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4] 물두멍과 예수 그리스도

출애굽기, 성막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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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6 수요기도회
찬송 259 (304) 266
기도 강윤신권사
본문 출30:17-21 (구p.129)
제목 물두멍과 예수 그리스도
1. 물두멍의 서론
성막의 동문을 통과하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지난 주에 살폈던 번제단이었다. 번제단은 대속자의 죽음을 묘사하며 피가 흘려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번제단에서 제물을 태운 후에 그 다음 만나는 것이 바로 물두멍이다. 물두멍을 만들되 오늘 본문 18절에서는 ‘놋’으로 만들라고 하셨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성막기구를 제작할 때인 출38:8의 말씀을 보면 그 놋들이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놋 거울’을 통해 만들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물두멍은 매우 특이한 부분이 있는데 성막의 모든 기구들에 대해서는 정확한 치수를 언급하시는데 물두멍에는 크기나 무게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오직 물두멍만 그렇다. 이렇게 만든 물두멍은 성막뜰에서 번제단과 성소의 문 사이에 두게 하였다. 다시 말해서 지금 물두멍이 있는 곳은 성막 안뜰이다. 지난 주 인쇄물에 성막배치도를 넣었었는데, 성막의 울타리를 따라 동편의 유일한 성막 문을 통해 입장한 후, 번제단과 물두멍을 만나는 곳은 성막 안뜰이며, 번제단과 물두멍을 지난 후에야 비로소 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2. 물두멍의 용도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인 물두멍은 무슨 일을 하던 곳인가? 18절-19절을 함께 읽어보자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이 말씀에 따라 물두멍의 기본적인 용도는 제사장의 수족을 씻는 데에 있었다. 더러워진 손과 발을 씻는 곳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물두멍을 통해서 그들의 손과 발을 씻으라 하셨을까?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인데, 첫째는 번제단에서 희생제사를 인도하면서 묻었을 지 모르는 짐승의 피와 더러운 오물들, 그리고 광야생활하면서 묻었을 모래먼지들과 같은 것들을 깨끗하게 씻어 청결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두번째로는 물두멍에서 이와 같이 정결의식을 행함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거룩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함을 교훈하시기 위함이다.
따라서 제사장은 물두멍을 만날 때마다 그 앞에서 그의 손과 발을 깨끗하게 닦아야만 했다. 제사장은 번제단을 지나 물두멍을 통과하면 이제 성소로 들어가게 된다. 성소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곳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예배하러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처럼 자기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이 정결 의식에 대하여 엄히 경고하시는데, 20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자.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엄히 경고하시길,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나 제단에서 화제를 드릴 때에도 물두멍에서 반드시 물로 씻을 것을 명하신다. 본문에서 ‘죽기를 면할 것이다’ 라는 표현을 통해서 반드시 물두멍을 거쳐야 할 것을 강조하신다.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하라’ 는 구절은 실제로 하나님께서 이를 어길 시 엄벌하시겠다는 의미와 동시에 누구라도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할 때에는 자신의 정결함과 경건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명령은 누가 지켜야 하는가? 21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자.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여기서 말씀하시는 ‘그들’은 아론과 그의 후손들인 제사장들이다. 따라서 물두멍은 제사장이 성막에 들어갈 때나 번제단에 화제를 드릴 때에 물로 그들의 수족을 씻기 위해 준비된 것이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물두멍은 성막 안 뜰에 위치해 있다. 성막의 울타리를 지나 유일한 동문을 통해 들어와서 번제단을 통과하여 성소로 들어가기 전 마주하는 것이 바로 물두멍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사실은 물두멍의 위치와 물두먹의 주된 용도이다. 즉 물두멍이 성막 안에 위치했다는 것과, 물두멍의 주된 용도인 수족을 씻는 것이다. 여러분, 한번 머리 속으로 상상해 보라.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그 백성이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르신대로 아주 흠없는 희생제물로 삼을 짐승를 데리고 성막으로 먼 길을 찾아왔다. 그리고 성막의 동문을 통해 성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첫번째로 마주하는 번제단에서 희생제물을 잡아 각을 뜨고 그 피를 담아 제단사면에 뿌리며 그 피를 제단의 뿔들에 바르고 제물을 번제단 위에 불사른다. 그리고 이제 성소에 들어가기 전 물두멍 앞에서 더러워진 수족을 씻는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믿으시는가?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그분을 예배하는 자리로 나아왔다. 우리는 완전한 성막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성막 밖이 아니라 이미 성막 안에 있다. 유일한 문을 통해 성막에 들어와서 완전한 희생제물로 자기 자신을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번제단을 마주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여정의 시작일 뿐이다. 구원은 십자가에서 시작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거듭난 성도들은 이제 계속해서 다음 스텝을 밟아가야 한다. 번제단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물두멍을 만나야만 한다.
