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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하고 계십니까?

에베소서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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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나누기에 앞서 질문을 드리면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께 얼마나 복을 받으셨습니까? 하나님께 복을 많이 받으셨다고 생각하고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내 기대보다 복을 덜 받고 살아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 았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복을 받았고, 또 행복한 자인지 알아가며 하나님을 찬양하시는 성도 여 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는 편지를 시 작하면서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신령한 복을 주신 목적을 6절, 12절, 14절에서 세 번 반복하여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통해서 우리는 본문의 목적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를 영화로운 존재가 되게 해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3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신령한’이라고 번역된 말은 ‘성령께 속한’이라는 말입니다. 즉 ‘신령한 복’이라는 것은 어떤 물질적인 축복이 아니라 성령께 속한 것이며 성령을 통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신령한 복은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기에, 부활의 생명을 얻은 성도는 육신적으로는 땅에 살지만 영적으로는 하늘에 속한 존재로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모든 신령한 복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본문에 6번이나 등장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전적으로 그리스도만을 통 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신령한 복을 받을 수 없고, 그 리스도 안에서만 복을 받고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첫번째 신령한 복은 ‘선택’입니다.

본문 4절은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 게 하시려고”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선택의 목적에 대해서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 신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창세 전에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사람의 공로나 어떤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보시고 선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에 관해 설명하는 한 이야기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서를 강해한 한 책에 간단히 실려 있어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마트에 가면 장난감을 파는 코너가 있는데 그 장난감들은 모두 같은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고 같은 모양 을 가지고 있는 동일한 것들입니다. 더 좋은 것이나 더 나쁜 것이 없습니다. 한 아이가 장난감들을 보며 ‘이 것을 사야지’라고 마음을 먹을 때 사실 다른것보다 이것을 더 선택할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아 이들은 ‘나는 이 장난감을 살거야’라고 말하겠습니까? 장난감은 모두가 동등하기 때문에 그 이유가 장난감 자체에서는 발견될 수가 없습니다. 모두 동일한 조건을 가진 장난감이기 때문입니다. 옆에 있는 장난감이 아니라 이 장난감을 택한 이유는 전적으로 아이 자신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택은 무조건적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저 사 람이 아니라 이 사람을 택하신 이유가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속한 것이라는 말입 니다. 선택받은 우리가 왜 저 사람이 선택받았고 또 저 사람은 선택받지 못했냐고 따질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 기 위함입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다’는 것은 주로 구약 시대 때 하나님께 드리던 제물과 관련된 표현으로 성경에 나타나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영적이며 윤리적인 거룩이나 정결함을 가리킵니다. 이를 통해서 우 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가 단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천국에 가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를 천국에 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면, 우리가 예수 님을 믿고 죄를 고백하는 그 즉시 천국으로 데려가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 령의 능력을 의지하며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셔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베드로도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명령했습니다. 부름 받은 성도 들에게 거룩한 삶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은 우리의 노력만으로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 가운데 역사하셔서 능력을 주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조금씩 조금씩 거룩하게 하시며, 예수님의 날에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그런 존재로 하나님 앞에 세워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역사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해 선택의 복을 허락 하셨습니 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두번째 신령한 복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시기 위해 ‘예정’ 하 신 것입니다.

