한 사역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만 태어나셨고 원래도 죄가 없으셨지만 특별한 방식으로 죄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셨다는 거예요.
(적용)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도신경을 볼 때 웃기는 포인트가 두 가지 정도 있는데 첫 번째부터가 그래요.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어?’ 이런 식이예요. 그 다음에 웃기는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는 거예요. 우리 다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배우잖아요. 사람이 태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남자 혼자만 있어서 될까요? 여자 혼자만 있어서 될까요? 아니란 말이에요. 남녀가 같이 있어야 임신이 되고 아기가 태어난단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여자 혼자 애를 낳는 것이 가능하냐?’ 이렇게 나와요. 우리도 이게 의심이 될 수 있어요. 우리가 과학시간에 배우잖아요. 엄마한테서 22개의 상동염색체와 한 개의 성 염색체를 X를 받아요. 아빠한테서 22개의 상동염색체와 한 개의 성염색체 X를 받거나 Y를 받아요. 부모로부터 성염색체를 엄마한테서 X 아빠한테서 Y를 받아야 남자 아기가 태어나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 모든 과정을 다 뛰어넘고 태어나셨어요. 마리아에게서 22개의 상동염색체와 성 염색체 X를 받았는데 나머지 상동염색체와 성 염색체는 어디서 왔냐고요. 과학적으로는 말이 안돼요. 우린 이걸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예수님이 토마토가 되는 거예요. 이 영역은 신비의 영역이고 하나님의 영역이에요. 이렇게 말해야 우리가 이상한 사람이 안되는 거예요.
우리에게 이런 과학적인 의문이 들긴 합니다. 예수님의 염색체는 다 어디서 왔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그 때는 다시 사도신경 맨 첫 번째 문장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 세상에 돌아가는 원리를 다 정하신 분입니다. 과학은 그걸 조금 관찰해서 이해하고 사용하는 거예요. 과학이 절대적인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신 분인데!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게 하는 걸 못하실까요? 충분히 하시죠? 마음만 먹으면 이것보다 더 큰 기적도 일으키십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이 모든 과학과 지식 위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도신경이 교회를 세우는 위대한 신앙고백서인거예요.
(전환문장) 그 다음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하셨는데 왜 그랬냐는 거예요.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성육신하셨어요.
본론2-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나셨다.
(설명) 32절을 보세요. 31절까지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는 것에 대해 말하고요. 32절은 그러면 예수님이 태어나서 뭘 하는지에 대해서 말해요. 예수님이 성육신을 하셨잖아요.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는데, 뭐하러 그렇게 했을까요? 그 목적이 있겠죠?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나셨어요.
32절에 보면 성육신해서 태어난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로 일컬어집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신다고 해요. 이게 엄청난 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은 헤롯왕이에요. 헤롯 왕조가 적통이 아니예요. 그런데 갑자기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을 왕이 태어난다고 하니까 엄청난 말이에요. 이스라엘이 왕을 잃었어요. 로마에게 지배당하고 로마가 자기 맘에 드는 사람 왕으로 세웠단 말이예요. 그런데 진정한 다윗 왕조의 왕이 등판했어요. 바로 예수님이예요.
이 예수님은 정치적인 왕이 아니에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만을 위해 온 게 아니에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사람들을 위해 오셨어요. 자기 백성을 위해 오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도 거기 포함되었어요. 예수님은 자기 백성,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어요. 중동지역에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조그만 나라는 힘이 없어서 다른 나라에서 침략하기도 하고 나라를 빼앗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에게 침략 당하지 않아요. 절대 빼앗기지 않아요.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고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의 백성이에요. 예수님은 우리를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구출해내신 우리의 왕이십니다. 어떻게 구출하셨을까요? 우리는 죄 때문에 사탄의 나라에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죄 문제를 해결 받았어요.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예수님이 왕이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찾으러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또 자기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어요. 이렇게 하려면 예수님은 몸이 있어야 했어요. 십자가에서 피 흘릴 수 있는 몸이 있어야 했어요. 죄로 뒤범벅된 우리의 영혼과 몸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을 수 있는 몸이 있어야 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나신 거예요.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진리는 그냥 단순한 명제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육신 교리는 사랑이에요. 모든 교리가 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고 성육신교리도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보시면 예수님이 왜 사람으로 오셨는지 설명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자는 사람의 아들이란 뜻이죠.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하나님라는 것이 드러나는 단어입니다. 성육신한 하나님이 오신 이유는 무엇이냐 섬기기 위해 오셨는데 그 섬김의 구체적인 모습이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는 거예요. 대속물은 대신해서 죄값을 치르는 제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제물로 오셨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성육신은 그 자체로 있지 않고 섬김을 위해 있고 자기 희생, 자기 헌신을 위해 있습니다.
