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디라 교화에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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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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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요한계시록 2장 18절
제목 :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편지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서론
우리가 계속 살펴보고 있는 요한계시록은 사실 난이도로 따지면 극상이에요. 어른들도 사실 이해하기 쉽지 않고, 이해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마음속에 은혜로 받아들이기는 더 어려워요. 그래서 여러분들 중에 못 알아듣는 친구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이 요한계시록 말씀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오늘 날 우리 고등부 현실에 꼭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지금 코로나 때문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를 경험하고 있어요. 우리 고등부만 봐도 그래요. 우리 고등부는 내적으로, 외적으로 위기의 직면했어요.
1) 먼저 내적으로 살펴보면 과거에 비해 고등부 예배가 여러분들도 느끼고 있겠지만 예전 같지 않아요. 목사님이 몇몇 친구들에게 물어봤는데 공통적으로 “노잼”이래요. 친구들이 “노잼”이라고 재미있게 표현했지만 이 “노잼”이라는 단어 속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2) 외적인 위기는 더 심각해요. 여러분 교회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세상으로 복음 선포에요. 교회는 홍수로 떠내려가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구원의 방주에요. 그러나 지금 고등부의 상황은 어떤가요? 홍수에 떠내려가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방주의 역할은커녕 우리 중에 떠내려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는 거에요. 한 번 보세요. 우리 고등부에 저번 주에 새 친구가 온 것 제외하고 새 친구가 언제 왔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단순히 새 친구가 오고 안 오고 그 사실이 중요하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고등부의 초라한 영적인 현실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영혼을 맡기지 않으신다는 것이 문제에요. 우리 고등부가 살아 있으면 굳이 밖으로 나가 전도하지 않아도, 친구 초청 잔치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새 친구를 보내주세요. 목사님은 이 사실을 고등부 1-2년 차 때 많이 경험했어요.
개인적인 신앙의 위기도 문제에요. 목사님과 개인적으로 신앙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종종 나누는 고3 친구가 한 명이 있어요. 이 친구가 어느 날 목사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목사님, 제가 예전처럼 다시 신앙을 회복할 수 있을지 두려워요. 다시 열심히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예전에 느꼈던 ‘열정’과 ‘설렘’이 제 안에 없어요”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인지 알아요? 지금 고등부의 위기를 위기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위기라는 거예요. “차차 좋아지겠지”, “괜찮아지겠지” 스스로 위안삼아 목사님 자신을 위로하며 위안삼고는 있지만 고등부를 바라볼 때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는 없어요.
그래서 목사님이 다시 한 번 일어나길 원하는 마음으로 요한계시록 말씀을 살펴보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다시 잃어버린 영광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고등부가 다시 회복할 될 있을까? 다시 회복하고, 영광을 되찾기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살펴보는 거예요. 바라기는 우리 고등부의 회복을 꿈꾸는 마음으로 같이 말씀을 나눴으면 좋겠어요.
본론
우리가 오늘 살펴 볼 교회는 두아디라 교회에요. 예수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을까요? 18절이에요. 우리 다같이 읽어봅시다.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으로 등장하셨어요. 정리를 하자면 불꽃같은 눈과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을 가지신 모습이에요.
먼저 불꽃같은 눈을 가지신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여러분 상대방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어요. 그 사람이 슬픈지, 그 사람이 기쁜지, 그 사람이 화났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불꽃같은 눈을 뜨고 계시는 예수님의 감정은 뭘까요? 분노에요. 여러분 인터넷에 보니깐 분노는 5단계가 있데요. 극소노, 소노, 중노, 대노, 극대노예요. 이 5가지 단계 중에서 예수님의 분노는 어떤 단계일까요?
