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데 교회에 보내는 예수님의 편지

일곱 교회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63 views
Notes
Transcript
Handout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개요]
발신인 :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
칭찬 : 라오디게아교회와 마찬가지로 나타나지 않음.
질책 : 온전한 모습을 찾지 못함.
권면 : “깨어라", “굳게하라", “생각하라", “지키라", “회개하라"
약속 : 흰 옷을 입을 것이요, 샘영책에 기록된 그 이름을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신다.
[설교 대지]
현재 사데 교회가 처한 상황
긍정적이신 주님의 눈에 칭찬 받지 못함.
- 주님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후덕한 점수를 주신다. 히브리서 11장을 살펴보게 되면 믿음의 영웅들의 이름이 나온다. 그들이 어떻게 믿음의 영웅이 될 수 있었을까? 그들의 삶을 아는 우리는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훌륭한 성품이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들도 우리처럼 이 땅에서 죄에 넘어지고, 연약한 모습 투성이였지만 그들이 주님께 드린 “작은 것” 하나 보시고, “작은 믿음의 자리” 하나 보시고 주님께서 그들을 ‘믿음의 영웅’이라고 평가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시는 예수님께서 사데교회를 칭찬하시지 않으신다. 왜 그러시는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1절)
- 사데 교회 창문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그들도 우리와 같이 똑같이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이런 그들을 바라본 사람들은 “사데교회는 예수의 생명이 넘치는 교회구나!”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죽은 교회라는 것이다. 겉은 아름답게 꾸몄지만 실상 속은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는 교회라는 것이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2절에서 이렇게 표현하신다.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2절)
- 사데교회는 온전하지 못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될 단어는 “온전함"이다. 온전함이란 “가득 채워진 상태"를 의미한다. 반대로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텅빈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의 여러방을 만드심. 그 방 중에 하나는 오직 하나님만으로만 채울 수 있음. 만약 이 방이 비어 있게 되면 본능적으로 사람들은 허무와 고독과 공허함을 느끼게 됨.
-허무와 고독과 공허함 한 마디로 노잼 상태는 나쁜 것이 아님. 허기를 느껴야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의 허기를 느껴야만 영적인 양식을 먹으려 하기 때문임. 그래서 여러분들 안에 공허와 허무함, 고독, 외로움, 무료함 등 ‘마음의 허기'를 느낀다는 것 자체는 괜찮음.
- 그런데 문제는 이 ‘마음의 허기'를 하나님 외에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임. 여기서부터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게 됨. 사데교회도 마찬가지로 마음의 허기를 느낌. 그런데 이 마음의 허기를 하나님 외에 다른 것으로 채움. 당시 사데 도시는 굉장히 풍요로운 도시였다. 그 도시에 지역 최대의 금맥이 흘렀기 때문에 사데지역 사람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돈이 있다보니 사데지역 사람들은 쾌랙과 향략에 빠져 있었다. 한 마디로 사데교회 성도들은 마음의 허기를 하나님 외에 쾌락과 향락으로 채웠던 것이다. 바로 그 모습을 보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너가 이름은 살아 있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온전치 못한 상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예화) 박성결" 예화. 목사님 제가 왜 공부에 목숨 거는지 아세요? 마음이 텅 빈 것 같아요. 이 칠흙같은 공허함이 너무 괴로워요. 그래서 새벽 2시까지 공부하는 거에요.
- (적용) 여러분들은 어떤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고 솔직한 사람은 안다. 내 마음 속에 부인할 수 없는 마음의 허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 허기가 우울, 분노, 고독, 외로움, 허무함 다양한 이름으로 여러분 속에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도 사데교회와 똑같이 여러분들도 하나님으로 마음의 허기를 채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알아요? 목사님?
1) (예배의 자리) 1주일에 단 한 번 예배 자리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예배 바로 직전까지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어떤 친구는 예배 중에도 스마트폰을 하고 있다. 찬양팀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텅 비어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는가? 세상 가수들처럼 노래는 할 수 있겠지… 찬양하기 바로 직전에 그 어떤 것보다 마음의 허기를 하나님으로 채워야 하는 일이 시급한데도 불구하고 스마트폰하고 있다.
