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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의 거인들을 죽인 다윗의 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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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

357장 / 주 믿는 사람 일어나

기도

성경봉독

2 Samuel 21:15–22 NKRV
15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16 거인족의 아들 중에 무게가 삼백 세겔 되는 놋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17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을 쳐죽이니 그 때에 다윗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 18 그 후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는 거인족의 아들 중의 삽을 쳐죽였고 19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20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 네 개가 있는데 그도 거인족의 소생이라 21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22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

서론

오늘 본문은 블레셋의 거인들을 죽인 다윗의 용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세월의 흐름 앞에 서 있는 다윗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며 사람들을 세워가시는지를 보게 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와 겸손함을 배우는 시간 되기를 소망한다.

본론

15절

2 Samuel 21:15 NKRV
15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이 이야기의 배경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다시 공격해 왔을 때이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서쪽 해안 평야 지대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침략해 약탈과 살인을 저질렀다.
그들을 막기 위해 다윗은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서' 그들과 싸웠다.
여기서 ‘내려갔다’라는 표현은 지리적으로 그러했다는 말이다.
동쪽에 위치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비롯한 성읍들이 높은 산악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블레셋이 있는 서쪽 해안으로 가면 지대가 점점 낮아져서 내려가게 된다.
다윗은 그의 부하들과 함께 블레셋과 맞서 싸웠다.
언제나 그랬듯이 다윗은 전장의 앞에 서서 직접 전투를 진두지휘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이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했다고 이야기한다.
흔히 ‘체력이 딸린다'라는 표현을 쓴다.
예전에는 거뜬하게 해내던 일들인데,
나이가 들고 힘이 없어지면서 예전처럼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다윗이 누구인가?
천하의 골리앗과 싸워 이긴 자가 아닌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칭송을 받던 인물이 아닌가?
가는 곳곳마다 전투를 승리를 이끌며 이스라엘에게 영광을 안겨준 그가 아닌가?
그런 다윗이 ‘피곤'했다고 한다.
지치지 않을 것 같고, 늘 용맹한 장수로 남아있을 것 같은 다윗이 피곤했다고 한다.
수많은 적들과 싸우느라 잠깐 체력이 바닥이 난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다윗도 피곤하고 늙고 병들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청년과 중년의 때를 지나 이제 노년의 때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생로병사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게 되는 것
죄로 타락한 우리 인간의 운명이다.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피곤이 뭔지도 모르고 밤을 새도 끄떡 없던 10-20대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가 영원한 것이 결코 아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우리는 결코 막거나 멈출 수 없다.
청년의 때가 지나고 어느덧 중년과 노년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예전에는 넉넉히 감당할 수 있던 일들도 조금씩 힘이 부치고 피곤이 쌓이게 된다.
예전에는 또렷이 잘 보이던 것들이 점점 흐려지고 잘 보이지 않게된다.
예전에는 작은 것 하나까지 잘 기억했는데 지금은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과거를 그리워하고 안타까움이 들기도 하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러갔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다.
여러분들을 축복하기 원한다.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에게 건강의 복을 주시기를 축복한다.
강건함을 더하여 주셔서 노년이 더욱 윤택하고 빛나게 되기를 소원한다.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몸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길 축복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받아들여야 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다(히 9:27).
이 땅에 태어나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이다.
그것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하나님은 일반적인 것을 뛰어넘어 능력을 베풀어 주시기도 하신다.
다윗이 청년시절 때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청년이기 이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 역사였다.
갈렙이 85세의 나이에도 강건하여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어,
헤브론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베푸신 축복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사야 40장의 말씀이 있다.
Isaiah 40:28–31 NKRV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길 원한다.
여호와를 앙망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과 능력을 얻어,
매일매일을 힘있게 살아가는 우리들 되기 원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또한 역설적으로 우리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영원하신 하나님, 무한하신 하나님은 결코 피곤하지 않으시며,
지혜와 지식과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이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을 그렇지 않다.
흙으로 지음받은 우리들은 유한한 체력과 유한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러하기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늙고 병들게 되고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이다.
이 지혜와 겸손함이 우리에게 있기 원한다.