불꽃이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어요. 한글 성경에는 ‘불꽃’이라는 말을 단순히 한 마디로 표현을 했지만 영어 성경을 보면 두 단어로 나누어서 표현했어요. “A Flame of Fire”! Flame과 Fire 둘 다 불을 가르키는 단어에요. 둘 중에 한 단어만 써도 충분히 불꽃같은 예수님의 눈을 설명할 수 있어요. 그런데 왜 굳이 ‘불’이라는 단어를 중복해서 썼을까요? 헬라어 성경을 봐도 마찬가지에요. ‘포르가’ ‘퓨리’ 둘 다 불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동일하게 중복해서 사용했어요. 왜요? 우리는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어요. 지금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분노는 극소노, 소노, 중노, 대노도 아니에요. 극대노라는 거예요. 지금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눈빛은 이글이글, 활활 타오르고 계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 때문에 화가 나셨을까요? 21절이에요.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에 극대노하신 이유는요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이 단 한 번 죄를 지었거나 실수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어요. 우리는 행동으로, 생각으로 매일 죄를 지어요. 우린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밖에 장대비가 내리는데 우산 하나 들었다고 비를 온전히 피할 수가 있어요? 없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죄악 된 세상이에요. 그곳에서 아무리 노력하고 애쓴다 할지라도 죄를 안 짓고 사는 건 불가능이라는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세상의 악함과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세요. 우리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죄에 걸려 넘어진 우리를 바라보시며 처음부터 분노를 발하지 않으세요. 죄에 빠진 우리를 바라보시며 안타까워하시며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주의 사랑을 부어주시고, 용서해주신다는 거예요. 이때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다시 돌아오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성경을 살펴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개의 기회를 잡은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욱더 하나님과 친밀감을 누리는 걸 보게 되요.
그런데 문제는 회개할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는 경우에요. 이 경우에는 문제가 되요.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를 보세요.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실 때 말씀하셨어요. 요한복음 13장 21절이에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혹시라도 가룟 유다가 못 알아먹고 회개의 자리에서 떨어질 까봐 26절에 다시 말씀하세요.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룟 유다는 돌이키지 않고 결국 예수님을 팔았어요.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와 삽비라도 마찬가지에요. 아나니와 삽비라는 욕심에 눈이 멀어 땅 판 돈에 일부를 가로챘어요. 그리고 마치 전부를 드리는 것처럼 베드로 사도 앞에 헌금을 드렸죠. 그러자 베드로 사도가 물었어요.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이때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어야 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어요. “예, 끝까지 거짓말을 했다는 거예요. 그러자 그들은 그 자리에서 죽음을 당해요. 물론 오늘 날은 회개의 기회를 놓쳤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죽지는 않아요. 그러나 안심할 수 없어요. 영적으로 하나님과 철저히 끊어지기 때문이에요. 어떤 마음의 위로도, 감동도, 은혜도, 하나님과의 친밀감도 느끼지 못한 채 홀로 고립되어 처절하게 허무함과 공허 가운데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에요.
혹시 여러분들 중에서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기회를 안 잡을 수도 있지!”, “하나님께서 너무 가혹하신 것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을지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개의 기회는 우리가 도무지 저항할 수 없는 기회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어떻게 주시나요? 가장 먼저 죄를 깨닫게 하세요.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넣어주신 양심을 가지고 태어나요. 이 양심을 통해서 어느 정도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이 양심의 기능이 너무 약해요. 그래서 얼마든지 우리가 양심의 소리를 무시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우리 안에 죄를 깨닫게 하세요. 우리 안에 고장 난 양심의 기능을 그 순간 회복시켜주시고, 그 양심을 통해 강력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거예요. 이때는 저항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저항할 수 있어요. 여전히 마음이 완악하고 교만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바꿔주세요. 요한계시록 3장 20절이에요.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무슨 말이에요?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하심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으로, 또 때로는 찬양으로, 감동적인 영화나 영상으로 돌같이 굳게 굳은 우리의 마음을 녹여 주신다는 거예요. 그 순간 우리의 완악하고 교만한 마음이 물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해요. 우리의 마음이 은혜의 마음으로 변한다는 거예요. 그때 우리는 회복된 양심의 꾸짖음과 성령의 꾸짖음 앞에 드러난 우리의 죄를 눈물로 진실하게 회개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와 우리에게 주시는 회개의 기회에요. 여러분 이 회개의 기회를 우리가 저항할 수 있겠어요? 저항하는 거 쉽지 않아요. 경험해 본 친구는 알겠지만 하나님께서 그 순간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감정을 확 잡고 회개의 자리로 이끄시기 때문에 저항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거예요.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은혜의 회개의 기회를 저항했어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와 용서하심이 담긴 말씀이 두아디라 교회 성도의 마음을 두드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저항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건 진짜 악한 거예요. 대놓고 하나님을 무시한 거예요. 의지적으로 노력해서 하나님을 밀어내고 하나님을 조롱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극대노 하신 거예요.
