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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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설교
일시 : 2021.03.21
본문 : 누가복음 18장 31-43절
제목 : 구원받는 믿음
설교자 : 윤영준 목사
주제: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찾아오십니다.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
양하니라
- 누가복음 18장 31-43절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첫번째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알리신 것이고,
두번째로는 맹인의 눈이 뜨여진 것입니다. 이 두사건을 통해서 무엇이 구원받는 믿음일까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분의 삶에게 가장 중요한 날은 언제였나요?
비장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저는 생각해보니, 몇 번 있었던 것 같아요.
수능시험 보기 전 날 / 결혼식 입장하러 들어가기 전 / 아내가 아이를 낳으러 수술방으로 들어서고 기다리는 순간 등등 제 인생에 중요했던 순간들이였고 그 만큼 긴장되고 비장한 순간이였습니다.
오늘 예수님도 보통때와는 다르십니다.
마치 전쟁을 앞둔 장수와도 같이 그 분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맴돕니다.
눈빛과 얼굴 표정 하나하나까지도 진지하시죠.
열두명의 제자를 모두 불러놓으신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입을 열고 말씀하시죠.
“보라 우리는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것이다.”
제자들은 아마 의아해했을 것입니다. 해마다 몇 번씩 가는 예루살렘이 무엇이 새로운 일이라고,,,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시죠.
“내가 사람들에게 넘겨져 조롱과 능욕을 당하고 침뱉음을 당하고 채찍질 당하고 죽었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리라”
여기서 기대되는 반응은 무엇일까요?
대성통곡을 하면서 예수님 가시면 안된다고 못보내드린다고 말려야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비장하게 우리도 예수님의 길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34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기껏 진지하게 이야기했는데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정말로 허무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성경은 며칠 후에 에피소드를 하나 더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여리고를 지나고 계셨는데 평생동안 앞을 보지 못하고, 성문 앞에서 구걸을 하던 맹인이 지나가는 예수님을 소리쳐서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얼마나 이 맹인이 목놓아 불렀는지 복식호흡을 잘 했나봐요. 시끄럽게 불러댔는지 사람들이 제발 좀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던길을 멈추셨고, 태어났을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던 이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더 놀라운 일은 예수님께서 맹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이죠.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여러분에게 자리를 마련해준다면 예수님과 복음에 대해서 몇 분이나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아마 5분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BTS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달라질까요?ㅎㅎ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BTS의 멤버들 하나하나 생일서부터 좋아하는 음식까지 다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아는 것이 BTS의 전부일까요? 아니겠죠.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예수님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할지라도 그 앎과 믿음은 온전치 못해요.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보세요. 그들은 예수님과 3년동안 먹고, 자고 동행하며 함께 합숙을 했지만,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야기에 대해 1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예수님께 칭찬받았던 맹인은 나은가요?
아니죠.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기라도 했지만, 맹인은 예수님을 실제로 본 적도 없습니다. 여리고 성문에서 평생 구걸하며 살아가던 사람이였기에 그 주변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주워들은 예수님에 대한 몇 가지 정보뿐이였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구원받는 믿음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는 믿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맹인의 외침에 힌트가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맹인은 예수님에 대해서 제자들보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무리들보다 나은 것이 딱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간절함이였죠.
그에게는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호통을 치며 위협할지라도 주눅들지 않고, 더 큰 목소리로 외치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간절함만 있다면, 다 구원받을 수 있나요?
모든 사람들에게는 무엇인가를 향한 간절함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꿈과 이성, 관계들에 대해서 간절함을 가지고 있죠. 그렇다면 간절함만을 가지고는 아니라는 것이죠.
때로는 간절함은 다른 길과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다른 종교들을 보십시오. 그들 모두에게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힌두교만 해도 - 어떤가요?
힌두교는 ‘수행’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얼마나 간절하냐면, 사진을 보여드릴게요.
이들은 쇠똥에 불을 붙여서 머리에 올려놓습니다.
머리에 불타는 쇠똥을 올려놓고 견딜만큼 그들 안에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또한 박쥐처럼 나무에 꺼꾸로 매달려 며칠을 견딜만큼 간절함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올 불을 놓고 선지자 엘리야와 대결했던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에게도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밤새도록 바알의 이름을 부르고, 소리를 지르고, 밤새도록 뛰어다니며, 심지어 자신의 몸에 칼로 상처를 낼만큼 그들에게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그 제단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불만이 임했습니다.’
다른 이들의 간절함과 맹인의 간절함에는 명백하게 다른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뭐라고 맹인이 불렀는지 살펴볼까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맹인은 실로 간절했을 뿐만 아니라 그 간절함의 대상이 정확했습니다.
온 만물의 주인이시며, 유일한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향한 간절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죠.
많은 이들이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하지만, 사실 간절한 이들의 기도를 들어줄 대상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자신을 찾는 이들의 간절함을 들으시고 반응하십니다. 그리고 이 간절함과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하심이 만나면, 이것은 하나님께 믿음으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구원받는 믿음을 가지고 계신가요?
내 삶의 구원자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예수님에 대해서 1~100까지 다 안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내 옆에 계시다고 해도, 그 분의 이름을 믿지 않는다면, 그 분을 찾지 않는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구원받는 믿음은 하나님을 부르는 간절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였구나…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그 깨뜨려지고 무너진 자아로부터 간절함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야 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예수님을 간절히 구하며 외칠 때, 하나님은 그 모습을 불쌍히 보시고, 이것을 구원받는 믿음이라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하나님을 갈망하십시오. 하나님을 원하십시오. 하나님께 외치십시오.
마치 오늘 나를 지나치면 어떻하나 그 애타는 맹인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외침과 간절함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나를 붙드시고 은혜를 선포해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고요? 그것이 예수님께서 비장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오르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 주님의 날개 안에 거하는 청소년 친구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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