2) (주중 삶의 자리) 주중은 어떤가? 여러분들 중에 마음의 허기를 큐티로 채우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바쁘지만 시간 정해 놓고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친구가 얼마나 있는가? 타락한 본성 때문에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이 본능적으로 싫음에도 그래도 의지적으로 힘을 내어 찬양을 듣는 친구가 얼마나 있는가? 매주 한 번 그것도 30분도 채 되지 않는 줌 인 바이블하는 친구가 얼마나 되는가? 우리는 하나님으로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면 우리 고등부를 향해, 여러분들을 향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는가? 사데교회에게 하셨던 말씀 우리도 똑같이 듣는다. “너가 주일 날 교회는 안빠지고 나왔지만 실상은 영적으로 완전히 죽었구나!” “너에게서도무지" 온전한 모습을 단 한 군데도 발견할 수 없구나! 그렇게 칭찬에 후한 예수님께서 너에게서 칭찬할 모습을 단 곳도 찾지 못하겠구나! 라고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비참한 인생인가?
그러면 우리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지금 제대로 신앙 생활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하는 것 아닌가? 계속 이런 방식과 방법으로 계속해서 마음의 허기를 채우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법과 방식을 찾아볼 것인가? 고민해야 되지 않겠는가? 이미 하나님께서 처방전을 주셨다.
2. 하나님의 처방전 2가지
성령에 붙들린 말씀 사역자. 에수님께서 사데 교회에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모습으로 등장하셨다. 일곱 별은 에베소 교회 말씀을 나눌 때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바로 교회에서 말씀을 맡은 목사님과 선생님 같은 분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일곱 영은 무엇인가? 성령이다. 오해하지 말아라. 성령 하나님이 일곱 분이 계시다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이다. 즉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의 완전함을 의미한다. 지금 예수님께서 한 손에는 말씀의 사역자를, 또 한 손에는 성령님을 소유하고 계신다. 이 말은 말씀의 사역자와 성령님은 친밀한 관계가 있다. 교회에서 말씀을 맡은 자들이 성령의 지혜로 말씀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와 공의 예수님의 성품을 깊게 발견하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확신있고 담대하게 선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의 아름다우심을 선명하고 분명하게 드러낼 때 성도들은 예수님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선포한 말씀대로 예수님의 아름다우심을 누리는 그 삶이 얼마나 행복한 지, 얼마나 기쁜지, 얼마나 삶을 활력있게 만드는지 보여줄 때 성도들은 하나님으로 마음의 허기를 채우려 한다는 것이다.
- (예화) 생명력은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 목사님이 아들을 낳아보니깐 알겠다. 우리가 겸이가 가면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린다. 왜? 귀여워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니다. 여러분 곧 죽을 것 같은 사람에게 끌리는가? 아니다. 피한다. 갓 태어난 아기가 생명력을 마구 뿜어내며 발산하기 때문이다. 저쪽 끝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생명력을 발산하는 아기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목사님과 선생님들이 성령의 붙들려 예수의 생명력을 주일마다 마구마구 뿜어내게 될 때 그때 여러분들은 그 예수 생명력의 맛을 보고, 여러분들의 마음의 허기를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채우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 (예화) 목사님은 이 영적인 원리를 안다. 사단도 안다. 그래서 사단이 고등부를 무너뜨릴 때 누구를 공격하겠는가? 목사님이다. 여러분의 선생님들이다. 사단은 고등부의 영적인 생명이 말씀을 맡은 목사님과 선생님들께 있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사력을 다해 목사님과 선생님들을 넘어뜨리려 한다. 그래서 여러분이 받고 있는 사단의 공격과 시험보다 목사님과 선생님들이 받고 있는 시험은 훨씬 크다.