3. 물두멍이 주는 교훈
그렇다면 물두멍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4가지를 말씀드린다.
첫째로, 여러분 자신의 죄성을 발견하라. 출38:8의 말씀에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라고 말씀한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했던 본문 18절에서, 하나님은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라고 하셨고, 이 명령에 따라 성막의 기구들을 제작하는 장면을 다루는 출38장에서 물두멍 제작에 필요한 놋을 회막 문에서 수종들던 여인들의 거울들로 만들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이미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며 많은 보석과 재물들을 이끌고 나왔기에 그들에게는 금이나 은이나 놋도 충분했을텐데 왜 하필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을까? 또 성막을 만들 때 막대한 금과 보석 등이 들어가는데 그 재료들을 누가 제공했는지 일일이 밝히지 않는데 왜 성경은 물두멍의 재료만큼은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다고 밝히는가? 물두멍을 회막 문에서 수종들던 여인들의 놋 거울로 만들었다고 기록하신 것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
여러분, 거울의 주된 용도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내 옷이 제대로 어울리는지, 머리는 어떤지 살펴보는 것이다. 마치 여인들이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 단장을 하는 것처럼, 놋거울을 녹여 만든 물두멍에서 제사장은 자신의 본 모습을 발견해야 한다. 지금 자신이 제사장이라는 거룩한 직분을 받았고, 그 직분의 시작을 알리는 머리에서부터 흘러넘치도록 거룩한 기름으로 기름부음까지 받았으며 후에 살펴보겠지만 제사장들이 입는 거룩한 의복까지 입었지만, 지금 그의 손과 발은 너무나도 더러워진 상태이다. 예배자가 잡은 짐승을 제물로 드리는 과정에서 피도 많이 묻었을 것이고, 여러 불결한 것들도 묻었을 것이며, 광야에서 불어오는 흙먼지도 묻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충만하신 임재가 있는 성소로 나아가기 전에, 또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화제를 드리기 전에 물두멍에서 이처럼 그의 손과 발을 깨끗하게 닦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우리는 우리 속에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죄성을 발견해야 한다. 교회 오래 다녔고, 교회에서 직분도 받았고, 여러 봉사와 섬김도 하고 있고, 다른 성도들에게 인정도 받고 있고... 여러분, 여러분을 포장하고 있는 이런 껍데기들을 벗어버리고 정직하게 말씀의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본 모습을 마주하라. 이런 저런 타이틀 속에 아주 깊숙히 숨어있는 자신의 철저하게 죄인된 본 모습 말이다. 렘17:9의 말씀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고 말씀하셨다. 내 겉모습은 반지르르하고, 교회의 울타리 안에 머물며, 늘 입술은 찬송을 부르고, 늘 말씀을 가까이 하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부패하고, 그 무엇보다 악취를 풍겨내며, 그 어떤 것보다 더럽고 불결한 것이 바로 내 마음이다. 내 속모습이다. 말씀의 거울 앞에 서자. 그리고 그간 나를 좋게 포장해왔던 겉모습들을 벗어버리고, 내 속 더러운 모습을 직시하자. 마치 나병환자 나아만처럼 겉모습은 화려하고 웅장하고 위대했지만, 속은 썩을대로 썩어버리고, 진물이 흐르고, 악취만 풍겨내는 비참한 모습을 바라보라.
두번째 교훈으로, 여러분의 죄를 회개하라. 하나님께서 제사장들로 하여금 '물로 씻게 하라' 라고 명하셨다. 물로 씻는 행위는 곧 회개를 상징한다. 더러운 죄를 씻어내고 깨끗함을 받는 것이다. 회심과 회개의 차이는 다들 아실 것이다. 회심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로서 신자의 평생에 단 한번 일어나는 것이고, 회개는 성화의 과정으로서 평생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 주에 살폈지만 번제단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이었는가? 하나님 앞에서 죄의 비참함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분 앞에서 내 죄의 삯이 요구된다는 점과, 희생제물의 대속적 죽음으로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완전한 희생제물로 자기 자신을 단번에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든, 어떤 죄를 지었든,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든 그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는다. 분명 그는 죄인이나 그리스도의 피로 덮어주사 의인으로 여겨주시는 것이다. 이를 신학적인 용어로 '칭의'라고 한다. 즉 번제단은 칭의를 가리킨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의롭다고 여김을 받은 신자라도 계속해서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회개가 일어나야 한다면 앞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은 칭의, 의롭다고 여김 받은 것이 뭔가가 불완전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구원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언제든 취소될 수 있다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얻게 된 의는 결코 취소가 되거나 번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의롭다고 여김받은 신자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점점 죄와는 멀어지고 거룩을 향하여 나아가는 성화의 단계를 밟아간다. 마치 사랑하는 부부가 서로를 닮아가는 것처럼 사랑하는 신랑 예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간다. 칭의만 있고 성화는 없는 신자란 있을 수 없다. 성화는 있는데 칭의가 없는 신자도 있을 수 없다. 칭의와 성화는 항상 같이 간다. 따라서 회심한 신자라도 회개가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신자라도 매순간 짓는 죄에 대하여 성결을 위한 회개가 일어나야만 한다. 이미 믿음으로 의롭게 된 신자라도 씻음이 필요하다.
