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추라기 사건

광야의 반란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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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 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것이 엄청난 이슈가 되었습니다. 중국의 우한 지역에서 발생한 폐렴을 가리키는 것인데, 전염자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현재 발표된 내용은 우리나라에만 확진 환자가 4명이고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112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오늘 오전 9시를 기준으로 발표된 자료는 우한 폐렴이 18개국에 퍼졌는데 확진 환자가 벌써 6천명을 넘었고, 사망자는 132명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전염병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전염병에 감염된 사람 근처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감염이 되고, 감염이 된 이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전염병과 비슷한 것이 바로 죄 라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정말 전염병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염병과 같은 죄에 빠진 세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를 잘 대처하지 못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세상은 우리를 죄에 빠지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앞선 다른 반란 사건들과는 달리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다른 주동자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반란이 일어나게 만든 주동자는 4절 말씀에 따르면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 가운데 섞여서 살아가던 다른 인종들이 반란의 주동자라는 것입니다.
반란의 주동자도 주동자이지만 여기서 우리가 사뭇 놀라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무리 가운데 다른 민족들이 섞여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이스라엘 중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반란을 주도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비이스라엘계 사람으로서 공동체의 주류를 형성하지 않는 어중이떠중이와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이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같이 따라 나온 “수많은 잡족”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2장 37-42절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중 38절 말씀은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라고 기록합니다. 즉 출애굽 때부터 함께 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비주류였던 그런 잡족들이 반란의 주동자였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무리 가운데 어떤 지위는 없었지만 영향력은 가지고 있던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어느 날 탐욕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탐욕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확산되어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들의 탐욕이 전염되어 이스라엘도 울면서 탐욕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인간의 욕구와 관련된 것에는 쉽게 영향을 받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탐욕을 옆에서 보고 듣고는 영향을 받아 그들을 따라 탐심을 품고 불평했습니다. 그 불평의 내용은 고기가 먹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불평을 한 것은 얼마나 세상이 우리를 죄에 빠지게 하고, 또 한 번 가지게 된 탐심이 얼마나 우리의 눈을 가리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축을 잡아서 고기를 먹는 것은 일상적인 메뉴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절기 때나 잔치와 같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만 고기를 먹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그런 불평을 한다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영향을 받아 탐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탐심은 이스라엘의 눈을 가려 불평과 죄에 깊게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죄로 인해 이스라엘은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기억하는 아이와 같은 모습을 가지고 불평합니다. 그들은 지 금 과거에 애굽에서 겪었던 그 불행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탐욕에 사로잡혀서 과거의 생활을 풍요롭게 여기며 그것을 동경하면서 불평합니다. 출애굽기 2장 23절은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제 고된 노동의 기억은 구석으로 밀어버리고 그저 그 때가 풍요로웠다며 동경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물질적으로는 애굽에서 부족함이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요구를 저버렸다는 것 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겪었던 고통과 불행을 기억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역사를 기억해야 했습니다.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을 풍요로웠던 곳으로 기억하며 그 상황 에서 구원받은 은혜를 모르고 감사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인도와 보호를 부인하게 됩니다. 본문 6절 말씀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고기를 먹지 못해 기력이 떨어졌다고 불평합니다. 거기다가 “이 만나”라고 말해서 자신들의 못마땅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불만이 들어가고 고기에 대한 탐욕이 생기니 장막에서 만나를 먹으면서 “이 만나” “이 만나”라고 말하며 불평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나로는 그들의 건강을 유지할 수 없고, 기력을 유지하는데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6절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라는 말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드시리라 생각합니다. 출애굽기 16장에서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실 때 메추라기라는 고기도 함께 주셨었기 때문입니다. 하지 만 만나와 함께 처음 내렸던 메추라기는 단 한 차례 제공된 것이었고, 이스라엘의 40년 광야 생활에 주어진 안정된 식사는 만나였습니다. 그러니 계속 만나만 먹고 있던 찰나에 세상의 불평에 영향을 받아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을 터뜨린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우리를 죄에 빠지게 만듭니다. 세상과 가까이 있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죄에 빠지게 됩니다.
