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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사와 므리바

광야의 반란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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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만 장군의 이야기에 대해서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나아만 장군은 나병환자였는데, 자신의 종이었던 이스라엘의 어린 소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병을 고쳐달라고 찾아갔습니다. 그의 생각으로는 자신이 직접 엄청난 재물을 들고 이스라엘로 간 것은 엄청난 겸손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강대국 의 군대장관이 약한 나라의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직접 많은 재물을 들고 찾아갔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의 기대와 달리 엘리사는 나오지 않았고, 기도도 해주지 않았고, 그저 종을 통해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 곱 번 씻으라는 말만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아만은 화가 있는 대로 났습니다. 자신의 나라에는 요단강보다 더 좋은 물이 있는데 더 더러운 물이 흐르는 요단강에서 씻으라고 하니 화가 난 것입니다. 자신의 기대로는 엘리사가 나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손을 환부에 대고 흔들어 고쳐줄까 했는데 그런 것들 역시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기대와 달리 그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나아만은 크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잘못된 기대는 화가 나게 하고, 불평과 불만을 가져오게 합니다. 우리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는 그 기대만큼 화가 나고, 불만이 쏟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것 중의 하나도 나의 잘못된 기대입니다. 내가 원하는 방법과 시간과 결과에 대한 기대입니다. 이런 기대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믿음을 저버리고 원망하며 화를 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에 근거하여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또다시 불평하고 원망하는 모 습을 보이게 됩니다. 오늘 이시간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기대의 결과는 무엇이 며,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이 누구인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먼저, 세상에 대한 기대는 불평을 불러옵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하나님을 향해 반란을 일으켜 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기 시작한 이후에 오늘 본문의 사건이 등장합니다. 본문 1절의 말씀에서 모세는 의도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라는 단어를 다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공동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공동체는 하나님 의 명령을 따라 신 광야에서 떠났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며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셔서 그 명령대로 이스라엘이 이동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은 분명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앞서 그들이 반란을 일으켰던 것처럼 식량과 물이 부족한 곳이 광야이기 때문입니다. 홍해를 건넌 이후 가장 먼저 이스라엘이 힘들어 했던 부분도 바로 마라에서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이었고, 곧이어 불만인 것이 식량 문제였다는 것을 볼 때 음식과 마실 물은 광야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이라는 곳에 장막을 쳤다고 말합니다. 르비딤은 지금 현재의 지명으로 페이란이라는 계곡입니다. 즉 이곳은 광야 가운데서도 물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민족이 있는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아시스가 있는 곳이었고 사막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곳이 바로 르비딤이라는 지역이었습니다. 얼마나 물이 풍부했는지 르비딤 골짜기에는 종려나무와 버드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지난 주 말씀드린 것처럼 저도 광야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광야는 정말로 풀을 보기도 힘들었고, 물이 흐르는 곳은 찾아보아도 찾기도 힘든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이드가 일부러 광야 가운데 있는 계곡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넓은 광야 가운데서 물이 많지는 않지만 정말로 계곡으로 물이 흘렀고 그 물 주위로 나무가 자라는 그런 장소가 광야에도 존재했습니다. 물이 있는 곳은 광야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고 알려진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르비딤에 가면 오아시스가 있고 물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르비딤 골짜기로 향하는 그 길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갔을 것입니다. 물이 많은 그 계곡으로 가는 길이 기뻤고,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기대를 가지고 왔는데 르비딤 골짜기에서 물이 있는 곳으로 백성들은 갈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직후에 그 이유가 나오는데, 바로 아말렉 족속이 르비딤의 물이 풍 부한 곳에 이미 진을 치고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황량한 부분에 진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기대는 결국 불평의 원인이 되었고, 이는 곧 반란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반란 사건은 다른 반란 사건과 조금 차이나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일방적으로 원망을 듣는 것이 아니라 모세와 백성 간에 서로 다투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그냥 말다툼하는 정도의 다툼이 아니었습니다. 불평이나 원망보다 더 심각한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법적인 문제가 제기되기 전 상황에서 다투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런 백성들의 불만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의 능력을 힘입어 모세가 여러 기적을 행하는 것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모세에게 그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백성들이 정당한 방법으로 물을 요구했다면 모세를 중보자로 인정하고 ‘물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어야 했습니다. 비록 이들이 물을 요구하는 것 자체는 정당하다고 여겨질 수 있었지만, 이들의 행동이 반란으로 여겨진 것은 그 방법과 불만의 내용이 불신앙적 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백성들의 태도에 모세는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2절 하반절에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백성을 책망한 것입니다. 먼저 ‘어찌 하여 나와 다투느냐’라고 말한 것은 너희가 아무리 나에게 말한다고 할지라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에게는 능력이 없는데 나에게 지금 이렇게 불평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백성들은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와 함께 하시는지 시험 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조건에 맞추어서 신을 섬기는 이방인의 태도입니다. 정말 불신앙적인 태도를 백성들이 보인 것입니다. 백성들은 모세의 책망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물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앞서 만나 사건 때와 같이 백성은 모세를 향해 원망의 말을 내뱉습니다. 3절 하반절의 말씀입니다.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 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모세가 애굽에서 잘 살고 있던 자신들 을 굳이 거기서 인도해 내어서 광야에서 물이 없어 자신들과 그 자녀들과 가축까지 목말라 죽게 만든다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 것 을 직접 눈으로 몸으로 경험한 자들이었습니다.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넜으며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시는 기적을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지금도 그들 앞에는 구름기둥이 그들의 길을 인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짐 받은 그 출애굽의 역사를 경험했지만 그 의미를 백성 들은 전혀 몰랐고 믿음의 가치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괜히 예수 믿어가지고 이런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고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과 현실적인 필요에만 민감하게 반응할 뿐이지 믿음으로 미래를 바라보며 이 문제에 대처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다가올 때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에 너무 많은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기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에 대한 기대의 결과는 결국 불평과 원망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지는 모든 기대는 결 국 헛된 기대이기에 우리를 실망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줄 것이라 여기는 세상에서의 모든 기대는 우리에게 실망을 주고, 그 기대를 원 망으로 바뀌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참된 기대는 어디로부터 옵니까. 