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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의하여 충만한 삶

에베소서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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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의하여 충만한 삶”이라는 제목으로 이시간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한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면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느 군대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소대가 사격장에서 사격 훈련을 하던 중 한 병사가 총을 두 발 쐈는데 목표물을 전혀 맞추지 못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상사가 화가 나서는 그 병사의 손에서 총을 뺏으 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습니다. 상사는 “이런 바보 같은 녀석을 봤나. 너는 눈도 없냐? 잘 봐”라고 말하 며 총을 겨냥하고 쐈는데 이 상사 역시 목표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쏴 버렸습니다. 이러면 사실 상사도 고개를 숙여야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상사는 그대로 교만하게 병사를 바라보면서 “봤지? 이 바보야. 이게 바로 니가 쏜 방식이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 은 무시하고 자기 말만 들으라고 말하며 남을 가르치려고만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더이상 발전할 가능성 도, 변화될 가능성도 보이지 않은 채 일명 ‘구제불능’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군대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에 서도 이런 사람들은 큰 해를 끼칩니다. 자신만 경건하고, 자신만 지혜롭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착 각에 완전히 빠져서 다른 성도들에게 무례히 행하며 교회 공동체에 해를 끼칩니다.
성도된 우리는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나의 진짜 삶의 모습이 어떤지 매일 매일 확인해야 합니다. 내 생활에 과연 지혜가 있는지, 지혜는 커녕 교만이 가득하지 않은지 되돌아 보아 야 합니다. 문제는 나 혼자만의 생각을 가지고서는 아무리 내 삶을 돌아보아도 문제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기준으로 나의 삶을 보면 앞서 말씀드린 군대의 상사처럼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보이지 않 고 다른 사람의 문제만 보이게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성도다운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지혜 있는 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시작하며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권면을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라” 앞선 본문을 통해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실천해야 할 삶의 지 침들을 제시했습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그 이름조차 부르지 말고, 음탕한 말과 어리석은 말과 상스러운 농담을 버리고 감사의 말을 하며, 어두움의 일에 동참하지 말고 도리어 그것을 폭로해야 한 다고 성도들에게 권면했습니다. 성도들이 이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들이 어떤 삶 을 살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살펴볼 때 지혜 없는 사람처럼 하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들처럼 하라고 말합니 다. 지혜로운 사람은 생활의 지혜가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한 깊은 통찰을 소유
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주의 뜻에 합당하게 살고자 노력 합니다. 하지만 지혜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대한 통찰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 스스로가 지 혜롭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기에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보지 않습니다. 자신은 별 문제가 없다고 생 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지혜로운 사람들처럼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주의 깊 게 살펴야 합니다. 과연 내가 빛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지, 내 삶의 모습이 주님이 원하시는 모 습과 일치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주의 깊게 살피는 사람들의 중요한 특징은 시간에 대해서 올바른 태도를 취한다는 것입니
다. 이들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선하게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지 않습니 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올바르게 사용합니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올바르게 사용해 야 하는 이유는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현시대는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악한 영의 지배 아 래에 있기 때문에 악합니다. 이런 악한 시대 가운데서 성도들이 빛의 자녀로서 사명을 감당하려고 주를 기 쁘시게 하는 삶을 살려면 주어진 모든 시간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선한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하거나 놓쳐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다른 중요한 특징은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엡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어리석은 자는 주의 뜻을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며 육체와 마 음이 바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빛의 자녀입니다. 빛의 자녀가 어떻게 이런 어리석은 자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빛의 자녀들도, 구원받은 성도들도 육체의 욕심에 이끌려 눈이 어두워지면 주님의 뜻을 잊어버리게 되고 결국 어리석은 자처럼 행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주의 뜻을 생각하고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7절에 사용된 ‘이해하다’라는 단어는 ‘이해력을 사용하여 사물이나 사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의 뜻을 이해하는 데 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주의 뜻을 이해하려면 복음의 진 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음과 말씀의 사역자들을 통해서 부 지런히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노력이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 람의 노력만으로는 주의 뜻이 무엇인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께서 마음 의 눈을 밝혀 주셔야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주시 도록 하나님께 구해야만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기형도 시인의 시집 「입속의 검은 잎」에는 <우리 동네 목사님>이라는 시가 실려 있습니다. 이 시에는 한 시골의 천막 교회에서 목회하던 한 목사님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한 문장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는데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
성경에만 밑줄을 긋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시인이 묘사한 목사님의 말씀 에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말씀과 거리가 먼 성도들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성 경 말씀을 듣고, 또 개인적으로 말씀을 묵상함을 통해서 공감이 가고 동의가 가는 부분에 밑줄을 치기도 하고, 형광펜으로 줄을 긋기도 했지만, 정작 우리의 생활에는 밑줄이 그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에 나 타난 목사님의 말씀을 우리는 잘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 뿐만 아니라 생활에도 밑줄을 그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보이는 내 모습에만 밑줄을 잘 쳐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물론 교 회 안에서 밑줄을 긋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넘어서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가정과 학교 와 사회에서, 직장에서, 나의 모든 삶 속에서 밑줄을 그어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주의 깊 게 살펴야 합니다.
나의 삶을 되돌아 볼 때 만약 내가 빛의 자녀 답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면, 지혜 있는 자처럼 살아가는 것 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처럼 살고 있다면, 우리는 그 행실에서 돌아서서 바른 길로 가야 합니다. 그리스 도인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앞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과 행동을 돌아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나는 매 순간 빛의 자녀로 합당하게 살고 있는지 스스로의 삶을 주의 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 저 남들이 하는대로 그저 그렇게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며 그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성령에 의하여 충만하게 되어야 합니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악한 영들이 활동하는 악한 시대에 살고 있는 성도들이 주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 에 따라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되어야 합니다.
