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8] 등잔대와 기구들이 주는 교훈

출애굽기, 성막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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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30 수요기도회
찬송 206 502 510
기도 백인숙 권사
본문 출 25:31-40 (구p.120)
제목 등잔대와 기구들이 주는 교훈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성막의 유일한 문인 동편 문을 통해 성막 안뜰에 진입한다. 여기서 번제단과 물두멍을 만난다. 그리고 4겹으로 이루어진 성소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 때에 예배자의 정면에는 분향단이 있고, 그 뒤에는 휘장이 있으며, 오른 편에는 진설병 상이 있고, 그 맞은편인 예배자의 왼편에는 오늘 살펴볼 등잔대와 기구들이 놓여 있다. 두꺼운 4겹의 덮개로 덮여 있어서 도무지 조금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성소 안에는 그곳을 밝혀줄 유일한 등불, 바로 등잔대가 있었다.

1. 명칭의 뜻

오늘 본문의 말씀인 31절을 보면 ‘너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쳐 만들되...’ 라고 하신다. 등잔대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메노라’ 라는 단어는 ‘불’, ‘불타다’ 라는 단어인 ‘누르’ 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여 ‘불의 받침대’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의미가 확장되어서 ‘등불, 등잔’ 등의 의미가 되었다. 이 등잔대는 성소 입구에서 안으로 들여다 보았을 때, 지성소 휘장 앞 왼편에 위치하였다. 성막의 입구가 항상 동쪽을 향하였음을 감안한다면, 등잔대는 항상 성소의 남쪽에 위치했고, 진설병 상과 마주 보도록 배치되어 어두운 성소 안을 밝히 비추되 특별히 맞은 편에 있는 진설병 상을 비추었다.

2. 등대의 재료와 규격과 모양

등잔대의 재료는 무엇인가? 31절을 보면 순금으로 만들되 쳐서 만들라고 하셨다. 그리고 여기에 사용된 금의 양은 39절처럼 등잔대와 불집게, 불똥 그릇을 포함해서 금 한 달란트로 만들었다. 크기에 대해서는 따로 말씀하시지는 않으나 전해지는 유대 문헌에 의하면 인쇄물의 오른쪽 그림처럼 높이는 3규빗(1.5m), 폭은 2규빗(1m) 정도, 그래서 성인 제사장 눈높이보단 아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양에 대해서는 인쇄물의 하단 그림을 참고하며, 제가 정리해 둔 것을 살펴보시면 될 것 같다. 먼저 등잔대는 한 덩이의 금을 쳐서 만들어야 한다. 다른 용품들은 여러 덩이들을 결합하여 하나로 만드는 것들이 있는데 금잔대는 그렇지 않다. 여러 덩이들을 결합하여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한 덩이를 쳐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32절 말씀처럼 가운데 줄기를 중심으로 양 옆 세 가지 씩 만들되 이 양쪽 세개의 가지는 서로 대칭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33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대칭을 이루는 6개 가지에는 각각 잔과 꽃받침과 꽃 세트가 줄기마다 3개씩 들어가야 한다. 그림을 보시면 줄기마다 꽃과 꽃모양의 잔, 그리고 그 잔을 받치는 받침이 3개씩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34절 말씀을 보면 등잔대의 가장 중앙에 있는 곧게 뻗은 줄기는 다른 줄기에서는 3개세트로 구성되어야 하지만, 여기서는 4개 세트가 있어야 함을 말씀하시고, 35-36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가운데 줄기에서 양 갈래로 줄기가 뻗을 때 이 뻗는 가지 아래에 꽃받침이 있도록 하셨다. 또한 37절에서 각 뻗은 줄기 가장 위에 등잔을 두어 총 7개를 둘 것을 말씀하신다.

