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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 위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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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가운데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하는 우리의 모습

Notes
Transcript
2022. 03. 24 새벽예배
사도신경
373장 (고요한 바다로)
[풍랑 위의 믿음]
마가복음 4장 35-41절
1.서론- 마가복음 : 권세자예수님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며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고난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고 나눌 본문의 말씀은
풍랑위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제자들을 통해
어떤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소개되어지고 있습니다.
함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복음서 라고 불리우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에 마가복음 1장부터 4장까지는
권세자 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어요.
이 아주 짧은 분량가운데,
예수님께서 질병을 고치시는 장면이 쉴 틈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 열병 환자, 나병 환자, 중풍병 환자, 손이 오그라든 환자들을 고치시는 모습이 나타나죠.
예수님께서 못 고칠 병이 없으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권세자이십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을요,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가 의도하는대로
'권세자이신 예수님'이라는 관점에서 함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
35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막4: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본문에서는 그 시간이 '날 저물 때'라고 기록합니다.
낮 시간에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나, 병 고치시는 사역과 말씀을 가르치시는 사역들을 하셔야 했기에,
예수님은 밤 시간을 이용해서 장소를 옮기려고 갈릴리 뱃길에 오르신 거에요.
어떤 배경인지 머리에 들어오시죠?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어요.
이 갈릴리 바다는 밤이 되면 파도가 크게 요동을 친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지역은 지형이 참 독특 한데요. 갈릴리 바다에서 60킬로미터만 가면 해발 3000미터 높이의 헤르몬 산이 있습니다.
북한산의 높이가 800미터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높은 산인지 상상이 되시죠?
갈릴리 북부지역은 이렇게 지형의 높낮이의 편차가 크다는 지리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갈릴리 바다는, 밤만 되면 해발 3000미터의 높은 땅에서 바다가 있던 낮은 땅으로 세차게 부는 바람 때문에 파도가 늘 거셌어요.
해가 저문 밤중에, 제자들이 예수님 과 함께 배에 오를 때 이 사실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이스라엘 지역에서 나고 자라며 특히 바다에서 일했던 제자들은 배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라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큰 일이 벌어집니다.
3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막4: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매서운 광풍이 불어온 거에요.
제자들 일부분의 직업이 무엇이었는지 잘 아시죠? 어부였어요.
어부였던 제자들은 평소 갈릴리 밤바다에서 여러 번 풍랑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굳이 어부가 아니더라도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갈릴리 바다의 특성에 대하여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을거에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익숙하게 겪었던 정도가 아니라,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풍랑이 찾아온 것입니다.
높은 파도가 배에 들이닥치면서 배 안에 물이 차기 시작했습니다.
배는 사방으로 흔들리고, 이제 물에 잠겨서 곧 바닥으로 가라앉을 것 같습니 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상황에서 얼마나 몸이 고단하셨는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난리가 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쪽에서 주무시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어떻게든 풍랑에서 벗어나 보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던거에요.
제자들은 상상도 못할 큰 풍랑에 커다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제자들의 판단으로는 예수님을 깨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웠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38절 말씀입니다.
[막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선생님. 우리가 이렇게 죽게 되었는데 어찌하여 우리를 돌봐주지 않으십니까!'
뱃사람이었지만 제자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이에 잠에서 깨신 예수님은 바다를 꾸짖으시고 잠잠하라 고요하라 말씀하시니, 언제 바람이 불었냐는 듯이 바다는 잠잠해 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다를 잠잠케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0절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막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너희들은 어째서 아직도 이런 일을 무서워하니?
어째서 아직도 이렇게 믿음이 없니?'
만약에 여러분들에게 제자들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반응하셨겠습니까?
예수님과 배를 함께 탔는데 갑자기 풍랑이 찾아와서 이제 곧 죽게 된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깨워서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한편으로는 아주 믿음 있는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 않나요?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강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주의 이름을 크게 부르짖는 것이 더 믿음이 있는 행동이 아니였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고 믿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제자들은 이미 그동안 예수님의 권세를 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계속해서 봐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권세자라는 사실을 믿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거예요.
하지만 정작 제자들은 그런 권세자이신 예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혼비백산 하는 것 을 보고는 안타까워 하셨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끝부분입니다.
41절은 '과연 예수님은 누구시냐'고 묻는 질문으로 끝마치고 있습니다.
[막4: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우리가 한 번 대답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함께 따라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권세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어둠을 물리치시는 권세자이시며, 그에게 이 세상 모든 것이 복종하는 온 세상의 통치자이세요.
이제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적용하여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3. 적용
1. 예상치 못 한 시련이 와도 예수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고난과 시련이 찾아왔을 때 가장 먼저 되어야 할 일은
예수님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생각해볼게요.
제자들은 스스로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제자들이 처음 예수님을 따를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라 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랐습니다.
이 따라오너라 라는 표현은, 단순히 예수님의 육체를 장소적 의미에서 좇으라는 뜻이 아니라,
지금 그들이 처한 삶의 방법과 목적과 관심을 모두 청산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향하여 전환 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따르라는 희생적인 의미였어요.
제자들은 그렇게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제자들은 힘겨운 여정이 될 줄을 알면서도, 어두운 밤에 예수님과 함께 배에 오른 상황인거죠.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어느 정도의 수고와 어느 정도의 고통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이미 각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막상 불어온 풍랑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제자들은 자기의 목숨까지 위협 할 고통이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상상 이상으로 거센 풍파를 만나고 목숨까지 위태롭게 된 제자들은, 결국 이 배에 함께 타고 있던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까마득히 잊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니 괜찮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기억도 나지 않고, 잔뜩 겁이나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생명의 위협 앞에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거에요.
