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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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받을 하나님의 말씀은 베드로전서 4장 10절 말씀입니다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설교 제목: 선한 청지기
서론
전도사님 어릴 때 별명이 무엇이 있었을까요?
지금은 멈춰버렸지만 두개의 심장이라는 별명도 있었죠. 엄청 뛰어다녔거든요. 우리 청소년부 공식 FC가 있어요. 은혁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다솔FC”인데요. 한번 축구하러 갔다가 지금은 멈춰버린 한개의 심장을 두고 굉장히 슬퍼했어요. 그런데 진짜 체력 좋아서 축구 경기 50분 하면 잠시도 걸어다니지 않았어요. 분명히 왼쪽에 있었는데, 오른쪽에서 나타나 압박하고 내가 싫어서 왼쪽으로 도망쳤는데, 또 다시 왼쪽에서 압박하고 있는다 라고 해서 얻게 된 두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이었죠.
그리고 전도사님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또 하나의 별명이 있었는데요.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닌다고, 모든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이유로 붙어진 별명이 있습니다. 그 별명은 노력하는 예광이 였습니다. 그래서 맨날 노력하는 예광이, 이렇게 부르는데, 또 쫘식들이 편하게 부르다고 줄여서 노예, 노예라고 불렀죠.
불리는 이름은 싫었지만, 그 내용이 좋아서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으며, 그래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다. 라는 생각으로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별명입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노예라는 별명을 설명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청지기가 사실상 노예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라 요청하시는지 살펴보길 원합니다.
본론
1. 선한 청지기가 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청하시는데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선한 청지기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청지기가 노예라는 것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야기 했는데요. 일반적인 노예와는 달랐습니다. 혹시라도 청지기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친구 있나요? 손 들라해도 안 들테니까 속으로 들어보세요. 진짜 틀려도 괜찮고 아무말 해도 괜찮아요. 욕하는 것만 아니면 괜찮으니까 앞으로는 편하게 얘기해주세요.
네. 청지기는 다른 사람의 재산을 위탁 받아 그동안 그 재산을 책임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청지기는 다른 사람의 재산이나 집을 관리하는 노예입니다. 신분상으로는 똑같은 종이지만, 그 집의 재산이나 집을 총괄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 주인을 제외하면 그 집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서도 청지기가 등장하는데요. 요셉은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을 위해 지명된 노예였다(창 39:4–6). 집에 모든 것들을 관리하도록 권한을 임명 받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지만 요셉이 어떻게 합니까? 당신은 나의 소유가 아니라 주인의 소유임을 이야기하며, 그 유혹을 피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청지기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도 청지기가 등장합니다. 주인이 떠날 때에 종들에게 자신의 재산, 달란트(어마무시한 돈)를 맡깁니다. 그 때 그 청지기 중 2명은 열심히 일을 하였지만, 한명은 자신의 역할을 올바르게 감당하지 못했죠. 그래서 그 청지기는 올바른 일을 감당하지 않은 채로 주인을 만나게 되고 돈을 빼앗기고 쫓겨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보다 더 훨씬 전에 청지기에 대해서 이야기하셨습니다. 성경에 나오길 가장 먼저 나온 청지기는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한 후에, 그들에게 말하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라고 했다. 그런 다음 그것들을 다스리라고 했다(창 1:28). 이는 때때로 “창조 명령” 혹은 “문화 명령”으로 불린다. 아담은 땅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부통치자, 대리자로 지명되었다. 우리의 창조의 소명은 청지기직의 소명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을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선한 청지기 사명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2. 그러나 사실 우리는 본질상 타락한 청지기입니다.
창세기에 아담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부여 받았습니다. 에덴동산의 모든 것, 가장 큰 저택에서 가장 큰 권세와 권력을 가진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였어요. 그런데 창세기 3장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맙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모든 것을 주셨지만, 유일하게 주시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당신을 넘어서,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싶습니다. 결국 아담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고 싶었고, 인간 이상이 되려 하였을 때 아담은 작아졌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자신 또한 더 많은 것을 가지려다가 우리 자신보다 더 작아졌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다스리고 통치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세운 것이 청지기였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자신의 영광을 돌리도록 내게 주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마음껏 부리고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보내고 있는 시간을 생각해봅시다. 그냥 주어진 것인가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당연히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어요. 근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보내고 있는 이 모든 시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값으로 사신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다면,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이제는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찬양할 때 고백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게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의 현실입니다. 예수께서 피로 사신 시간을 우리는 대부분 나를 위해서, 나의 유익과 편함과 즐거움, 즉 쾌락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는 전도사님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전히 핸드폰을 하는 것이 즐겁고, 게임하는 것이 즐거워요. 물론 즐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만 그게 이제 즐기는 시간이 아니라 그것에 얽매여 있다면, 점검해야죠. 그리고 나를 위해서 사는 인생이 아니라면, 청지기라면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데, 아무리 시간을 점검해보아도 나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더라고요.
