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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량의 날, 일어나 주님을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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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설교 / 2021.03.24
본문 : 누가복음 21장 20-28절
제목 : 속량의 날, 일어나 주님을 바라보라!
설교자 : 윤영준 목사
주제: 종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자.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 누가복음 21장 20-28절 -
[도입 : 말씀의 경계 안에 거하십시오. ]
요즘 세상은 빅데이터 시대라고 합니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그 정보들 가운데서 정확하고 필요한 정보들을 구별해고, 그 구별된 정보들을 토대로 미래의 사업들을 구상하는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과거와 현재에 대한 훌륭한 정보들과 관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미래가 우리에게 감추어져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미래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 귀에 들리지 않으며, 우리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미래가 어떠할 것이다. 머리로 그려볼 수는 있어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 ‘종말’이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엄청나게 많은 자료와 영상들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무엇을 취하고, 진짜를 구별해낼 것인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계시록 말씀을 담임목사님께서 시리즈로 전해주시는 일은 너무 필요하고 감사한 일 같습니다.
성도에게 중요한 규칙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제 생각에 성도의 가장 중요한 규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의 경계 안에 머무르는 일입니다. 오늘 날에는 종말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 혼란과 불안과 두려움들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요? 바로 이 규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경계 안에서 머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알거나 예측할 수 없지만, 하나님 말씀 안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일도 알 수없고, 한 치 앞도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은 온 만물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며, 완성해가시고,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에 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계시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정확하게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말씀하시지 않으신 것은 어떤 이유이실까요?
우리가 정확하게 알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과는 상관없기에 알려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경계를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해야 합니다.
[배경 설명]
오늘 본문은 종말에 대한 큰 담화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어제 큐티, 오늘 큐티, 내일 큐티는 하나의 통으로 연결된 본문입니다. 이 말씀이 종말에 관한 말씀이기에 조금 더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헤롯 성전은 당시 유대왕이였던 헤롯이 지은 성전입니다. 헤롯 성전이라고 불리운다. 헤롯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기존에 있던 상대적으로 작고 초라했던 스룹바벨 성전을 헐고, 그 자리에 거대한 성전을 짓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제사장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미리 엄청난 재물들과 인력을 준비해야 했다고 합니다.
먼저 기존의 성전이 있던 산을 깎아내었는데 그 부지가 미식축구 경기장 24개 이상을 지을수 있을 정도로 넓은 부지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헤롯 성전은 솔로몬 성전보다 3배 높습니다. 52미터입니다. 아파트 20층 높이입니다. 돌 하나의 크기가 높이가 4미터에 이릅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헤롯성전은 당시 로마제국에서 가장 웅장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 손 꼽혔다고 합니다. 따라서 사람들, 특히 갈릴리 시골에서 온 예수님의 제자들의 눈에는 이 성전이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해보였겠습니까? 자연스럽게 성전을 보면서 감탄했던 것이죠.
5-7절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아마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 거대한 성전을 보면서, 성전이 있는 한 우리 예루살렘은 절대로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안전의식은 곧 따라오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 거짓으로 판명됩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이 거대한 돌로 된 성전들이 무너뜨려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평행본문인 마태복음 24장을 보면, 질문의 의도가 더 선명해집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 파괴를 단순한 성전파괴로 끝나지 않고, 성전이 파괴된다면 이 세상의 끝이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파괴될 때가 언제이고, 마지막 때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대해 질문한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대답도 성전파괴에 대한 이야기와 마지막 때에 대한 이야기로 말씀하십니다. 물론 예수님은 두 가지를 분리하여 생각하셨습니다.
[본론1 : 징벌의 날 (예루살렘의 멸망) - 거짓 안전 의식에 속지말라! ]
먼저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20-2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안전한 도시이며, 성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거짓된 안전 의식 속에 살아갔습니다.
오늘 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짓된 안전의식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안전성을 추구합니다. 직업을 구할 때도 능력을 발휘할 수있고, 연봉을 많이 주는 곳을 찾지만, 또 하나가 지속성이 보장되는 곳, 내가 계속 일할 수 잇는지를 살펴봅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사람들이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취직하려는 이유도 이런 안전성일 것입니다. 소위 ’철밥통’이라 불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가 먹고 살 수 있는 것들은 보장받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이 있습니다.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하고 안전한 나만의 성을 쌓으려고 합니다. 어떤 위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안전함을 갖고 싶어하지만, 사실 세상에서는 이러한 안전함을 보장 받을 수는 없습니다. 좋은 직장과 재물, 사람과의 관계들이 잠시동안은 안정감을 주고, 안전해보인다할지라도 언젠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안전함은 어디있을까요? 오직 하나님 만이 우리의 피난처이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반석이 되십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과 성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거짓 안전의식 가운데 살아갔지만,
하나님께서 떠난 예루살렘과 성전은 더이상 그들에게 안전한 장소가 아니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였기에 징벌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이제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산으로 도망해야 합니다. 어떤 일상도 포기하고 도망쳐야 합니다. 자신들에게 임할 재난을 피하기 위해서 신속하게 출발해야 합니다. 이 때에 아이 밴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은 속히 도망하기 어려워서 불행하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아마 예수님은 누가복음 23장,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시면서,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서 울지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역사 속에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AD 70년, 예수님의 승천하시고, 30여년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너무 참혹하고 비참한 사건이였다고 합니다. 로마군에 의해서 무려 110만명의 사람들이 학살당했고, 8만 7천명의 사람들이 전쟁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각종 절기와 의식들이 금하여지고, 율법책이 불탔습니다. 심지어 먹을 것이 없어진 사람들은 자신의 어린 아이들까지 삶아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너무 잔인하고 참혹하고 비참한 사건이였습니다.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실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를 정하여 주셨는데, 이방인의 때가 찰때까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며,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특권을 소유하는 때입니다.
