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함의 여정

베드로전서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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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여행
수요기도회에 오신 성도님들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베드로가 진술한 복음에 출애굽을 닮은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약속의 땅으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많이 줍니다. 13절에 허리를 동인다든지, 그리고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라든지 유월절을 연상케 하는 어린양은 이 본문이 출애굽 사건을 감안하고 쓴 부분이라는 것을 얼른 포착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 구원을 출애굽 여정으로 묘사합니다. 이것은 정말 현실적이고 우리에게 와 닿는 묘사입니다. 여행은 낯섭니다. 익숙한 곳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가야 합니다. 죄인에게 있어서 익숙한 세상을 벗어나 구원의 여정을 마치고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은 마치 모험이나 여행을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오늘은 이 본문을 통해서 구원의 여행의 시작과 과정과 종착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본론1- 구원 여행의 준비
(설명) 첫 번째로 오늘 본문은 구원 여행이 어떻게 준비되는지 설명해줍니다. 20절에 보면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라”고 나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영어 성경 번역이 맘에 들었습니다. 어느 영어 성경은 ‘이 알려진 것’을 ‘선택된 것’으로 번역하고 ‘너희를 위하여’를 ‘너희 유익을 위하여’로 약간 의역을 해서 번역합니다. ‘그는 창세전부터 선택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의 유익을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느니라’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따지면 조미료를 친 번역이지만 의미상으로는 더 와 닿습니다 .
20절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출애굽을 위해 유월절 어린양으로 마련되신 분입니다. 이 분이 창세전부터 우리의 어린양으로 선택되셨습니다. 19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양 같다고 말하는데, 출애굽 할 당시 유월절 어린양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것이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이익을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구원 여행을 채비 하시는 분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구원 여행을 채비하시는 분은 삼위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성자께서 어린양으로 선택되시고 그 구속의 은혜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우리가 구원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이유는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 여정을 채비하시기 때문입니다. 떠날 수 있는 이유도 되겠지만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기로 작정하셨지만 또 우리를 구원의 여정 가운데로 보내시기로 선택 하셨습니다. 18절에 말씀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여행을 채비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이 여행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흠 없고 점 없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구원이라는 여행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13절에 나온 것처럼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나가야 합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인다는 말은 아까 설명 드린 것처럼 출애굽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허리를 동인다는 표현은 발에 끌리는 긴 통옷의 허리 부분을 졸라맨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빠르게 움직일 준비를 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 11절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출애굽 당시에는 허리를 동이고 신속하게 애굽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도 썩어질 세상으로부터 썩지 않고 시들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얻기 위해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구원의 여정을 떠나야 합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구원의 여정을 채비하시고 우리도 그것에 반응하여 마음의 허리를 동이며 준비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인다고 할 때 이 마음은 감정이나 의지 이런 것만 말하지 않습니다. 가치관을 말합니다. 판단을 말합니다. 진리에 대해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으니 그것이 복음인 줄을 알았으니 복음에 반응해서 썩어질 세상을 벗어나야 합니다. 허리를 동이고 신속하게 빠져나와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 여행의 준비가 되겠습니다.
(적용) 성경은 구원을 여러 가지 측면으로 표현합니다. 사도 바울 같은 경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차원으로 구원을 표현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베드로 사도는 구원을 이동으로 묘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나그네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번 베드로전서 설교 때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로서 우리는 구원의 여정을 시작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이동해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때론 우리 가운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졌던 그 욕망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주셨는데 그냥 거기에 남아 있고 싶은 욕망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사도 바울의 복음만 있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피흘려주셨다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베드로가 전한 복음처럼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로 이동하기 위해 우리 마음의 허리를 동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세속적인 가치관이 진리로 대체되고 말씀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베드로가 전한 복음이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과 연동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도들의 가르침이 퍼즐처럼 조화를 이루고 하나가 될 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본론2- 구원 여행의 과정
(전환문장) 그 다음으로 본문은 구원 여행의 시작과 더불어서 구원 여행의 과정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설명) 구원 여행의 과정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거룩함입니다. 14절과 15절을 보시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3절에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세상에서 빠져나가고 난 후 14절과 15절에는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원문에 명령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옵션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런데 이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할 때 적당히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우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해라고 말씀합니다. 16절에 나온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하는 것은 레위기 11장 44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허리를 동인다와 마찬가지로 출애굽을 배경으로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처럼 거룩해질 수 있습니까? 이게 굉장히 부담스러운 주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거룩해질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우리가 14절에 말하는 것처럼 순종하는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아버지를 닮습니다. 우리도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닮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여행의 과정을 밟아나갑니다.
