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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 받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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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깨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듣게 되는 이야기들 중에 목사님이나 선교사님 자녀들의 이야기, 직분자의 자 녀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목사님과 선교사님의 자녀나, 교회에서 맡은 바 직분을 충성되이 감당하는 직분자의 자녀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신앙생활도 잘 하고, 세상에서 도 인정받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 에서 신앙생활도 잘하고, 세상에서 인정 받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보게 되 는 모습은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는둥 마는둥 하기도 하고, 그리스도인 답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그런 자녀들도 있습니다.
사역자나 직분자의 자녀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한 사람에게도 비슷한 현상이 등장합니다. 흔 히 말하는 신앙의 연륜이 있는 분들, 수십년간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면 대게 믿음이 좋거나 하나님의 말씀 에 겸손히 순종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직분을 받아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맡은 직분을 잘 감당하는 그런 모습을 우리는 떠올립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앙의 연륜이 깊거나 직분자들 가운데서도 전혀 그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과 어울리지 않은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사역자나 직분자의 자녀나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교회와 세상에서 인정받으며, 하나님의 여러 복을 받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세상의 기 준에서의 복은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잘 유지하 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갈등심화]
우리네 현실에서 종종 보게 되듯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역자의 자녀도 참으로 안타까운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대제사장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 주인공입니다. 본문이 일어난 시기는 사사시 대 말기에 블레셋의 지배를 받고 있던 때였습니다. 엘리는 이 시대에 대제사장으로서 또한 사사로서 이스 라엘을 대표하는 사역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평안하던 때도 아니고 혼란했던 사사시대, 그리고 블레셋 의 지배 아래에 있던 이 때에 사사와 대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던 엘리였으니 우리의 생각으로는 엘리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아 잘 자라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듯이 엘리의 아들들은 잘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잘못 성장해 버렸습니다. 사무엘상 2 장 12절의 말씀은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고 말합니다. 대제사장 엘리의 아들에 대한 첫 언급이 ‘그들의 행실은 나쁘고 여호와를 알지 못한다’는 평가인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이런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은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제사장이었습니다. 제 사장은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를 드리던 이스라엘의 대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알아야했고, 행실이 바르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했던 제사장이었지만, 행실이 나쁘고 여호와를 알 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은 사람이 대제사장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였습니다.
이들의 악행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12-17절에 나타난 악행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한 것이었습 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어떻게 드려야 할지 명백하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방법을 취하 지 않고 하나님의 것을 자신들이 취했습니다. 오늘 본문인 22-25절에서는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 과 동침하는 죄까지 범했음을 말합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어기는 것도 모자라, 다른 곳도 아닌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모습은 이방 신을 섬기는 자들이 음란하게 그들의 신을 섬기는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대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인 제사장 홉니와 제사장 비느하스의 죄악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시대가 사사시대 말기에 블레셋의 지배 아래 있던 시대 였다는 사실입니다. 사사시대에 사사로서의 역할을 엘리가 잘 해주지도 못하고 있었고, 블레셋의 지배 아 래에 있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대제사 장이고 사사였던 엘리는 눈이 어두워 제대로 사역을 감당하지 못했고, 그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라 는 이 제사장들은 제사를 멸시하고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죄를 범하고 있으니 시대적 으로 참으로 안타까운 시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전]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하나님이 필요한 시기를 보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포기하거나 방치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사 람을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바로 사무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사람이었던 엘가나와 한나의 아들 사무엘을 이 시대를 위해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엘가나와 한나는 비록 평범한 자들이었지만 매년 하나님 앞에 나아와 제사를 드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 와 기도하는 사람이 바로 한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기도하는 자인 하나님의 사람 엘가나와 한 나를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사무엘상 2장의 말씀을 보시면 엘리의 아들들과 사무엘을 비교하면서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 습니다. 2장 11절에서 사무엘이 여호와를 섬긴다고 말하는데 12절부터는 엘리의 아들들의 악한 행실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그 악한 행실을 말한 후에는 다시 사무엘이 어렸을 때부터 에봇을 입고 여호와를 섬기는 일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 오늘 본문이 등장하는데 홉니와 비느하스의 악행에 대해 기록하고, 다시 하나님에게 사랑받는 사무엘에 대해 기록합니다.