16-17절

2 Samuel 21:16–17 NKRV
16 거인족의 아들 중에 무게가 삼백 세겔 되는 놋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17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을 쳐죽이니 그 때에 다윗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
블레셋과의 전쟁터에서 거인족의 아들 중 하나인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였다.
여기서 거인족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라바’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가나안 족속 중 하나였던 ‘르바임' 과 연결되는데,
신명기 2장 10-11절에 따르면 르바임은 ‘강하고 많고 키가 큰'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개역개정판은 ‘거인족'이라고 번역해 놓았다.
‘놉 땅에 거주하는 자’라는 뜻을 지닌 라바의 자손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였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어서,
삼백 세겔이나 되는 놋 창을 들고 있었고, 또 새 칼도 차고 있었다.
삼백 세겔은 요즘 단위로 환산하면 약 3.5kg 정도의 무게이다.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다윗이 청년 시절에 죽였던 골리앗과 비교해 보면 어떤가?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골리앗이 들었던 창 날은 철로 만들어졌고 무게가 육백 세겔, 즉 약 7kg 정도라고 한다.
무게만 놓고 볼 때 골리앗이 든 창은 이스비브놉보다 2배나 더 무거웠다.
또한 무기의 재질을 놓고 볼 때
이스비브놉은 놋, 즉 청동기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골리앗은 튼튼한 철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여러모로 볼 때 골리앗이 외형적으로 이스비브놉보다 더 강력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 골리앗과 이스비브놉을 의도적으로 서로 대비시키고 있는 듯하다.
더 무겁고 강력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골리앗의 체구와 체력이 강하고 강력했다는 의미이다.
청년 시절 무게가 600세겔이나 되고 강력한 철로 만들어진 창으로 무장한 골리앗을 무찔렀던 다윗이다.
그랬던 다윗이 지금은 그것의 절반의 무게 밖에 되지 않는 300세겔,
그것도 철이 아니라 청동 놋으로 만들어진 창을 들고 있는 이스비브놉조차 상대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윗은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다윗은 지쳐 있었다. 피곤했다.
자신을 죽이려 달려드는 적을 감당할만한 힘이 그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인간적인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 있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을 쳐죽였다.
아비새는 다윗의 조카로, 그의 어머니 스루야는 다윗의 누이였다.
아비새는 요압과 아사셀과 함께 스루야의 세 아들 중 하나였다.
다윗의 조카였던 아비새는
그의 삼촌인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부터 그의 옆에서 다윗을 도왔던 인물이다.
사무엘상 26장을 보면 다윗이 자신을 추격하러 온 사울의 진영에 몰래 들어가,
사울의 머리곁에 있던 창과 물병을 가지고 올 때에도 다윗과 함께 자가 아비새였다.
이러한 아비새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다윗을 구해준 것이다.
혼자 하지 않고 함께 일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 중 하나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세워 그를 통해 위기에 빠진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윗 혼자 그 모든 일을 감당하도록 한 것이 아니다.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보내 주셨다.
그리고 다윗이 하던 그 일을 이제 다른 사람들도 감당하도록 하셨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위대한 선지자이자 위대한 지도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세 혼자 그 일을 감당한 것이 결코 아니다.
아니 혼자서는 그 일을 결코 감당할 수 없다.
광야에서 모세 혼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재판하느라 힘들어할 때,
하나님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를 통해 지혜를 주셔서,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같은 백성의 우두머리를 세워
그 일을 나누어 짊어지도록 하셨다.
그리고 모세가 영원히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남아 있었던 것도 아니다.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였지만,
그는 자신의 사역과 사명을 마무리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그의 생애를 마쳤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자리를 여호수아가 이어가게 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이것을 겸손히 인정하며 받아드려야 한다.
때로는 하나님이 능력과 힘을 부어 주셔서 나 혼자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신다.
그러나 많은 경우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합력하여 그 일을 감당하게 하신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있는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고 내려와야 할 때가 온다.
그 상황과 그 때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이고 겸손한 것이다.
위기의 순간을 모면한 다윗을 향해 그의 추종자들, 즉 그의 부하들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17절 하반절이다.
“그 때에 다윗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은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
다윗의 부하들은 지금 진심으로 다윗의 안위를 걱정하며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이 전쟁터에 나와 직접 앞장서서 싸운다면,
그것이 함께 싸우는 부하들에게 얼마나 큰 힘과 용기가 될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전투에서 그것을 충분히 경험한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윗의 몸을 걱정할 때가 온 것이다.
다윗의 체력과 몸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받아드릴 때가 온 것이다.
혹여라도 앞으로 다윗이 전쟁터에서 지금과 같이 위기의 상황을 맞아
다치거나 상하기라도 한다면 그것이 국가적으로 볼 때 더 큰 손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다윗이 직접 싸우지 않더라도
전쟁터에서 청년 때의 다윗 못지 않게 싸울 수 있는 용맹한 장수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자신의 부하들의 마음이 고마웠을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전장을 누비며 마음껏 싸울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사실에 서글픔마저 들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전쟁터에 나가지 않으면 과연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고 순종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이다.
내가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겸손이다.
주변의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지혜이다.
다윗은 그 지혜와 그 겸손이 있었다.

