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를 선지자로 부르시다(1)

365기도회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45 views
Notes
Transcript

사도신경

찬송 67장 / 영광의 왕께 다 경배하며

기도

성경봉독

Isaiah 6:1–7 NKRV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서론

이사야 1장부터 5장까지 내용
예루살렘과 유다의 죄악
하나님의 심판과 예루살렘, 유다의 멸망
6장은 장면이 바뀜
이사야 선지자가 소명을 받는 장면.
이사야서는 시간 순서로 기록된 것이 아님.
1-5장의 내용은 소명을 받은 이후 하나님께 받은 예언의 말씀
6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
이사야를 비롯한 우리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지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소명이 무엇인지

본론

1-3절

Isaiah 6:1–3 NKRV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사야가 하나님께 소명을 받은 때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웃시야 이후 그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됨
인간은 유한하다.
생로병사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죽음을 맞이함
범죄하여 타락한 인간에게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
그러나 믿는 자의 죽음의 의미는 예수님 안에서 달라졌다.
영생과 부활의 몸을 갖기 위한 죽음이다.
이사야가 소명을 받는 해에 웃시야 왕은 죽는다.
왕도 죽는다. 이 땅의 모든 것을 가진 왕도 죽는다.
그러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은 영원한 왕이시다.
인간 왕은 왔다 가고 왔다 가지만 하나님은 변함없으시다.
이사야는 그 영원한 왕을 보게 된다.
이사야는 환상을 본다.
높은 곳에 한 보좌가 있고 그곳에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이 앉아 계신다.
엄청난 환상이다.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환상이다.
부정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이 사실을 이사야는 5절에서 고백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특별한 은혜를 이사야에게 베푸시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신다.
이사야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보좌를 본다.
하나님의 보좌는 높이 들려 있다.
이는 하나님의 권위가 우리 인간을 초월해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온 천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상징한다.
이 하나님을 이사야는 ‘주', ‘주님'이라 부른다.
그런데 하나님이 입으신 옷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다.
이 성전은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사야 선지자가 예루살렘 성전에 있을 때 환상을 본 것이다.
소명을 받아 선지자로 세움받기 전부터 이사야는 하나님과 민족을 향한 사랑을 품었던 자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하나님은 어느 한 곳에만 계시지 않는다.
온 땅에 충만하신 분이다.
그러나 특별히 한 장소를 정하시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마 이사야는 타락한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습을 가슴아파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버리고 떠나신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그 성전에 임하고 계셨다.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의 옷자락이 성전에 닿아 있을 뿐 아니라 성전에 가득한 모습을 보며 큰 위로를 얻었을 것이다.
여전히 하나님의 임재가 이 성전에 있음을 깨닫고 소망을 가졌을 것이다.
하나님의 옷자락이 우리에게도 닿아 있다.
하나님은 결코 먼 곳에 계신 분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기도를 다 보고 계시며 다 받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전 삼으셨다.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우리를 당신이 거하시는 곳으로 삼으셨다.
은혜이다.
2절
이사야의 시선은 하나님 보좌 주변에 있는 스랍들을 향한다.
스랍은 천사의 한 부류이다.
하나님 보좌 옆에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섬긴다.
오늘 본문에서만 등장한다.
스랍은 ‘불타는 모양'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아마도 이 천사의 모습이 불꽃 같이 보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스랍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들에게는 여섯 날개가 있다.
두 날개로는 자신의 얼굴을 가린다.
또 두 날개로는 자신의 발을 가린다.
나머지 두 날개로 날아다닌다.
스랍 천사조차도 감히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다.
발은 땅과 닿는 곳으로 부정함을 상징한다.
모세가 떨기나무에 임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은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다(출 3:5).
천사도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다.
창조주 하나님과 비할 수 없다.
3절
이사야는 스랍들의 찬양소리를 듣는다.
Isaiah 6:3 NKRV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스랍들은 ‘거룩하다'를 3번 반복.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정도를 강조
하나님은 완전히 거룩하신 분
하나님은 전적으로 거룩하신 분
이 세계는 분명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통치하고 계심.
그러나 하나님은 이 창조세계, 피조세계와는 모든 면에서 구별되시고 철저히 떨어져 계신 분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온 땅에 충만하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만 계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계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온 땅에 충만하다.
이 세상 모든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다.
이 자리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줄 믿는다.
그 영광을 바라보는 우리들 되길 원한다.
스랍들의 이러한 찬양 소리는 온 땅을 흔든다.

