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5] 성막의 덮개가 주는 교훈

출애굽기, 성막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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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2 수요기도회
찬송 82 216
기도 정미숙 권사
본문 출26:1-14 (구p.120)
제목 성막의 덮개가 주는 교훈

1. 서론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는 성막의 울타리를 지나 동편으로 난 유일한 문을 통해 성막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유일한 문으로 성막 안에 입장한 후,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이 번제단이었고, 이곳에서 희생제물을 잡아 제물로 드린 후 그 다음 물두멍을 만나서 거기서 수족을 씻는다. 이제 예배자는 성소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 때에도 성소로 난 유일한 문을 통해 입장하게 될 것이다. 문으로 입장하기 전의 성소의 외관은 어떠한가? 해달의 가죽으로 되어 아주 볼품이 없다. 성소의 겉면은 너무나 투박하고 하찮게 보인다. 그러나 문을 통해 성소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밖에서 보던 성소의 덮개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 덮개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신 디자인대로만 만들 것을 명하셨고, 후에 모세는 하나님께서 보이신대로만 만들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의미나 의도 없이 성막 디자인을 보이시지 않았다. 모든 것을 그분의 뜻대로, 계획하신대로, 의도하신대로 보여주셨고, 그렇게 만들도록 하셨다. 그렇다는 것은 오늘 살펴볼 성막의 덮개 역시도 하나님의 의도가 있다는 것이고, 그 안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여러 교훈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덮개의 종류

