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하는 하나님의 나라

킹덤스토리 해설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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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론
수요 기도회에 오신 성도님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확장해 나가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나라는 온 땅으로 확장되는 나라다.
(설명) 킹덤스토리 6과의 첫 번째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가 온 땅으로 확장되는 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확장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힘 있게 확장하는 나라입니다. 6과에서는 본문을 다루기 전에 본문의 앞 문맥인 10장을 한 번 다루고 넘어갑니다. 10장에는 노아의 후손들의 계보가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창조하셨을 때 마지막 날에 사람을 지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이 창세기 3장의 사건 때문에 중단될 뻔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세력을 멸망시킬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죄악이 땅에 넘쳐서 홍수로 세상을 정화시키시고 홍수 이후에 살아남은 노아의 가족들에게 아담이 받았던 명령을 이어 받게 하셨습니다. 9장 1절에 나오는 것처럼 노아의 가족들은 방주에서 나온 생물들과 함께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해야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는 것은 흩어져야 할 수 있습니다. 땅에 충만하기 위해서는 먼저 흩어져서 일정한 영역을 차지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흩어짐이 없이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게 되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10장 1절, 20절, 31절, 32절을 보시면 노아 아들들의 후손들이 번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라는 말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신 내용대로 흩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흩어지고 확장하는 나라입니다.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열국, 족속, 땅의 숫자는 모두 70개입니다. 창세기 46장 27절과 출애굽기 1장 5절에서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70이라는 숫자로 표현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 사역은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구성된 구약 교회인 이스라엘이 물려받아서 이어나갑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전도하실 때에 70인을 파송하십니다. 누가복음 10장에 예수님께서 70인을 둘씩 짝을 지어 보내시는데 이 70인이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흩어집니다. 그리고 70인이 평화를 빌고 병자를 고치며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라고 말하라 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생기기 전에 노아의 후손들이 70개의 민족을 이뤘고 이 숫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숫자를 의미합니다. 나중에 야곱의 가정이 70명을 이루어서 애굽에 거주하며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고 신약시대에 예수님께서는 70인을 보내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십니다. 창세기 10장에 하나님의 나라 확장성을 성경이 꾸준히 가지고 가고 있고 예수님에 이르러 절정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온 땅으로 확장되는 나라입니다.
(적용)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61페이지 1번 질문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감당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이 통치가 내 삶의 현장 전 영역에 확장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됩니다. 가장 기본 되고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 답게 살며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받도록 하는 일입니다. 교재에 있는 답도 참고하셔서 질문에 대해 고민을 해보시면 되겠습니다.
61페이지 2번 질문에 확장되는 하나님 나라와 정 반대의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고 나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지, 사람의 죄악에도 하나님께서 계획을 실행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이 나에게 어떤 위로를 주는지 물어봅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정 반대되는 길을 걷는 사람은 니므롯입니다. 9절에서 니므롯은 용감한 사냥꾼으로 묘사됩니다. 원문상으로 보면 깃볼 차이드인데 ‘사냥의 용사’라는 뜻입니다. 여기 나오는 용사라는 단어 깃볼은 폭력의 시대를 풍미했던 네피림을 표현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니므롯은 이삭의 아들 에서처럼 사냥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사냥하듯이 폭력을 휘두르던 철혈의 군주였을 것입니다. 창세기 10장에서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10장 10절에는 이 폭력의 왕인 니므롯의 나라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나옵니다. 여기에는 바벨탑을 쌓은 지역인 시날 땅이 등장합니다. 니므롯은 큰 성읍을 건설한 사람이고 아마 바벨탑도 니므롯의 지시로 세워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잘 확장되고 있는 것 같은데 하나님의 나라에 대적하는 니므롯 같은 사람이나 세력을 볼 때 우리는 불편함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시면 알겠지만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사람이 막을 수 없습니다. 이미 니므롯 같은 네피림들도 진작 심판 받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대적했던 걸출한 인물들에게 기다리는 건 심판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경고이자 또 위로가 됩니다. 아무리 거대 자본을 가지고 밀어붙여 봤자 아무리 복잡다단하고 고차원의 사상을 가지고 들이대 봤자 하나님 나라 확장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시도해봤자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2- 죄인들은 탐욕의 나라를 건설한다.
