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자녀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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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받을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5장 8–14절 말씀입니다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설교 제목: 빛의 자녀들처럼
서론
우리가 비록 지금은 온라인으로, 또 이렇게 집회 형식으로 수련회를 진행하지만, 2년전만 해도 2박3일 수련회를 진행했습니다.
전도사님도 어릴 때는 수련회를 경험하지 못하다가 고등학교 1학년 여름에 처음으로 수련회를 참석했어요. 문화 충격이었죠. 저녁 늦게까지 은혜롭게 예배 드리면서 기도하고, 서로를 부둥켜 안고 기도하는 모습에서 충격이었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전도사님이 가장 신앙 좋은줄 착각하고 있다가 친구들을 보면서, 또 믿음의 선배들을 보면서 겸손해졌죠. 그리고 다른 친구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며 많은 것들을 경험했습니다. 또 함께 뛰면서 찬양하는데, 남들의 시선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뛰면서 찬양했어요. 어제도 꽤 많은 친구들이 함께 뛰면서 찬양 했어요. 보기 좋았습니다. 전도사님도 진짜 열심히 뛰었어요. 좀 뛰어봤다 싶죠? (사진)
전도사님이 잘 뛸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수련회 갔다 오고나서 전도사님의 진지한 기도제목이 있었어요. 수련회 때 더 높이 뛰며 찬양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이렇게 전도사님도 수련회에 대한 애뜻함, 기쁨이 있습니다. 그렇게 고3 여름 청소년부 수련회까지 총 5회를 참여했어요. 그리고 청년이 되어서 청년부 수련회를 참석했는데 분위기가 너무 다른거에요. 전도사님이 다녔던 교회가 특히 그랬는데, 뛰면서 찬양하기보다는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러니까 전도사님은 20살의 패기로 더 수련회에 참여하고 싶어서 여러 수련회에 참여해도 스텝으로 섬기고 돕고 그랬습니다.
그 때 전도사님이 맡았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있었습니다. 수련회 때 집회 마치고 나서 꼭 당부하는게 있죠. 내일을 위해서 일찍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들 어떻게 하나요? 밤 늦게까지 잠도 안 자고 몰래 숨어서 떠들고 마피아 게임하고 랜덤게임을 해요. 그러다 쌤 오면 자는 척하다가 걸려서 혼나고, 또 쌤 가시면 다시 게임하다가 결국 새벽에 되어서야 잠에 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아침 그냥 일어나라고 하면 절대로 안 일어나요. 이불 뒤집어 쓰고 더 잘꺼라고 생떼를 쓰겠죠. 그 때 전도사님이 등장합니다. 기상송을 트는데요. 그 기상송이 항상 정해져 있어요. 국룰,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만 백성이 너의 빛을 보고 사방에서 나아오네! 일어나라~ 오로지 일어나라 라는 단어 하나에 초점을 맞춰서 잠을 깨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공감하지 못할 친구들도 있을 거 같은데요. 다음에는 꼭 이런 수련회를 함께 경험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 기상송에 대해서 길게 설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잠에서 깨어나 세상 속에 빛을 비추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아멘!
오늘은 수련회 마지막 날입니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마지막 예배까지 다가왔습니다. 코로나라는 환경 속에서 여러 모양으로 새롭게 시도하였죠.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무엇이 가장 많이 남아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단 하나가 남길 원하는건 우리 주제. 연결고리가 남길 원합니다. 상세하게 들어가면, 연결고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기억남길 원합니다.
첫날에는 하나님과의 연결고리 되신 예수님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거였죠. 둘째날에는 우리의 직업을 살펴보며, 그 직업을 선택하였던 내면의 가치, 우리의 우선순위를 점검하였습니다. 어제 진행되었던 셋째날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서로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남을 사랑할 수 없음을 보았습니다. 결국 나와 친구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만 했죠. 그렇게 서로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살펴보았는데요. 주제들을 살펴보면 점차점차 확장되어 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하여 나 자신의 우선순위를 점검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배웠죠.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다룰 내용은 더 확장되어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 8절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1. 우리의 본질은 어둠이었다.
여기서의 어둠은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영역을 나타낸다. 우리가 구원 받지 않았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무엇? 어둠이었습니다. 사탄의 지배 속에 살았다는 것이에요. 사탄의 지배 속에서 어떻게 지내는 겁니까?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다는 겁니다.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였던 것, 세상의 풍조를 따르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나는 죄를 지은 적이 없는데요. 야고보서 4장 17절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있었으나, 나의 욕심과 나의 즐거움 때문에 선을 행하지 않았던 우리의 과거를 봅니다. 우리가 일반적인 사회 앞에서는 감옥에 가지 않을 정도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착한 사람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을 때 우리의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요. 8절의 말씀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2. 우리는 주 안에서 빛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험 있나요? 분명히 불이 꺼져 있는데, 형광등에 작게 불빛이 남아 있는 경우. 전도사님이 티를 잘 안내려고 하는데 사실 겁이 많아요. 그래서 교회 뒷 마무리하면서 불을 다 끄고 문을 잠갔어요. 근데 본당 특성상 나오기 직전에 불을 다 끄는게 아니라, 불을 다 꺼놓고 걸어서 나와야 해요. 근데 분명히 불은 껐는데, 조명에 불이 남아있나? 싶을 정도로 남아 있어요. 근데 쫄아 가지고, 내가 헛것을 본게 아닐까, 혹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을 깨달았어요. 사실 그 형광등 안에는 전기가 딱 공급되면 자외선이 포함된 빛이 나온데요. 근데 자외선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형광등 안에 형광 물질을 발라둬서, 빛이 형광 물질을 때리면, 그제서야 우리 눈에 보이는 빛이 비춰지는 거라고 합니다.
