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유익이라(베드로전서 4:12-19)

베드로전서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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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 본문은 참된 고난이 무엇이면 참된 고난을 겪을 때 현재와 종말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말씀합니다.
1- 성도는 의인으로서 고난당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성도는 의인으로서 고난당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고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전에 함께 나눴던 말씀 중에서도 고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왜 자꾸 성경의 내용이 반복되나 하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똑같이 고난을 이야기하더라도 고난을 다른 맥락에서 다루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번 본문은 고난을 통해서 죄를 끊는 차원을 이야기하고 오늘 본문은 고난을 통해서 누리는 현재적인 유익과 종말론적인 영광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베드로전서가 다양한 관점에서 고난을 다루는데, 정말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서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고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베드로전서는 고난에 대한 풍성한 가르침을 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15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라고 말씀합니다. 고난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고난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죄를 지어서 고난을 받으면 그 고난에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고난을 받으니까 하나님께서 무조건 나를 위로해주셔야 하고 나에게 복을 주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고난을 받되 의인으로서 고난 받아야 합니다. 의인으로서 고난 받는 것은 내가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고난 받을 때 의인으로서 고난을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범법자로서 고난을 받지 말고 의인으로서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죄인으로서 고난 받지 않고 의인으로서 고난 받는다고 해도 마냥 자랑스럽고 뿌듯한 기분만 들진 않습니다. 의인으로서 고난을 받는다고 해도 기분이 나쁠 수 있고 수치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16절 본문을 보면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 받아도 기분이 안 좋고 부끄러울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이상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예화) 제가 대학 다닐 때 병원에서 노방전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그 때 전도지를 들고 다짜고짜 병원에 가서 병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예수님을 믿으라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거기 병원 원장, 이사장 정도 되시는 분이 막 저에게 전도한다고 화를 내셨습니다. 그분도 교회를 다니시는데 교회 다니는 사람이 그렇게 전도하면 어떻게 하냐고 저를 야단을 치고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잘 몰라서 그랬다고 생각하고 그냥 잘 타일러서 보내면 되는데 쫓아내듯이 그렇게 해서 제가 이단이 된 기분이고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된 기분이라서 마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전도를 하다가 그렇게 된 거지만 당시에는 그게 전혀 자랑스럽지 않고 도리어 수치스러웠습니다. 내가 허락 없이 병원에 들어와서 전도지 전해준 건 맞는데 그래도 내가 복음전하겠다고 이러는데 예수님 믿는 분이 저러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죄 짓는 것 때문에 고난 받는 것 아니라도 부끄러울 수 있고 수치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를 격려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합니다. 왜 이런 권면이 성경에 들어왔겠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부끄러울 때도 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성경은 죄를 짓는 것으로 받는 어려움을 정당한 고난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의인으로서 고난을 받아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의인으로서 고난을 받아도 화도 나고 수치심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권면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부끄러움이 생기고 어렵더라도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인으로서 고난을 받을 때 이것은 전혀 헛된 것이 되지 않습니다. 17절에 심판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의인인 우리가 먼저 심판을 받으면 아예 믿지 않는 자들은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논리로 이야기합니다. 18절에는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라고 말씀합니다. 17절과 마찬가지로 의인은 구원 받지만 경건하지 않는 자 죄인은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이 땅에서 살아갈 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고 부당한 일을 당했지만 정작 종말의 때에 심판이 시작되면 의인으로서 고난 받은 자들은 구원 받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영원한 고통에 처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죄인으로서 고난 받는 것이 아닌 의인으로서 고난 받으라고 말씀하고 의인으로서 고난을 받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수치스럽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영광스러움을 발견하라고 합니다.
(적용)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저와 성도님들이 다른 이유로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의인으로서 고난 받게 되길 원합니다. 우리는 거창한 고난을 받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일상생활 가운데 우리는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도 있고 누군가의 실수로 내가 받아야 할 혜택을 늦게 받거나 못 받기도 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 때마다 수혜자로서 고객으로서 항의를 하고 싸우기 보다는 이해하고 참으며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언젠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드러났을 때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이름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일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매일의 삶 가운데 성도로 고난 받고 영광 돌리는 삶을 선택하면 종말의 때에 우리에게 구원이 있음을 더욱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2- 고난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공유하는 방편이 된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고난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공유하는 방편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까 전에 우리가 성도로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난 받는 것이 종말의 때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본문의 순서를 약간 바꿔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12절에서 14절까지가 고난의 유익에 대한 것이 나오고 15절에서 16절까지 참된 고난의 원칙과 종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장 관심있어 하는 유익에 대한 내용을 마지막에 다루고자 했습니다.