(설명) 그 다음으로 킹덤스토리 6과의 두 번째 주제는 세상나라가 탐욕의 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입니다. 탐욕의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죄인들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막 확장되는데 니므롯 같은 이들이 자신을 위한 탐욕의 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나쁜 일이고 도시는 나쁜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도시 자체가 악은 아닙니다.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시골에서도 얼마든지 죄를 짓습니다. 2014년 신안 염전 노예사건이 굉장히 유명하지 않습니까? 외딴 시골에는 다 아는 사람만 있으니까 지적 장애인을 인신매매하고 폭행을 하고 노동착취를 해도 서로 서로 감춰주고 더 죄를 짓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하나님 나라의 최종적인 모습은 도시입니다. 창세기의 에덴동산에서 계시록의 새 예루살렘 성으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도시 계획은 히브리서 11장 10절에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과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한 이유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 성을 헬라어로 폴리스라고 하고 이것은 도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있어서 도시화가 악은 아닙니다.
도시는 주거, 상업, 기술, 예술, 교육, 문화 등등의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공간인격이고 인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도시의 다양성와 충만함을 통해서 충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자기의 욕망을 위한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본문 11장 1절을 보시면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라고 말씀합니다. 10장 본문에 각기 언어라는 말이 나오고 여기는 또 말이 하나라고 하니까 서로 말이 안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지역적인 방언이 있지만 인류 공통의 공용어가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한 언어와 말을 허락하셨습니다. 인류가 서로 소통하며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게다가 인류에는 환경의 열악함을 극복할 지혜가 있었습니다. 인류가 시날 평지에 정착했는데 그곳에 건축자재로 쓸 만한 돌이 없습니다. 그래서 진흙을 구워 벽돌을 만들고 보통 흙보다 좀 더 끈끈한 흙을 사용해서 벽돌과 벽돌 사이에 채워서 견고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지혜를 사용해서 평지에 성읍과 탑을 건설합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문명과 지혜를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도전하는데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11장 4절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탑을 쌓으려고 하는데, 그 첫 번째 목적이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이름을 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봐도 하나님의 지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에 닿게 해서 자신의 이름을 내서 하나님의 이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름에 집착하는 것은 네피림들이 하던 행동입니다. 창세기 6장 4절에 네피림들은 고대에 명성이 있는 자들입니다. 네피림들이나 이 탑을 쌓는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에 관심이 있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탑을 쌓는 두 번째 목적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생육하고 번성하고 온 땅에 충만하기를 원하셨는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흩어짐을 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지위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망의 나라, 탐욕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마음으로 주님 나라를 건설하려고 한 언어를 주시고 어떤 환경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는데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것을 순전히 자기 욕망을 이루는 일에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 각양 다른 은사를 받고 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데 힘써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예배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가는 곳에 갈등이 정리되고 평강이 넘치며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절망할 때 우리의 삶이 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때론 우리의 욕망 때문에 하나님께 받은 좋은 것들을 하나님 나라 건설이 아닌 나의 왕국, 욕망의 왕국을 세우는데 쓰고 있지 않은지 점검 해야 합니다.
63페이지 1번 질문에 거대한 도시를 건설 하려 한 자들이 누구인지, 큰 도시, 높은 탑을 쌓으려 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니므롯이라는 사람과 그 무리들입니다. 최초로 도시를 지은 사람이 아벨을 죽인 가인이기 때문에 가인도 답이 됩니다. 도시를 쌓으려 한 이유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막고 자신의 욕망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2번 질문은 도시화는 인간들에게 많은 편리함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더 많이 자극하기도 합니다. 도시에서 살면서 조심해야 할 도시의 타락한 가치와 본성은 무엇이 있을까요? 질문합니다. 답지에 있는 걸로 해도 됩니다. 소비에 대한 부분을 지적합니다. 도시는 소비를 해야 굴러가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지적이 적절합니다. 이외에도 도시에 있는 경쟁 문화 폐쇄적인 문화 등도 있을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하나님의 계획대로 세워진다.
