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마지막 말과 다윗의 용사들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284 views
Notes
Transcript

사도신경

찬송

321장 / 날 대속하신 예수께

기도

성경봉독

2 Samuel 23:13–17 NKRV
13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14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15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17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서론

오늘은 23장의 내용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이야기한다.
첫째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고 둘째는 다윗의 30용사에 대한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와,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는 복된 시간 되기를 소망한다.

본론

1-7절

사무엘하 23:1–7 (NKRV)
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2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4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6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버려질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7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살리리로다
1절부터 7절은 다윗의 마지막 말을 담고 있다.
여기서 ‘다윗의 마지막 말’은 다윗이 남긴 유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죽기 전에 다윗이 남긴 유언은 이어지는 열왕기상 2장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다윗의 마지막 말'은,
이 사무엘서를 마무리하면서 선지자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1절에서 다윗은 자기 자신을 먼저 소개하고 있다.
다윗은 자신이 높이 세워진 자라고 말한다.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라고 이야기한다.
얼핏 보면 다윗이 자기 자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높은 자라고,
기름 부음을 받아 특별한 자라고,
남들보다 노래를 더 잘 부른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교만한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참된 겸손이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것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다윗은 겸손한 자이다.
다윗은 무엇이라 이야기하는가?
높이 세워진 자라고 말한다.
스스로 높아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높이 세워졌다고 말한다.
누가 다윗을 높이 세우셨는가?
누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모든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는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높이 세우셨다고, 그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신을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말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메시야’라는 단어의 뜻이 바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다.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특별한 사명을 위해 택함을 받았다는 뜻이다.
왕, 선지자, 제사장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기름 부음을 받고 그 직분을 감당했다.
또한 이들은 왕 중의 왕이요, 선지자 중의 선지자요, 제사장 중의 대제사장이신,
참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와 같은 자들이었다.
지금 다윗은 자신이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일을 그대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이 노래 잘 하는 자라고 이야기한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재능과 달란트를 있는 그대로 고백하는 것이다.
다윗은 진정 노래 잘 하는 자였다.
다윗이 지은 수많은 시와 노래와 찬양이,
하나님을 향한 아름다운 고백이 되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그 달란트와 재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렸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진정한 겸손인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들이 되길 원한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자인지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대로 나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들과 하나님이 나에게 행한 일들을 고백해야 한다.
이러한 겸손함이 우리 모두에게 있길 축복한다.
다윗은 여호와의 영, 즉 성령 하나님의 감동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예언의 말씀이자, 축복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어떠한 지도자가 참된 지도자인지 제시하신다.
어떠한 지도자와 왕을 하나님은 원하시는가?
바로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이다.
요즘 우리 시대에도 ‘정의'와 ‘공정'이라는 단어가 화두이다.
그만큼 정의롭게 공정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반증일 것이다.
정의와 공정을 외치지만, 죄성을 지닌 우리 인간의 본성상
자신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정의를 외면하고 눈 감을 때가 많다.
힘과 권력을 가지고 높은 지위에 있는 지도자들의 경우,
자신에게 있는 힘과 권력을 정의와 공정을 위해 사용하기보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사용하려는 유혹을 받기 쉽다.
하나님이 원하는 지도자는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이다.
이 땅에 이러한 지도자들이 많아지기를 소원한다.
그래서 억울하고 소외당하는 자들이 없기를 소원한다.
이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지도자의 덕목은 이것 하나로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힘과 권력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경외하는 가운데,
자신에게 맡겨주신 백성과 국민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지도자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지도자를 축복하신다.
이러한 자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을 것이다.
구름이 없이 맑고 화창한 아침 같을 것이다.
비를 맞으며 햇빛을 받아 땅에서 솓아 자라나는 새 풀과 같을 것이다.
다윗은 바로 자신의 집이 그러한 집이 될 것임을 축복한다.
이것은 그저 인간적인 기대와 바램이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따른 것이다.
5절을 읽어보겠다.
2 Samuel 23:5 NKRV
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하나님은 다윗과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다.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이 무엇인가?
2 Samuel 7:12–13 NKRV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다윗은 이 언약을 기억하며 이 언약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언약은 장차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셔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이 세상을 다스리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사 9:7).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성취된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들 되길 축복한다.
이어지는 8절부터 마지막 39절까지는
다윗을 도와 함께 전쟁터에서 싸운 다윗의 부하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을 가리켜 흔히 다윗의 30용사라고 부른다.
이것은 정확히 30명이라는 뜻은 아니다.
마지막 절인 39절에는 그 총수가 37명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8-12절에는 이 30용사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용사 세 명을 소개하고 있다.

8-12절

2 Samuel 23:8–12 NKRV
8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지휘관의 두목이라 그가 단번에 팔백 명을 쳐죽였더라 9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다윗과 함께 한 세 용사 중의 한 사람이라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거기에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고 10 그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그의 손이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치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 백성들은 돌아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 11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기가 올라 거기 녹두나무가 가득한 한쪽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12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들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
요셉밧세벳과 엘르아살과 삼마,
이 세 사람이 바로 다윗의 용사 중 가장 용맹한 부하들이었다.
성경은 이 세 사람이 얼마나 다윗에게 충성된 자들이었는지
한 가지 사건을 통해 이야기해준다.
13-17절 말씀이다.

