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멸시하는 자를 경멸하리라

사무엘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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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엘리 가족의 죄 2. 버림 받다 3. 댓가는 혹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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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늙은 엘리

함께 나눌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과 은혜가 있기를 또한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누리는 시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제사를 주관하는 대제사장 엘리가 매우 늙었을 때 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꼭 그렇지는 않지만 당시 “매우 늙었다.”라는 표현은 생각과 판단이 이전처럼 빠르지 못하고 둔해졌다는 것을 말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가 매우 늙었을 때 어떠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그에게 들려왔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을 했다는 사건이었습니다. 엘리는 대제사장이었죠. 그의 아들들 역시 아버지를 이어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알리고 영적으로 선한 영향을 주어야 했던 제사장들이 지금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들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이 이러한 행동을 서스럼없이 했다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엘리는 아들들을 불러 경고합니다. “너희의 행동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범죄하게 만든다.” 영적 지도자들의 잘못된 행동은 그 공동체를 흔들게 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알려주고 제사를 집례하는 이들이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앞에서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섬김과 믿음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영적지도자의 타락 혹은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함은 공동체의 큰 위험을 불러옵니다.
제가 청년일 때 다녔던 교회에서 여름에 단기선교를 가기 위해 청년들이 매주 금요일에 모여 따로 기도회를 했고 청년 담당 목사님께서 말씀을 나누어 주셨었습니다. 저는 그 때 있었던 한 사건을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여느 때처럼 찬양인도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미리 모여 찬양팀과 함께 찬양하며 우리끼리의 기도회를 마치고, 금요 기도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찬양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집중이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그 전까지 집중했고 또 기도로 준비했었는데 진짜 예배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제가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꾸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뭘 했는지 모를 정도로 30분이라는 시간이 지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설교 후 기도회 인도를 하게 되었는데 또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버벅거리고 있자 목사님께서 강대상에서 마이크를 들고 저 대신 기도회를 인도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시간이 다 지난 후 멍하니 앉아 있는 저에게 목사님께서 찾아오셔서 부드럽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 찬양인도 하면서 어땠어? 난 너의 한 주간의 삶이 보이더라. 노래, 찬양은 너가 가진 능력으로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너의 삶은 예배 앞에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어. 다음 한 주는 정말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 살아보자.”
한 주간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았으면서 찬양 인도를 습관처럼 했던 저에게 있어, 예배를 준비하는 마음을 완전히 바꾸게 해주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저의 집중하지 못했던 그 모습으로 인해 기도하기 위해 예배하기 위해 모였던 그 청년들도 하나님께 집중할 수 없었고, 말씀도 제대로 듣지 못했거든요.
이처럼 어떠한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의 집중하지 못함과 잘못된 열심은 공동체 사람들에게 큰 위협과 좋지 못한 영향을 줍니다.
엘리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들을 불러 “더 이상 그 일들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홉니와 비느하스 엘리의 두 아들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엘리는 이 때 경고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되었습니다. 아들들을 불러 제사장의 역할을 박탈하고 다시는 제사를 섬기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했어야 했습니다.
당시 제사장들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정결의식을 치러야 했습니다. 부정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는 안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들은 회막.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가는 곳 앞에서 부정한 짓을 저지르고 뻔뻔하게 사람들 앞에서 서서 그들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죄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고 뻔뻔해진 그들이었기에 아버지의 경고가 경고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귀찮은 하나의 잔소리로 들었을지 모릅니다. 그들이 아버지의 경고를 받아드리지 않은 이유가 2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을 보내달라는 모세의 말을 듣고 마음이 굳어 걍팍해졌던 바로처럼 그들 역시 마음이 강하게 굳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지은 죄가 큰 죄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았을 때 아버지 엘리도 자신들과 다를게 없었거든요.