고난의 유익은 무엇입니까? 4장 1절에서 6절까지는 고난의 유익이 죄를 끊는 것이라고 말하고 7절부터 11절까지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리고 4장 12절부터 고난과 영광과 종말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4장 12절에서 우선은 고난을 대할 때 고난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12절에서 고난을 불시험이라고 묘사하는데 타는 듯한 고통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난은 이렇게 우리를 아프고 불편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타는 듯한 고통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원어상으로 낯설게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낯설게 여긴다는 말과 베드로전서 전체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나그네라는 말은 똑같은 어근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고난의 고통을 나그네처럼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기 때문에 고난 받는데 그 고난이 우리에게 올 때는 그 고난을 나그네 취급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고통을 친구처럼 여기라는 말로 들립니다. 참 어려운 말씀입니다.
게다가 12절 초반부에 무엇이라고 합니까?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말하고 고난을 나그네처럼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시면 이게 얼마나 이상한 말인지 모릅니다. 사랑하면 고난을 피해라 가능하면 고난을 겪지 않는 방향으로 살도록 해라, 몸을 사려라 중간만 해라 이런식으로 이야기 하는게 좋지 않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고난을 친구처럼 여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게 도대체 사랑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계속해서 13절을 보시겠습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3절에서 우리는 하나의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사람만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고난이 즐거움이 되고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참여하는 것과 기뻐하는 것은 문법상으로 시간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난에 참여할수록 기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고난을 공유할수록 그리스도의 영광도 함께 공유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다는 것은 그냥 생각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그리스도와 고난을 공유하는 사람이 구원 받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오늘 본문은 고난 받는 것과 구원 받는 것을 연결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말하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이 복음의 기초 위에 베드로전서의 고난의 복음이 쌓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난을 통해 구원의 기쁨을 누리기 때문에 12절에 베드로는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고난을 낯설게 여기지 마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유익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14절에 보시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고난을 받을 우리가 기쁜 것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런 유익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지만 당장은 와닿지 않아서 중요한지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현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설명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당할 때 영광의 영, 하나님의 영이 우리 위에 임합니다. 우리가 치욕을 당할 때 우리 위에 성령님은 더 강하게 임재하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더 강하게 주장하셔서 우리가 더욱 성령충만해질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증인이 되는 것과 관련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종말의 소망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공유하지만 우리가 죄인이라 이것만으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 힘으로 여전히 고난을 이길 수 없고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난 당할 때 우리는 더 성령충만해집니다. 성령의 임재는 더 강력하게 임합니다. 삶의 현장 가운데 우리는 능력있는 증인으로 서게 됩니다. 우리가 가는 곳에 우리 힘으로 도저히 바꿀 수 없던 것들이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생깁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의 역사입니다.
(적용) 혹지 복음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다가 고난을 받고 계시는 중입니까? 타는 듯한 아픔이 있으십니까? 오늘 말씀을 함께 더 깊이 묵상하길 원합니다. 이 고통을 나그네로 삼지 않고 친구로 삼아 주님 다시 오실 때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난이 오면 올수록 성령께서는 더욱 강하게 역사하시고 임재하십니다. 고난이 오면 우리가 약해질 것 같고 쓰러질 것 같고 질 것 같습니다. 실제로 고난이 오면 아무생각도 들지 않고 그냥 아프고 괴롭고 처지고 화가 납니다. 하지만 고난은 성령 충만을 동반하여 지금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은 성령 안에서 우리를 더욱 능력 있는 성도로 빚어갑니다.
복음을 위해 헌신하다보면 교회에서 그리고 밖에서 얼마나 억울하고 아픈 일을 당하는지 모릅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내 시간 내 물질 들여서 하나님을 위해 애썼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건 틀렸다는 말, 교만하다는 말, 너무 나선다는 말, 그리고 차가운 무관심, 조롱하는 말 이런 것들이 들립니다. 내 자신이 얼마나 약해지고 소극적으로 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났으면 복음은 2천년에 다 소멸되어서 우리에게까지 닿지 못했을 것입니다. 복음 맡은 그리스도인들이 아프고 힘들고 어려울 때 오히려 성령은 더 강력하게 역사하시고 더 강하게 임재하셔서 복음을 맡은 성도들이 더 힘있게 교회를 세워나가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고난 때문에 힘들고 아프고 어려워도 이 놀라운 원리를 기억하길 원합니다. 고난이 우리를 더 강하게 하는 비결임을 믿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죄인이 아닌 의인으로서 고난 받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종말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움이 아닌 위로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친구 삼을 때 우리는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와 고난을 공유하게 되고 영광도 함께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고난은 종말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현재의 삶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고난이 올수록 성령은 우리 위에 더욱 강하게 역사하고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사람이 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하도록 할 것입니다.
삶에서 만나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역자로 바로서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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