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역사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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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봉독

1 Samuel 25:23–31 NKRV
23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그의 얼굴을 땅에 대니라 24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에게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25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께서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26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도 살아 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27 여종이 내 주께 가져온 이 예물을 내 주를 따르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28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29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30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31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하니라

서론

오늘 이 시간에는 사무엘상 25장의 말씀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지난 8월 수요예배 시간에 ‘말씀과 생각 사이에서'라는 제목으로 사무엘상 24장을 설교했는데
그 설교에 이어 오늘은 25장의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사무엘상 25장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유대광야에 있을 때에 있었던 한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물론 다윗이다.
다윗이 그의 아내 중 하나인 아비가일을 어떻게 만나 결혼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래 아비가일은 나발이라는 사람의 아내였다.
그러나 나발은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죽게 되고,
다윗은 홀로 된 아비가일을 그의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이 아비가일은 훗날 다윗의 두번째 아들인 길르압을 낳게 된다.
오늘 설교의 제목을 ‘동상이몽'이라고 지었다.
‘동상이몽’이라는 사자성어를 잘 아실 것이다.
‘동상’은 같은 침대를, ‘이몽'은 다른 꿈을 의미한다.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같은 처지에 있거나 함께 행동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서로의 생각과 뜻이 같지 않고,
서로 다른 생각과 목표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겉으로는 뜻을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각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본문에 등장하는 나발과 아비가일이라는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이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떠올랐다.
같은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자지만 그 둘은 서로 다른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었다.
오늘 이 시간 이 나발과 아비가일 부부가 걸어갔던 삶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야 할지 돌아보는
은혜의 시간 되기를 소망한다.

본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나발과 아비가일 부부는 ‘마온’이라는 곳에 살고 있었다.
마온은 유대 광야 지역에 있던 한 도시로,
유다 지파의 갈렙이 기업으로 받은 땅인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13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나발은 갈렙의 후손으로 갈렙이 기업으로 받았던 헤브론 인근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발은 부자였다.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었다.
성경은 나발의 부요함이 어떠했는지 2절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1 Samuel 25:2 NKRV
2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
성경은 나발이 ‘심히 부했다'라고 말한다.
엄청난 부자였다는 말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양과 염소의 수를 합치면 4천 마리나 되었다.
그래서 이 양과 염소를 기르기 위해서 따로 농장을 갖고 있었는데, ‘갈멜’에 그 농장이 있었다.
갈멜은 나발이 살던 ‘마온'에서 북쪽으로 헤브론에 좀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성경은 이 부부가 어떤 부부인지를 3절에서 소개하고 있다.
우리 같이 읽어보자.
1 Samuel 25:3 NKRV
3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한 집에서, 한 침대를 사용하는 부부였음에도 남편과 아내의 성품과 성격은 정반대였다.
아내인 아비가일은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웠다.
반면에 남편인 나발은 완고하고 행실이 악했다.
이러한 성품과 성격은 이들의 이름에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아비가일’이라는 이름은 ‘기쁨의 근원,’ 또는 ‘나의 아버지는 기쁘다'라는 뜻이다.
반면 ‘나발'이라는 이름은 ‘어리석다', ‘미련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나발이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의 아내 아비가일이 25절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사무엘상 25:25 (NKRV)
25 …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
이렇듯 나발은 자신의 이름처럼 어리석고 미련한 자일뿐 아니라,
성격이 완고하고 행실이 악한 자였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성품은 그의 아내인 아비가일뿐 아니라
그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17절 말씀에서 나발의 하인은 자신의 주인 나발에게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우리가 하는 말에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나발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고집불통에다가 그 성품은 불량했다.
여기서 ‘불량하다’는 말은 쓸모없다, 가치 없다, 악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듯 남편이 나발과 그의 아내인 아비가일은
성품과 성격이 정반대로 서로 달랐지만
그보다 더 큰 차이점은 바로 이 두 사람이 꿈꾸는 것이 달랐다는 점이다.
한 부부였지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서로 달랐다.
성경은 3절에서 나발에 대해 한 가지 사실을 더 언급하는데,
바로 그가 ‘갈렙’ 족속이라는 사실이다.
갈렙이 누구인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바로 믿음으로 ‘헤브론' 땅을 유업으로 받은 인물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지파별로 1명씩 12명을 뽑아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살펴보게 했다.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유다 지파를 대표해서 정탐꾼으로 선발되었다.
이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만이 믿음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자고 이야기했다.