암울한 시대 가운데 당시 종교 지도자였던 엘리와 그의 아들들은 올바르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했지 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아시고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이끌어 갈 사무엘이라 는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복음경험]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았다고 말합니다. 새번역성 경에는 이 말을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라고 번역합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범 죄하여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결심하셨는데, 사무엘은 하나님께 더욱 사랑받는 자로 자라갔습니 다. 하나님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사랑받는 자로 자라가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누가복음 2장 52절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열두살의 예수님에 대한 말씀인데 “예수는 지 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는 말씀입니다. 사무엘은 마치 예수님 처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는 그런 모습으로 성장하고 자라갈 수 있었습니다. 잘 아시 는 것처럼 이후에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을 이끌어가고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 가운데 이루어 가는데 귀하게 사용받는 은혜가 그의 삶 가운데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이렇게 어두운 시대에 제대로 사역하지 못하고 있던 엘리의 아래에 있으면서도 은총받는 자로, 사랑받는 자로 자라갈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사무엘이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 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여호와를 멸시하던 자신의 선배들을 따라 살아가지 않고, 여호와를 존중히 여기 는 삶을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2장 30절 하반절을 보시면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 히 여기고”라고 말씀하시는데, 사무엘이 엘리나 홉니, 비느하스와는 달리 여호와를 존중하는 삶을 살아갔 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의 상황을 생각해 볼 때 그가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제사를 멸시하고 간음하는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에게 당장 어떤 제재가 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도리어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런 사무엘을 바라보며 같 이 마음 편히 계속해서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사무엘을 찾아와 당신은 왜 이렇게 살아가냐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홉니와 비느하스가 오랜 시간 그렇게 사역해 왔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홉니와 비느하스의 나이는 대략 60세쯤 되었습니다. 60세라는 나이가 되기까지 이미 오랜 시간 을 악행 가운데 살아왔을테니 그 누구도 사무엘이 그들처럼 자라간다고 해서 뭐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그들과 달리 여호와를 존중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시대의 상황을 따르지 않고 여호와 를 존중하는 삶을 살아갔기에 도리어 그에게 어려움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자신과 달리 여호와를 존중하는 사무엘을 좋게 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들 다 하는대로 그렇게 살아가 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갔던 사무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께 귀히 쓰임받는 자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비전 제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인물인 엘리의 아들들과 사무엘의 모습을 바라보니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겠다 판단되십니까.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와 존중히 여기는 자의 모습은 정반대로 다르다는 것을 기억 하시기 바랍니다. 시대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선배들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사무엘 의 모습을 우리가 기억하고 닮아가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도 참으로 어두운 시대입니다. 사람들의 죄악으로 인해 시대가 어두워졌습니다.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혼란 가운데 있습니다.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세상을 따라 살아가서 교회도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이런 시대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사무엘과 같이, 세상 따라 살아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줄 믿 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일에 한 시간 예배 드리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일주일 중에 한시간 예배드리는 것으로 우리가 과연 얼마나 하나 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일주일이 168시간이나 되는데 예배 한시간 드리는 것은 1주일 중에 0.6%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 주를 살아가면서 주일에 예배드리고 수요일에 예배드려야, 2 시간 예배드려야 겨우 1%의 시간 정도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전부라 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면서, 신앙 생활 오래 했다고 말하면서, 직분자라 말 하면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 고작 1%도 안되는 것은 정말 비상식적인 모습이지 않습 니까.
주일에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시간을 정하고 기도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시 든 나만의 시간을 정해 기도하시든 정말로 기도함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혹 주일에 말 씀을 듣고도 아직 시간 알람을 맞추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면 오늘 집으로 가시기 전 교회에서 알람을 맞추 셔서 그 시간에 꼭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것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무엘의 어린 시절과 같이 지금 이 시대도 참으로 어두운 시대입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우리 대구청구 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와 수요기도회, 그리고 개인적인 기도의 시간들을 통해 하나님 앞에 더욱 더 나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고 개인 기도하실 때 조금만 기도하고 돌아가지 마시고, 간절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함을 통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 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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