이 말씀 앞에서 우리도 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적용하여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험난한 좁은 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좁을 길을 걷고 있잖아요.
그리고 제자들처럼 그동안 예수님의 크신 능력과 권세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에 지나치는 환난과 고난, 생명을 위협할 만한 어려움이 찾아올 때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우리의 모습은 마치 제자들과 흡사할때도 있습니다.
완전히 겁에 질려버리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려서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어려움을 바라보고 걱정하며 그들과 같은 방법으로 이 어려움을 해결하려 듭니다.
가까이는, 코로나를 맞이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길을 걸으며 겪는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을 생각해볼 수 도 있겠죠.
그렇다면,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까요?
비록 무섭고 마음이 어렵지만, 예수님께서 권세자 이심을 기억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배가 흔들리고 고난이 극심할 때에도 예수님은 마가복음에 기록된 대로 '권세자'라는 사실이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고치지 못할 질병이 없고, 행하지 못할 능력이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이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저 눈앞에 일렁이는 풍랑만 보이는거에요.
하지만 여러분들은,
고난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바라보시고 오히려 그 고난으로 인해 예수님을 더 의지 하며, 그 권세의 이름을 더 경험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능력을 믿어야 한다.
다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여
예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보시고 마음아파 하셨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로 두려워하니,
어째서 아직도 나에 대한 믿음이 없니, 아직도 내가 누군지를 모르니,
너희가 그동안 나의 권세를 보았다면 내가 누군지 알아야 하지 않겠니...'
만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그저 불쌍히 여 기시고, 풍랑과 파도만 잠잠하게 해주셨다면 어땠을까요? 그렇게 하셨어도 이야기는 완성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속상해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보여드린 모습보다, 주님은 더 큰 믿음을 기대하셨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병자들을 고쳐주시며 그들을 대해 주셨던 것처럼 너그럽게 제자들의 부족함을 덮어주실 수는 없었던 것일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기대감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권세가 있는 분이라 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앞서 봤던 것처럼 예수님은 쉴틈없이 권세를 드러내 보이셨어요.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그 모든 기적들을 다 보았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풍랑 속에서도 예수님을 믿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수준의 믿음을 기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서워 죽겠다는 제자들에게 이렇게까지 믿음을 요구하셨던 것은 이 방법이야 말로 진정으로 제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통
믿음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영어로 believe, belief 이렇게도 쓰이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믿음에 대해서
Faith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이 단어는, 그냥 믿는 것에서 그치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신뢰하는 것, 즉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이야기해요.
이 믿음, 곧 신앙은 환난과 고난을 견디게 해주는 능력입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믿음의 능력이 환난을 '없애버리는'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단순히 없애주는 능력이 아니라,
능히 '견디게' 해주시는 능력입니다.
따라해볼게요.
믿음의 능력은 / 환난을 견디게 해주시는 능력이다.
믿음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세상가운데서 그 말씀 붙잡고 견디는 거에요.
믿음으로 노아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함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이었지만,
방주를 준비하고 세상을 향해 외쳤던 것처럼
그래서 의의 상속자가 되었던 것처럼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 말씀을 의지하고 붙잡고 살아내면서
가나안땅을 향해 나아갔던 것처럼
믿음은요 하나님의 그 말씀을 의지하는것이에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고난과 환난이 오더라도 버티는거에요.
견디는 거에요.
우리들의 삶은 환난과 고통이 따릅니다.
오히려 안 믿는 자들보다 더 큰 환난 과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믿음의 능력이란, 환난이 여전히 있으나 환난 속에서도 염려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하게 해주는 능력이라는 것이에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환난이 없기 때문에 염려도 없는 것이 아니라,
환난이 찾아오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환난 중에도 믿음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환난이 찾아왔을 때 예수님을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고는 너무나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제목이 달라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내가 주의 길을 가는 동안 나에게 고난이 오지 않게 해주세요.
환난을 이겨내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것
이것도 매우 중요한 기도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갑작스럽게 환난이 찾아올 때, 우리가 그러한 상황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잊지 않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만 기억하고 의지하면 환난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열방교회 성도님들이 예수님의 권세를 인정하는 참된 제자가 되셨으면 좋겠어요.
이 세상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강한 권세자이시며,
평온할 때에도 권세자이시지만,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에도 권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풍랑을 경험했던, 제자들은요 훗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시대에 황제들과 사람들의 핍박을 받으면서 생명의 위협과 여러 가지 고난들도 모두 이겨내는 담대한 믿음의 선진들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변화가 있을 수 있었겠어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했기 때문임을 믿습니다.
우리도 오늘 본문을 기억하여 우리 삶에 적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 권세를 믿고 기도하여, 예수님의 권세를 경험 하는,
어떤 시련과 환난도 이겨내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을 시작하는 이 새벽시간에,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과 환난 가운데에서도,
예수그리스도를 잊지 않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그리고 예수님의 그 능력을 믿고 신뢰하며 의지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부족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조금씩 하나님을 향해 믿으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눈앞에 놓인 문제가 너무나도 크고 두려워서 우리는 간혹 우리의 환경만을 바라보고 무섭고 두려워 떨며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갖게 하시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아, 주는 내 피난처이시고 내 요새되시며 내 피할곳이 되심을 믿으며 나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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