하나님은 이러한 갈렙의 믿음을 보시고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고,
또한 민수기 14장 24절에서는
Numbers 14:24 NKRV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갈렙은 하나님이 주신 이 약속과 꿈을 잊어버리지 않고 45년이나 그의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나이 85세 때에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헤브론'을 기업으로 달라고 이야기한다.
이 때 갈렙은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는 유명한 말을 한다.
Joshua 14:12 NKRV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이 믿음과 꿈대로 갈렙은 아낙 사람들과 싸워 약속의 땅 헤브론을 기업으로 얻게 되었다.
나발은 이 갈렙의 후손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며 살았던 갈렙의 후손이 바로 이 나발이었다.
하지만 이 나발에게는 자신의 조상 갈렙이 꿈꾸었던 그런 꿈과 비전이 없었다.
그의 꿈은 그저 이 땅에서 현재 부귀영화를 누리며 자신의 쾌락과 즐거움을 위해 사는 것이었다.
반면 그의 아내인 아비가일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있었고,
다윗을 통해 하나님이 그 나라를 이루어가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이러한 나발과 아비가일의 ‘동상이몽'을 오늘 본문을 통해 계속해서 같이 살펴보자.
지금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사울을 피해
유대 광야에서 숨어 지내고 있었다.
오늘 본문 25장 바로 앞인 24장에서
다윗은 엔게디 동굴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를 살려주었다.
그 정도 되었으면 사울도 이제 다윗 쫓기를 내려놓을 법한데
26장을 보면 여전히 사울은 다윗을 찾아 죽이려는 마음을 내려놓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사울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던 다윗이기에
여전히 유대 지역의 남쪽인 바란 광야에 숨어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다윗과 그의 일행은 이 곳 바란 광야에서
양과 염소를 치고 있는 나발의 목자들을 만나게 된다.
사실 광야에서 가축을 돌본다는 것은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양과 염소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서는 광야로 데려가 그곳에서 풀을 뜯어먹게 해야 하는데
광야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장소이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이러한 목자의 처지를 잘 알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이 바로 목자 출신이기 때문이다.
막내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 이새의 양을 지키는 자로 살았다.
그가 골리앗과의 싸움을 앞두고 사울에게 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양을 칠 때에 사자나 곰 같은 맹수가 나타나 새끼를 물어가는 일이 자주 있었다.
맹수들이 가축을 잡아먹을 뿐 아니라 목자의 생명도 위협하는 일이 늘상 있었던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도둑과 강도의 위협도 언제든지 있었을 것이다.
좋은 주인이라면 이러한 일이 있을 때
자신의 목자나 하인들이 다치지 않은 것으로 다행으로 여기고 위로하겠지만,
나쁜 주인이라면 잃어버린 양과 염소의 재산상의 손실에 대해
그 책임을 목자에게 물어서 갚으라고 할 것이다.
창세기 31장을 보면
야곱이 자신의 삼촌 라반의 양과 염소를 칠 때에
도둑을 맞거나 맹수에 의해 물려 죽거나 다치게 되면 자기 자신이 다 보충했다고 이야기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발을 보면
야곱의 삼촌인 라반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광야에서 만난 나발의 목자들에게 호의를 베풀며 그들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었던 것이다.
7절 말씀에서 다윗은
나발의 목자들이 자신들과 함께 있었지만 자신들이 그들을 해치지도 않았을뿐 아니라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다윗과 그의 일행이 나쁜 마음만 먹으면 힘으로 목자들의 양과 염소를 빼앗아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숨어다니고 있기에 먹을 것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다른 사람의 재산을 함부로 빼앗거나 훔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뿐이 아니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나발의 목자와 그 가축들을 보호하고 지켜주었던 것이다.
15-16절에서 나발의 하인들 가운데 한 명이 아비가일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1 Samuel 25:15–16 NKRV
15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다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16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나발의 목자들을 도왔다.
그들을 선대했을뿐 아니라 밤이고 낮이고 그들의 담이 되어 그들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숨어 다니는 입장에서 자신들의 몸 하나 간수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선을 베풀었던 것이다.
분명 다윗 일행이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거나 기대해서 그러한 일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던 중 양 털을 깎는 날이 돌아왔다.
양 털을 깎는 날은 농사로 치면 추수하는 날인 것이다.
축제의 날이고 기쁨의 날이다.
그래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이 날 사람들을 초대해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사무엘하 13장을 보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양 털 깎는 날에 사람들을 초대해 잔치를 벌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다윗은 나발이 자기 양 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윗은 이 축제와 기쁨에 동참하기 원했다.
그리고 또한 나발에게 은혜를 입기 원했다.