-(적용) 그러니 여러분들 목사님과 선생님들을 위해 기도해줘야 한다. 앞에서 말씀을 준비하는 목사님이 성령의 지혜로 말씀 속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기도해줘야 한다. 또 성령의 충만함으로 말씀을 선포하여 선명하고,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을 선포할 수 있도록 기도해줘야 한다. 아울러 전한 말씀대로 예수의 생명을 누리는 그 삶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 얼마나 기쁜 삶인지, 보여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게 되면 하지 말라고 해도 여러분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간다. 마치 맛있는 식당은 단골이 되고 계속 찾아가는 것처럼, 여러분들이 성령의 붙들린 목사님과 선생님들의 말씀 속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자비, 은혜, 공의의 맛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목사님과 선생님이 예수의 생명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기도해줘라. 일주일을 예수의 생명을 흠뻑 뒤집어 쓰면서 살아가도록,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수 생명으로 흠뻑 젖을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 그럴 때 고등부 안에 회복이 시작된다. 여러분들이 우리 안에 있는 생명력에 반응하여,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아이들이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예수 사랑의 생명수를 마시고, 그곳에서 마음의 허기를 채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고등부가 나중에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사데교회처럼 이름만 살아있고 실상은 죽은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으로,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로 마음의 허기를 채워서 실상은 너희가 살아 있구나! 이 칭찬을 듣는 고등부가 되도록 꼭 기도해 달라.
두 번째 처방전은 회개의 3단계이다. 3절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여기에 쓰인 동사만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처방전은 “생각하라!”, “지켜라”, “회개하라!”.
- 먼저 ‘생각하라'부터 살펴보자. 사실 헬라어 원문을 살펴보면 생각하라!는 말보다 ‘기억하라'는 말이 더 가깝다. 실제로 영어 성경을 보면 Remember로 번역한다. 지금 예수님께서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무엇을? 바로 복음이다. 성경에는 사데 지역에 성도들이 누구에게, 언제 복음을 들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지 않다. 분명한 건 누군가가 사데교회에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그때 처음으로 복음을 듣고, 받을 때를 그 감격과 감사와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날 위해 말구유의 누우신 만왕의 왕, 수치와 부끄러움을 참으시고 인간이 되신 예수님, 날 위해 십자가 위에서 모든 물과 피를 쏟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나 같이 가치 없는 자에게 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 이 원초적인 복음을 처음에 듣고, 받았을 때에 감격과 감동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왜? 이 복음의 핵폭탄이 내 마음 속에 터지고, 내 마음이 온통 복음의 감격과 감동으로 뒤덮일 때 그 때 우리의 영혼이 예수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다. 우리로 따지면 어느 수련회 때 받았던 복음의 감격, 어느 예배 때 받았던 복음의 감사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서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영어로 ‘Keep’이다. 왜 지켜야 되는가? 마태복음 13장 18-19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악한 자 즉 사단이 와서 빼앗기 때문이다. 여기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지!”, “다시 복음의 감격을 회복해야지", “예수의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야지" 결단하다가도 예배 당 문을 나서는 순간 사단은 마치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받은 감격과 감동을 빼앗아간다는 것이다. 친구와 갈등 상황을 만들고, 성적 걱정하게 만들고, 죄를 짓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지켜라! Keep해라! 유지해라! 어떻게 Keep하는가? 말씀을 붙드는 것이다. 오늘 지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테레오'이다. 이 동사는 요한계시록에 총 10번이 쓰였다. 그런데 ‘테레오' 동사는 10번 중 8번이 ‘말씀'을 목적어로 갖는다. 나머지 두 번도 믿음을 지켜라!, 주님의 일을 지켜라!로 말씀을 붙들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넓게 보면 결국 말씀을 지키라는 의미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요한은 적어도 요한계시록 안에서 적어도 ‘테레오' 동사를 ‘말씀을 지키다'라는 의미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적용) 여러분이 마음 속에 복음의 감격과 감동을 지키고 싶다면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말씀 앞에 여러분을 자꾸 노출 시켜야 된다. 말씀은 뗄감이다. 여러분 안에 있는 복음의 불을 지키는 뗄감이라는 것이다. 여러분 1주일에 한 번 그것도 목사님 설교 듣고 더 이상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여러분 안에 복음의 불이 살아있겠는가? 여러분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주일 날 여러분 마음속에 복음의 불을 점화했는데 다 꺼진 채로 이 자리에 앉아 있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오늘뿐만 아니라 말씀의 뗄감을 계속해서 주어야 한다. 주중에 진행하는 “줌 인 바이블" 참여해야 한다. 1주일에 주일 예배 제외하고 적어도 20분 이라도 선생님과 함께 진지하게 말씀 앞에 자신을 노출 시켜야 된다. 사실 이것도 모자르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이든,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이든 여러분 시간 내어서 말씀을 묵상해야 된다. 그래야 여러분 안에 있는 복음의 불을 지킴으로 복음의 감격과 감동을 누릴 수 있고, 여러분 안에 예수의 생명을 빼앗기지 않고 그 생명을 충만히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개하라!는 것이다. 회개하라는 동사는 마음을 고치라는 뜻이다. 눈물 질질 짜고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다. 마음 속으로 결단하라는 것이다. 복음의 감격과 감동 속에서 “내가 다시는 예수의 생명을 잃지 않으리!”, “시험기간이 다가와도 잠이 부족해도 내가 말씀을 놓치지 않으리!”, “내가 이전처럼 예수의 생명 없는 죽은 상태로 살지 않으리!” 결단하라는 것이다.