18-22절

2 Samuel 21:18–22 NKRV
18 그 후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는 거인족의 아들 중의 삽을 쳐죽였고 19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20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 네 개가 있는데 그도 거인족의 소생이라 21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22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
비록 다윗은 전쟁터에 없지만,
하나님은 그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들을 보내 이스라엘을 지키고 보호하신다.
십브개, 엘하난, 요나단이 바로 그들이다.
십브개는 후사 사람으로
곱, 즉 게셀에서 블레셋과 전쟁할 때에 거인족의 자손인 삽을 쳐죽였다.
엘하난은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이었는데,
그도 곱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골리앗의 아우였던 라흐미를 죽였다.
성경은 라흐미가 지니고 있던 창 자루가 베틀 채 같았다고 이야기한다.
이 표현은 사무엘상 17장 7절에서 골리앗을 묘사할 때 사용한 표현과 동일한 것이다.
다시 말해 엘하난이 죽인 라흐미도,
그의 형인 골리앗 못지 않게 기골이 장대한 자였다는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듯이, 이제는 다윗을 대신하여 엘하난이 라흐미를 죽였다는 것이다.
다윗이 없는 전쟁터였지만.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지키고 보호하시고 계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인물은 요나단이다.
그 또한 다윗의 조카로, 다윗의 셋째 형인 삼마의 아들이었다.
이 요나단은 가드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각 손가락과 발가락이 여섯 개, 모두 스물 네 개인 거인족의 소생과 맞서 싸우게 된다.
여기서 손가락과 발가락이 보통 사람보다 더 많다는 것은,
그의 힘과 능력이 더 강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소개하는 성경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21절 말씀이다.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무엇이 연상되지 않는가?
바로 다윗이 골리앗을 죽일 때 상황과 동일하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골리앗에 두려워 떨고 있을 때,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소리에 분노하여 일어났던 인물이 바로 다윗이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 외친 말이 무엇인가?
1 Samuel 17:45 NKRV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지금 그 다윗의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그의 조카였던 요나단이 이어받아 적을 무찌록 있는 것이다.

결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각 시대와 장소마다 하나님의 사람을 세워 역사하신다.
다윗도 바로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큰 일을 이루셨다.
그리고 이제 한 시대가 지나고 다음 세대가 다가오고 있다.
비록 다윗은 노년이 되어 전쟁터에서 물러나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새로운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되길 원한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 되길 원한다.
말씀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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