‘술 취함’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의 삶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의사 출신인데 로이드 목사님의 지적에 따르면 ‘술은 자제력, 이해력, 분별력, 판단력 등 사람답게 하는 모든 좋은 요소들을 마비시키고, 반면에 본능적인 저급한 요소들을 부추긴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술에 취하는 것은 ‘방탕’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방탕’은 행동의 결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무분별하고 무절제한 행 동을 가리킵니다. 누구나 술에 취하게 되면 무절제하고 무분별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 도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하더라도 술에 취하게 되면 자제력을 잃고 주의 뜻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들로서 어두움의 일들을 폭로해야 하는 성도들은 술에 취해서는 안됩니다. 성도들은 술에 취할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되어야 한다고 오늘 본문은 말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술을 마시는 사람이 술로 채워지 듯이 성령으로 채워진다는 그런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되는 것은 성령께서 성도 개인이나 교회 안에 충만히 임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된 사람은 마음과 지성과 의지가 모두 성령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된 상태가 19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되면 그 결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모든 일에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고,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에 의해 충만한 자의 모든 모습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모습 중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성령님께서 충 만히 임하셔서 영향력을 미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의 분량까지 충만하게 되는 것 입니다. 이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충만하게 되어라’라는 단어는 현재시제의 동사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되는 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 께서 계속해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영향력을 행사하셔야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에 의해 충만해진 사람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게 됩니다. 19절의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는 모두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보아 야 하는 단어는 ‘화답하다’라는 단어인데, 본문에서는 성도들이 찬양을 통해 서로 교훈하고 권면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초기의 교회에서는 찬송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에 관한 메세지를 담고 있 으며, 성령으로 감동된 노래들을 성도들이 ‘화답하여 부르며’ 성도들이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는 모습을 표 현한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이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되면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고 찬송하게 됩니다. 성령에 의해 충만 하게 된 성도들의 마음에서는 기쁨의 찬양이 흘러나오고, 예배에서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감격 어 린 찬양이 넘치게 되기 마련입니다. 앞서 서로 화답하는 것이 찬양을 통해서 성도간에 서로 교훈하는 공동 체적인 모습이었다면, 주께 노래하고 찬송하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찬양입니다. 성령에 의해 충만 하게 되어 마음을 다해 전심으로 주를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된 성도들은 모든 일에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하게 됩니다. 모든 일에 감사한다는 것은 기쁘고 즐거울 때뿐만 아니라 시련과 고통이 있을 때도 감사한다 는 말입니다. 성도들이 시련과 고통이 있을 때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 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믿고, 겸허히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감사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예수 그리스 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그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은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된 사람의 가장 중요 한 특징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된 성도의 특징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복종한다는 것은 자발적인 복종을 의미합니다. 어떤 권위를 가진 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하지만 평등을 강 조하다보면 자기 권리를 내세우게 되고 결국 충돌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상호 복종은 자기 권리를 포기 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공동체를 온전히 세울 수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상호 복종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고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나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 게 서로에게 복종하는 것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에 의해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상호 복종을 실천하려면 성도들은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되어야 합니다.
자발적인 상호 복종은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한다는 것은 그 리스도를 만물 위에 계신 머리요 심판주로 인정하고 깊은 경의와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 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상호 복종의 토대가 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청되기 때문입니다. 성도간의 상호복종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그리스도에 대한 경외와 복종을 앞설 수 없습니다. 성령에 의해 충만해진 성도라면 주의 뜻 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주를 경외하는 가운데 주의 뜻과 일치하는 범위 안에서 서로 복종하 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되는 것, 즉 성령충만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어 떻게 살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피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성령충만한 사람들의 특징 중에서 서로 복종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만약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나는 성령충만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다른 성도들의 선한 충고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진정으로 성령충만한 사람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 다. 성령께서는 비둘기같이 온유하고 겸손한 영이시기에 성령충만한 사람은 온유하고 겸손하게 될 수밖 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찬양하면서, 기도하면서 자주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성령충만케 하소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우리 를 채워주소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지기를 구하면서 내 뜻과 내 마음대로, 내 정욕이 따르는대로 살아 간다면 그것은 입만 살아있는 자의 기도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 안에는 이미 성령님께 서 내주하고 계십니다. 이미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하시 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정말로 성령님께서 우리의 전 영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실 수 있도록 살 아가며, 우리의 삶을 온전히 이끌어가시도록 우리의 마음을 성령님께 드린다면 그것이 바로 성령으로 충 만하게 되는 삶, 성령충만한 삶이 될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악된 본성은 끝없이 우리를 다시금 죄의 길 앞으로 끌어다 놓기 때문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할 때, 하나님 께서는 우리가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능히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혹여 그저 그렇게 습관적으로 신앙 생활하며 아무 의미없는 종교 생활의 일환으로 교회를 다니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저의 삶을 되돌아보니 너무나도 처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성경에는 온갖 색으 로 밑줄을 치고 메모를 했지만, 정작 저의 삶에는 밑줄을 제대로 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 습니다. 우리가 성경책에만 밑줄을 치고, 내 어떤 지식에만 밑줄을 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의 생활 가운데 밑줄을 치고, 나의 모든 삶의 영역에 밑줄을 쳐서 나의 삶이, 우리의 삶이 말씀의 밑줄로 가득 차 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의 모습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 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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