A. 세마포덮개
성막의 지붕은 네 겹의 덮개로 이루어졌다. 유일하게 안쪽에서만 볼 수 있는, 가장 안쪽 덮개인 세마포 덮개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만든 열폭의 휘장으로 만들어졌다. 본문 1-6절이다. 각각의 휘장은 길이 28규빗(약 12미터), 너비 4규빗 (약 1.8미터)로 다섯 폭씩 2개로 되어 있는데, 5묶음 끝에는 둥근 고리 50개씩 총 100개가 달려 있고, 금 갈고리 50개가 두 덩이의 휘장을 하나로 서로 연결하게끔 하였다. 그렇게 하나가 된 세마포 덮개의 총 길이는 28규빗(약 12미터), 너비는 40규빗 (약 18미터) 였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로 엮은 세마포 덮개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으니, 4가지 색의 실로 수 놓았다는 것이다. 먼저 여기에 사용된 네 가지 색상은 무엇인가? 청색, 자색, 홍색, 그리고 가늘게 꼰 베색 실(흰색)이다. 이 네가지 색에 대해서는 앞전에 성막의 세마포 울타리와 문에 대해 설교하면서 다룬 적이 있다. 기억나시는가? 청색은 하늘의 색이다. 즉 하늘로부터 오신, 하늘에서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자색은 어떤 색인가? 고대 사회에서 보라색은 매우 매우 귀한 색임을 말씀드렸었다. 그래서 고대사회에서 자색은 오로지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던 색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색은 왕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홍색, 곧 붉은 색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피와 죽음, 희생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사 희생당하시고, 고난 받으시고 대신 죽으실 것을 상징한다. 베색, 곧 흰색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의로움과 완전함이다. 즉 네 가지 색은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는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진정한 왕 되시는데, 그분은 희생당하시고, 고난 받으시고, 피흘려 죽임 당하신다는 것이나 죄는 없으신 의로우신 분이시다. 빌2:6-8 말씀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다시 본문 1절로 돌아와서 보면, 이 네 가지 색이 무엇을 수놓았다고 말씀하시는가? ‘그룹’이다. 예전에 신천지 사람이 이 본문을 해석하면서 여기 등장하는 그룹이 영어 ‘group’이라며, 구원받을 신천지교인들이 성막 덮개에 수놓아져 있다는 말도 안되는 궤변을 늘어놓던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그룹은 영어가 아니라 당연히 히브리어다. 히브리어(כְּרוּב)케루브 를 한글로 그룹이라 옮겨 넣은 것인데, 케루브가 무엇이냐,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여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을 때 그들이 혹 다시 에덴으로 들어올까 하여 불칼로 무장한 하나님의 천사들을 동산 입구에 배치하여 지키게 하셨다. 여기서 등장하는 천사가 케루브이다. 이 천사의 외모에 대해서는 에스겔의 환상 중에도 등장하고, 이사야의 환상에도 등장하는데 비슷한 부분도 있고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다. 하나 공통되면서도 분명한 특징은 케루브에 날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후에 살펴보겠지만 속죄소에도 케루브가 날개를 높이 펴서 속죄소를 덮는 모습으로 새겨넣게 하신다.
정리하자면, 세마포 덮개에는 총 네가지 색으로 케루브를 수놓게 하신다. 제사장이 번제단과 물두멍을 지나서 성소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가 보게 되는 가장 안쪽 면인 세마포 덮개에는 온통 케루브가 수놓아져 있다. 그곳에는 진설병 상과 등잔대, 금향단이 있고, 정면 휘장을 지나면 증거궤가 있는 지성소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성소 안에서 빼곡히 수놓아진 케루브들은 이 모든 영광스러운 장면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그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제사장의 머리위를 날아다니며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선포하는 것 같다. 마치 이사야가 소명을 받던 그 날 보았던 환상의 내용처럼 높이 들리신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며 스랍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라고 노래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영광스러운 장면을 제사장은 어디서 볼 수 있다? 성소 안이다. 성막의 유일한 문 안으로 들어와서 성막의 안뜰에서 번제단과 물두멍을 통과하여 성소 안으로 들어왔을 때 보는 것이다. 이 영광을 알기 위해서는 성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성막의 바깥에 있는 자들에게는 이 성막의 영광스러움이 철저하게 감추어져 있다. 그들은 결코 성막의 영광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B. 염소 털로 짠 덮개
이어서 두번째 덮개는 무엇인가? 염소 털로 짠 덮개이다. 본문 7-13절이다. 염소털로 짠 덮개는 세마포 덮개 바로 위에 덮어 씌운다. 이스라엘의 정결법 상 염소는 정결한 동물이었고, 번제단에 제물로 드리기에 적합하였다. 우리는 염소 하면 별로 연상되는 게 없지만, 이스라엘에게 염소는 다른 의미로 와닿았다.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레16장과 연관이 있다. 레16장은 속죄일에 대해 다루는데, 이 날에 제사장은 염소 두 마리를 취한다. 그래서 한 마리는 제단에서 잡아 제단 사면에 피를 뿌리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제물로 죽으실 것을 상징하였다. 또 다른 한마리는 아사셀 염소로 삼아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죄를 그 염소에게 안수하여 전가 시킨다. 그리고나서 광야로 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버리고 돌아오는데, 이 때 버려진 아사셀 염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멀리 치우시는 것을 상징하였기에 이 염소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먼 곳에 버려두고 다리를 부러뜨려 죽였다.
여기서 안수하여 전가시키는 의미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전가 개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사53:6 의 말씀을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후5:21 의 말씀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따라서 첫번째 염소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담당하시고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동에서 서가 먼 것처럼 멀리 제하신 사실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염소털로 만들어진 덮개는 이 모든 의미들을 담고 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대속자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오직 주님만이 죄를 담당하시고 죄 값을 지불하시니 자기의 피로 지불하셨다. 죽임당한 염소처럼 죄를 속죄하셨고, 아사셀 염소처럼 우리의 죄를 취하여 멀리 가지고 가서 깊은 바다 속에 영원히 던져 버리셨다. 할렐루야!
C. 붉은 물을 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된 덮개
이어지는 세 번째 덮개는 무엇인가? 붉은 물을 들인 숫양 가죽으로 된 덮개이다. 14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자.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지니라’ 앞서 다른 덮개에 대해서는 정확한 규격을 말씀하셔서 그 규격에 맞게 만들 것을 명하셨다. 그런데 유독 세번째와 네번째 덮개에는 규격이 없다. 앞서 홍색 실을 통해서도 살펴보았지만, 붉은 색은 그리스도의 보혈, 주님이 이루신 속죄를 상징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속죄사역에는 한계가 없다. 여기에는 구원받을 백성의 숫자 제한도 없고, 용서받을 수 있을 죄의 가짓수 제한도 없으며, 인종이나 혈통이나 언어나 빈부격차 남녀노소 어떠한 제한도 없다. 다함이 없다. 그래서 붉은 물을 들인 숫양 가죽으로 된 덮개에는 수치를 언급하지 않으신 것이다.
D. 해달의 가죽으로 된 덮개
마지막으로 해달의 가죽으로 된 덮개를 보라. 먼저 여기서 ‘해달’ 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תַּ֫חַשׁ (타하스) 가 구체적으로 어떤 짐승을 가리키느냐에 대해 여러 견해들이 있었다. 어떤 이는 수달로, 어떤 이는 바다소로, 어떤 이는 돌고래로, 어떤 이는 물돼지로 본다. 마지막 덮개의 재료가 무엇인지 오늘날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공통된 의견은 여기서 사용되는 짐승이 물과 연관된 짐승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 가죽이 성막 덮개의 가장 바깥쪽에 놓이게 되는 것은 성막의 방수기능과 내부손상 방지에 탁월했을 것이다.
이 짐승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몰라도 수달이나, 바다소, 돌고래, 물돼지들을 생각해보면 이 짐승의 가죽 역시 거무스름하고 우중충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겉면만 보면 안의 모습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성소 안에 비치된 온갖 금으로 된 기구들과 화려하게 수놓아진 케루브 에 비하면 해달 가죽으로 된 덮개는 너무나 볼품이 없다. 하찮게 보인다. 별로 특별할 것이 없어보인다. 마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 처럼 말이다. 사53:2 의 말씀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라고 하신다. 분명 그리스도께서는 자색이 의미하는 것처럼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이시요, 청색이 의미하는 바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이며, 베색이 의미하는 것처럼 완전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신데, 그분의 인성에서는 이 모든 것이 감추어져 있다. 오히려 볼품이 없다.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

