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6] 성막의 벽이 주는 교훈

출애굽기, 성막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270 views
Notes
Transcript
20210609 수요기도회
찬송 528 211
기도 이수현 권사
본문 출26:15-30 (구p.121)
제목 성막의 벽이 주는 교훈

1. 서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성막을 찾은 예배자는 성막의 동문을 통해 들어와서 번제단과 물두멍을 거친 후에 비로소 성소를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성소는 총 4개의 덮개로 덮여져 있는데, 바깥에서 안쪽으로 순서를 따르면 첫째는 해달의 가죽이고 둘째는 붉은 물을 들인 숫양의 가죽이며 셋째는 염소털로 짠 덮개이며 가장 마지막 쪽에 있는 것은 청색, 자색, 홍색, 베색 실로 케루빔을 수놓은 세마포 덮개였다. 예배자는 성소 바깥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움과 영광스러움을 성소 안에 들어올 때야 보게 된다. 오늘은 이 성소를 지탱하고 있는 성막의 벽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 이 벽은 성막 울타리 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엄밀하게 성소의 벽이다. 성소를 세우고 지탱하게 만들어주는 기둥들이다. 이에 대해 기본적인 의미들을 살펴보고, 이후에 성막의 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날판의 재료와 규격과 모양

먼저 성막의 벽을 만드는 널판의 주 재료가 무엇인가? 15절 말씀을 보면, ‘너는 조각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세우되’ 라고 하셨다. 따라서 성막의 벽의 주재료는 조각목이다. 이 나무는 내구성이 강하고 가벼워서 당시 대부분의 목조 건축에 사용된 재료였다. 특별히 성막의 제작과 관련해서는 성막의 벽을 비롯해서 법궤, 분향단, 진설병상, 번제단 등에 이 나무가 사용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나무를 그냥 사용한 것이 아니다. 29절 말씀을 보면, ‘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들의 띠를 꿸 금고리를 만들고 그 띠를 금으로 싸라’ 하셨다. 즉 조각목 널판을 만들되 이를 금으로 싸야 한다.
그러면 각 널판의 크기는 어떠한가? 길이는 10규빗(대략 4.5m), 너비는 한 규빗 반(대략 0.6m)이다. 널판 한개의 길이가 4.5m 로 상당히 높다. 생각해보라. 이 긴 나무를 높이 세워서 이동식 건물을 만들어야 한다. 이 나무널판이 제대로 힘을 받아 서 있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넘어지지 않도록 기초 공사를 튼튼히 해야 한다. 널판이 서로 넘어지지 않도록 잡아줄 뭔가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널판을 바르게 세울 수 있는 장치들을 말씀하시는데, 17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자. ‘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연결하게 하되 너는 성막 널판을 다 그와 같이 하라’ 이 구절이 한글인데도 사실 이해가 쉽지 않다. 이에 대하여 쉬운 번역본의 성경을 보면 이렇다. ‘각 널판에 서로 끼워맞출 수 있는 두 돌기가 있게 하라’ 이에 나누어드린 인쇄물에 3개 그림을 보시면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가장 왼편 그림을 보면 널판의 아래 두 개의 돌기가 있다. 가장 오른편 그림을 보면 여기도 가운데 두 개의 돌기가 있다. 널판에는 이처럼 두 돌기를 만들어서 그 널판을 세울 때 그 아래에 돌기와 결합이 되는 홈이 있는 은받침을 두고 그 위에 널판을 끼워 세우도록 하셨다.
여기에 은받침은 널판 당 몇개가 사용되는가? 18-19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자. ‘너는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되 남쪽을 위하여 널판 스무 개를 만들고 스무 널판 아래에 은 받침 마흔 개를 만들지니 이쪽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고 저쪽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지며’ 그림을 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중간 그림과 오른쪽 그림을 보면 아래의 은받침은 널판 당 2개씩 들어간다. 그리고 그 은받침의 홈에 나무의 돌기 부분을 끼워 수직으로 세우도록 하셨다. 아무리 조각목 자체가 가벼운 축에 속한다 하더라도 금으로 싼, 그것도 4미터가 넘는 널판의 무게는 상당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토록 긴 널판들을 수직으로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는 그 널판의 받침도 무겁고 단단해야 했을 것이다.
