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를 선지자로 부르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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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 449장 / 예수 따라가며

기도

성경봉독

Isaiah 6:8–13 NKRV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서론

하나님은 이사야애게 자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셨다.
이사야는 자신의 부정함과 그 땅 백성의 부정함을 깨닫는다.
하나님은 성전 제단의 숲으로 그의 죄악을 사하여주신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선지자로 부르신다.
그에게 선포할 메시지를 주시며,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을 말씀하신다.
이 시대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는 시간되기를 소망한다.

본론

8절

Isaiah 6:8 NKRV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천상 회의

이사야는 하나님의 회의 내용을 듣게 된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아마 하나님이 옆에 있는 스랍 천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대표적으로 욥기 1-2장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이 말씀은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께서 서로 말씀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와 유다 사람들에게 누구를 보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것인가 의논하신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게 된 이사야는 자신이 가겠다고, 자기를 보내달라고 자원한다.
감동적인 장면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자들 되길 원한다.
하나님의 일에, 교회의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자들이 되길 원하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 말씀하신다.
이 말은 누군가를 보내고 싶은데 보낼 사람이 없어 고민하거나 염려하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고민하고 염려하는데 이사야가 나서서 ‘자기가 가겠다’고 말해서 하나님이 고마워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자존하신 분이다.
이 말은 하나님은 누구의 도움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으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시작부터 끝까지 이루신다.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원사역 또한 마찬가지이다.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거드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은혜로 그 사역에 동참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나님은 이미 이사야를 선지자로 세우시고 그를 보내기로 작정하셨다.
이사야에게 환상을 보여주신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뜻이 정해졌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뜻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만약에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너가 가 줄 수 있겠냐’고 부탁하며 설득하겠는가?
만약 이사야가 그것마저 거절하면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찾으러 다니시겠는가?
만약 보낼 사람을 찾지 못하면 구원사역에 지장을 받게 되는가?
결코 아니다.
모세의 부르심을 보라.
그가 아무리 주저하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기를 두려워하였어도,
결국 보냄을 받아 그의 사명을 감당하였다.
이미 모세의 태어날부터,
나일강에서 건짐을 받아 바로의 딸의 아들이 되어 ‘모세'라는 이름을 얻게 될 때부터,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다.
이사야도 마찬가지이다.
이사야가 소명을 받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은 이사야를 아셨다.
하나님은 이사야의 뒤를 이어 사역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세우실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Jeremiah 1:5 NKRV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아셨다.
우리의 이름을 아셨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기로 작정하셨다.
그 뜻 안에서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 은혜를 찬양하자.
이사야가 고백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의 오묘함이 담겨 있는 고백.
나의 의지로 예수를 믿은 것 같다.
맞다.
열심히 신앙생활하는데 내 의지가 필요한 것 같다.
맞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안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섭리가 담겨 있다.
믿는 것도, 열심을 품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믿음도 열심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얻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진리를 다음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다.
9-10절 말씀.

9-10절

Isaiah 6:9–10 NKRV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사실 이 말씀은 우리를 당혹케 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고민이 되기도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낼 사람을 찾으셨다.
정작 이사야를 보내시면서 주신 메시지가 무엇인가?
무엇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시는가?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것은 예언의 선포이다.
그리고 그 선포는 그대로 성취될 것이다.
이사야는 예루살렘 주민에게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의 메시지를 보여 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 사실조차 이미 아시고, 이를 함께 선포하라고 말씀하신다.
이어지는 10절 말씀은 이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Isaiah 6:10 NKRV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이 말씀 속에는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그들의 귀를 막히게 하고, 그들의 눈을 감기게 하는 분이 하나님인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이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시는 것 같다.
그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말씀의 의미를 좀 더 정확히 이해하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이 인용하신 사 6:9-10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신 이 말씀을,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동일하게 말씀하심.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심.
그 중에 하나가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
Mark 4:3–9 NKRV
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이 말씀 후에 예수님이 홀로 계실 때,
제자들과 함께 한 사람들이 이 비유의 뜻을 예수님께 질문하자 이렇게 대답하심.
Mark 4:11–12 NKRV
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마태복음은 이 장면을 좀 더 상세하게 말씀해 준다.
Matthew 13:13–17 NKRV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사야에게 주신 말씀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Matthew 13:15 NKRV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의 주체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가 완악한 마음을 품은 것이다. 마음이 무디어진 것이다.
스스로 귀를 막고, 스스로 눈을 감은 것이다.
Isaiah 6:10 NKRV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이사야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함께 담겨진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거부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아래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께 그 책임을 결코 돌릴 수 없다.
때가 되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인용한 사 6:9-10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오게 된 바울.
Acts 28:23–28 NKRV
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하나님은 이 땅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이다.

11-13절

Isaiah 6:11–13 NKRV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멸망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복을 약속하셨고 그 땅에 소망을 남겨 두셨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거룩한 씨'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킴.

결론

하나님은 이 땅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원하신다.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신다.
모세를 부르셨다.
사사들을 세우셨다.
선지자들을 보내셨다.
이사야를 보내셨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다.
히 1:1-2
Hebrews 1:1–2 NKRV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요 8:42)고 말씀하심.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고, 그 제자들을 이 세상으로 보내셨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John 17:18 NKRV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John 20:21 NKRV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의 대사명.
Matthew 28:18–20 NKRV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너희는 가라! 가서 제자를 삼으라.
이 사명이 이제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왕 같은 제사장' 삼으셨다.
비록 이 땅의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완악하여져서 하나님을 거부한다 할지라도 복음을 선포할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1 Corinthians 1:21 NKRV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이 귀한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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