제사장들은 물두멍에 담긴 깨끗한 물로 그들의 수족을 씻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는가? 엡5:26의 말씀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라고 하셨다. 우리의 죄악된 행실을 발견하게 하시고, 그 죄악을 물로 씻듯 깨끗하게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신다. 여러분, 성령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또한 말씀 가운데 역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고백하게 하시고 깨끗하게 하신다.
세번째 교훈으로, 항상 회개에 힘쓰라. 20절에 '씻어 죽기를 면하라' 라고 말씀하셨다. 제사장은 언제 씻어야 하는가? 회막 곧 성소에 들어갈 때, 그리고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이다. 이는 곧 제사장의 직무와 연관된다. 제사장이 그 직무를 감당할 때 물두멍에서 씻지 않는다면 그는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그가 물두멍의 물로 깨끗하게 수족을 씻는다면 어떤가? 20절에서도, 21절에서도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그는 죽음을 면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총 3가지의 죽음이 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세상에 3가지의 죽음이 찾아왔으니, 첫번째는 육체적인 죽음이고, 두번째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영적 죽음이며, 세번째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 맞게 되는 영원한 죽음이다. 두번째와 세번째와 비교할 때 육체적인 죽음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진정한 죽음이란 하나님과 단절되는 영적 죽음이요,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영원토록 받게 될 형벌이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는 영혼은 죽은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 과연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과의 교제에 힘쓰고 있는가? 하나님과의 교제단절은 죽은 것과 같을진대 과연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위해 얼마나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그 죄를 회개하여 성결에 힘쓰고 있는가? 반드시 기억하라. 제사장이 물로 씻지 않는다면 그는 죽는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말씀으로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의 교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가 예배의 자리에 왔다16가 가고, 기도의 자리에 앉았다가 가며, 경건의 모양은 갖추곤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오직 씻는 자에게만 허락 된다.
마지막 교훈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믿으며 회개하라. 물두멍에 규격이나 치수, 무게 등을 언급하지 않으신 것을 기억하라. 성막 안에 있는 다른 모든 기구들은 규격과 기타 자세한 사항에 대해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지시하셨다. 그런데 깨끗이 씻는 물두멍 만큼은 그리 하시지 않으시고 이 일을 사람에게 맡기셨다. 물두멍의 규격과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에 대해서도 전혀 제한이 없었다. 왜냐하면 제사장이 더러워질 때마다 깨끗하게 씻기 위해 불가피하게 항상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가장 크게 만들도록 하셨다. 제사장의 수족이 얼마나 더러워졌든지, 얼마나 많은 제사장들이 이 물을 사용하든지, 물두멍은 이 모든 수요를 다 해결하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양의 물을 담아낼 수 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이 물두멍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물두멍이 주는 교훈대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항상 회개에 힘쓰되,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심을 믿으며 회개해야 한다. 사55:7의 말씀에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말씀하시고, 또한 잠28:13의 말씀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은 한이 없어 진실로 회개하는 자의 어떠한 죄도 용서해 주시고, 그 죄가 너무나 많아도 용서해 주시며, 회개하는 자가 수백수천, 아니 셀 수 없이 많아도 그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기에 충분하시다. 언제든 말씀앞에 우리의 행실을 비추어 죄를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비와 긍휼을 의지하며 회개할 때, 측량할 수 없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 찬송가 가사처럼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한다. 물두멍이 주는 교훈을 받으라.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어 자신을 포장한 모든 것들을 벗어버리고, 내 속 깊이 숨어있는 죄성들을 마주하자. 그리고 말씀으로서 우리를 씻기사 거룩하게 하시도록 우리의 죄를 회개하자.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위해 늘 정결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회개에 힘쓰되,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심을 신뢰하며 그리 하자. 이를 통하여 우리의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며, 삼위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더욱 깊어가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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