이 은받침 하나의 무게는 얼마일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막의 기구들을 제작하는 과정들을 기록하고 있는 출38:27 의 말씀을 보면, ‘은 백 달란트로 성소의 받침과 휘장 문의 기둥 받침을 모두 백 개를 부어 만들었으니 각 받침마다 한 달란트씩 모두 백 달란트요’ 라고 말씀하신다. 고대 나라마다 측량법이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적으로 1달란트는 34kg 정도 된다고 한다. 은 받침 한개가 34kg이고 널판당 은받침이 2개가 들어가니까 1널판당 은이 총 68kg 이 사용된다. 남쪽과 북쪽 벽을 널판 20개씩 총 40개요, 서쪽 벽은 6개에 모퉁이에는 널판 2개로 만들었다. 총 널판은 48개가 들어가고 여기에 은받침은 96개, 은받침 제작에만 은이 자그마치 3.2톤이 사용된다.
더군다나 이 조각목 널판은 그냥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널판은 금으로 싸야 한다. 그리고 금으로 싼 널판에도 금으로 싼 띠를 둘러야 한다. 26-28절을 함께 읽어보자. ‘너는 조각목으로 띠를 만들지니 성막 이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요 성막 저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요 성막 뒤 곧 서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이며 널판 가운데에 있는 중간 띠는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고’ 앞에서 이 이동식 건물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기초 공사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이를 위해서 아주 무거운 양의 은받침을 만들었던 것처럼, 이제는 또 다른 장치를 말씀하시는데, 방금 읽은 한글성경에서는 띠 라고 되어 있는데 쉽게 생각해서 빗장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29절을 보면 빗장 역할을 하게 될, 그래서 각 널판마다 달려있는 금고리에 가로로 끼우게 될 빗장 나무도 금을 입혀야 한다.
여기까지 정리하자면 이렇다. 조각목 널판을 금으로 싸고, 그 띠와 가로 빗장까지 금으로 싸야 하는데, 여기에 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 들어갔을 것이다. 성소의 외벽을 만드는데 어마어마한 양의 은과 금이 들어간다. 외부에서 성막의 투박해보이는 지붕처럼 값 싸고, 흔하고, 투박하고, 가치없어보이는 집이 결코 아니다. 예배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번제단을 지나 물두멍을 통과하여 성소 입구에 섰을 때에 그의 눈에 들어오는 하나님의 집은 마치 은받침 위에 세워진 금의 집과 같았다.

3. 성막의 벽이 주는 교훈

그렇다면 여러분, 본문의 말씀인 성막의 벽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두 가지를 살펴보려 한다. 나누어드린 인쇄물 2번의 A번을 보시된다. 성막의 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째로, 교회는 값 비싼 기초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성소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나 교제하시기 위해 거하시는 곳이다. 이 곳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만남 그 자체이다. 성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으니 건축물로 된 성소와 비건축물로 된 성소이다. 건축물로 된 성소는 고대 이스라엘의 족장들부터 자주 사용했던 제단이나 돌단들이 있겠고, 지금 살펴보고 있는 성막이 있으며, 이것이 훗날 이 땅 위에 세우게 될 성전까지도 의미가 이어지겠다. 그리고 비건축물로 된 성전으로는 구약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함께 하나님의 임재를 누렸던 에덴동산, 또한 구약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받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시내산과 같은 것들이 있겠고, 신약에서는 요2:21 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 육체를 성전이라고 말씀하셨고, 또한 고전3:16 을 보면 신자들의 예배공동체를 성전이라 말씀하시며, 궁극적으로 하늘에 있는 온전한 성전까지도 가리킨다.
즉 요약하자면 성소의 개념은 점차적으로 다음과 같이 발전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분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창조하신 피조세계 가운데 좌정하셔서 기쁨의 교제를 누리시던 에덴동산, 그리고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고 그 뒤로 돌단을 쌓아 하나님께 예배하던 제단, 그 후에 출애굽 모세의 때부터 시작해서 다윗의 때까지 이어졌던 성막 시대, 그리고 솔로몬 때부터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까지 이어졌던 성전 시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점으로 시작되어 지금 우리도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이어질 교회 시대, 그리고 장차 임할 완전한 하늘의 성전시대이다. 즉 성소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신자들의 예배공동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리고 이 교회 공동체는 아주 값비싼 기초 위에 세워졌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성막의 벽이 아주 견고하게 설 수 있었던 첫번째 요인은 그 기초가 되는 은받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은받침 하나 당 은 한달란트가 사용되었고 널판 하나당 2개의 은받침이 사용되었으니 널판 하나당 68kg이나 되는 은받침이 사용되어 널판이 바르게 세워질 수 있도록 지탱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성경에서 주로 ‘은’은 대가를 지불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서 아브라함은 은400세겔을 주고 막벨라 굴을 구입했고, 요셉은 은 20세겔로 몸값지불이 되었으며, 가룟유다는 은30세겔에 예수님의 몸값을 팔아 넘겼기도 했다. 이처럼 은은 대가를 지불하는 의미가 있고, 그 은이 어마어마하게 사용이 돠는데, 중요한 것은 이 은받침을 만들 때, 여기서 사용될 은 재료를 어디서 수급했는가이다. 이에 대해 말씀 두 부분을 찾아볼 것이다.