우리의 참된 구원은 어디에서 오게 되는 것입니까?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백성들은 세상에 기대를 가지고 르비딤 골짜기의 오아시스를 기대하며 갔지만 결국 실망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기대하며 자신들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이 잘못된 기대의 결과로 원망을 쏟아내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소연하다시피 부르짖었습니다. 4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어떻게 백성들을 다루어야 할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하소연한 것입니다. 얼마나 상황이 급박했는지 4절 하반절에서 모세는 백성들이 조금 있으면 자신에게 돌을 던지겠다 고 말합니다. 당대 사회에서 사람을 돌로 쳐 죽인다는 것은 그 사람이 공동체의 생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백성은 모세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목말라 죽게 하는 그런 공동체에 위협이 되는 인물로 판단하고 그에게 돌을 던질 것처럼 모세에게 강하게 항의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반응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모세가 혹시 돌에 맞아 죽는 변을 당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반응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만나 사건 때와 같이 백성의 반항적인 태도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십니다. 5절과 6 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 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행할 기적의 증인으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데리고 가는데 나일 강을 쳤던 그 지팡이를 가지고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나일 강을 쳐서 그 강을 피로 변하게 했을 때 사용한 지팡이를 가지고 가라고 하심으로써 백성에게 놀라운 사건을 다시 생각 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백성들도 모세의 그 지팡이를 보고 아마 기대했을 것입니다. 불안해했던 모세에게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그 앞에 서 계실테니 그저 가서 반석을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 하면 그 반석에서 물이 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맛사와 므리바 사건은 참 이상하게 끝이 납니다. 6절 하반절을 보시면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는 말씀으로 사건이 마무리가 됩니다. 성경을 읽는 우리의 기대는 반석에서 물이 많이 나와 백성들과 가축들이 충분히 마셨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요한 결과를 명백하게 언급하지 않은 것은 본문의 강조점이 물이 나오는 그 기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맛사와 므리바라는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믿음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물이 나왔다라는 언급은 없지만 모세가 그대로 행했다는 말을 볼 때 모세의 순종에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성취하시고 반석에서 물이 나왔을 것입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어떤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반석에서 물이 나왔던 것입니다. 광야라는 황량한 환경에서 하나님께서 생명 을 소생시킬 맑은 물을 공급해 주심을 백성들이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 때 백성들은 오직 구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믿어야 했습니다.
2018년 말부터 2019년 초까지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을 뜨겁게 달구었던 한 드라마가 있습니다.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입니다.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서 사는 스카이 캐슬이라는 주거단지 안에서 살아가는 명문가의 일상을 다룬 드라마인데 우리나라 학구열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배우 김서형씨가 맡은 배역이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역할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 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이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직업 입니다. 이 때 이 김서형씨가 담당하는 아이의 부모가 불안해하자 그에게 했던 아주 유명한 명대사가 있습니다. “어머니,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저를 믿는다는 건 어떤 상황이 오든 두려워하지 않고 반드시 최고의 결과를 보리라 기대하시는 겁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입시의 결과를 이야기하며 성적 에 관한 것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맡기라는 것입니다. 불안하더라도 불안해하지 말고 내 이전의 작업들을 기억하며 전적으로 자신을 믿고 맡기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어야 했습니다. 구원이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믿어야 했습니다. 때론 불안하기도 하고, 내 눈 앞에 펼쳐진 상황들로 인해 의구심이 든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그 믿음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는 반석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은혜는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반석을 ‘신령한 반석’이라고 말하며 그 반석이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고 린도전서 10장 4절 말씀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반석이 곧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는 광야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 그리스도는 반석으로서 이들에게 물 을 주심으로써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결과 반란으로 심판 받아 마땅한 그 이스라엘 백성이 죽음의 땅 가운데서 생명의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백성들이 만나 사건에서와 같이 반란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은 것은 그들이 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분명하게 믿음을 버리는 행위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믿음 없는 자기 백성을 심판하지 않으신 것은 아직까지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관계가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하나님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하나님께서 참으시고 인내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해 반란을 일으킨 백성들의 불신앙적인 태도는 역사에 길이 남겨서 후대를 위해 신앙적 교훈이 되게 7절 말씀을 기록하셨습니다. 르비딤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그 지역에 ‘다투다’라는 의미의 ‘므리바’와 ‘시험하다’라는 의미의 ‘맛사’라는 별칭을 더하셔서 대대로 이스라엘의 불싱앙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에게서만 우리의 구원이 온다는 사실을 정 말로 신뢰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그 상황과 상관없이 그 상황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금신상에 절하지 않아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들 어가면서 했던 말이 있습니다. 다니엘 3장 17-18절 말씀입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 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들 앞에 닥쳐온 상황이 어떠하든 전적으로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을 기대하며 구원 자 하나님을 신뢰한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대한 기대는 결국 실망을 불러오고 원망의 원인만 될 뿐입니다. 내가 잘못 기대해 놓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신앙적인 행동을 보이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을 불러올 뿐입니다. 이제는 세상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구원의 반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봅시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심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모든 기대를 예수님께로 돌립시다. 그리하여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반란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죽음 가운데서 구원하셨고 예수님 재림의 그 날에 완전하게 구원해 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삶,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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