4절

Isaiah 6:4 NKRV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높은 곳에서 울려퍼지는 스랍들의 찬양 소리에 땅이 흔들린다.
성전과 성전의 문지방이 놓여 있는 그 터가 요동한다.
또한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차게 된다.
연기가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또 다른 상징
모세가 광야에서 성막을 처음 만들어 봉헌을 할 때
Exodus 40:34–35 NKRV
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할 때
1 Kings 8:10–11 NKRV
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이사야는 말로만 듣고 글로만 읽었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되었다.
너무나도 가슴 벅차고 감동스러운 장면 속에 불현듯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된다.

5절

Isaiah 6:5 NKRV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이 장면은 이사야가 선지자로서의 소명을 처음 받는 순간이다.
1-5장의 말씀은 이 사건 이후에 받게 되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 영광이 충만한 곳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가?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는 자이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사람의 인격과 어떠함을 드러내는 척도이다.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은 입술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가 부정하다는 뜻이다.
이사야는 이 땅의 사람들의 죄악을 보았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는 예루살렘과 유다 사람들의 타락한 삶의 모습을 보았다.
그로 인해 가슴 아파하고 또한 그들을 정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또한 고백한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다.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살아가는 자신 또한 부정한 자임을 깨달을 것이다.
옷을 입고 다니다보면 지저분해진다.
그러나 매일 입고 다니다보면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어느 순간 옷이 더럽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깨끗한 옷 옆에 가게 될 때, 비교가 될 때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서 있을 때 사람들과 자신의 부정함을 깊이 깨달은 이사야.
우리도 이것을 놓칠 때가 많다.
죄인이지만 죄인이라고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간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Romans 1:28–32 NKRV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부하며 상실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옳다고 말하며 합리화하며 살아간다.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없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자신들이 죄인인 것이 드러날까 두려워 애써 거부하며 피해 다닌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John 3:19–21 NKRV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빛이신 예수님께 나아갈 때에
비로소 우리는 죄인이며 부정한 자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본질이며 실체이다.
나는 죄인이다.
이 깨달음은 우리에게 절망을 안겨준다.
이사야가 뭐라고 외치는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그렇다. 죄인인 인간의 인생은 망한 인생이다.
그 인생의 끝은 죽음이다.
Hebrews 9:27 NKRV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것이 우리 죄인인 우리 인간의 운명이다.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은혜가 임했다.
이사야에게 은혜가 임했다.
6-7절
Isaiah 6:6–7 NKRV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하나님은 스랍 천사를 보내셔서 성전 제단에 있는 숯을 가지고 이사야의 입술에 갖다 댄다.
부정한 입술에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의 불꽃이 닿았다.
스랍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은혜가 임했다.
이사야에게 은혜가 임했다.
나 자신의 죄는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아무리 깨끗하게 살고자 노력해도 나의 부끄러운 죄만 더 깨닫게 된다.
내가 스스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구약제사도 그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제사를 통해 죄사함을 받아도 다시 죄를 지으면 또 제사를 드려야 한다.
반복되는 제사 속에 죄인인 자신을 깨닫게 하신다.
우리의 죄의 문제는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다.
우리를 죄에서 깨끗케 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
예수님께만 소망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소망이다.
예수님의 그 피만이 우리를 깨끗케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결론

하나님은 이사야를 선지자로 세우시기 위해 그에게 나타나셨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고,
이사야는 자신의 부정함을 깨닫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전 숯불로 그의 죄악을 사해주시며 그에게 선지자의 사명을 맡기신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