(적용) 여러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기본적인 마음은 긍휼이에요. 사랑이에요. 용서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늘 항상 죄를 짓고 있는 우리에게 늘 항상 회개의 기회를 주고 계세요.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동시에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향해 진노의 활시위도 당기고 계시다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 어떤 방법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을 터치하실 때, 여러분 안에 양심이 여러분을 질책할 때 그냥 흘려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자리가 학교든, 학원이든, 집이든 그 어디든 성령님께서 내 마음을 터치하시고, 내 안에 양심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신다면 우리가 회개로 반응해야 된다는 거예요. 반응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저항하면 성령님께서 더 이상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지 않으세요.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설 때까지 성령님께서 침묵하신다는 거예요.
혹시 여러분들 중에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회개의 기회를 무시한 친구들이 있나요? 괜찮아요. 다시 회개하면 되요. 그러면 성령님께서 다시 역사해주세요. 다시 한 번 우리의 죽어 있는 양심을 흔들어 깨우시고, 우리의 완악하고 교만한 마음을 사랑으로, 자비로, 용서하심으로 두드리시고 우리를 회개의 자리로 이끌어 주신다는 거예요.
바라기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수시로 수없이 주시는 이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고등부가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셨을 때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진실한 회개로 응답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불꽃같은 예수님의 시선 아래 사는 인생이 아니라, 선하신 사랑스러우신 예수님의 시선을 누리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어서 빛난 주석과 같은 예수님의 발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죠. 이 의미를 알려면 창세기 3장 15절을 알아야 돼요. 우리 다같이 읽어 봅시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지금 이 말씀은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님께서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사단은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말씀이에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는 사단에게 발꿈치를 물려 돌아가실 정도로 허약한 발을 가지고 계셨어요. 그러나 지금은 달라요. 모든 사망과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아무리 사단이 강하다 할지라도 예수님 앞에서는 그저 “밥”이라는 거예요. 지금 이 예수님의 강함을 요한은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을 가지신 모습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
예화) 여러분 학교 가보면 가오가 육신을 지배하는 가오충 남자애들이 있어요. 굉장히 자신이 싸움 잘하는 척, 강한 척을 하죠. 하지만 운동한 친구가 와서 “너 죽을래?”라고 한 마디하면 바로 꼬리를 내리고 쫄아요. 지금 사단의 상태가 그래요. 마치 자신이 강한 척 믿는 우리를 겁주며 가오를 잡지만 예수님께서 “너 죽을래?” 딱 이 한 마디만 하면 도망가기 바쁘다는 거예요. 지금 요한은 사단과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강한 예수님의 모습을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을 가지신 모습으로 소개하고 있는 거예요.
적용) 여러분 이 모습이 당시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에게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을 가지신 예수님의 모습은 상당히 많은 용기와 위로를 건네주었어요. 지금 두아디라 교회가 직면한 상황은 어떤 상황이에요? 믿는 자들은 하루아침에 재산이 몰수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거예요. 한 마디로 사단이 교회를 붙잡고 강하게 흔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에요. 사단이 교회를 낭떠러지 끝까지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가운데 예수님께서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을 가지신 모습으로 등장하시면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애들아, 사단이 사자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보여주며 너희를 향해 으르렁 거린다 할지라도 겁먹을 필요가 없단다. 자 눈을 뜨고 보렴! 그 사자의 목줄을 누가 쥐고 있는 지 봐라! 사단이 아무리 너희를 옥에 가두고 고문을 하고 교회를 흔들며 겁박을 한다할지라도 내가 사단의 목줄을 쥐고 있다! 사단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너희에게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보여주며 겁을 주는 것뿐이다. 결코 너희에게 영원한 패배를 안겨줄 수 없다! 너희를 결코 멸망시킬 수 없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아라! 두려워 하지말아라! 지금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거예요.