여러분 중에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 결단하는 것을 꺼려 하는 친구들이 있는 줄로 안다. 목사님 제가 해봤는데요, 그때 뿐이에요. 오래 못가요. 수련회 가도 그렇잖아요. 이런 친구에게 목사님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때 또 결단하면 된다. 넘어지면 또 결단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점점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예수의 생명력이 넘치는 삶으로 바뀌어 가라는 것이다.
(적용) 처음에는 1주일 중에 십자가의 사랑을 하루 밖에 못 느꼈지만 계속 넘어져도 결단하고 또 결단하다보면 1주일 2-3번 느끼게 되는 것이다. 넘어져도 또 결단하면 3-4번, 4-5번 경험하다가 이제는 예수의 생명을 매일 느끼는 삶으로 점점 변해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예수의 십자가 사랑이 없으면 금단 증상이 찾아와서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습관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 생활이며, 성숙이다. 넘어져도 괜찮다. 목사님도 수없이 넘어졌다. 또 도전하면 된다. 넘어지면 또 도전하면 된다. 그러다보면 어느 샌가 뒤를 돌아봤을 때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내 삶 속에서 예수의 생명을, 예수의 사랑을, 예수의 은혜를, 예수의 공의를, 예수님의 아름다우심을 충만히 누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3. 결론
말씀을 마친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듣고 기억하라! 지켜라! 회개하라! 이 세 가지 안 지키면 똑같다. 겉은 교회에 있지만 실상 속은 죽은 자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게임을 해도 노잼, 친구를 만나도 노잼, 노잼, 노잼, 노잼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 언제까지 죽은 자의 삶을 살 것인가? 여러분 언제까지 죽은 자의 예배를 드릴 것인가?
여러분 예수의 생명을 누리길 원한다면, 말씀 앞에 여러분을 노출 시켜라! “줌 인 바이블"에 참여해라! 오늘 적은 말씀 노트 버리지 말고 마음의 허기가 느껴질 때 꺼내어서 하나님께서 주일 날 내게 어떤 말씀을 주셨는지, 내게 어떤 말씀을 들려주셨는지 기억해라! 그리고 마음을 지켜라! 그리고 이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단하고, 성령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해라!
여러분이 여러분 안에 예수의 생명력을 삶 속에서 공급 받을 때 여러분 게임할 때 누리는 기쁨과는 비교 조차 안되는, 여자 친구/남자 친구 만날 때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즐거움, 원하는 성적 맞았을 때 느끼는 행복과는 비교조차 안되는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바라기는 우리 고등부 친구들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삶 속에서 누리는 우리 친구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질문.
사람들마다 느끼는 마음의 허기는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외로움, 어떤 사람은 허무함, 어떤 사람은 무기력, 어떤 사람은 잠, 어떤 사람은 게으름, 어떤 사람은 고독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느끼는 마음의 허기는 무엇인가요? 또 마음의 허기가 찾아왔을 때 여러분만의 해결하는 방법 있나요?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