제 친한 친구 중에 일렉 기타를 잘 치는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일렉 기타 치는 것을 좋아하고 여러 기술 들을 연습해서 연주하기를 좋아하는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렉 기타를 연습한다고 하면서 보는 영상들이었습니다. 외국의 일렉 연주자들 중에서 실력은 좋은데 조금 이상한 영상들을 봤습니다. 마치 사탄숭배자들이 하는 것처럼 얼굴에 흰색으로 색을 칠하고 어두운 느낌의 연주를 하는 영상들을 참 많이 봤습니다. 이런 영상들을 많이 보고 노출이 되니 원래는 안 그랬던 친구의 성격도 성향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 했습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도 사탄숭배자 마냥 염소 머리를 해두는 등 변해가는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다니고 있었지만 이런 세상의 문화에 노출되니 결국 죄에 빠지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믿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세상과 가까이 하다보면 결국은 죄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 하면 죄라는 것은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신앙생활 잘 하고 있는데 옆에서 다른 누군가 죄를 짓는 것을 보면 내 안에도 그 죄를 짓고 싶은 어떤 욕구가 생겨납니다. 나도 저 사람이 짓는 죄를 짓고 싶어 집니
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죄를 짓고 싶다기보다는 저 사람이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저 사람이 죄를 지음을 통해 무언가 누리게 되는 그것을 나도 누리고 싶고 나도 가지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납니다. 세 상과 가까이 하여 그것을 내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게 되면 나도 모르게 죄를 짓게 됩니다. 나는 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는 그 때 순간적으로 죄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세상과 멀리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는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교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과 가까이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들과 동화됩니다. 그들의 죄악 된 모습에 나도 빠져들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세상을 멀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과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와 깊이 교제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죄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세상을 멀리하여 악하고 더러운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죄의 결과는 심판입니다.

앞선 두 번의 반란에 대해서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으시고 인내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아직까지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가 깊게 형성되지 않았던,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졌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이전보다는 더 깊어졌고, 이스라엘에 반란에 대한하나님의 반응도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반란에 대한 문제해결을 위해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18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너희 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이 해결책은 백성의 모든 불만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기를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앞서 4-6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풍요로운 생활을 그리워하며 울면서 고기를 달라고 하는 말을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백성에게 베푸는 은혜가 아니라 심판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음식문제를 해결 해 주는 것을 넘어서 고통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고기를 주실 것인데 하루 이틀 먹을 고기가 아니라 한 달 동안 먹을 수 있는 고기를 주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식량이 풍족하지 않았던 당대 사람들에게는 배불리 먹고 싶은 생각이 있었겠지만 이것은 그들이 만족할 때까지가 아니라 먹고 질리도록 주겠다는 말이었습니다. 20절에서 말하는 “냄새도 싫어하기까지”라는 조건은 위협적일 뿐만 아니라 그 응답이 섬뜩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불평에 대해 이렇게 반응하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20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백성이 4-6절에서 터뜨린 불평의 실체를 하나님께서는 지적하신 것입니다.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라는 말은 단순히 백성들이 하나님을 얕잡아보고 무시했다기 보다는 실제로 여호와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한 내용은 바로 출애굽을 후회한 것입니다. 이들의 불평의 핵심 에는 ‘우리가 애굽에 그냥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백성들의 단순해 보이는 불평이 계속해서 반란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바로 이 내용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인 출애굽을 반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그 역사를 거부한 결과가 하나님의 진노의 식탁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 님의 은혜를 거부한 불신앙에 대해 하나님의 정당한 반응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도 불신앙의 모습을 보입니다. 