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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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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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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위로

(요약)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님의 것이다. (롬14:7-9) - 개역개정 기준
오늘 본문 말씀에 대해 사도 바울의 의도는 믿음의 강자와 약자를 대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에 맞춰져 있습니다. 결론은 믿음의 약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그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다 넓게 해석하여 일반적인 죽음에 대한 비유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큰 문제는 없을 듯 하다고 생각하여 말씀을 준비해 봤습니다.
다시한번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일어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죽음일 것입니다.
최근 저의 처가에서 일어난 갑작스런 죽음과 그리고 예비된 죽음에 대한 느낌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외국인 동서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딸 부자집의 다섯째인데, 그 중 셋째 처형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첫째 처형이 파독 간호사로 가서 몇 년 후에 셋째 처형이 언니 초대로 독일로 갔는데 거기 병원에서 외국인 동서 게하르트를 만났다고 합니다. 결혼해서 독일에서 약30여년을 사셨는데 작년에 게하르트가 갑자기 질식사로 운명을 달리 했다는 소식을 아내로부터 들었습니다. 갑작스런 죽음 앞에 처형의 큰 슬픔이 아내의 소식을 통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몇 달 전 큰 처남이 공사일을 하던 중에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아무 가족도 만나지 못한채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앞서 동서의 죽음과 처남의 죽음에 대해 아내의 슬픔의 강도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같은 부모에서 태어난 형제가 죽는 것은 다른 사람이 죽은 것과는 다른 가슴 먹먹함이 있습니다.
현재 코비드19상황에서 한국에 갈 수가 없어서 아내를 SNS를 통해 위로를 해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제가 렌트해서 살고 있는 집에 할아버지가 계신데 몇 년 전부터 암투병중 이셨고, 몇 달 전에 병원에서 더 이상의 치료는 무의미하다고 해서 퇴원하여 집에서 요양중이셨는데 지난주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비된 죽음이었지만, 가족들의 울음소리는 온 집안을 매우 슬프게 울렸습니다.
예비된 죽음에 대한 슬픔도 이럴진대,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는 그 슬픔은 어디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크나큰 슬픔에 잠긴 처형과 그리고 아내에게 어떤 위로의 말씀을 전할지를 고민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때 오늘의 본문 말씀을 저에게 들려주셨습니다. 이 말씀과 더불어 관련된 복음송으로 위로를 해드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어떻게 위로가 되겠습니까?
조금은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갑작스런 죽음이나 예비된 죽음 역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는 죽음은 일부러 방조한 죽음과 살인, 자살등을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의 섭리라고 한다면 엄청난 오해가 있으므로 그것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 역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거스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견지해야 할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첫째,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본문 7절에서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위한 삶이나 죽음은 하나님과 이웃과의 단절이나 그들로부터의 고립과 소외를 전제로 합니다. 그것은 지극히 이기적인 자세이거나 자폐적인 태도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고 이웃사랑의 삶을 실천해야 할 그리스도인이 추구할 바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구원한 구원자인 주의 영광을 위해서 바쳐져야 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향해 이타적인 삶과 죽음의 모범을 보여준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의 대속적 죽음은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삶과 죽음의 궁극적 명분과 함께 이에 임하는 모범적인 자세를 제공해줍니다.
둘째, 오직 “주를 위해 살고 죽어야” 합니다.
본문8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통해 주께 영광과 존귀와 전적인 헌신이 되는 길을 선택하도록 부름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 주로부터 말미암았으며 주의 은혜 가운데 살다가 결국 주께로 회귀하리라는 믿음 위에 기초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주가 된다는 것은 반대로 그리스도인이 그 주께 종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대 로마의 신분제도에 비추어 보면, 그리스도인은 사나 죽으나 주께 소속된 존재로서 그 정체성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사도바울에 따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의 것이 된 이상, 삶과 죽음의 영역을 넘어, 또 믿음의 강약과 무관하게, 하나님에 의해 용납된 자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5절에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해 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이고, 주의 것입니다. 주를 위해 살고 죽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셋째,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9절을 보시면,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구원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가장 중요한 대상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대속하기 위해 죽으시고 또한 영생의 희망을 주기 위해 부활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산 자의 세계뿐 아니라 죽은 자의 세계도 관장하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주님임을 확증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죽었다고 해서 구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구원은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시고, 또 그 주님은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그리고 그 슬픔을 믿음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하고 오직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을 수 있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그리고 죽음을 통해 하늘 나라에서의 삶을 시작할 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주 예수께 속해 있으며 그러므로 그 분의 존귀와 영광을 위해 쓰여져야 합니다. (BTS 주석)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로 창조되어 이 세상에 살다가 아버지의 영원한 본향으로 가게 되는 섭리를 알고는 있지만, 세상에 살아가면서 그것을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서 슬퍼하지만, 정작 주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디 죽음에 대해서 슬퍼할 일이 아니고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부활의 능력을 깨닫게 되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사랑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마음속에 담대함을 주옵소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원하옵건데 하나님의 피조세계가 전에 없던 질병으로 고통속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저희가 알지만, 애굽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저희를 인도하사 부디 말씀으로 온 세상에 질병을 물리쳐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하나님의 피조세계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게 하옵소서.
여러가지로 부족한 저희들이 많지 않은 수이지만, 주님 앞에 영광을 드렸습니다.
온전히 받아 주시고, 우리가 걸어가는 걸음걸음을 항상 동행하여 주시고, 티끌 하나라도 우리를 헤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두 세 가정이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곳에 저희와 함께 있음을 우리가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늘 함께 하시어 온전히 주를 위해 살아가는데 힘쓰도록 하시고, 혹 가족중에 환자가 있다면, 치료의 손길을 주시사 빠른 치유로 고통을 벗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의 안식을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부디 주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는 믿음을 주시옵서소! 저희가 각 가정의 형편을 알 수 없사오나 아버지께서는 아시오니 그 형편의 여러가지를 살피시사 주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늘 정의가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도록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이 저희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모든 말씀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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