먼저 출30:11-16 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들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 먼저 여기서 속전이란 무엇인가? 출애굽 후 장자죽음의 재앙을 면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초태생은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어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칠 것을 명하셨다. 이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은 가축의 초태생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드렸다. 사람의 장자 같은 경우는 그 아들을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드릴 수 없으니 다른 것으로 대속해서 하나님께 드렸다.
생명의 속전은 사람의 장자를 대속해서 드려야 했던 것을 하나님께서 성전의 세겔로 내게 하셨다. 생명의 속전이란 생명의 구속을 받은 대가, 생명의 구속을 받은 값이란 뜻이다. 이해되시는가? 이 때에 성소의 세겔로 얼마를 내어야 하는가? 반 세겔이다. 또한 출38:24-27 을 찾아보자. ‘성소 건축 비용으로 들인 금은 성소의 세겔로 스물아홉 달란트와 칠백삼십 세겔이며 계수된 회중이 드린 은은 성소의 세겔로 백 달란트와 천칠백칠십오 세겔이니 계수된 자가 이십 세 이상으로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인즉 성소의 세겔로 각 사람에게 은 한 베가 곧 반 세겔씩이라 은 백 달란트로 성소의 받침과 휘장문의 기둥 받침을 모두 백 개를 부어 만들었으니 각 받침마다 한 달란트씩 모두 백 달란트요’ 출38장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성막을 제작하는 과정들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 때 20세 이상으로 속전세를 드린 자가 603,550명이었고, 은 반세겔씩 거두어서 결국 거둔 총합이 백 달란트와 1,775세겔 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생명의 속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성전세의 기원이 된다. 훗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여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게 하셨다. 민3:41 을 찾아보자. ‘나는 여호와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내게 돌리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 중 모든 처음 태어난 것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내게 돌리라’ 계속 이 부분을 펴 두시라. 그래서 레위지파는 모든 사적인 일들을 중단하고 오직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45절 말씀처럼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대신하여 레위지파를 하나님께 드려야 했기 때문에 인구를 계수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인구를 계수했더니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의 수가 43절 말씀처럼 22,273명이었고, 레위지파는 22,000명이었다. 그 차이가 46절 말씀처럼 273명이나 났다. 이말인즉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들을 대속하기 위해서 레위지파를 하나님께 드린 것인데, 레위지파보다 장자의 수가 273명이나 더 많다는 것은 이 273명이 레위인으로도 대속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대신해서 드릴 레위인이 없기 때문에 한 사람에 다섯 세겔씩 성전의 세겔로 속전을 내게 하셨다. 이것이 유대인 가운데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성전세이다.
이후로 성전세 전통은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에게 적용되었다.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성전세를 냄으로서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진 자, 하나님께 봉헌된 자임을, 내가 하나님의 소유됨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던 것이다. 마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시켜 바다에서 낚시를 하여 먼저 건져올리는 물고기의 입을 열면 은 한 세겔이 있을 것이니 이를 예수님과 베드로의 성전세로 주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성전세는 예수님 당시에도 이어져왔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더이상 생명의 속전을 내던 전통이 교회 안에서 사라져 버렸고 오늘날 우리도 이 속전을 내지 않는다. 왜일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대속적 죽음으로 모든 속전세를 지불해 주셨기 때문이다. ‘은’은 값을 치루는 것을 의미하는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대신하여 자신의 피로 값비싼 희생을 치루셨고, 그분의 희생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 그리고 그 교회로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불러 주셨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지상의 교회는 흠이 있다. 인간들이 모인 교회이기 때문에 연약함이 있다. 시기와 분쟁들이 일어날 수 있다. 여러 부도덕한 모습들이 발견될 수 있다. 이런 부분들이 보일 때마다 어떤 이들은 시험에 들어서 어떻게 교회가 그럴 수 있느냐며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험담하며, 수근거리고, 그 명예가 짓밟힌 것 같은 오늘날 지상의 교회이지만, 바로 그 교회가 세상 무엇으로도 값을 매길 수 없는 기초 위에 세워졌다. 바로 그 연약한 교회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나주시는 성소로서의 교회이다. 그 불완전한 교회이지만 하나님은 그 교회를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치 은 받침위에 세워진 금의 집 성막처럼 감히 가치를 측량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세워진 교회에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시고 그 몸의 지체로 삼아주셨음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란다.