여러분 때로는 사단이 우리의 삶을 거세게 흔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코로나 때문에 교회도 약해지고, 우리의 신앙도 믿음도 약해진 것 같아요. 이전과 같은 예배의 기쁨과 감격이 없어요.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러나 우리가 낙심하지 말아야 될 이유가 어디에 있나요? 영적인 눈을 뜨고 보니깐 예수님께서 사단의 목줄을 쥐고 계시다는 거예요. 사단은 예수님의 손에 따라 이리 저리 움직이는 목줄에 매인 하루 강아지일 뿐이라는 거예요. 사단은 그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보여주며 으르렁 거리고 있을 뿐이지 그게 다라는 거예요. 우리의 삶을 영원히 멸망시키거나 패배를 안겨줄 수 없다는 거예요. 지금 예수님께서 이것을 보라는 거예요. 마음속에 두려움과 낙심을 떨쳐 버리라는 거예요.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고 낙심된다 할지라도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을 가지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붙들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사단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듭시다. 사단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나를 지치게 하고, 주저앉히려 할 때, 친구와의 비교를 통해 내 자존감을 깎으려 할 때, 괴로운 생각들을 넣어 줄 때 그때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나 혼자 싸우려고 하면 100전 100패입니다. 그러나 빛난 주석과 같은 강하신 우리 주님을 붙들고 그 분과 함께 싸울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괴로운 생각이 물러가고, 마음속에 우울이 물러가고, 다시 예수님의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결론
말씀을 마칠게요. 여러분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고등부 회복의 방법 2가지를 배웠어요.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는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을 가지신 예수님을 붙잡고 사단과 싸우는 거예요. 우리가 이 두 가지를 철저히 지켜나갈 때 우리 고등부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진노의 불꽃이 아니라, 선하시고 사랑스러우신 시선으로 바뀌게 되실 줄로 믿어요. 바라기는 예수님의 선하신 시선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든 고등부 친구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주님, 사단은 성적의 잣대를 들이밀며 우리를 판단하고 우리의 자존감을 낮게 합니다. 끊임없이 앞서가는 다른 친구와 비교하게 만들어 우리 마음속에 불안을 증폭시킵니다. 다시는 예전처럼 예수님과 가까워지질 못할 거라고 두려움을 심어줍니다. 주님 우리가 어떻게 이 사단의 강력한 공격을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성령님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시선을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정 시켜주시옵소서. 사단의 머리를 밟으시고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마음속에 우울과 불안과 염려와 걱정을 몰아내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을 다시 회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주님께서 주시는 무수히 많은 회개의 기회들을 무시하고 외면했습니다. 주님 우리의 무지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다시 한 번 완악하고 완고한 우리의 마음을 주의 사랑으로, 주의 은혜로, 주의 자비하심으로 두드려 주시옵소서. 다시 한 번 우리 고등부 가운데, 내 삶 가운데 회개의 문을 열어주셔서 불꽃같은 예수님의 시선 아래 사는 인생이 아니라, 선하고 따뜻한 주님의 시선을 누리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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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Zoom in Bible을 통해서 배웠던 말씀 내용으로 성경퀴즈를 하려고 합니다. 퀴즈 대회 날짜는 아직 미정입니다. 성실하게 선생님과 Zoom in Bible을 하면 다 맞출 수 있는 난이도입니다! 푸짐한 상품을 준비할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2.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한다" 매주 주일 오후 1시 교회 뒤편 운동장에서 농구를 합니다. 농구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방역지침을 지키며 합니다^^
3. 오늘 예배 끝나고 배드민턴 치러 갑니다. 배드민턴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목사님에게 문의해주세요!
210502 말씀노트
제목 : 불꽃같은 눈, 빛난 주석같은 발
말씀 : 계 2장 18절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 )이 ( )같고 그 ( )이 빛난 ( )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말씀 요약]
1. 위에 빈 칸을 채워보세요.
2. 고등부(우리)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요한계시록 말씀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3.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분노는 극소노, 소노, 중노, 대노, 극대노 중에 ( )입니다.
4. 예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두아디라교회를 바라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5. 예수님께서 처음 오실 때 ( ) 발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 )과 같은 ( ) 발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제 사단은 예수님의 ( )입니다.
[나눠보세요]
1. 길을 걸으며, 혹은 버스 안에서 이어폰으로 찬양을 듣고 있을 때 문뜩 예수님께서 그분의 사랑과 위로가 느껴져 차갑고 냉랭한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워진 경험이 있나요? 또는 갑자기 내 잘못을 생각으로 깨닫고 뉘우친 적이 있나요?
2. 최근에 여러분들을 불안하게 만들거나 괴롭게 만들었던 생각이나 일이 있나요? 마음의 평안을 깨는 일이나 생각이 우리에게 찾아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마음의 평안을 지킬 수 있을까요? ᅠ
[나눠보세요]
1. 길을 걸으며, 혹은 버스 안에서 이어폰으로 찬양을 듣고 있을 때 문뜩 예수님께서 그분의 사랑과 위로가 느껴져 차갑고 냉랭한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워진 경험이 있나요? 또는 갑자기 내 잘못을 생각으로 깨닫고 뉘우친 적이 있나요?
2. 최근에 여러분들을 불안하게 만들거나 괴롭게 만들었던 생각이나 일이 있나요? 마음의 평안을 깨는 일이나 생각이 우리에게 찾아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마음의 평안을 지킬 수 있을까요? 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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