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은 마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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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1:23–25 NKRV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한국에서 지난 4월은 벛꽃과 목련으로 화려하게 봄을 알렸습니다. 저는 이전에 베트남에 살 때는 못 느꼈던 생명이 다시 움트는 감동을 귀국한 후 매우 소중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감동이라는게 너무 짧은 시간 안에 훅 지나가기 때문에 가장 화려한 몇 일을 놓치지 않으려고 벛꽃 구경을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기가 무섭게, 바로 목련은 그 영광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제일 먼저 떨어졌고, 벛꽃은 바람이 조금 불고 비가 한 번 오니까 거의 흔적도 없이 다 떨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고 말합니다. 여성의 미모도 그렇고 이 세상의 부와 명예, 권력도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이 세상에서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금방 시들고 떨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여기에 목숨을 겁니다. R.C. Sproul 목사님이 세속주의를 ‘here and now’라고 정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here and now’가 전부입니다.
한국에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전임자들을 보면 죽임을 당하거나 감옥에 가신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자기도 감옥에 갈게 뻔한데, 자기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 그 자리를 가지려고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양심을 파는 정도가 아니라 영혼까지 팝니다. 인간은 참 어리석습니다. 그거 얻어 봤자 금방 시들고 떨어질텐데 여기에 모든 것을 겁니다. 거짓말, 배신은 말할 것도 없구요.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더 큰 죄를 질 것을 알면 그 자리에 올라가지 말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런 것은 생각치 않고, 무엇이 되려고만 합니다. 금뱃지를 달려고만 하지, 그 직위를 얻은 후의 책임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자리가 주는 특권은 매력적이고, 그 직무를 잘 할지, 양심은 지킬 수 있을지 그런 것은 관심거리가 아닌 듯 합니다. 그 영광이라는 것이 몇일 전에 화려하게 피었다가 오늘 땅에 떨어져 내 발에 밟히는 목련과 같고, 바람에 날려 땅에 떨어질 벛꽃과 다를 바가 없는데, 왜 거기에 모든 걸 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런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하고 썩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이지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습니다. 우리가 들은 복음이 이 말씀입니다. 잘 살펴 보면, 인류의 역사 아니 우주의 역사는 이 복음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천지창조부터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는 이 긴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복음이 이렇게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을 모릅니다. 수 많은 나라들이 등장했다 사라지고, 수 많은 영웅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데, 그 속의 키 워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인데 세상의 지혜로는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으로 거듭났습니다.
베드로전서 1:3–4 NKRV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광은 꽃과 같이 잠간 있다가 사라지지만, 우리에게는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 즉 기업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영광이라는 것이 다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고 더러워지고 쇠락합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갖고싶어하는 이 세상의 영광이 벛꽃 같은 것이라고 항상 우리 자신에게 상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을 상속은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쇠하지 않습니다. 그 영광이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7절에는
베드로전서 1:7 (NKRV)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우리가 금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는 금은 변하지 않고 영원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도는 불로 연단한 순금도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영원한 가치가 있습니다. 다시 5절로 가겠습니다.
베드로전서 1:5 (NKRV)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구원 받은 신자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을 때까지 하나님이 보존하십니다.
요한복음 10:28–30 NKRV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주님께서 한 번 영생을 주신 자들을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존재는 이 우주에 없습니다. 주님 손에서 그리고 만물보다 크신 아버지 손에서 누구도 우리를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로마서 8:31 (NKRV)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로마서 8:38–39 (NKRV)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베드로전서 1:8–12 NKRV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이 편지의 수신자들처럼 우리도 예수를 직접 보지 못했으나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복음은 오래 전 선지자들이 예언해 온 복음입니다. 앞서서 예언한 그 선지자들이 자기들이 예언하는 바를 다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그 예언들이 성취될 것을 바라고 전하였습니다. 천사들도 이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 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그 예언들을 성취하시며 증거하셨고, 사도들은 그 예언의 성취된 것을 직접 목격하고 귀로 들었고 그를 만져 본 증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요한1서 1:1–3 NKRV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사도 요한은 예수님에게 직접 들었고, 그를 눈으로 보았고, 자세히 살펴 보았고, 만져 본 증인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그의 음성이 들렸고 눈에 그가 보였고, 그런 것뿐만 아니라 자세히 살펴보고 호기심을 가지고 그를 관찰하였으며, 그와 몸을 부대끼며 삼 년을 함께 보낸 증인입니다. 다른 사도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요한1서에서 ‘우리’ 라는 단어는 이 사도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증언한 것과 다른 진술은 가짜다. 우리에게서 나간 자들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속한 자가 아니었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렇게 증언한 것입니다.
여러분 cold case라는 말을 아십니까? Cold case란 미해결 살인사건들을 말합니다. 이런 사건만 전담하는 전문수사관인 Warner Wallace라는 수사관이 복음서의 증언들을 수사관의 입장에서 진실성을 연구했습니다. 수사관들은 어떤 사건을 조사할 때, 같은 증인에게 똑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하기도 하고 또 여러 증인들에게 질문함으로써 진실을 찾아갑니다. 증언할 때마다 그 표현이 달라도 어떤 일관성이 있으면 진실일 가능성이 높고, 또 증언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분들은 진술의 진실성을 구별하는데 특별한 능력이 있는 분들입니다. J. Warner Wallace 수사관은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에 대한 증언을 다각도로 분석했습니다. 복음서마다 진술 내용이 다소 차이가 있고, 강조가 된 이야기와 시간이 다르지만 그 증언들이 진실하고 일관성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들어보면 알지요. 이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 아닌지, 이 사람들이 진실한 사람들인지 아닌지 알지요.
