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아비가일

사무엘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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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비가일의 등장 2. 다윗을 깨우시는 하나님 3. 영적 주파수가 맞게 되다 4. 하나님께서 복수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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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나발 vs 지혜로운 아비가일

나발이 다윗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다윗의 요청이 과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거절했습니다. 공손한 거절도 아니었습니다. 아주 매몰차고 차갑게 거절했습니다. 나발이 다윗의 존재를 몰랐을리 없습니다. 아무리 다윗이 사울에 의해 쫓겨다니는 도망자 신세였다 해도, 다윗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다윗을 따라다니며 섬기던 사람들의 숫자도 상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나발은 다윗을 만만하게 보고 ‘각지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다'며 주인을 배신한 종처럼 다윗을 표현하기까지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다윗은 부하들에게 한 행동을 지시합니다. 우리는 이 행동을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부하들에게 ‘칼을 차라' 명령합니다. 다윗이 정말 화가 많이 났습니다. 자신의 부하 600명 중 400명을 데리고 나발을 공격하러 갑니다.
다윗이 화를 내는 것은 정말 당연합니다. 자신만 무시당한 것이 아니라 함께 한 모든 사람들까지 무시당한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제 그 조롱에 복수하기 위해 칼을 들고 나가려 합니다.
다윗은 이전까지 칼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쫓겨다니고 생명의 위협이 있을 때에도 칼을 의존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만 의존했습니다. 심지어 골리앗과 싸우던 그 때에도 ‘여호와는 칼과 창으로 구원하지 않는다.’라고 선포했던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자신을 조롱한 나발을 향한 분노가 다윗의 판단을 흐려놓았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상황에도 살 길을 내셨고 인도하셨던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다윗은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조롱들에도 잘 버텨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지금 나발로 인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올리지 못하고 자신의 힘. 무력. 칼을 의지해 심판하려고 나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썼던 다윗이 이 순간에는 유다 사람의 집안을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 칼을 들고 나발에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나발의 이름의 뜻은 어리석은 자. 바보입니다. 심지어 그의 종들도 나발을 향해 ‘불량한 사람' 즉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다윗은 지금 여호와 하나님을 뒤로 한체, 아무 쓸모가 없는 바보. 어리석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부하 400명과 함께 분노하며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
나발이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만, 오늘 본문 36절을 보면 어느 정도 유추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감히 나발이 어떻게 비벼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윗은 도망자입니다. 쫓기는 신세입니다. 반면 나발은 여전히 견고한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 있고 많은 재산을 소유한 그리고 어느정도 지위가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을 무시한 그가 그 후에 한 일은 ‘연회를 여는 것'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양털 깎는 행사는 작지 않은 행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발은 원래 계획했던 행사 그 이상의 연회를 열고 있습니다. 36절을 보면 그 연회를 ‘왕의 연회'와 같았다고 합니다. 나발은 이전에 자신이 어떻게 상대할 수 없었던 다윗에게 큰 소리를 낸 후 이전보다 더 큰 연회. 왕과 같은 연회를 베풀며 자신을 한껏 높이고 있습니다.
나발은 다윗을 자신의 아래로 생각하고 무시했고 그것이 좋았던 것같습니다.
바보. 어리석은 자. 아무 쓸모 없는 자는 이렇게 자신을 높이고, 왕처럼 즐겁게 연회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연회가 준비되고 진행되는 그 시간 나발의 집 다른 공간에도 분주함이 가득했습니다. 이 분주함은 다른 의미의 분주함입니다. 자신의 남편 나발이 다윗을 향해 한 실수를 듣고 아비가일이 다윗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급히 떡, 포도주, 고기, 곡식 등을 실어 종들과 함께 준비하는 분주함이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준비되자 종들에게 먼저 그것을 다윗에게 전하라 명령하고 아비가일은 그 뒤를 따라갑니다. 자신의 집을 몰살 시키기 위해 오는 다윗을 아비가일이 만납니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나귀에서 내려 발 앞에 엎드리며 다윗에게 말을 이어 갑니다.
남편 나발은 바보와 같은 행동을 저질렀지만, 아비가일은 그와 반대되는 지혜로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죠.

후회할 흔적을 남기지 말라

땅에 엎드린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이야기 합니다. 그녀의 이야기의 핵심 “앞으로 큰 일을 할 사람이 후회할 흔적을 남겨서는 안된다.”였습니다. 그녀는 남편 나발을 안중에 담아두지 말 것을 요청합니다. 바보에 불과한 자와 굳이 상대하지 말라 말합니다.
아비가일이 이렇게 다윗에게 요청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 역시 다윗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아는 다윗은 이렇게 감정적으로 약한 사람이 아니며, 분노로 인해 누군가를 해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던 하나님께 묻고 의지하는 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아비가일은 28-31절의 말씀처럼 연이어 다윗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반드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을 말하며, 그러한 사람이 이런 어리석은 자에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말합니다.
28-31절은 다윗이 분노를 거두고 참고 돌아설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약 아비가일이 전달 해준 떡, 포도주, 곡식 등만 받고 용서하고 돌아섰다면 다윗의 자존심과 리더가 무시 당하여 화가 난 부하들을 충분히 설득 시킬 수 없었습니다.
마치 이것을 받지 못해 화가 나서 약탈하러 온 사람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처음 아비가일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의미를 알아차렸습니다. 하지만 400명이나 되는 부하들을 물리고 돌아가기 위해선 충분한 명분이 필요 했습니다.
아비가일은 그 명분을 28-31절을 통해 다윗에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다윗의 심기를 가라앉힙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400명의 부하들도 듣습니다. 다윗의 모든 원수들을 반드시 망할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울 것이라 말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도'는 사울에게만 적용되는 단어였습니다. 그것을 다윗에게 적용하며 다윗과 부하들에게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 것'을 이야기 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직접 자신을 위해 보복한 사람.’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평가를 받지 말것을 요청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다윗과 그 부하들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돌아섭니다. 다윗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격했던 이유는 사울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자신을 위협하는 사울로 인해 점점 예민해졌고, 자신을 무시하는 나발을 보고 그 감정이 폭발했던 것이죠.