3. 불집게와 불똥 그릇

이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등잔대에 사용할 불집게와 불똥그릇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불집게는 등잔의 심지가 나 타게 되면 심지를 자르고 정리하는 도구이고, 불똥그릇은 등잔의 다 탄 심지를 담아 옮기는데 사용하는 용도였다. 이 두 도구들을 만들게 하신 이유는 성소 안이 재와 티끌로 더러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성소를 정결하게 유지하는 차원에서 불집게와 불똥그릇 역시 다른 성소의 도구들처럼 귀하고도 중요한 성물이라 할 수 있다. 성막의 기구들을 만들 때 그 재료들을 보면 중요한 순서대로 금, 은, 놋 등이 사용된다. 순금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38절을 보시면 불 집게와 불똥그릇도 무엇으로 만들라 하시는가? 순금이다. 이는 불집게와 불똥그릇 역시 그만큼 그 역할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4. 등잔대 운반방법

그렇다면 등잔대는 어떻게 운반하는가? 민4:9-10 의 말씀을 보면, ‘청색 보자기를 취하여 등잔대와 등잔들과 불집게들과 불똥그릇들과 그 쓰는 바 모든 기름 그릇을 덮고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를 해달의 가죽 덮개 안에 넣어 메는 틀 위에 두고’ 이 말씀을 인쇄물에 순서대로 정리해 두었는데, 먼저는 등대와 등대에 관계된 모든 것들을 청색 보자기로 싼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해달의 가죽으로 덮는다. 그 다음에 메는 틀 위에 올려두고 나르는데, 여기에 메는 틀은 기구 운반을 위한 들 것을 말한다. 성물 운반에 메는 틀을 사용하는 것은 오직 등잔대 뿐이다. 왜냐하면 등잔대는 채를 꿰는 고리가 없기 때문이고, 제사장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라도 등잔대를 직접 만질 수 없었다.

5. 살구꽃 형상의 의미

오늘 본문에서 등잔대는 어떤 꽃의 형상으로 만들라고 하시는가? 33절을 보면 ‘살구 꽃 형상’이다. 이 단어를 두고 살구 꽃이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다른 번역본에서는 아몬드 꽃이라고도 번역하기도 하는데, 사실 이 꽃이 무엇이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본문에 ‘살구 꽃’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솨케드’인데, ‘지키다, 경계하다’ 라는 의미의 ‘솨카드’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지키다’ 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어서 ‘살구 꽃’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니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이해가 잘 되질 않는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은 ‘살구 꽃’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에 ‘지키다, 경계하다’ 라는 의미의 뉘앙스를 떠올렸던 것 같다. 이 두 단어가 함께 등장하는 성경 본문이 있는데, 말씀을 찾아보자. 렘1:11-12 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 환상을 보여주셨다. 왜 하필 다른 나무도 많은데 살구나무를 보여주셨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지켜 그대로 이루시겠다’ 하는 것이다. ‘솨케드’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의 모든 말씀을 ‘솨카드’ 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른 꽃의 형상이 아니라 솨케드, 즉 살구 꽃의 형상으로 만들라 하신 의도가 무엇일까? ‘지키다, 경계하다’라는 의미에서 살구꽃 이라는 단어가 유래한 것처럼, 모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언제나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게끔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말씀하신 바를 친히 이루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섬길 때 그분 앞에 겸손히 엎드려져야 하고, 또한 때로 이 땅에서 하나님만을 섬기고 예배할 때에, 대적들에게 둘러 쌓이고, 피할 길이 보이지 않으며, 여러 기근과 고난을 만나 괴로운 시기를 지날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언약을 이루시는 분이시기에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6. 등불 관리