사복음서의 진술은 같은 사건을 진술하더라도 그 표현이 다소 다릅니다. 예를 들어 씨 뿌리는 비유에서 보면, 마태복음에서는 좋은 밭에 뿌린 씨는 백 배, 육십 배, 삽십 배 열매를 맺었다고 하고, 마가복음에서는 순서가 반대로 삽 십 배, 육십 배, 백 배라고 하고, 누가복음에서는 그냥 백 배 열매를 맺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차이 때문에 성경을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증언의 차이가 증언의 진실성을 정말 훼손합니까? 오히려 진실성을 더하는 것 아닙니까? 서로 짜고 만든 증언이라면 증언이 잣구 하나 하나까지 다 같지, 이런 차이를 보이겠습니까? 복음서들의 표현이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같은 사건을 목격했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마리아의 증언을 듣고 바로 믿은 사도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 여인들의 증언을 정신없는 소리로 여겼습니다. 이렇게 아무도 믿지 못하던 사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반전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더 확실한 증언이 됩니다.
에베소서 2:20 (NKRV)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우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증인이 된 사도들의 증언을 믿고 산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역사 속을 잘 들여다 보면, 표적이 크게 나타난 시기가 세 시기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때, 엘리야와 엘리사 때, 그리고 예수님과 사도들의 때입니다. 이 세 시기에 하나님은 특별히 많은 표적을 보여 주셔서, 이 분들의 말이 사람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을 주신 것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반대했던 사람들도 예수님의 표적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문제 삼은 것은, 왜 안식일에 표적을 행하느냐의 문제이거나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이 어디서 온 것이냐에 대한 것이었지,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을 하나라도 부인한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세력도 말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표적으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그 모든 표적 중 가장 결정적인 표적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어떤 제자도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거나 믿지 못했습니다. 당연하지요. 사람의 경험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미리 말씀하셨어도 제자들은 그게 안 믿어졌지요. 그러나 그들이 직접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후, 죽기까지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들로 변했습니다. 이 증인들이 십 여 명인 정도가 아니라, 오 백 여 명의 직접적인 증인들이 있었습니다. 한 사건으로만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건을 통해 목격되었습니다. 마리아가 봤고 이어서 베드로가 봤고, 엠마오로 가는 길에 있던 제자들이 보았고, 열 한 제자가 모여 있을 때 예수님이 찾아 오셨고, 나중에 도마가 있을 때도 오셨고, 오백 여 형제가 함께 있을 때도 오셨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던 청년 사울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다양한 시간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증인들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그들은 평생에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짐승에 물려 죽으면서도, 십자가에 처형되면서도, 불에 타 죽으면서도 그들이 목격한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증인들에게도 성령께서 표적을 주셔서 그들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셨습니다. 안증뱅이가 일어나고, 죽은 자가 일어나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표적이었습니다. 이런 표적은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자의로 꾸민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참된 증언이라는 것을 성령께서 증거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3:12–16 NKRV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2장에 오순절에 성령이 교회에 임하여 각종 언어로 제자들이 복음을 증거한 사건 때도 그랬고, 안증뱅이를 일으킨 사건 때도 사람들이 놀랐을 때, 사도 베드로는 이런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난 일임을 증거하였습니다.
이런 것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증인된 사도들은 대부분 순교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죽기까지 부인하지 않고 증언하였습니다. 영어로 순교자를 matyr 라고 합니다. Martus라는 헬라어 단어에서 나온 영어입니다. 헬라어의 원래의 의미는 증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생명을 잃으면서까지도 예수님의 주 되심과 그의 부활을 증언하였기 때문에 원래 증인이라는 의미의 단어가 나중에는 순교자라는 의미로 바뀔 정도로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웬만한 사람은 죽음으로 위협하면, 저지르지 않은 범죄도 시인하게 마련인데, 누가 실제로 보지도 않은 부활을 불에 타 죽게 된 상황, 짐승에게 찢겨 죽을 상황, 십자가에서 처형될 상황에서 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성령께서 각종 표적으로 권위를 주신 사도들의 증언, 그들이 순교로 그 증언의 참됨을 증명한 그 증언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고, 이 소망 속에 우리는 산 돌로 주님의 성전된 교회를 세워갑니다.
베드로전서 2:4–5 NKRV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예수님도 산 돌이시고 우리도 산 돌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기초가 된 산 돌들이고, 우리는 그 기초 위에 세워져 가는 산 돌들입니다.
에베소서 2:20–22 NKRV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 산 돌들은 각각 그 모양도 색갈도 다르지만 서로 요철이 맛물려 단단하게 연결되어 산 성전이 되어 갑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영원한 주의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산 돌로 지어져가는 성전으로서 그리스도께 연합된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삽니까? 풀의 꽃과 같은 이 세상의 영광을 위해서 삽니까 아니면 영원하고 살아있는 주의 말씀을 따라 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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