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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중보가 되시는 예수님

창세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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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442장
창세기 4:1–7 NKRV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문제 제기
메시야의 후손은 어떤 분일까요? 첫 아들을 아담에게서 얻은 하와는 그의 이름을 가인, 즉 얻었다는 뜻으로 부릅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을 낳고서는 아벨, 곧 허무, 절망이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하와의 눈에 아담의 씨로 오는 아들들은 참된 메시야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메시야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의 아들은 삶과 예배에서 메시야의 중보를 통해 살아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성도의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함께 묵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제 제시

하와는 아담에게서 가인과 아벨 두 자녀를 얻습니다. 1, 2절을 봅시다.
창세기 4:1–2 NKRV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가인은 이름 뜻이 얻었다는 뜻이고, 아벨은 절망 혹은 공허라는 뜻입니다. 하와가 첫 아들을 낳았을 때 그녀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는 메시야로 가인을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네 아담의 씨로 오는 이는 결코 메시야일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둘째의 이름을 아벨, 즉 공허로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와의 큰 절망이 잘 드러났습니다. 세월이 훌러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두 사람에 제사를 다 받지 않으셨습니다. 3-5절 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4:3–5 NKRV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직업을 가졌기에 각자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벨의 것은 받으셨고, 가인은 거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물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엘리야의 갈멜산에서와 같이 그것을 다 불로 살라 받으시는 것과 같은 어떤 확증이 있었던 것인 아닐까 하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제물을 받지 않으시자 가인이 분노하는 장면이 더 신중하게 다루어 집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나무라시며 격려해 주십니다. 6, 7절을 봅시다.
창세기 4:6–7 NKRV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를 이기라고 조언해 주십니다. 선을 행하지 않고 불의에 거할 때 죄는 문에 없드려 가인을 집어 삼킬 것입니다. 가인에게는 죄를 다시려야 하는 책임이 주어진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아담의 아들로 태어난 가인은 이미 죄성으로 오염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선악의 기준을 자신이 선정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따라야 할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기준을 만들고 사는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주어졌으나 순종으로 따르지 않는 말씀이 되었던 것입니다.

메시야 없는 삶과 예배는 허무한 것

우리는 본문에서 메시야 없는 삶, 메시야 아닌 다른 것에는 절망 뿐이라는 하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이유는 그가 믿음으로 예물을 드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짐승을 잡아 피흘리는 제사를 드릴 때 자신의 이름에서 드러나는 메시야 없는 삶의 절망을 깨닫고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며 믿음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야 없는 자신의 제사를 드린 가인과 그의 제물은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것입니다.

예배와 삶의 중심이신 예수님

인간은 아담의 범죄 이후 죄성을 가지고 출생한 자들입니다. 인간에게는 아무런 기대와 믿음, 혹은 얻음이 없습니다. 오직 약속하신 메시야에게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삶에서든, 예배에서든 우리는 오직 오셔서 죄들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에수님을 믿고 그리스도만을 소유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타락하여 자신을 믿고 자신의 결과물로 예배하려는 가인에게도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가 이미 죄성에 물들어 있기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을 따릅니다. 참된 예배자, 참된 성도는 약속하신 메시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믿음 가운데 예수의 이름으로 살고, 예수의 이름으로 제사드리는 자입니다.

적용과 결단

이런 까닭에 우리는 예배를 경건하게 준비하되 오직 예수님을 의지하여 예배 드려야 합니다. 살아갈 때도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말씀과 인도하심 대로 순종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죄성이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그로 인해 주신 높아지심만이 나의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이 성도를 받으시고 그 제물도 받아 주시고 영생의 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을 믿고 신뢰함으로 복된 은혜의 길을 걷는 모두가 되시고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여 순종하는 삶을 사시는 청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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