다윗은 자신의 부하 10명을 나발이 양 털을 깎고 있는 갈멜로 보낸다.
그리고 나발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라고 이야기한다.
5-8절 말씀이다.
1 Samuel 25:5–8 NKRV
5 다윗이 이에 소년 열 명을 보내며 그 소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갈멜로 올라가 나발에게 이르러 내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6 그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7 네게 양 털 깎는 자들이 있다 함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해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8 네 소년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네게 말하리라 그런즉 내 소년들이 네게 은혜를 얻게 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 하더라 하라
다윗은 나발에게 평강, 즉 샬롬이 있기를 구한다.
‘샬롬’을 세 번이나 구한다.
나발에게, 나발의 집에게, 나발이 갖고 있는 모든 소유물을 향해 다윗은 샬롬을 전한다.
그리고 다윗은 그동안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이 나발의 목자들에게 베풀었던 선행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발에게 은혜를 구하며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좀 얻기를 구한다.
어떻게 보면 자존심이 구겨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다윗은 자신이 거느린 600명의 식솔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양식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의 자세는 매우 공손하며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8절을 보면 다윗은 자신의 부하들을 ‘나발의 종이라고,
그리고 심지어 자신을 가리켜 ‘네 아들' 즉 ‘나발의 아들'이라고까지 이야기하면서
나발에게 은혜 입기를 간구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발의 대답이 무엇인가?
10-11절을 같이 읽어보자.
1 Samuel 25:10–11 NKRV
10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지금 나발은 다윗이 누구냐며,
자신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도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호의를 베풀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정말 나발은 다윗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자신의 목자들을 도와주고 그의 재산을 지켜주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 나발이 하는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나발은 다윗이 누구이며,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지 익히 잘 알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나발은 모른 척하며 오히려 다윗을 경멸하고 비아냥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영웅이자 장군으로
‘사울을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는 노래의 주인공이 다윗이었다.
이 다윗에 대한 소문이 나발이 살고 있는 이 마온에도 분명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윗이 지금 사울에게 쫓겨 광야에서 숨어지내고 있다는 소문도 분명 듣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다윗이 도망자와 나그네의 신세로
자기에게 와서 먹을 것을 구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놓고
나발은 다윗을 모욕하고 그의 처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14절 말씀을 보면 나발의 하인은 이러한 나발의 말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모욕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서 나발 스스로는 자신이 다윗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우월감을 즐겼던 것 같다.
그의 말 속에는 다윗에 대한 동정과 측은지심의 마음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
자신의 재산을 지켜주고 보호해 준 다윗에 대한 고마움의 마음이 전혀 없다.
이렇게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는 것에 인색한 나발은 그럼 어디에 관심을 두고 살았을까?
그의 인생의 목적과 꿈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 답은 36절 말씀에 나와 있다.
1 Samuel 25:36 NKRV
36 아비가일이 나발에게로 돌아오니 그가 왕의 잔치와 같은 잔치를 그의 집에 배설하고 크게 취하여 마음에 기뻐하므로 아비가일이 밝는 아침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다가
그의 인생의 꿈은 이 땅에 있었다.
이 땅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것을 위해 재산을 모으고 또 모았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재산을 모았고 그 부요함을 혼자서 마음껏 누렸던 것이다.
나발은 양의 털을 깎으며, 자신의 부가 축적되는 것을 기뻐하며
‘왕의 잔치와 같은 잔치’를 자신의 집에서 열었고,
그 잔치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고 취하며 기뻐했다.
나발의 인생에 하나님은 빠져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에게 안중에 없었다.
그저 나발의 꿈은 현세적이었고, 부와 쾌락을 인생의 목표로 두며 살았다.
그렇다면 나발과 같은 침대를 쓰며 살고 있던 그의 아내 아비가일도
나발과 같은 꿈을 꾸고 있었는가?
아니다.
‘동상이몽,’ 그녀는 나발과는 정반대의 꿈을 꾸고 있었다.
계속해서 본문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아비가일의 꿈

10-11절의 나발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다윗은 크게 노하게 되었다.
이것은 나발이 단순히 음식 나누어주기를 거절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모독하고 경멸했기 때문에 그로 인한 분노로 가득 차게 되었다.
다윗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칼을 차고 무장하도록 명령하고
400명의 부하를 데리고 나발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 때 다윗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는 21-22절이 잘 이야기해주고 있다.
1 Samuel 25:21–22 NKRV
21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22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다윗은 나발이 자신에게 행한 일에 악한 일에 대해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자가 되어 나발을 심판하고 복수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자세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성경은 분명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 손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다윗이 이것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잘 알고 있었다.