보행자만 육십만이나 되는 이 백성들에게 한 달 동안 고기를 공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의심을 책망하시며 확신을 주십니다. 2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하나님의 능력에 제한이 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은 한계가 없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말씀의 성취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성취를 위해 바람을 내셔서 메추라기를 몰아 오셨습니다. 31절 말씀입니다. “바람이 여 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 면 위 두 규빗 쯤에 내리게 한지라” 바람이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은 메추라기가 몰려 온 것이 자연 현 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기적으로 메추라기가 몰려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정말 로 메추라기가 엄청나게 많이 몰려왔습니다.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만큼 왔습니다. 하룻길이라는 것 은 대략 40Km정도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진영이 사각형으로 있으면 그 진영 사방으로 40Km씩 메추라기가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두께가 두 규빗이었습니다. 한 규빗이 대략 50cm이기에 두 규빗은 1m입니다. 진영 사방 40Km에 1m씩 메추라기가 내린 것입니다. 대략적으로 서울만한 면적에 메추라기가 1m 의 두께로 내렸습니다. 백성들은 메추라기가 내린 그 날 종일 밤낮으로,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밤낮으로 메추라기를 모았는데 적게 모은자도 열 호멜을 모았습니다. 열 호멜은 부피로 대략 2,200리터에 이르는 양이었습니다. 이것이 개인이 거둔 것인지, 가족이 먹을 양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무엇이 되었든 그 양이 엄청났던 것입니다. 아마 이 때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은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원하던 고기를 2,000리터가 넘게 가지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이렇게 성취하셨지만 진노 가운데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백성 들은 자신의 잘못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고기를 제대로 먹기도 전에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셔서 큰 재앙으로 치셨다는 것은 백성이 심한 질병에 걸려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아마 흑사병과 유사한 그런 질병으로 백성들이 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한 공동체가 아니라 신앙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죄를 간과하지 않으시고 ‘죄의 삯 은 사망’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백성들은 고기로 인해 축제와 같은 분위기에서 장례식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부흥사였던 빌리 그레함 목사님의 딸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안네 로츠라는 딸 인데 그녀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안네가 잘못을 저지르자 어머니는 그녀를 불러다 놓고는 매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얼른 안네는 “엄마, 내가 잘못한게 아니고 내 안에 마귀가 있는데 그놈이 잘못하게 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오 그래, 알고 있어. 그래서 나는 지금 마귀를 쫓아내려고 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회초리로 딸을 때렸습니다. 두 시간 뒤에 또다시 안네가 잘못을 저지르자 어머니가 매를 들었고, 안네는 “엄마, 마귀란 놈이 벌써 내 속에서 떠났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회초리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빌리 그레함 목사님의 딸은 애교로 어머니의 매를 피할 수 있었지만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피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거룩하시며 공의로우시기에 죄에 대한 심판을 결코 거두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한 지명을 주셔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대대로 그 죄악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탐욕을 품은 자들의 무덤’이라는 뜻의 ‘기브롯 핫다아와’라는 이름을 통해 교훈을 주셨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후대에 아삽의 교훈시를 통해서 이 사건을 교훈으로 삼아 하나님과 그분의 구원을 신실하게 의지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시편 78편 27-31절 말씀입니다. “먼지처럼 많은 고기를 비같이 내리시고 나는 새를 바다의 모래같이 내리셨도다 그가 그것들을 그들의 진중에 떨어지게 하사 그들의 거처에 두르셨으므로 그들 이 먹고 심히 배불렀나니 하나님이 그들의 원대로 그들에게 주셨도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욕심을 버리지 아니하여 그들의 먹을 것이 아직 그들의 입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노염을 나타내사 그들 중
강한 자를 죽이시며 이스라엘의 청년을 쳐 엎드려뜨리셨도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하 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따라서 언약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물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가야 하지만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은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 입니다. 세상과 가까이하며 나는 괜찮겠지라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나도 세상의 죄에 물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결과는 분명한 심판이요 사망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죄에서 멀어진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세상과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 되신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기억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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