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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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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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본론

1.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다니엘, 세상 속에서 뜻을 정하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벨론 왕에 의해 착출됩니다. 이제 그들은 바벨론에서 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왕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뜻을 정하는 것을 본문 8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정하다’는 단어는 7절에 ‘벨드사살이라 하고’에서 ‘하고’와 같은 단어입니다. 왕은 자신의 종으로 살아가도록 포로들의 이름을 정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의 뜻과는 다른 뜻을 정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기로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 살기 위해 어떻게 합니까? 본문 8절을 보면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뜻을 정합니다.
[다니엘, 적극적이지 못한 것 아닌가?]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려면 관직을 거부하고 왕의 권위에 불복종하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만 거부할 뿐입니다. 이를 볼 때 우리는 ‘누릴 것을 다 누리고 너무 소극적인 대처 아닌가?’라며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동시대 선지자 예레미야]
다니엘과 동시대를 살았던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입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라고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가 유다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엄청 핍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핍박 받은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인데요, 예레미야 25장 11절에 있습니다. 제가 읽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하나님이 아닌 다른 여러 나라들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벨론에서 70년 간 포로생활을 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물론 다시 돌아올 것도 말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에게 바벨론으로 가서 그들을 섬기며 지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유다 백성들은 심히 분노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일본의 식민지로 살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믿은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그 중 하나가 바로 다니엘입니다. 그래서 그는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따라 바벨론에서 살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 속에 우리를 보내셨다.]
오늘날 우리는 성도면 세상과 등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세상 권력에 휩쓸리지 않고 올곧게 살아내야 한다고 믿는 것이죠. 그래서 중세시대 때는 수도원 운동이, 80-90년대 우리나라에서 기도원 운동이 활발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잠시 세상과 단절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셨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모범이 되시는 그리스도]
이를 우리 예수님께서 잘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세상의 빛(요8:12)이라고 소개하셨고, 제자들을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보내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몸된 교회를 세상 밖이 아니라 세상 안에 세우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 안에서 성도로, 교회로 살아가야 합니다.
[다니엘, 세상 속에서 성도의 삶을 보여주다.]
지금 다니엘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성도로 살아갈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세상 권력에 반대하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살아갈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를 불신하고 교회를 반대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성도로 살아가는 것을 매우 불편하게 여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도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해야 할까요? 아니면 이 세상을 벗어나야 할까요? 우리는 세상이 매우 악할지라도 이곳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성도로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과연 세상이라는 공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성도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다니엘의 지혜를 통해 배워가길 원합니다.]

2. 더럽히지 않는다는 것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부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니엘은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뜻을 정한 후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부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종교적 이유?]
이번에 아프간 내전으로 인해 이슬람 난민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그들을 받아들였고,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들에게 할랄 음식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율법 규정에 따라 음식을 먹기 때문입니다.
[왕과의 언약 관계]
그렇다면 다니엘도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게 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 본문은 명확하게 말씀해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서 11장에서 본다면 왕의 음식과 포도주는 먹는다는 것은 언약 관계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왕이 제공해주는 음식으로 생명을 보전함으로써 왕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다니엘은 비록 바벨론 제국 아래 살고 있지만 자신의 왕, 자신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그는 세상 주관자가 제시하는 관계를 거부합니다. 지금 다니엘은 세상 권세를 인정하나 그의 종이 되길 거부하는 것입니다.
[삶은 변하더라도 절대 지켜야 할 것, 믿음 ]
오늘날 세상은 계속해서 자신의 권세로 우리를 집어 삼키려고 합니다.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믿음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는 세상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과 환경은 정권과 정책에 따라 언제나 바뀔 수도 있고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과 신앙은 절대 변해선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의 주인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코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여겨선 안 됩니다.
[다니엘의 위험한 제안: 채식과 물]
다니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환관장에게 한 가지 답을 제안합니다. 12, 13절에 나오는데요, 왕의 음식과 포도주 대신 채식과 물을 먹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환관장이 두려워하자 10일 동안 마시게 한 후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과 비교해보고 결정하라고 제안합니다.
사실 다니엘의 이러한 제안은 매우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왕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반역자로 몰려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명과 안전보다 하나님의 종으로 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담대히 제안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 세상에 답을 제시하다.]
세상은 오늘날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고 답을 제시합니다. 심지어 우리의 믿음과 신앙까지도 말입니다. 하지만 성도는 그 답을 무조건 따르는 자가 아닙니다. 오직 말씀을 따라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군대 생활을 할 때, 믿음을 지키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저희 부대에는 병사 약 200명 가량 있었는데, 그 중에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저를 포함해서 총 3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2명만 교회에 갔는데, 3명 중 한 명은 말년이여서 교회를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선임이 “너가 교회를 가면 생활관 청소할 사람이 없다고 교회를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너무 고민되었습니다. 선임이 두려웠기도 했고, 저로 인해 생활관 분위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께서 한 가지 지혜를 주셔서 저는 선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6일 동안은 하라는 것 다하고 진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하지만 주일만큼은 교회를 갈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선임이 이 대답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더욱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저는 꿋꿋이 주중 쉬는 시간까지도 활용해서 열심히 생활관 청소도 하고 일했습니다. 그러한 저의 모습에 선임들이 인정해주었고, 결국 주일에 교회 가는 것을 허락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신앙을 포기하고 세상이 주는 답을 따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에 답을 제시하며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 교회 성도들은 이런 성도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3.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위해 길을 예비하신다.

[먼저 앞서 가시는 하나님]
다니엘은 매우 위태롭습니다. 하지만 그가 성도로 살아가고자 할 때, 먼저 앞서 가셔서 일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하나님입니다.
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십니다. 만약 환관장이 다니엘의 제안을 반역으로 보았다면 다니엘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먼저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심으로 그 마음을 변화시키십니다.
[다윗, 목자로 고백하다.]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 부르며 노래합니다. 목자는 양들을 인도할 때, 먼저 앞서 가서 혹시 위험하지 않은지 살핍니다. 그리고 난 후 양들을 인도합니다. 양들은 목자의 인도를 따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를 누립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합니다.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 성도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다.]
세상에서 성도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매우 고통스러워서, 때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냥 세상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성도로 살아갈 때, 역사하실 뿐만 아니라 풍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다니엘의 제안에 따라 10일 동안 다니엘과 세 친구는 채식을 하게 됩니다. 그런 후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과 비교해 보니 오히려 더욱 건강하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단순히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오히려 성도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책임져 주시고 위험과 환난에서 건져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17-20절을 보면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벨론이라 하는 거대한 나라에서 가장 지혜로웠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성도로 살아가는 것이 매우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라고 손가락질합니다. 성도로 살아가면 결코 세상의 성공과 번영을 누릴 수 없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성도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져 주신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도 많이 하면 ‘서울대 간다’, ‘대기업 취직한다’가 아닙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성도로 살아가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은혜와 평강을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성도로 사는 것은 고달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릴 세상으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속에서 성도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성도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자신의 뜻대로 우리를 삶과 신앙을 바꾸고자 답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결코 타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우리에게 고난이 되고, 고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앞서 가 계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도로 살고자 할 때, 그 길을 열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 우리 청년들이,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종으로, 주님의 성도로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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