(적용)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이 땅에 성육신하고 섬기신 이 원리가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예수님의 존재와 영광은 무한합니다. 그분은 시간 밖에서 존재하신 영원한 분이고 어느 공간에도 예속되지 않는 광대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의 몸을 입고 말 구유에서 태어나셨어요. 사람을 섬기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가 섬긴다고 할 때 그 사람과 동등한 입장이 되어서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할 때 하늘에서 가만 앉아서 구원해주시지 않으셨죠. 자기 백성의 모습으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30년 넘게 자기 백성들과 똑같은 눈높이에 계셨어요. 동거동락하며 울고 웃으며 그렇게 함께 지내며 섬기고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이상적으로 섬김을 잘 실천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모범이신 예수님을 따라 성육신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은요. 하늘에서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게 아니고요. 사람의 삶을 통해서 전달됩니다. 물론 갑자기 혼자 책 읽다가 기독교 방송 보고 구원 받는 사람 있어요. 하지만 대다수는 성육신적인 헌신을 통해 교회 다니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복음은 우리의 지식과 말과 인격과 우리의 전인적인 삶 전체를 통로 삼아서 퍼집니다. 제가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른 교단 목사님이신데요. 어떤 성도가 교회에 등록했는데 교회 등록한 이유가 그 목사님 설교 때문도 아니고 교회 시설이 좋아서 그런 것도 아니래요. 그 목사님께서 예배당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웠는데 그 모습에 감동 받아서 등록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그 이후로 예배당에 가면 쓰레기만 줍고 다닌다고 하셔서 막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육신 하셔서 섬긴 것처럼 우리도 좀 더 불신자의 입장에서 혹은 새가족의 입장에서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또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 서먹서먹한 친구들 입장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입장에서 섬기며 복음 전한다면 복음이 더욱 능력있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요즘 역지사지가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데 혹시 아십니까? 원래는 처지를 바꿔서 생각한다는 뜻인데 요즘은 ‘역으로 지뭐 해야 사람이 지 일인 줄 안다.’ 이렇게 바꿔서 말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이기적이고 남생각 못하고 섬기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면 이런 신조어가 생겼을까요? 이런 현상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지금 성육신에 목말라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육신 하여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력하고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너무 필요하다는 거예요. 다들 경쟁하고 이기고 싸우고 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성육신의 정신을 실천할 사람 나의 눈높이에서 나를 대해주고 나를 섬겨줄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절실한 거예요. 교회는 이런 사람들에게 성육신의 정신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이 없으면 복음이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는 성육신적인 삶이 동반되어야 복음이 더욱 능력 있게 작동한다는 거예요. 복음의 능력이 없는 이유는 다 여기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같습니다.
요약적 결론
자 설교를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학신회 청년회 여러분 오늘은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으로 또 참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렇게 해야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과학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그리고 성육신은 섬김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의 입장에 오셔서 섬기신 것처럼 우리도 불신자의 입 장에서 또 새신자의 입장에 서서 섬기면 우리가 가진 복음이 우리의 삶을 통해 능력있게 펼쳐질 것입니다.
이번 한주도 성육신의 복음을 기억하며 성육신적인 섬김으로 능력 있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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