다윗의 감사

아비가일을 통해 분노를 가라앉히고 자신을 돌아본 다윗은 무고한 피흘림을 막아주신 하나님께 32절의 말씀처럼 감사를 표현합니다. 분노로 인해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셨던 은혜들과 소명들을 한번에 잃어버릴뻔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움직인 사람이라는 오명을 쓸 뻔 했습니다.
다윗의 마음을 돌린 아비가일이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은 ‘왕의 잔치’와 같은 성대한 잔치가 열리고 있었고 나발은 술에 잔뜩 취해있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비가일은 나발에게 ‘다윗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합니다. 나발은 큰 충격을 받고 몸이 돌처럼 되었다가 열흘 후에 죽었습니다.
다윗은 그를 살려주었으나 하나님은 나발을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잘못을 되돌려 주었습니다. 나발의 죽음은 머지 않아 하나님의 사람을 무시하고 죽이려했던 사울도 비슷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나발 아비가일 그리고 다윗

오늘 본문은 나발 아비가일 그리고 다윗 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발의 어리석음아비가일의 지혜로움 그리고 끝내 하나님을 의지했던 다윗을 살펴보았습니다.
나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발이 참 어리석고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나발의 모습이 어쩌면 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도 있는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발에 대한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하셨을까요?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실까요? 그분께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아비가일 처럼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다윗처럼 분노하더라도, 주위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설 줄 알아야 한다. 라는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아비가일과 다윗을 통해 받을 수 있는 교훈과 은혜도 있지만 나발을 통해서도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발을 통해 우리가 반드시 이 시간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닌가?”
“나는 지혜로운 자인가?”
“혹시 나에게도 나발과 같은 모습이 있지 않았을까?”
나발은 끝까지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어요.
사람이기에 실수 할 수 있어요. 그 실수에 도취되어서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를 수 있어요. 하지만 나발은 아비가일을 통해 살아남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어요. 그저 정말 그 이름의 뜻처럼 어리석게도 자신의 실수에만 집중했고 충격을 받아 쓰러졌어요.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리도 분명 실수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어떠한가요?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통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닫고 다윗처럼 돌이키시나요? 아니면 충격만 받고 넘어가시나요.
나발은 다윗의 요청을 거절하고 즐거웠어요. 다윗의 요청을 거절한 사람이 되었어요. 한 때는 높은 자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실각해, 왕에게 쫓기는 그 사람의 요청을 거절한 사람이 되었어요. 사울왕이 알게 되면 잘했다 말하며 포상을 했을지 모르죠. 그러한 우쭐함. 자신의 생각과 의에 사로 잡혔어요.
그래서 깨닫지 못했어요. 돌아서지 못했어요.
우리도 나발과 같은 실수 혹은 잘못된 선택을 분명히 하며 살아갑니다. 죄로 인해 불완전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것이 실수나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돌이켜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되거든요.
기도의 자리에 어떠한 이유로 나오십니까? 나를 위해 혹은 가정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시지 않으십니까? 예배를 통해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형통의 삶을 기대합니다.
정말 내 삶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고 그 은혜 가운데, 은혜만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나발이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죄인과 병든 자를 찾으러 오셨다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분명한 대상과 목적을 갖고 왔다! 라고 하셨는데도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니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고 또 그것을 인정할 용기가 그들에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발이라는 것'을 인정할 용기가 없었기에, 예수님을 보았음에도 사람들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실수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돌아보고 ‘나는 나발입니다.’라고 고백한 사람들은요. 그들의 인생은요. 완전히 변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하나님과의 형통한 삶을 이루어 냈습니다.
나 자신을 바라보고, 내가 누군가를 향해 막말을 했고 어리석은 행동을 했고, 이기적인 판단을 했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돌아선 사람들. ‘나는 나발입니다.’라고 고백한 사람들은요. 새로운 은혜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다시! 제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드리게 되었고, 그 분을 통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동일합니다. 내가 나발이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사랑을 지금 이 순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느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 넘쳐서 차고 흐르는 그 사랑을 다시 제대로 느끼기를 소망하는 이 시간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나는 나발입니다.’라는 이 고백 통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그분이 주시는 형통을 경험하는 오늘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에 흠뻑 젖어 살고, 우리를 향해 열어주시는 새로운 은혜의 길에 서는 복이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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