이것이 우리가 처한 환경이고, 현실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내 인생의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떱니까?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여전히 내 삶의 주인이 나임을 깨달을 때가 있을 겁니다. 내가 행복할 때에는 하나님에게 관심 두지 않으며, 내가 힘들 때에는 주님께 나와 기도합니다. 계속해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존중 받아야 할 권리만 주장하기도 하고요.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은 만큼 그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은 마음도 가득할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청지기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고 타락한 청지기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우리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 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결 되어 있지 않을 때 우리는 끊임없이 내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까먹으면 내가 왕이 되고자 합니다. 내가 청지기인 것을 까먹고 말아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과의 연결고리 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어제 성경 공부한 친구들은 배웠습니다. 우리가 어디 안에 거해야한다고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고 했죠. 하나님의 말씀이 머리속에서 지나가 사라지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하고 생각하고 묵상하면,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이 일주일에 한번으로 과연 괜찮을까요? 아쉽지만 그건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면서, 일주일에 1시간만 잠깐 보고 헤어져서 보지도 말고, 연락도 하지말라고 한다는게 말이 될까요? 여러분 그렇게 연애하면 차은우처럼 잘생기지 않는 이상 2일도 가지 못할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경험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예수님에게 젖어가는 겁니다. 신앙생활은 그래요. 하나님께 물들어 가는 삶. 예수님께 물들어 가는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에 물들어있어요? 넷플리스와 웹툰, 롤, 판타지 세계 안에 물들어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다른 물을 빼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물들여야 합니다.
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청지기가 된다.
결국 그것을 통해 우리가 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읽고 생각하고 묵상하면서 예수님에게 물들어 무엇을 해야합니까?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올바르게 우선순위가 잡히게 되면, 그 때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여도, 하나님을 위해서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우선순위가 올바르게 잡히는 것이 어렵고 오래걸려서 다들 포기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죠. 그런데요. 우리를 살리시겠다고 자기 아들을 죽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이 어려운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을 못하실까요? 우리가 죽어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나누는 것이 불가능할까요?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안에 진짜 하나님 말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낀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역사 하신다면, 우리 공동체가 바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대부분이 무시해버립니다. 괜찮을 것 같아.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도. 제발요. 그렇지 않습니다. 착각에서 벗어나길 원해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혼자서 어려운 것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같이 해야죠. 억지로라도 내가 하지 않으면 창피해서 못 살겠을 정도로 몰아넣어야죠. 우리 총무 진혁이가 고3이지만 총무에 나오면서까지 내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고 자기 자신을 몰아넣었던 믿음의 결단처럼 우리도 그렇게 몰아넣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가장 먼저 만나기입니다.
이것은 19세기 스코틀랜드의 목회자 앤드류 보나(Andrews Bonar)의 생활원칙입니다. 함께 소개하고자 하는데요.
- 예수님께 먼저 말씀드리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 무릎을 꿇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 성경을 읽기 전에는 어떤 글도 읽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좀 괴팍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환경상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매일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의 중심이 얼마나 귀합니까. 주님과 기도와 말씀으로 대화하기 전에는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그 어떤 다른 일도 하지 않겠다는, 주님과의 교제에 최우선순위를 두겠다는 그 결단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우리 안에 그러한 결단들이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전에는 글을 읽지 않겠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는 말을 하지 않겠다. 하나님께 기도 하기 전에는 어떤 것도 결정하지 않겠다!
몇 주 전 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며, 성경을 읽기로 했습니다. 매일 본인이 정한 분량만큼. 그리고 저에게 며칠간 요약해서 보내왔습니다. 그러니까 질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성경에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의 어떤 변화들이 있고, 어떤 묵상들이 있는지 자세하게는 모르겠습니다. 근데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일하실 것입니다. 분명히 일하실 것이에요. 때로는 말씀을 읽었으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수 있어요. 때로는 기도하였으나 내가 기도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삶의 습관이, 삶의 패턴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을 바꿉니다.
결국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청지기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그렇게 청지기로 살아가길 원하는 친구들이 우리 공동체 안에 있길 원합니다. 함께 말씀 읽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면 자진해서 전도사님에게 얘기해도 좋아요. 우리 안에 아까 말했던 매일 삶에서 앤드류 보나의 생활원칙을 지킬 사람들이 있다면 이시간 자리에서 일어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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