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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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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성도님들 대부분 자녀가 있으실 텐데 자녀들을 사랑하십니까? 어떤 방법으로 자녀에게 사랑 을 표현하십니까? 집으로 찾아오면 맛있는 음식도 해주시고, 용돈도 주시고, 무엇보다 자녀들 을 위해 기도로 열심히 사랑을 표현하고 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 앞서 말한 것처럼 자녀들을 각기 여러 모양으로 사랑하고 계실텐데 , 하나님은 어떻게 사랑하고 계 십니까 ? 하나님께는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거나 용돈을 드릴 수도 없는데 하나님을 어떻게 사 랑하고 계십니까? 각자 생각하고 있는 여러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실텐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보시고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는지 알아가 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일서는 사도 요한이 에베소와 그 주변의 이방 교회들에게 보낸 서신서입니 다 .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실 때 예수님께서 그의 어머 니 마리아를 부탁한 자이기도 합니다 .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일 , 이 , 삼서를 기록하고 요한계시록 역시 기록했습니다 . 그의 서신들을 보면 요한이 강조하는 것이 있는데 , 바로 ‘사 랑 ’입니다 . 사도 요한은 그의 편지 속에서 ‘사랑 ’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사용합니다. 오늘 본 문을 통해서도 사도 요한은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그리고 지금은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 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 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5 장 3절은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 니다 . 함께 3절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 요한일서 5 장 3 절입니다 .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사도 요 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 ”이라고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합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계명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5 장 1절부터 3절에 걸쳐서 나타납니다 . “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 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 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이 부분을 제가 원어의 의미를 살려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낳아진 사람입니다. 낳아준 자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그에게서 낳아진 사람을 사랑합니다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행할 때, 이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고 있 다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그의 계명들을 준수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 니다 . 그리고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성도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되심을 믿는 모든 사람 , 그리스도 즉 기름부음 받은 우리의 구원자가 예수님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에 의해 낳아진 자라고 말합니다. 낳으 신 자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다른 성도들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 그것을 통해 우리가 다른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사도 요한 은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본질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 다 . 사도 요한은 본문 2 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비로소 하나님에 의해 낳아진 다른 사람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도 요한은 성도의 참 모습을 검증하는 테스트 중 가장 실제적인 방법은 하나님을 사랑한 다고 말하는 자가 과연 한 공동체인 교회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보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사랑한다는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 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한 주 동안 내 마음대로 살아가다가 교회에 나와서 찬양하며 기 도하며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행동도 없이 그저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로 진실된 사랑입니까? 자 녀를 보면서, 배우자를 보면서, 또 손주들을 보시면서 그냥 ‘ 사랑합니다~’라고 말만 하십니까? 사랑은 행동을 동반하는 감정입니다 . 사랑한다고 하면서 행동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 참 된 사랑의 증거는 말이나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 된 사랑의 증거는 행 동을 통해 나타납니다.