그 다음으로 6과의 세 번째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이 이뤄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온 천지 만물이 하나님의 통치 영역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아닌 다른 것을 건설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나라만이 확장될 것입니다.
11장 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라고 말씀합니다. 내려온다고 하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심판의 의미입니다. 인류가 죄를 범할 때 하나님은 심판을 위해 내려오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도 오셨고 소돔과 고모라의 악이 극에 달할때도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적하는 죄악을 가만 두지 않으십니다. 내려오시고 심판하십니다. 내려온다고 했을 때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과 인간의 격차입니다. 탑을 아무리 높이 쌓아도 결국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야 할 정도로 그 탑은 낮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왜 이런 상황이 왔는지 진단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언어가 하나였기 때문에 이런 죄악을 저질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7절에서는 하나님은 스스로를 복수로 지칭하십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도 우리의 모양을 따라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라는 말이 나옵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이렇게 내적인 선포를 하셨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삼위 하나님의 내적인 선포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하여 사람을 만드시고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하여서 언어를 흩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서 통합된 언어를 가져가셨습니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온 인류가 가지고 있던 인류의 공통언어를 가져가셨습니다. 그래서 바벨탑을 건설하는 일은 소통의 한계로 인해서 무산되었습니다. 바벨탑을 건설하던 이들은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계속 지속될 것입니다.
9절에 이 탑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바벨은 아카드어로 신들의 문이라는 뜻입니다. 혼잡하다라는 뜻이 없습니다. 혼잡하다라는 히브리어가 ‘바랄’이고 ‘바벨’이 이거랑 비슷하기 때문에 이 탑의 이름이 바벨이 되었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실은 여기에 성경 저자의 의도가 있습니다. 성경저자는 바벨이라는 아카드어 단어를 알고 있었지만 그 탑이 무슨 신들의 문이냐 그냥 그 탑은 혼란이다.라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고대근동의 언어는 비읍발음과 리을발음이 많습니다. 그래서 못 알아듣는 언어를 들을 때 마치 바벨바벨바벨 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한글로 치면 웅성웅성종알종알 같은 것입니다. 바벨탑을 건설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언어가 흩어져서 동료의 소리가 바벨바벨바벨하는 것처럼 혼란스럽게 들리게 되니까 그게 바벨탑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표현에 알아들을 수 없는 왁자지껄한 소리를 ‘a babel of voices’라고 말합니다.
결국 언어는 흩어지고 바벨탑도 흩어져서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려는 음모는 꺾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확장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바벨탑의 여파로 인해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대표적인게 저인 것 같습니다. 설교준비할 때 히브리어와 헬라어와 영어가 늘 저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언어를 잘하는 분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구원역사적으로 이 흩어진 언어가 다시 연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성령강림절인데 오순절 성령 강림 때 성령을 기대하며 기도하던 무리들이 성령을 받고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여러 가지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 즉 복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벨탑의 언어가 흩어진 사건이 역전이 되어 다시 복음의 언어로 통합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언어가 나뉘었지만 성령의 역사로 모든 민족이 복음으로 하나 될 것을 말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계시록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완전하 하나님의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같은 노래,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65페이지 1번 질문에서 하나님께서 심판하기도 하면서 은혜를 주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죄를 지었지만 무지개 언약의 약속대로 물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언어를 흩으시는 정도로 징계하셨기 때문입니다. 언어를 흩으신 것이 징계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 대적하지 않고 다시금 하나님 나라 건설에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았습니다.
2번 질문은 실패가 어떻게 은혜가 되었는지에 대해 서로 나눠보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의 꿈 해몽을 통해 감옥에서 나오려고 했는데 술 맡은 관원장이 잊어버리는 바람에 요셉이 감옥에 계속 있게된 일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 감옥에서 출소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 바로 앞에 서서 애굽의 총리가 되어 70명의 야곱 가족들을 구원하는 구원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아마 셀리더 분들의 삶에 많을 것입니다. 자유롭게 나누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의 욕망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무너지고 하나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면 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하는 나라입니다. 때론 죄인들의 욕망이 그걸 막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끝까지 그분의 계획대로 그분의 나라를 세우십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세우시는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다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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