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장 32절-35절 교회 공동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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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성경 : 사도행전 4장 32절-35절
설교 : 교회 공동체의 힘
찬송 : 새찬송가 216장, 성자의 귀한 몸

반지의 제왕, 동지애로 모인 공동체

한 때 유행했던 영화 중에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보았거나, 혹은 영화를 본 분들은 악에 대항하여 다양한 상황의 존재들이 모여서 "반지원정대"를 만듭니다.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거나 상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에는 반지원정대의 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서로 간에 공통점이 거의 없습니다. 또 각자의 우선 순위도 다르지만, 하나의 목표 아래에 동지애를 가지고 서로의 생명을 지켜 주고 돕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는 동료들이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법을 배워가며, 서로의 장점과 판단을 존중하고 의지합니다. 특히 서로의 약점을 인정하고 서로 보완하며 힘을 합하게 됩니다.
이 영화를 통하여 강조하는 바는, 공동체의 동지애라고 생각합니다. 이 동지애가 결국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고 목적도 이루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인 공동체

교회 역시 다양한 상황의 구성원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서로의 가정 형편도 다르고 생각도 다릅니다. 세상에 관한 관점도 다르며 신앙의 연륜도 차이가 납니다. 어떻게 보면 앞서 말씀 드린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반지원정대와 같은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지원정대는 동지애로 모인 공동체이며 목적 의식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그 목적을 이루고 나서는 각자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며 반지원정대는 해체가 됩니다. 하지만 교회는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릅니다. 교회 공동체는 목적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여진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심으로 한 가족으로 한 공동체로 만들어 주신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것이라 하는 이가 없는 공동체입니다. 본문 3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4: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자기 것"이라는 말은 '이디온 에이나이'(ἴδιον εἶναι)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각자 자기의 영역, 개인의 것을 의미합니다. 즉, 공동체 안에서 개인이 숨기는 것을 말합니다. 초대교회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숨기지 않는 교회라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은 공동체는 곧 에덴 동산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아담과 하와와 함께 교제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아담과 하와는 하나된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으며, 숨기는 것이 없는 공동체였습니다. 하지만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아담과 하와는 숨었고, 자신들의 죄를 숨김으로써 에덴 동산의 공동체는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공동체의 한계

우리의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완벽하고 완전하다는 착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부족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모인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각종 장단점을 지닌 사람들이 성도들이 모여 있기에, 때로는 어두운 모습, 거짓된 모습, 죄와 속임수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 보이는 초대교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35절을 읽어 봅시다.
사도행전 4: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이러한 완벽한 공동체의 구성원 중에는 36절에 기록된 바나바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진실하게 자신의 밭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고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게 됩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5장에는 바나바와 똑같은 일을 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인 부부가 나옵니다.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입니다. 이들은 사도들에게 땅을 팔았지만, 그 값의 일부를 감추고 사도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초대 교회의 공동체의 한계입니다. 진실하게 나눈 바나바가 있는가 하면, 숨긴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있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이와 같이 부족한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서로에 대한 용납함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용납

요한복음 20장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려워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 자리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실 때 도망을 쳤던 사람들, 주님을 배반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또한 부활을 의심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의 공동체였지만 배반자들이었으며 의심하는 믿음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찾아 오신 주님께서는 배반자들, 의심자들을 비난하거나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께서는 "샬롬", 평안의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이 뿐 아닙니다. 도마라는 제자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다른 제자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손발의 못자국을 만져 보지 않으면 못 믿겠다고 합니다. 8일 후, 예수님은 도마와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해 주십니다. 또 예수님은 책망하시기보다는 도마에게 손발의 못자국, 옆구리의 창자국을 만져 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용납함, 교회 공동체의 힘

교회 공동체의 힘은 여기에 있습니다. 부족한 성도들을 용납하고 인내하며 참아 주는 것이 교회의 힘입니다. 약한 성도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평강을 빌어주고 손을 내밀어 주어야만 합니다. 앞서 찬양했던 것과 같이, 교회 공동체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용서하심을 본받아 우리도 용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는 모습입니다.
함께 나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배반자인 제자들에게"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처럼 서로를 있는 그대로 용납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세운 공동체인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에 우리가 들어가는 그 날까지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고 용납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 교회가 바로 진실한 공동체, 주님 주시는 평강과 용서함이 넘치는 교회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해 주는 아름다운 공동체, 주님의 기쁨이 되는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사는 주변의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를 전파하는 복된 공동체가 바로 우리 교회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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