앞서 말했듯이 부모가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만하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말에서 끝나 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나타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요한이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웃 사랑을 말하는 이유는 당시 영적 엘리트주의자들의 모습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 그들은 하나님과 자신들의 관계를 자랑했습니 다 . 그렇기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들의 자랑은 하나님의 공동체에 대한 그들의 사 랑으로 검증될 수 있었습니다. 요한은 만약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을 미워하면 하나님에 대 한 사랑을 의심해야 하며 ,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을 사랑 하는 자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주위의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근거를 19절에서 찾고 있습니다. 19절에서 요한은 “우리 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 ”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이유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이유가 필요없습 니다 .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 또한 우리의 힘으로는 이웃 역시 사랑할 수 없습니다 .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죄인 된 우리를 , 원수 된 우리를 사랑해주셨기 에 , 우리가 그 사랑에 힘입어서, 그 사랑에 녹아져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 는 것입니다 . 우리가 하는 모든 사랑의 근거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박고 있는 것입니 다 . 그래서 우리가 하는 모든 사랑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 우리가 하 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주위의 형제들과 이웃들을 미워한다면 , 그 사랑은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은 본문에 앞서 3장 17-18 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 지고 있으면서 , 자기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열고 도와주지 않으면 , 어떻게 하나 님의 사랑이 그 속에 머물겠습니까? 자녀들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 실함으로 사랑합시다.” 사도 요한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은 진실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합 니다 .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할지라도 , 주위의 형제들과 이웃들의 어려 움에 눈을 감고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형제에 대해서 온전한 사랑을 나누고 전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이슈가 된 한 목사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인 수가 약 1만 명이나 되는 미국의 대형교회에 한 목사님이 부임하기로 결정이 났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부임하기로 한 날에 교회 근처에서 노숙자로 변장해 주변을 어슬렁거렸습니다. 하지만 교인 중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온 사람은 단 한명에 불과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교인들을 향해 음식을 사려고 하니 잔돈을 좀 달 라고 구걸했지만 ,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 예배 시간이 되고 교회에 들어간 목사님은 교회의 맨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 하지만 이내 교회 예배 위원들의 저지를 받아 맨 뒷자리에 겨우 앉을 수 있었습니다.
이내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했다는 광고시간의 광고에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목사님은 노숙 자 행색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강단으로 갔고, 교인들은 경악스러워 했습니다. 목사님은 강 단에 서서 아무 말 없이 마태복음 25 장 31-40절까지의 말씀을 읽어갔습니다 . 예수님께서 재 림하실 때의 모습을 말씀해 주신 본문인데,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 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 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는 말씀이 있는 본문입니다. 이 말씀은 “ 너 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의 말씀을 목사님이 다 읽자 자리에 앉아있던 회중들은 마치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 정을 지었다고 합니다 . 그리고 곳곳에서 흐느껴 울면서 회개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고 합니 다.
이들은 교회에 다니고 있었지만 , 예배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지만 ,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 하는 그리스도인이었지만 , 아무도 주위의 소외된 이웃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 아무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강도 당한 자를 지나쳐 간 제사장과 레위인과 같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시면 바리새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 율 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던진 질문은 바로 “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냐” 는 것입니 다 . 이 때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계명으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계명을 주시는데 “ 둘째도 그 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율법을 율법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그 두 가지가 무엇입니까? 첫째 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번째 계명을 말씀하실 때 독특한 부분이 있습니다. 둘째 계명을 주시면서 둘째 계명이 첫 번째 계명과 같 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과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같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같다는 것은 단순히 그 의미가 같다는 것이 아닙니다 . 그 중요성에 있어서 동등한 것을 의미합니다 . 예수님의 기준에서 볼 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중요성이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 그리고 사도 요한은 계명을 지키는 것은 곧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뿐만 아니라, 바울도 로마서에서 계명을 지키는 것은 이웃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웃을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주위를 둘러보시면 많은 이웃들 과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 누가 내 이웃이고 형제인지 너무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지 금 이 자리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자들이 바로 우리의 형제 자매입니다. 또한 우리 주위 에서 만나는 앞집 사람들, 옆집 사람들, 버스 기사님, 마트 직원 등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이 웃이고 , 우리가 사랑을 나눠야 할 대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위의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는 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 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이웃 사랑의 모습이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고난 주간을 보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참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행하셨습니다 .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아직 원수 된 우리를 위해서,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 님을 배신할 자라는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고, 온갖 모욕과 수치를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이렇게 우리에게 행 함으로 다가옵니다 . 우리의 하나님 사랑에도 행함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성경에서 말하 는 많은 사랑들이 있지만 오늘 본문에 나타난 것처럼 주위의 이웃들을 향해서, 형제 자매들을 향해서 우리의 사랑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말로만 “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고 말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않는 행함 없는 믿음과 행함 없는 사랑이 아니라, 정말로 주위 의 이웃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행하는 사랑을 함으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저와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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