등잔대는 말 그대로 등불이 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알콜램프를 생각해보라. 램프가 계속해서 활활 타오르기 위해서는 심지도 있어야 하고, 심지로 공급되어 계속적으로 불타오를 수 있도록 기름이 필요하다. 등잔대도 마찬가지이다. 말씀을 찾아보자. 출 27:20-21 이다.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이 말씀을 잠시 펴두라. 여기서 두 가지의 강조점이 있다. 첫 번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순수한 감람유를 가져오게 하라’는 것이다. 20절을 보면 ‘명령하여... 가져오게 하고...’ 이 단어는 보편적인 지시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와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주로 특정한 인물에게 특별한 일을 명령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특별히 이 단어들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 아니라 반드시 복종해야만 하는 강력한 명령을 나타낼 때에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서 출25:2 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짓기 위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예물을 가져오게 할 것을 모세에게 명하셨다. 여기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라’ 라는 단어와 방금 읽은 출27:20 의 ‘명령하라’는 단어가 서로 다르다. 전자는 강제성이 없는 자발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후자는 자발성 보다는 강제성을 드러내는 단어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유를 가져오게 하라’ 는 말씀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명령이다. 왜 그러한가? 다른 예물들은 단회적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지만 감람유는 그렇지 않다. 이 등불은 계속해서 불타야 하므로 이에 필요한 감람유 역시도 계속적으로 보충해야 했기에 강제적인 명령으로 주셨다. 이 명령이 강제적이라는 사실은 곧 이스라엘 회중에게 이 기름이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신 것이다. 항상 기름을 준비해야 하는 책임,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기름을 공급해야 하는 의무가 회중에게 부여된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어떤 기름을 준비해야 하는가? 20절을 보면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이다. 순수한 기름이란 무엇 하나 혼합되지 않은 순도 100%기름이다. 성별의식에 사용하던 관유와는 달리 어떠한 향품도 여기에 섞어서는 안되었다.
이어서 두 번째 강조점은,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두라’는 것이다.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하신다.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두라는 말씀은 한번 켜진 이 등불은 결코 꺼지지 않도록 언제나 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이 계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고 명하신다. 등불이 타오를 수 있도록 순수한 기름을 준비하여 드리는 것은 일반 백성들의 의무이고, 그 기름으로 불이 꺼지지 않도록 제 때 기름을 공급하고, 심지와 불똥 등을 잘 정돈하여 등불이 꺼지지 않고 항상 잘 타오를 수 있게 하는 것은 제사장의 몫이었다.