3. 네 겹의 덮개로 덮여있는 성막이 주는 교훈

그렇다면 여러분, 성막의 덮개가 이처럼 네 겹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두 가지를 말씀드린다.
첫째로,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이 아니고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막의 대부분의 기구들이 의미하는 바도 이와 같지만,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없이는 생명이 없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 아니고서는 영생이 없다. 그리스도의 피 없이는 구원이 없다. 성막은 어떤 곳인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처소이다. 우리가 성막에 가서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즉 성막이란 하나님과 예배자의 만남의 장소이다. 이 만남의 장소로 가기 위해서는 성막의 울타리를 지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유일한 동문을 통해 성막 안뜰로 입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번제단과 물두멍을 지나 성소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런데 이 성소 조차도 그리스도와 그분의 대속적인 죽음, 보혈을 상징하는 덮개로 덮여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입어야만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들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출12장에 기록된 유월절 사건을 떠올려보라.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치시’겠다고 하셨다. 애굽 땅을 치실 때에 어떤 사인을 한 집은 여호와의 사자가 그 집은 넘어가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표식은 무엇인가? 바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였다. 출12:7 말씀처럼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야했고, 22절 말씀처럼 그 밤이 지나 아침이 오기까지 집 문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했다. 도대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이 일하시긴 하는가 의심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선 안되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한 자들에게 무엇이 주어졌는가? 구원이다. 생명의 복을 주셨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하나님의 모든 약속하신 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받는다. 특별히 주님께서 흘리신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 함 얻음은 확실히 믿기는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믿으시는가?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를 사랑한다 하시며,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자들을 하나님의 임재로 들이시고, 원수와도 같던 우리를 그분의 백성이요 더 나아가 그분의 자녀로 삼으시며, 죄인된 우리의 신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영광과 존귀와 즐거움을 약속하시고 예비하시며 인도해 가시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의 공로 뿐이다. 이 사실을 확신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란다.
두번째 교훈으로, 그리스도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더욱 맛보기 위해서는 더 깊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13:44 말씀을 보면,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감추인 보화이시다. 복음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영광과 사랑, 아름다움은 감추어져 있다. 마치 성막의 겉면이 우중충하고 거무스름하여 아무런 매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그 진정한 가치와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내부에 숨겨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풍요로움, 그리스도의 영광의 부요함을, 그리스도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더욱 그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만일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성막을 찾아온 자가 문을 통해 성막 안뜰까지 들어왔다가 번제단까지만 왔다가 나간다면 이것이 무슨 소용인가?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구원의 기초적인 도를 모른다. 구원의 확신도 없다. 늘 불안하고 늘 염려가 가득하고 늘 의심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유익이 무엇이며, 우리가 장차 누릴 영광이 무엇이고, 그분이 얼마나 존귀하고 아름다운 분인지에 대하여 전혀 마음으로 느껴본 적이 없다. 그 사람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하나의 자기 위안의 도구일 뿐이다. 마음의 안식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오래 교회를 다녔지만 예배의 자리에 앉았다가 가버리는 정도에 불과했다.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지만 그저 마당만 밟고 돌아갔던 것이다. 그 깊은 임재 속에 들어가본 적도 없고, 그 자리를 사모해 본적도 없으며, 그 감추어진 신비를 맛 본적이 없으니 알 턱이 없다. 당연히 그의 신앙은 연수가 오래 되었어도 아주 얕은 정도에 불과하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합당치 않다. 우리는 계속해서 신앙의 진보를 이루어야 한다. 성막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그 영광과 아름다움, 감추어진 신비를 보고 듣고 경험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더 들어가야 한다. 더 주님을 알길 힘써야 한다. 더 깊은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길 소망해야 한다. 더욱 주께로 나아가길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라고 이스라엘을 향하여 촉구하지 않았던가.

4. 결론

말씀을 맺는다. 어느 찬송가의 고백처럼 우리의 죄를 씻기는 것은 예수의 피 밖에 없다. 우리를 정케 하시는 것도 예수의 피 밖에 없다. 오늘 우리를 우리되게 하신 것도 예수의 피 밖에 없다. 그러므로 영원토록 내 할말 역시 예수의 피 밖에 없다. 이 깊은 비밀을, 이 놀라운 신비를 날마다 더욱 깨닫길 사모하시고, 그래서 더욱 깊이 알아가시는 이 자리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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