13-17절

2 Samuel 23:13–17 NKRV
13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14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15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17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이 말씀은 다윗이 아둘람 굴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아마 다윗이 아직 왕이 되기 전, 사울에게 쫓기고 있을 때의 사건이거나,
아니면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여 예루살렘을 정복한 바로 직후에 일어난 일로 보인다.
이스라엘을 공격해 쳐들어온 블레셋 사람들이 베들레헴을 빼앗고 그곳을 요새로 삼았다.
베들레헴이 어떤 곳인가?
바로 다윗의 고향이 아닌가?
자신의 고향인 베들레헴을 적들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에 다윗은 무척 괴로웠을 것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다윗은 마음의 소원을 입밖으로 이야기한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어렸을 때 마시며 즐겼던 그 고향의 물 맛을 그리워한 것이다.
어쩌면 이제 더 이상 그 물 맛을 맛볼 수 없다는 생각에 그리움은 더 컸을 것이다.
그 그리움에 어쩌면 혼잣말처럼 이야기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세 용사가 들었다.
요셉밧세벳과 엘르아살과 삼마, 이 세 용사는
다윗의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적진 한복판을 뚫고 들어가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 가져 온다.
어찌보면 참으로 어리석고 무모한 행동처럼 보인다.
아니 사실이 그러하다.
물 한 모금 때문에 목숨을 건다는 것이 이성적으로 맞는 말인가?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겠는가?
그런데 이 세 용사는 기꺼이 이 일에 자신들의 생명을 걸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들이 모시고 있는 다윗을 위해, 그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충성심의 밑바탕에는 다윗을 향한 무한한 신뢰가 깔려 있었을 것이다.
이들이 가져온 베들레헴을 물을 받아 든 다윗은
자신이 무심코 한 말에 자신이 아끼는 부하들의 생명을 잃을뻔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한다.
그 물은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라고 말하면서,
그 물을 자신이 마시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부어 드린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많아 보인다.
자신의 안위와 이성적인 판단을 뛰어넘어 충성하는 세 용사의 충성심,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다윗의 리더십,
이 모든 것이 우리 시대에 정말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어지는 18-39절의 말씀에는
이 세 명 외에 30용사에 속한 인물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다.

18-39절

2 Samuel 23:18–39 NKRV
18 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이니 그는 그 세 사람의 우두머리라 그가 그의 창을 들어 삼백 명을 죽이고 세 사람 중에 이름을 얻었으니 19 그는 세 사람 중에 가장 존귀한 자가 아니냐 그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그러나 첫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20 또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이니 그는 용맹스런 일을 행한 자라 일찍이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이 올 때에 구덩이에 내려가서 사자 한 마리를 쳐죽였으며 21 또 장대한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의 손에 창이 있어도 그가 막대기를 가지고 내려가 그 애굽 사람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그를 죽였더라 22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23 삼십 명보다 존귀하나 그러나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다윗이 그를 세워 시위대 대장을 삼았더라 24 요압의 아우 아사헬은 삼십 명 중의 하나요 또 베들레헴 도도의 아들 엘하난과 25 하롯 사람 삼훗과 하롯 사람 엘리가와 26 발디 사람 헬레스와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와 27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과 후사 사람 므분내와 28 아호아 사람 살몬과 느도바 사람 마하래와 29 느도바 사람 바아나의 아들 헬렙과 베냐민 자손에 속한 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잇대와 30 비라돈 사람 브나야와 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힛대와 31 아르바 사람 아비알본과 바르훔 사람 아스마웻과 32 사알본 사람 엘리아바와 야센의 아들 요나단과 33 하랄 사람 삼마와 아랄 사람 사랄의 아들 아히암과 34 마아가 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벨렛과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35 갈멜 사람 헤스래와 아랍 사람 바아래와 36 소바 사람 나단의 아들 이갈과 갓 사람 바니와 37 암몬 사람 셀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무기를 잡은 자 브에롯 사람 나하래와 38 이델 사람 이라와 이델 사람 가렙과 39 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총수가 삼십칠 명이었더라
이 이름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다윗 주변에 참으로 충성되고 용맹한 부하들이 많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인물이 누구인가?
헷 사람 우리아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밧세바의 남편이다.
다윗이 자신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전쟁터에서 죽게 만든 그 우리아이다.
그도 다윗의 30용사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이스라엘이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지만,
그 과정 속에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을 다윗 손에 붙여주시고 함께 그 일을 이루어가게 하셨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이 명단을 살펴보면
다양한 출신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윗이 속한 지파인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각 지파와 전 지역에서 뛰어난 용사들에 다윗과 함께 했다.
그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뛰어 넘어 암몬과 헷과 같은 이방 민족의 사람도 그와 함께 했다.
다윗은 출신과 지역을 뛰어넘어 사람들을 세우고 그들과 함께 했던 것이다.
이러한 다윗의 인재등용법도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임에 틀림없다.

결론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참된 겸손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도자의 모습이 무엇인지,
바람직한 리더십과 충성심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이 말씀을 통해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는 자들이 되길 축복한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