과거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이 누렸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특권을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민족들이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 ‘거룩한 땅’ ‘거룩한 도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본론2 : 마지막 날 - 거짓된 두려움에 속지 말라! ]
20-24절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이야기하셨다면, 25절부터는 마지막 날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곧 세상의 마지막은 아니지만, 분명한 연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마지막 날이 반드시 올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영화의 2-3분짜리 예고편이였다면, 마지막날의 모습은 본편 영화입니다. 징벌의 날이 예루살렘과 유대인들의 이야기였다면, 마지막 날에 일어날 일은 전세계적이고, 모든 민족들의 이야기이며, 전우주적인 이야기입니다.
25-26절입니다.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마지막 때에는 전 우주적인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피조세계 전체에 기이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하늘에 떠있는 해와 달과 별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흔들리고, 권능들이 흔들리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큰 두려움과 어쩔줄 모를 혼란함 속에서 거의 기절할 정도가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임한 멸망은 산으로 도망이라도 갈 수 있겠지만, 예루살렘성을 벗어나면 피할 수도 있지만, 이 마지막 때는 피할 곳도 없습니다. 전우주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쉼표였다면, 마지막 때는 역사의 마침표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이단들이 이 두려움을 통해서 사람들을 조종하려고 합니다.
얼마 전에 ‘CBS 새롭게 하소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몇 년동안 신천지에 속하였지만, 지금은 빠져나온 자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예로 들면, 어떤 사람이 신천지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면, 신천지는 그 사람에게 ‘은사치기’라는 것을 한다고 합니다. 은사치기의 과정은 나가려는 이와 친분이 있는 신천지 사람이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신천지 사람은 미리 약속 장소 근처에 가서 기다립니다. 목표한 대상이 약속장소로 오기를 기다렸다가 지나가면서 넌지시 말하는 겁니다.
“지금 너 말씀 공부 그만두려고 하지? 그러면 가족들에게 위험이 닥칠거야. 너희 부모님이 돌아가실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말하며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이전에 신천지에서 들었던 말들로 인해 두려움에 빠지게 되고, 그 때 미리 약속한 사람이 다가가 두려움에 있는 지체에게 다시 신천지 모임에 나올 것을 권유함으로 두려움때문에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신천지는 모략전도라는 것을 합니다.
지금은 종말의 때다. 추수의 때이니 거짓말을 해도 좋다고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거짓말을 하든 사기를 치든지 사람들을 끌어오라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정말로 그런 분이실까요?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거짓과 악을 행하도록 부축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악과 거짓이 조금도 없으시며, 악을 반드시 진멸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만약 하나님께서 십계명 중의 하나인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는 계명도 못지키신다면, 그 분이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이처럼 많은 이단에서는 종말을 빌미로,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오도하고, 그로 인해서 수많은 영혼들이 방황하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CBS에 나온 자매도 몇년을 신천지에서 허송세월하다가 돌아왔는데 돌아와도 그동안 모든 관계들이 끊어있고, 경력도 끊어져있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 속에서 어려워하는 자매의 모습을 보니, 화도 나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처럼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두려움에 떨며 사는 삶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27-2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큰 영광 가운데 다시 이땅 가운데 오실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믿는 자들에게 선포되어질 말씀은 이 마지막 날이 멸망의 날이 아니라 속량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마지막 때의 징조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신 목적은 우리가 두려움과 절망 가운데 사로잡히라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이 언제 오실까 그 때를 추측하고 계산하면서 인생과 시간을 낭비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마지막 때에 대해 말씀하신 이유는 오히려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을 기쁨으로 확신하고, 소망으로 준비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 기쁨은 주님이 다시 오셔서 이루실 구원의 완성에 있습니다. 소망은 이 구원을 하나님께서 결코 실패함없이 온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에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구원의 이야기의 대단원의 마침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셨을 때는 ‘유대-이스라엘’의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복된 소식을 직접 경험했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 가운데 오실 때에는 온 우주의 모든 이들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날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속량의 날입니다.
구원의 날입니다. 구원의 마침이 되는 날입니다. 그 날에 우리는 일어나 고개를 들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될 것이며, 그 분의 다스람 안에 있고, 영원히 그 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결 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상에는 ‘마지막 때’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끊임없는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종말에 대한 관점은 ‘성경 말씀’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거짓된 안전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고, 두려움의 허상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멸망은 우리에게 그 힌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할 당시, 로마의 티투스 장군은 성전을 파괴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왔습니다. 어디까지 들어왔냐면, 가장 거룩하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지성소까지 들어왔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지성소는 대제사장 한 명만 그것도 일년에 한번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안계신것이 아니야?라고 생각하실 수 있죠.
맞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기에 그는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헤롯 성전의 지성소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성전을 떠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성전 건물에 임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마지막 때를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서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시지 않은 때를 추측하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거짓된 안전이 아니라 내 안에서 함께 하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오실 것을 믿으며,
깨어서 기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에게 속량의 날, 구원의 날입니다.
그 날에 우리는 일어나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것입니다.
그 소망으로 오늘을 살아가시기를 소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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