우리가 지난 3월 레위기 때 나누었던 것처럼 제사장들은 제사를 드리고 먹어야 하는 몫이 따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부위만 따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29절을 보면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는 가장 좋은 것을 빼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 부위는 레위기에 소개된 제사법처럼 불에 태워야 했던 기름진 부위 였습니다. 하나님께 반드시 태워져 올려야 했던 향기였습니다. 그런 부위를 제사장들이 어느 순간부터 무시하고 먹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엘리 대제사장은 몸집이 거대하고 무거웠습니다. 금지되었던 음식. 기름진 부위를 먹은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대제사장이었던 엘리부터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은 그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러한 아버지가 하는 경고와 훈계가 과연 아들들에게 들려졌을까요? 매우 늙어버린 엘리가 그들을 통제 할 수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던 엘리는 자식들에게 잘못된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보다 자기 아들들을 더 존중하고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그들이 댓가를 치르도록 하지도 않았습니다. 끝까지 아들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에 대한 댓가를 엘리와 그 가문에게 돌리겠다 말씀하십니다. 우리 함께 30절을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3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그들의 죄의 댓가는 참혹했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엘리 집안에서 제사장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 말씀하십니다. 엘리 가문의 제사장직을 종료시키겠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처벌은 현 세대 뿐만 아니라 이후 세대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일단 두 아들이 한날 한시에 동시에 죽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은 더 이상 제사를 인도할 수 없고,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장로도 될 수 없습니다.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됩니다.
32절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복을 받아도 엘리 집안에게는 그 어떤 복도 내리지 않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던 제사장의 직분은 다른 이에게 넘어갈 것입니다. 저는 이것보다 더 크고 무서운 심판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엘리 가문은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엘리와 그의 아들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 그들의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고 그들은 그 흔들린 마음에 넘어갔을 것입니다. 처음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의 마음은 정말 불안했을 것입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만큼 두렵고 떨리고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보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부정한 모습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정결해지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두려웠던 그 죄가 반복되면서 그들의 마음은 점점 무뎌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정결의식을 갖지 않고 제사를 진행했을지 모르죠. 부정한 상태로 제사를 집례했는데 그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장 죽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행동이 대범해졌을 것입니다.
마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서워 그들은 쳐다도 보지 않았고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뱀으로 나타난 마귀가 그들에게 속삭였습니다. “죽지 않아. 먹어도 죽지 않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그 열매. 처음으로 자세히 보니 너무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그 것에 마음을 빼앗겨 먹었습니다. 그런데 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와는 그것을 아담에게 전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에덴 동산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에 만족하며 살아갈 때는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했거든요.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 다른 것이 들어왔고 허락되지 않은 그 한가지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 가문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서 주신 제물만 먹어도 충분했습니다. 그 이상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에 충분히 감사하며 만족하며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 향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은 것에 대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죄를 지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는가를 한번 되돌아 보기를 소망합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알면서도 스스로 죄의 길을 걸어갔고, 죄의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그들의 몸은 늘 하나님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예배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좋은 제사장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에봇을 입고 사람들 앞에 거룩하게 분향을 올려드렸습니다. 그들은 제사를 열심히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전혀 거룩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거룩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가릴 수 없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행실. 언어 표현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이 아닌 ‘나'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우리의 마음은 무엇을 담고 있고 어디를 향해 있습니까?
사무엘상 2장이 34절로 끝이 났다면 죄의 댓가는 한 가정의 몰락이다. 라는 두려운 감정이 우리에게 남았을 것입니다.
2장은 그러한 감정만 우리에게 주고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사람을 세우겠다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은 영적으로 타락한 정말 암울한 시대에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남은 자'입니다.
그는 모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고 그 마음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로 가득 채우고 있을 때, 몸은 하나님 앞에 있으나 모든 신경은 다른 것에 쏟고 있는 타락한 이스라엘 중에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사랑을 그대로 갖고 있는 ‘남은 자'입니다.
사무엘 시대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나 다르지 않다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남은 자'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엘리와 그의 아들들처럼 거룩한 가면과 좋은 옷으로 마음을 숨기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남은 자'는 많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저는 우리 제2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하나님이 찾으시고 보증하시는 ‘남은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척하면서 내 고집과 욕심 그리고 목소리를 높이는 엘리 제사장과 같은 모습이 우리에게 없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이 본문이 하루 동안 우리 마음 속에 계속 맴돌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나의 마음은 무엇을 담고 있었고 나의 마음과 시선이 어디를 향해 있었는지 깨닫는 은혜가 있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 중 한명이 아닌,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남은 자'가 바로 여러분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삶이 되기를 정말 간절히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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