두번째 교훈은, 교회는 신자들의 연합으로 세워지고 유지된다는 것이다. 성막의 벽은 하나의 널판으로 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상징하는 은받침 위에 수많은 널판들이 끼워지게 되고, 그 널판들은 서로 어깨를 마주대며 세워진다. 즉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한 사람 만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체들의 연합으로 세워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널판을 지탱하도록 금으로 만든 띠를 달고, 그 띠를 서로 관통하는 가로빗장과 결합시킨다. 이 띠의 기능은 널판과 널판 사이의 그 틈새를 막아 성막 벽을 더욱 견고히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라는 은받침 위에 세워진 널판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요 그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을 상징한다. 마치 널판들이 서로 견고하게 마주대며 세워지고, 틈새가 생겨서 벌어지고 변형될 것을 막기 위해 금띠로 단단히 연결시키는 것처럼, 교회는 연합으로 세워지고 유지되는 공동체이다. 연합이다. 하나됨이다. 골2:19 를 보면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하셨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는 그분의 몸이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고백하는 그분의 몸인 교회는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란다. 그런데 이와 같이 자라가면서도 지상의 교회는 아직 완전하지 않기에 위기의 순간들이 찾아올 수 있다. 지상의 교회는 완전할 수 없다. 완벽할 수 없다. 연약함들이 보일 수 있다. 갈등과 마찰, 시기와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일어날 때에 신속히 마음을 다잡아 연합을 위해, 진정한 하나됨을 위해 힘써야 한다. 바로 회복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연합과 하나됨으로 세워져야 하는 교회에 틈이 발생하는 것은 곧 마귀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엡4:27 의 말씀에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라고 하신다. 아주 촘촘하게 성도간의 연합이 되어, 조금의 틈도 빌미도 주지 않고 견고하게 연합해야 어떠한 원수의 공격에도 요동치 않는 견고한 교회로 세워져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사랑이다. 골2:2 의 말씀이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무엇 안에서 연합하는가? 사랑이다. 이 사랑은 헬라어로 아가페이다. 자기 희생적인 사랑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범으로 보이신 바로 그 사랑이다. 성도의 연합을 더욱 단단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마귀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모든 틈새를 막아 어떠한 원수의 공격도 무마시키는 것이 무엇인가? 사랑이다. 사랑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요, 가장 견고한 방패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보이신 그 사랑으로 더욱 우리의 지체들을 사랑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란다. 어떠한 원수의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성을 세워가시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길 축복한다.
도저히 값을 매길 수 없는 보혈 위에 세워진 교회,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몸으로 우리를 불러주심에 감사하자. 지상의 교회는 완벽할 수 없으나 장차 임할 영광의 나라 속 성전은 완전하다. 우리는 이 땅에서 불완전한 교회로서 주님을 섬기지만, 그 불완전한 교회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좌정하시며, 모든 택한 백성들을 만나시길 기뻐하시고, 그 연약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독생하신 아들의 피를 흘리셨음을 기억하자. 바로 이것이 교회의 영광이다. 비록 우리의 눈에는 작아보이고, 연약해 보이는 이 교회가 실은 매우 영광스럽고 고귀하며 거룩한 교회임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길 기도하자.
교회는 신자들의 연합으로 세워진다. 우리가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고 더욱 사랑으로 연합하여 하나됨, 한 몸됨, 연합을 이루어 갈 수 있기를 간구하자. 특별히 그 사랑은 자기희생적인 사랑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 사랑의 모범을 보이셨다. 우리도 그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섬길 수 있길 간구하자.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