근데 이 내용이 꽤나 우리의 본질과 비슷하게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어둠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우리가 빛이라고 합니까? 주 안에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 되어 있을 때 빛이 된다는 거에요. 우리는 빛을 내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형광 물질과 같아서 빛이 우리를 치게 되면, 우리가 빛을 비추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다시 읽을텐데요. 필립스 성경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비추는 대상을 빛으로 바꾸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합니다. 잠자는 그대여, 죽은 자들에게서 깨어나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비추실 것이다”
빛에는 비추는 대상을 빛으로 바꾸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비추실 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빛이 되는 것이죠. 우리가 빛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한다는게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비추셨기에 이제는 빛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선행을 해야 빛이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어둠속에서 꺼내어 빛이 되게 하셨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빛이 되었으나, 여전히 어둠의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어둠인 것 마냥 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8절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3. 우리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해야 합니다.
빛의 자녀들을 어떻게 행동합니까? 어둠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빛의 자녀들은 9절에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착함은 나의 행복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의로움은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는 것을 의미하고요. 진실함은 인간의 거짓을 벗어나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둠의 기준이 나, 자신의 것이었다면, 빛의 기준은 하나님과 이웃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10절,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하여 보라
이제는 하나님과 이웃에게 더 넓어져서 모든 일 가운데,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시험은 테스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배우고 알고자 시험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이렇게 행동해보고 이것보다 이게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같아! 라고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것이죠.
이것이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빌립보서 1장 10절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것들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삶의 일부분,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러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학원에 가야하는데 늦었어요. 삼진 아웃에 투 아웃이에요. 그런데 하필 신호등이 빨간 불이에요. 주변을 살펴봅니다. 차가 하나도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요? 학원도 늦었는데, 건너야겠다!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사실 몸이 움직이죠.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건너있을거에요. 그런데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융통성 있다. 당연한거 아니냐고 할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말씀을 적용해보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사실 어둠의 행동이라는 거죠. 내 육체의 생각과 마음의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가 잠깐이지만 멈춰서 생각해야 해요! 가만히 서서! 고민해야 해요! 나는 이제 주 안에서 빛인데, 여전히 어둠 속에서 선택할 것인가? 빛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이 무엇인지 멈춰서서 고민하는거에요. 내가 원하는대로 행동하는 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인가.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인데, 과연 이것이 맞는가.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에이 한번인데, 이번만 지나고 내일부터 하면 되지, 단언컨데, 그 생각이 전도사님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하루만 그냥 하던대로 하자. 괜찮아 담부터 하면 되지. 그런데 그렇게 지나갈 수록 우리의 양심은 무뎌져갔습니다. 하나님은 잊혀져 갔습니다. 그리고 괴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이름은 있으나, 주 안에서 빛이라 하나, 아무도 비출 수 없는 사람을 만들었어요. 그 한번이 우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제는 우리가 세상 속의 빛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나를 위해서 살아가니까요.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에게 실망합니다. 왜 실망합니까? 사실 기대했거든요. 뭔가 다르기를 기대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찬양하는 예수님이라는 분이 그렇게 위대하시데요.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살펴봤어요. 그런데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실망해요. 사실을 말을 하진 않는데, 기대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뭔가 있겠지, 뭔가 있을꺼야. 그래야 나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을 얻고 싶은데, 다를 바가 없어서 실망하는 거에요.
21세기에 종교는 곧 사라질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전망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았습니다. 퓨리서치센터에서 데이터를 모으고 연구를 실시한 후에 워싱턴 포스트라는 신문에 이렇게 신문을 냈다고 합니다. “실제로 종교는 쇠퇴하지 않고 성장할 것이다” 듣보잡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워싱턴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이며, 가장 큰 신문입니다. 뉴욕 타임즈, 월 스트리트 저널과 함께 대표적인 일간지에요. 근데 거기서 종교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었어요. 전 세계적으로 종교 전반이 꾸준히 강세를 보이며, 성장하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기독교, 무슬림이 증가하고 있으며,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여전히 빛이 아니어서, 사람들은 실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결단해야합니다. 오늘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겠다고, 빛의 자녀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심은 한 부분이 아니라, 매순간 일어나야 해요. 내가 무단횡단 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결정에 앞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체질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에요. 단순히 행동 하나 바꾸는게 아니라, 내가 결정을 하는 모든 것에 앞서서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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