‘예정하다’라는 말은 ‘미리 결정하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주도권을 강조 합니다. 시편 139편 16절을 보시면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다고 말하는데, 하나님께 서는 당신의 백성이 존재하기도 전에 그들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을 미리 결정하신 것입니다. 선택과 마찬 가지로 예정은 인간의 자격이나 공로와 상관 없이 온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에 관한 부분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많 이 보인 교리 중의 하나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 사람이 아닌 저 사람을 선택하셨냐는 질문이 우리 안에 들 수 있습니다. 죄인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선택이 공정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 는 죄에 대한 결과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구원받게 하신 자도 있고, 자비를 베풀지 않은 자도 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 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0장에는 ‘포도원 품꾼들’에 관한 비유가 등장합니다. 각자 다른 시간에 포도원으로 와서 일한 품꾼들이 일을 마치고 품삯을 받을 때, 다 같은 품삯을 받자 오래 일한 자들이 주인에게 불평을 늘어놓습 니다. 각자 일한 시간이 다른데 똑같은 품삯을 주는 것에 화가 난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은 “내 것을 가지 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이와 같습 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받아야 할 것을 그들에게 주었다고 해서 하나님에 대하여 불평하는 것은 마치 원 래 약속한 품삯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평하는 품꾼들처럼 악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예정하신 목적은 우리를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시기 위함입니다. 본문에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라는 말은 법적인 용어로서 ‘양자 삼음’을 의미합니다. 로마법에 따르면 양자가 되면 과거 의 모든 빚은 탕감되고 이전의 모든 상태에서 벗어나 새 가족의 일원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양자 가 된 아이는 새 아버지와 부자 관계를 맺게 되며, 아들이 됨과 동시에 상속자의 자격과 권리를 가지게 됩 니다. 바울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음을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원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불순종의 아들’이었고,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이런 자들을 하나 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녀로 삼으시려고 예정하신 것입니다.
본문에 분명히 나타난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고,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적대감을 제거하시 고,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결과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6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등장합니다.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 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 시고 예정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이 바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거저 주 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예정하심에 우리의 어떤 노력이나 공로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노의 자녀이던 우리를 양자 삼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포기하는 엄청난 희 생을 하나님께서 감수하신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학의 한 교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가장 큰 복이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우 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에서의 평안함과 재물, 자녀가 잘 되고, 좋은 대학과 직장에 가 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복이 되시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복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세번째 신령한 복은 ‘속량’입니다.

7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속량’이라는 말은 몸값을 지불하고 전쟁 포로나 노예를 해방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 시대에 노예를 해방해 자유롭게 해주려면 몸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를 ‘속전’ 또는 ‘대속물’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도의 속량은 예수님의 피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에 말하는 속량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준 결과로 이루어지는 죄에서의 해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속량을 곧 죄 사함이라고 말합니다. 속량은 죄에서 해방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에 죄 사함 과 동의어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죄 사함이라는 말은 죄에 대한 심판을 영구적으로 무효화하거나 면제하 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무런 대가 없이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죄를 지은자에게 주어지는 분명한 결과는 죽음입니다. 죄 때문에 죽는 것은 죄 아래에 있는 모든 인간의 결과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원래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과거에 지은 모든 죄들과 미래 에 지을 모든 죄를 아들인 예수님께 넘기셨고,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서 형벌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치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한 속죄제 물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죄 사함, 즉 속량하심의 사실에 대해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이 사실에 대한 즐거움과 찬양이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과 그로 인해 하 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아는 자라면 죄 사함 받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알 수밖에 없습니다. 속량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 해 내어주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속량하신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평소에 말 잘 듣 고 죄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던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이 아니라, 진노의 자녀이고 불순종의 아들이었던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아들을 내어주셨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희 신대원 길성남 교수님은 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라고 말합니다. 원수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신 것을 통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극에 달한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의 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을 만큼 크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죄보 다 커서 그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사도 바울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아낌 없이 부어주신 하나님이 찬송받기에 합당하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셨으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속량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찬양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4절과 5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등장하는데 6절에는 이 모든 것의 목적이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본문 마지막 14절에서도 우리를 속량하신 이유 가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서 하나님은 “이 백성 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지음을 받고 하나님 의 자녀로 선택되고 예정된 것,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대속제물로 죽으심을 통해 우리가 속량 받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신 목적과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 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신명기 33장에는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축복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 내용 중 마지 막 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백성이 없기에 그들이 참으로 행복한 자라는 것입 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참으로 행복한 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서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행복한 자이기에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세상의 관점과 이해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면 때로는 비참할 수도 있습니다. 한평생 예수를 믿었는데 주위에 예수 안믿는 사람보다 내가 더 어려운 상황과 환경 가운데 있으면 내가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복이란 복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다 주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복이라는 개념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드는 생각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곧 하나님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성 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삼위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복 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해서 선택하시고 예정하시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 으로 인해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이 바로 우리의 가장 큰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 아가시는 모든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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