우리는 특히 우리가 순종하는 자녀가 되어야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순종 한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본문이 말씀하는 것처럼 우리의 사욕을 본받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 순종과 우리의 사욕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상호 충돌합니다. 나의 욕구와 말씀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면 그건 우리 믿음의 이상신호입니다. 우리가 구원 여행의 과정인 거룩함을 따라가고 있다면 반드시 말씀과 욕망의 역동적인 충돌이 일어납니다. 외적으로, 내적으로 갈등을 빚게 됩니다.
(증명) 여행을 떠난다는 건 이전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익숙함을 벗어나 새로움을 따르는 것이 여행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나그네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행은 익숙한 곳을 벗어나 자발적 나그네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 여행의 과정은 자기 욕망이라는 익숙함을 벗어나 거룩함이라는 생활 방식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통치 체제,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서 자기 체질을 개선하느라 고생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구원 여행의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말씀에 따라 거룩함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베드로 서신의 수신자들 중에는 세상에서 이방인이었다가 신자가 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성장 배경도 믿음과는 상관없는 배경이었을 것입니다. 18절에 보면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생활환경은 당시 시대정신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데, 공적인 정치적 행사에서도 우상을 섬기는 종교행사가 있었습니다. 나고 자란 환경과 현재 삶의 정황이 말씀과 갈등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거룩함이라는 방식으로 산다는 것은 외롭고 낯설고 두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갈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적용) 이런 갈등은 지금 이 시대에도 계속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거룩해지려고 하면 방해하려는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성경의 시대에는 우상이 눈에 띄게 존재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르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우상을 조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좀 다릅니다. 우상이 대놓고 역사 하지 않고 더 집요하고 더 자극적으로 일상 가운데 침투해있습니다. 옛날 우상은 가만 앉아서 사람에게 경배를 받았지만 지금 우상은 우리 삶에 더욱 적극적으로 심방해서 들어옵니다. 우상들이 우리의 모든 상황에 개입해서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합니다.
코로나 시대이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골방에서 더욱 기도하며 말씀을 읽기도 하겠지만 어떤 분들을 미디어의 지배에 더욱 노출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넷플릭스 가입 자 수가 굉장히 많이 늘었습니다. 64.2%가 늘었습니다. 넷플릭스 계정 하나를 네 명까지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넷플릭스에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은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습니다. 이 시대가 주는 미디어의 온갖 화려한 자극에 영혼과 정신을 맡기면 몇 시간이 금방 지나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릴 집중력이 소진됩니다.
자본주의도 현대 경제를 안정화 시키는 중요한 시스템이지만 이 시스템이 신이 되면 온갖 부작용이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24절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맘몬이라고 하죠. 돈은 예수님도 인정한 하나님의 경쟁자입니다. 너무나도 강력합니다. 내 눈 앞에 뭔가를 척척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맘몬은 과거랑 비교도 할 수 없이 강력합니다. 스마트 폰에 인터넷 쇼핑과 계좌가 연동되어서 우리 시각을 자극하는 온갖 좋은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몇 번 틱틱 누르면 바로 대령해줍니다. 돈의 권능이 어마어마합니다. 돈이 최고의 영광과 경배를 받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물질이 주는 편리함과 만족감이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일에 방해 받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물질이 베푸는 권능에서 눈을 돌려서 삼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지금 우리가 걸어야 하는 거룩함의 길이고 구원의 과정입니다. 옛날 광야를 여행하던 이스라엘이 성막을 세워 예배 했듯이 지금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몸을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론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은 구원이라는 여행의 시작과 과정에 대해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가 구원 여행을 시작할 수 있는 이유는 삼위 하나님께서 구속의 은혜로써 우리의 여행을 채비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채비하심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허리를 동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말씀으로 무장하여 애굽 같이 멸망할 세상 썩어지고 더럽고 쇠하여지는 세상을 벗어나 구원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여행의 과정은 곧 거룩함의 과정입니다. 거룩함은 우리의 사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마음을 동인다고 했을 때 그 말씀을 우리의 사욕에 충돌시켜 하나님이 거룩하듯 우리가 거룩해지는 여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성막을 세우듯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으로 세우는 삶이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입니다. 이것이 구원 여행의 과정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의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이 여행의 끝은 장차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우리는 그곳을 향해서 묵묵히 이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이 여행을 시작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의지합시다. 하나님을 닮은 거룩함으로 죄의 본성을 이기며 이 구원의 여정을 잘 감당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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