다윗은 바로 앞 장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자신의 손에 있었음에도
자신의 손으로 악을 갚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기를 구했다.
그랬던 다윗이 지금 나발의 이야기를 듣고
순간적으로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칼을 들고 일어난 것이다.
물론 사울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라는 특별함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왕이기 때문에 직접 원수를 갚지 못하고, 일반 백성에게는 원수를 직접 갚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아무튼 다윗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나발과 그 집을 치기 위해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은 아비가일은
이 사태를 신속하고 지혜롭게 풀어나간다.
아비가일도 다윗이 누구인지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비가일은 지체하지 않고, 1분 1초를 아껴서 급히 다윗과 그의 사람들에게 줄 음식을 준비한다.
그런데 그 양과 규모가 심상치 않다.
18절을 한 번 읽어보자.
1 Samuel 25:18 NKRV
18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아비가일이 준비한 음식의 양은 다윗이 처음 나발에게 기대하고 요청한 것 그 이상으로
다윗과 그와 함께 하고 있는 600명의 사람들이 한동안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양이었다.
아비가일은 자신이 이렇게 양식을 준비해서 다윗을 만나러 가는 것을
남편인 나발에게 알리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가는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나발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그 길을 막아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윗을 만난 아비가일은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리고 얼굴을 땅에 대며 이야기한다.
우리가 앞에서 읽었던 24절부터 31절의 말씀이다.
아비가일은 그저 지금 죽게 된 상황에서 단순히 살려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아비가일의 말 속에서 그녀가 무엇을 꿈꾸며 바라보고 있는지 알게 된다.
먼저 아비가일은 자기 남편인 나발이 범한 죄악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라고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간청한다.
그리고 나발이 불량하고 미련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자신은 다윗과 나발 사이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다윗 앞에 온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 자신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려는 것을 막으시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28절 말씀이다.
같이 읽어보자.
1 Samuel 25:28 NKRV
28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이 아비가일이라는 여인이
정말 대단한 통찰력과 믿음의 눈을 갖고 있구나 탄복을 하게 되었다.
아비가일은 지금 다윗이 겪고 있는 일을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여호와의 싸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적인 눈으로, 세상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
사울과 다윗의 싸움을 흔한 왕권을 둘러싼 권력다툼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다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윗을 실패자, 패배자, 낙오자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당장 아비가일의 남편인 나발은 다윗을 가리켜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러나 아비가일은 달랐다.
지금 다윗과 사울의 싸움이 육적인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다윗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고 있고, 지금 하나님의 편에 서서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은 비록 다윗이 도망자와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윗을 위해 ‘든든한 집'을 세우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계속해서 아비가일은 말한다.
29-31절 말씀이다.
1 Samuel 25:29–31 NKRV
29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30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31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하니라
아비가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싸우실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윗의 생명을 하나님의 생명 싸개 속에 싸서 그를 지키실 것이라고 말한다.
아비가일은 지금 다윗의 모습이 아니라,
장차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울 그 날을 바라보고 있다.
그 날이 반드시 온다고 믿고 바라고 있다.
그리고 그 날에 그 기쁨을 다윗과 함께 누리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아비가일은 지금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후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스스로 복수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아비가일이 준비한 음식을 받아 다시 길을 돌이키게 된다.
그리고 나발은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듣고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다가
열흘 후에 하나님께서 치심으로 죽게 된다.
정말 하나님께서 친히 원수를 갚으신 것이다.
홀로된 아비가일을 두고 다윗이 그를 아내로 삼고자 했을 때에
아비가일은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전령들의 발 씻길 종이니이다"라고 말하며
다윗을 따라가 그의 아내가 된다.
이후 아비가일은 다윗과 함께 하면서 많은 고난을 함께 겪게 된다.
심지어 아말렉 사람들에게 포로로 잡혀 죽을 고비까지 경험하게 된다.
그럼에도 아비가일이 다윗과 계속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

우리는 지금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발과 같은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아비가일과 같은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는가?
누가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과 인자의 때에 대해 이야기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Luke 17:34–35 NKRV
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이 세상이라는 큰 침대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겉으로 볼 때에는 다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각 사람들이 꾸고 있는 꿈과 비전은 다 다르다.
그 꿈 중에는 허무하게 사라질 꿈도 있지만,
어떤 꿈은 밤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날 꿈도 있다.
데려감을 당할 꿈도 있도 버려둠을 당한 꿈도 있다.
어떤 꿈을 꾸기 원하는가?
우리 모두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꿈을 꾸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길 소망한다.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며 살다가 천국으로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한다.
사라질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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