7. 등잔대와 기구들이 주는 교훈

그렇다면 등잔대와 기구들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가? 성소는 외부로부터 어떤 빛도 들어올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이런 깜깜한 어두움 속에서 성막 안을 밝히는 유일한 빛은 오직 등잔대 뿐이었다. 출25:31 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등잔대를 만들라고 명령하시는데, 여기에 인칭대명사가 사용이 된다. 등잔대는 사물이기 때문에 대명사를 사용해서 이를 받을 때에는 ‘그것의 밑판과 그것의 줄기와 그것의 잔과 그것의 꽃받침과 그것의 꽃’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인칭대명사를 사용한다. 이는 등잔대가 곧 인격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를 살려서 번역을 하자면 31절은 이러하다. ‘너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쳐 만들되 그것의 밑판이 아니라 그의 밑판과 그의 줄기와 그의 잔과 그의 꽃받침과 그의 꽃을 한 덩이로 연결하고’ 이다.
인격을 가진 등잔대, 누구를 가리키는가? 요8:12 말씀에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등잔대는 세상에 빛으로 오신 유일하신 참 빛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요1:1 에서는 말씀이라고 계시하셨다. 이를 두고 다윗은 이렇게 증거하기를,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곧 말씀이 빛이라고 증거하였다. 여기까지 정리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며 또한 세상을 비추시는 참된 생명의 빛이시다. 빛이요 말씀이신 주님은 이 촛대를 교회로 연결시키시는데, 계1:20 에서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라고 말씀하신다. 촛대가 교회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성소에 비치된 등잔대가 말씀이자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킴과 동시에 교회를 상징한다? 이러한 해석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여러분, 빛을 발하는 기능으로서 등잔대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하실 것이다. 그런데 이 등잔대가 또한 교회를 상징한다는 것은 등잔대의 모양과 관계된 것이다. 등잔대의 모습을 생각해보라. 등잔대는 한 가운데로 곧게 뻗어있는 줄기를 중심으로 좌우 3가지씩 총 여섯개의 가지가 뻗어있다. 등잔대의 모양은 나무 모양이고, 이러한 등잔대는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포도나무 비유를 온전히 보여주고 있다. 요15:4-5 말씀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라고 하셨다. 주님은 등잔대의 가장 중심가지가 되신다. 그리고 이 땅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인바 된 가지이다.
수국은 토양에 따라 꽃 색상이 변한다고 한다. 토양이 강한 산성일수록 파란색을 띄고, 알칼리성 토양일수록 붉은 색을 띈다. 이러한 성질로 인하여 수국의 꽃의 색을 통해서 그것이 심겨진 토양의 성질을 유추할 수 있다. 만일 파란 꽃잎을 띄고 있으면 그 땅이 산성이구나 하고 추측할 수 있다. 이것은 식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뿌리내린 곳이 어디인가는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우리의 신앙이 참된 말씀이시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인 바 되어 있어야 하는데, 예수 외에 다른 무언가에 접붙여진 자들은 그들의 신앙 가운데 반드시 드러날 수 밖에 없다. 돈에 접붙인 자들은 돈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고, 명예에 접붙인 자들은 명예로 드러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낼 수 없다. 왜인가? 예수 외에 다른 무언가에 붙어버렸기 때문이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저들은 얽히고 섥혀서 우리와 한 몸 한 가지를 이룬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반면 말씀이자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접붙여진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양분을 받아 먹고 그의 안에서 자라간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양분을 받아먹기 때문에 나 혼자서는 결코 맺을 수 없던 선한 결실들을 맺기 시작한다. 도무지 내 안에 선한 것이 없고, 의로울만한 것이 없는데 선한 결실들이 맺혀져간다. 나는 자격이나 공로가 없음에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기 시작한다. 내 속에서 성령의 열매들이 맺혀져 간다.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가능한가? 내가 예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께 접붙인 바 되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의 선행 또한 내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이다. 내 안에 점점 더 거룩함을 닮아 가는 과정도 내 공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의 공로이다. 내가 자랑할 것은 오직 예수 뿐이다. 나의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그리스도께 접붙이셔서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 안에 선한 일들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란다.
두번째 교훈은,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등잔대의 빛은 기름이 타서 내는 것이다. 빛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는데, 그리스도의 의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이에 대해 사도 베드로는 행10:38 에서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다고 증언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의 원천은 하나님께서 기름 붓듯 부어주신 성령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즉, 기름은 곧 성령님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회중들은 성소 안 등잔대에 사용할 순결한 기름을 직접 준비했다. 최고의 올리브를 선별하여 순도 100% 정결한 올리브오일을 짜내었다. 그러나 그 기름은 유한하다. 언젠가는 바닥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등잔대의 등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은채로 환하게 타올라야 하는데 인간이 만들어낸 불은 영원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준비했던 기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고 완전하며, 영원히 마르지도 않을 기름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성령님은 자신을 태워 하나님의 말씀을 조명해주시고, 하나님 백성들의 길을 비춰주신다.
그리고 이제는 그 성령의 충만함으로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며 살아가게 하신다. 출25:37 의 말씀을 보면,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라고 되어 있는데, 원어로 보면 단지 등잔대의 앞만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등잔대의 앞과 맞은 편과 맞은편 위까지 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인즉 성소의 구석구석을 모두 비추게 하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도 이러한 맥락에서 말씀하셨다. 마5:14 말씀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라고 하셨다. 생명의 빛이신 주님께 접붙여진 바 된 교회는 주님의 빛을 세상 가운데 비추는 자들이다. 세상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드러내는 거룩한 기관이다.
물론 지상의 교회는 완전하진 않다. 죄인들이 모인 곳이라 흠이 있다. 실수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로 접붙여진 교회를 끊어내지 않으시고 여전히 이 세상을 비추는 등잔대로 사용하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란다. 나 자신만을 보면 부족하고, 연약하고, 어리숙한 것 뿐이지만 하나님께서 지상의 교회를 이와 같이 거룩한 등불로 사용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그분의 말씀을 맡기셨다. 그리고 그 말씀을 힘입어 세상을 향하여 죄와 심판을 선언하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만 구원이 허락됨을 선포하게 하셨다. ‘우리 작은 불을 켜서 험한 바다 비추세 물에 빠져 헤매는 이 건져내어 살리세’ 할렐루야! 이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일인가. 오늘도 우리를 빛으로 세우시고 세상을 향하여 비추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세상 구석구석 어두운 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비추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간절히 축복한다.
많은 말씀을 드렸는데, 그 중에 2가지를 꼭 기억하며 합심해서 기도하길 원한다.
교회는 말씀이자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졌다. 우리 교회가, 그리고 교회에 속한 저와 여러분들이 오직 주님께만 딱 달라붙어서 주님으로부터 양분을 받고, 자라가며, 오직 주님으로 인하여 선한 결실들을 맺어갈 수 있길 간구하자.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로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 구석구석에 비추어야 한다.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헤매는 이들에게 밝은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한다. 비전2022를 준비하며, 또한 지역교회로서 이러한 등잔대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길 합심해서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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